야동 좋아하시는지요? 저는 엄청 까지는 아니래도 꽤 좋아해요. 다시 보인다구요? 왜요?  야구 동영상 좋아하는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 ^

 

 

 

보령가는 길에 남포를 지나게 됐는데 희한한(?) 이름의 동네를 지나게 됐어요. 아니, 글쎄 동네 이름이 야동이지 뭐예요[사진]. 이 동네 분들 야구 동영상을 정말 좋아 하시나 봐요. 동네 이름을 이렇게까지 지을 정도이니. 야구협회에서 감사패라도 증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더군요(어쩌면 벌써 증정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집에 와서 이 마을 이름의 한자 표기를 검색해 봤어요. 당연히 野動[들 야, 움직일 동]으로 표기할 것이라 예상했죠. 그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네, 미루어 짐작하셨겠지만, 野動이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이 동네 분들은 야구 동영상을 좋아해서 이런 이름을 사용한 게 아니예요. 그러면 혹 '그' 야동을 좋아해서 이런 이름을 사용한 걸까요? 당연히 아니예요. '그' 야동도 한자 표기는 野動을 사용하니까요. 물론 이 때의 野는 '들'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거칠다'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좀 다르죠.

 

 

 

그러면 이 동네 이름의 야동 한자 표기는 어떻게 하냐구요? 冶洞[쇠 불릴야, 마을 동]으로 표기해요. 순 우리 말로 바꾸면 '풀무골'이 되겠지요. 어쩌면 처음에는 이 이름으로 불리다 나중에 한자식 이름으로 바뀌면서 야동으로 불린 것 아닌가 싶어요. 야동이란 이름은 이곳에 쇠를 다루는 대장간이 많았던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요. 동네 이름이 대개 그 동네의 특징(산)과 관련하여 붙여지는 것을 볼 때, 무리한 추측은 아닐 거예요.

 

 

 

이렇게 보면 야동 마을은 본래 억세고 선이 굵은 이들이 모여사는 동네란 이미지가 강했을 거예요. 쇠를 다루는 이들은 대개 억세고 선이 굵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다 한갖(?) 야구나 좋아하고 야한 동영상이나 즐기는 동네란 이미지를 갖게 된 걸까요? 그래요, 한자를 단순히 한글 음으로만 표기한데서 비롯된 착시인 거죠. 아예 우리 말로 풀어서 표기를 하거나 한자로 표기했다면 그런 구질구질한(?) 이미지를 갖게 되진 않았을 거예요. 동음이의어에 취약한 한글 전용 표기의 한 사례라고 생각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동음이의어에 취약한 한글 전용 표기의 웃지 못할 사례가 나오더군요(아래 표). 처음에는 멋모르고 웃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게 웃을 일인가?' 싶더군요. 생각해 보셔요. 님이나 제가 이곳에 산다면 웃음이 나오겠어요? 함부로 웃을 일이 아닌 것이죠. 일부러 마을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이 이름을 굳이 사용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의미를 풀어서 마을 이름을 표기해야 할 거예요. 한자로 표기하면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한자를 잘 모르니까, 의미를 풀어 쓰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죠. (이 지명은 주소 체계가 바뀌전의 사례예요.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주소 체계 변경 이후의 지명은 어떻게 됐는지 확인을 못해 봤네요. 죄송.)

 

 

 

 [인용 출처 : https://namu.wiki/w/%ED%8A%B9%EC%9D%B4%ED%95%9C%20%EC%A7%80%EB%AA%85/%EB%8C%80%ED%95%9C%EB%AF%BC%EA%B5%AD]

 

 

 

야동 마을 주민 분들도 자신들의 마을 이름에 덧씌워진 야릇한 이미지를 모르시진 않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저렇게 거창한 입석까지 세워 놓은 것을 보면 그런 야릇한 이미지에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가 봐요. 달관한 걸까요? 포기한 걸까요? 즐기는 걸까요?

 

 

 

 

冶洞의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는 冫(氷의 초기 글자, 얼음 빙)과 台(怡의 축약형, 기뻐할 이)의 합자예요. 쇠를 불린다는 뜻이에요.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것으로 그 의미를 표현했어요. 台는 음을 담당하면서(이→야) 뜻도 일 부분 담당해요. 기뻐하면 경직된 분위기가 풀리고 화기애애하듯이 쇠도 불리면 딱딱했던 성질이 연화된다는 의미로요. 쇠불릴 야. 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冶金(야금), 冶坊(야방, 대장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氵(물 수)와 同(한가지 동)의 합자예요. 본래는 많은 물줄기가 한 군데로 모여 세차게 흐른다는 뜻이에요. 마을이란 의미는 여기서 연역된 거예요. 마을과 물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마을 동. 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洞口(동구), 洞里(동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쇠불릴 야    마을 동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口     冶(   )

 

3. 야릇한 지명이나 인명을 소개하고 그 이름을 한글로 풀어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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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01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 웃긴 지명이 생각보다 많네요. 출처 링크에 올린 나무위키를 봤는데, ‘대구 비산동’이 왜 특이한 지명 목록에 있는지 의아스러워요. 제가 예전에 살았던 곳이 비산동이었거든요. ^^

찔레꽃 2016-08-02 06:5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의아스럽네요. 그리 특이한 이름이 아닌 것 같은데... 혹 무슨 독약의 이름과 비슷해서? ^ ^
 

 "좀 너무 한 거 아냐? 아무리 대학생들을 상대하는 곳이라지만!"

 "뭔데?"

 "저기 봐, 안 보여? 섹스 피자! 어떻게 가게 이름을..."

 "으~엉! 정말? 어디 봐~ 어이구, 하여간!"

 "그치, 좀 심했지?"

 "하여간 생각하는 것 하구는... 뭔, 섹스 피자여? 섹스 피자는! 센스 피자지!"

 "으~엉? .... 그러네..."

 "하여간~ 생각하는 것 하고는~"

 

오래 전, 처와 천안을 갖다오는 길에 순천향대학교를 지날 때 였어요. 주변 가게 이름에 '섹스 피자'라는 간판이 있더군요.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간판 같았어요. 그래도 좀 지나치다 싶어 혀를 찼지요. 그랬더니 그게 '섹스 피자'가 아니고 '센스 피자'더군요. 같이 갔던 아내한테 핀잔만 먹고 졸지에 '색마'로 낙인 찍혔지요.

 

<대학>에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란 말이 있어요.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란 뜻이에요. 대상에 마음을 집중해야 대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지요. 대상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다른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는 걸 거예요. 제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지요. 멀쩡한 글자를 엉뚱한 글자로 오독하는 것은 마음이 다른 생각으로 채워져 있기에 그런 것 아니겠어요?

 

사진은 명차(茗茶)라고 읽어요. '차 잎으로 만든 차'란 의미예요. 그런데 저는 이것을 '도라지 차'라고 알고 있었어요. 며칠 전 아내가 사진의 차를 저에게 타 주면서 '도라지 차'라고 했기 때문이에요(나중에 물어보니, 아내도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들어다고 하더군요). 맛도 도라지 맛이 났구요. 하여 당연히 茗은 '도라지'라는 뜻일 거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니, '차, 혹은 차나무'란 뜻으로 나오더군요. 선입견으로 잘못 짚었던 것이지요. 이 역시 '섹스 피자'와 다른 바 없는 '시이불견'의 예일 거예요.

 

살면서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사소한 경우야 웃고 넘길 수 있지만 큰 일의 경우 많은 사람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겠지요. 최근 사드 배치 관련 정부의 일처리를 보면 왠지 시이불견의 일처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전[미국]의 말씀만이 마음에 가득차 상황을 바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茶는 잘 아실테니 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茗은 艹(풀 초)와 名(이름 명)의 합자예요. 차(나무)의 싹이란 뜻이에요. 艹로 뜻을 표현했어요. 名은 음을 담당해요. 차(싹) 명. 茗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茗器(명기, 차를 마시는 그릇), 茗圃(명포, 차름 심은 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오늘은 정리 문제가 필요 없겠죠?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셔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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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업보지~"

 

한 지인이 남자(편)들이 아내와 자식들한테 제대로 대접 못받거나 황혼 이혼 당하는 현실을 개탄하자 아내되는 분이 한 말이에요. "뭔, 소리여?" "생각해 봐. 그간 여자들과 아이들이 얼마나 남자(편)들에게 억눌려 살았어? 그 댓가를 받는 거지!" "아니, 그건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때지. 우리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샌드위치 신세로 살아왔는데 왜 우리가 그 업보를 받아야 돼? 너무 억울해!" "어쩔 수 없지! 그게 세상 흐름인데... 하여간 업보야. 괜히 그런 일이 생겼겠어?" "..."

 

사진은 광천의 오서산을 가는 길에 찍은 거예요. 정려각 편액이에요. 읽어 볼까요?

 

열녀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훈련원도정 행 절충장군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유수 처 증 정부인 원주변씨지각

순조 이십일년 임오 명정 철종 팔년 무오 감난공 증직

 

무슨 내용인지 알아 볼까요?

 

'열녀'는 설명이 필요 없겠죠? '증'은 사후에 벼슬을 올려주었다는 의미예요.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훈련원도정"이 사후에 올라간 벼슬 이름이에요. '가선대부'는 종 2품에게 내리는 봉작으로 직급을 의미해요. 병조참판이 실제 벼슬 이름이죠. '겸'은 겸직했다란 의미예요. '동지의금부사'와 '훈련원도정' 역시 벼슬이름이에요. 이 두 벼슬은 병조참판보다 한 단계 낮은 정 3품의 벼슬이에요. '행'은 품계는 높은데 실제 맡은 벼슬은 그보다 낮은 벼슬을 했을 때 붙이는 명칭이에요. 사후에 벼슬이 올라갔으니 생전에 받았던 벼슬은 낮은 것이 되기에 사용한 것이죠. '절충장군'은 정 3품에 해당하는 무신에게 내리던 봉작이에요.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실제 벼슬 이름이죠. '이유수'는 정려각 주인공의 남편 이름이에요. '처'는 설명이 필요없겠죠? '증'은, 앞서 말한대로, 사후에 직급을 올렸을 때 사용하는 명칭이에요. 여기서는 남편의 직급이 올라갔기에 아내되는 이의 명칭도 올라간 것을 말해 주지요. '정부인'은 종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이의 아내를 부르는 명칭이에요. 이유수라는 분이 생전에는 정 3품의 벼슬을 지냈기에, 이에 준하면, '숙부인'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사후 남편의 벼슬이 올라갔기에 '정부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원주변씨지각'은 원주 변씨의 정려각이란 의미예요. 이하 내용은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군요. 아, '명정'과 '감난공 증직'이란 말은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명정'은 임금의 명으로 정려각을 세우게 됐다는 의미이고, '감난공 증직'은 국가의 어려운 일 -- 여기서는 홍경래의 난을 의미 -- 을 해결한 공으로 벼슬을 올려 받게 됐다는 의미예요. 이유수는 생전에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지만 인정을 못받았고 사후에 재평가돼 공로를 인정받았지요.

 

정려각의 실제 주인공은 원주 변씨인데  편액의 내용은 원주 변씨보다 남편에 관한 내용이 훨씬 더 많아요. 주인공께서 좀 섭섭하실 것 같아요. (아, 이것도 한 시대의 흐름이니 그런 마음이 안드실라나요?)

 

그런데 이런 정려각의 편액으로는 원주 변씨가 어떠한 분이었는지 알 길이 없지요? 아무런 느낌도 없구요. 설명판을 읽어야 비로소 이 분의 체취를 맡고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설명판의 일부 내용을 읽어 볼까요?

 

원주 변씨는 길주목사 변성화의 맏딸로, 전라좌수사 이유수의(1769 ~1821)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원주 변씨는 1787년(정조 11) 여름에 길주 목사로 근무하던 부친 성화의 병이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게 하여 생명을 3일간 연장시켰다. 부친이 사망하자 변씨는 3년 상을 지낼 장성한 아들이 없어 맏딸로서 시댁의 허락을 받아 묘 앞에 여막을 짓고 3년 상을 지냈다.

1811년(순 11) 겨울에 남편 이유수를 따라 숙천 임지에 있을 때, 홍경래의 봉기로 주변 여러 고을이 함락되었으나, 상경 중인 남편을 대신해 관군을 이끌며 큰 공을 세웠다 한다.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남편 이유수가 신병의 악화로 고항에 돌아오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피와 살을 고아서 먹이는 등의 지극한 간호를 하였으나 끝내 운명하였다. 이에 변씨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비상을 마시고 남편을 따라 사망하였고, 부부의 장례를 함께 거행하였다고 한다.

 

편액만 읽었을 때 하고는 확실히 차이가 있죠? 어떤 체취와 느낌이 드시는지요? 분명한 건 이 분이 평범한 여인은 아니라는 걸 거예요. 아버지와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눈물겨운 일들도 일들이지만 무엇보다도 남편을 대신하여 관군을 이끌었다는데에서 그런 면모를 느낄 수 있어요. 생사의 문제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호연지기를 가졌던 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까지 읽어도 아직은 이 원주 변씨라는 분이 그렇게 실감있게(?) 와닿지 않지요? 자, 그러면 제가 설명판에서 숨겨 놓았던 부분을 소개해 볼게요. 그러면 정말 이 분에 대해서 실감있게 느끼실 거예요.

 

(원주 변씨의) 큰 딸은 안동 김안근과 결혼하여 병하 병연 형제를 두었으니, 원주 변씨는 김병연, 즉 김삿갓의 외조모가 된다.

 

이제는 좀 실감있게 느껴지시지 않나요? 김삿갓의 외조모, 그 분이 바로 원주 변씨였어요! 김삿갓의 기세(棄世, 세상을 버림)는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죠. 그가 그런 일을 하게 된 데에는 직접적으로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할아버지를 과장(科場)에서 매도했던 충격에 기인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외할머니의 기상을 물려받은데에서도 기인하지 않았나 싶어요. 충격을 받았다고 아무나 기세하진 않으니까요.

 

정려문이나 정려각은, 주지하는 바처럼, 유교 이념을 장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죠. 조선 시대에 와서 널리 퍼졌지만 거슬러는 삼국 시대까지 올라간다고 해요. 한 남편을 사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죠. 지고지순한 사랑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장려될 일은 결코 아닌 것 같아요. 유교의 비조인 공자께서는 인형을 무덤에 묻은 자들을 저주하며 "(그들에겐)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어요. 사람의 현상을 한 인형조차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했다면 산 사람의 목숨은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유교는 본시 생명을 더없이 존중하는 이념이에요. 이런 이념이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로 전화되면서 남성 중심 국가 중심으로 왜곡되어 부질없이(?) 효자 충신 열녀를 양산한 것이지요. 효자 충신 열녀의 행동은 그 나름으로 아름답지만, 이들의 행동을 결코 보편화시킬 순 없어요. 그것은 삶[생명]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역행한 일들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원주 변씨라는 분의 정려각을 보면서 슬픈 마음이 들었어요. 왜곡된 이데올로기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한 여인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살아서 더 아름다운 삶을 구현할 순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보죠. 남자(편)들의 시세가 한없이 추락하는 것이 업보라는 지인 아내분의 의견은, 제가 보기엔, 과히 틀리지 않은 견해예요.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것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남자(편)들의 시세는 아마도 지속적으로 떨어질 거예요. 그러다 어느 시점에 가면 균형을 잡겠지요. 아, 그 시점이 언제가 될까요? 제 자식의 손자쯤 가면 균형이 잡히지 않을까요?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까지 권위를 누렸으니(그 이전 세대는 계산하지 말구요). 불쌍한 남자(편)들~ (저도 남자(편)입니다. ㅠㅠ)

 

위 편액의 핵심 한자는 烈, 旌, 閭예요. 좀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죠.

 

은 火(불 화)와 列(벌일 렬)의 합자예요. 불이 맹렬히 타오른다는 의미예요. 火로 뜻을 표현했지요. 列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불이 맹렬히 타오르면 이로 인해 물체들이 불에 타서 망가지고 이리저리 흩어지게 된다는 의미로요. 세찰 렬. 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烈火(열화), 激烈(격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깃대 위에 이우(犛牛, 검은 소)의 꼬리를 달고 이것을 새털로 장식한 기예요. 生은 음을 담당하고(생→정) 나머지 부분은 뜻을 담당해요. 기 정. 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旌竿(정간, 깃대), 旌鼓(정고, 기와 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旌閭(정려)의 旌은 먼 곳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이고, 閭는 마을이라는 의미예요. 따라서 旌閭란 마을에서 잘 알아 볼 수 있게 설치한 시설물이란 의미예요. 그것이 문의 형태이면 정려문이라 하고, 집의 형태면 정려각이라고 하지요. 정려의 대상은 열녀, 효자, 충신 등이에요. 

 

는 門(문 문)과 呂(등뼈 려)의 합자예요. 마을의 입구에 세우는 문이란 의미예요. 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呂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마을 문 안에 있는 가구들은 마치 등뼈가 이어져있는 것처럼 죽 이어져 있다는 의미로요. 이문 려. 閭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閭閻(여염, 민간), 閭巷(여항, 민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세찰 렬   기 정   이문 려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竿   (   )巷   激(   )

 

3. 남녀(부부)간 화목하게 지내기 위한 제 1 덕목을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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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2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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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2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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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법정, 리영희, 함석헌..."

 

  정치 지도자는 아니지만 그만 못지 않게 우리 시대를 이끌었던 큰 인물들이죠. 이 분들이 세상을 뜨셨을 때 많은 이들이 그들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슬퍼했죠. 이 분들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은 그 정도가 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슬픔도 이와 같았을 것 같아요.

 

 사진의 추모시(追慕詩)는 토정 선생의 애제자 중봉 조헌이 지은 것인데 비록 28자 밖에 안되는 짧은 시지만 선생을 잃은 아쉬움과 슬픔을 곡진히 표현했어요(이 시는 앞서 소개했던 '선생의 시'를 새긴 바윗 돌 뒷면에 있어요).

 

정말 훌륭한 사람은 지근에 있는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죠. 중봉 조헌은 선생과 천리 길을 함께 다닌 길벗이자 제자였어요. 더없이 가까운 사이였죠. 그런 제자가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내 허물이 줄어 들 수 있겠다(期我終身小過尤)"고 말했다면 그 선생은 어떤 선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말이 필요없지 않을까요? 그토록 존경했던 선생을 잃었으니 제자된 사람으로 얼마나 슬펐겠어요.

 

그러나 조헌은 그 슬픔이 자신만의 슬픔이 아니라 이 나라 백성들의 슬픔이기도 하다는 말로 선생의 죽음이 갖는 아쉬움과 슬픔을 극대화했어요. "아아, 이제는 그 누가 제민책을 낸단 말가(可憐誰進濟民謀)"란 구절이 그것이에요. 큰 어른이란 자신을 소아(小我)에 가두지 않고 대아(大我)로 확장한 분들이죠. 하여 사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 양 가슴 아파하며 해결하려고 노력한(하는) 분들이죠. 조헌은 토정 선생을 그런 대인[碩人]으로 보았고, 그런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자신은 물론 백성 전체에게 크나 큰 슬픔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중봉 조헌의 추모시는 상투적인 추모시가 아니예요. 그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산화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됐던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스승을 추모하는 시를 썼는데 상투적인 추모시를 쓸리 없지요. 비록 소략한 28자의 추모시지만 그 어떤 수사가 넘쳐나는 추모시보다 더 훌륭한 추모시라 생각해요.

 

사진에 나온 한시를 한 번 읽어 볼까요? 시비에는 원 제목이 빠져 있어요. 추가해서 읽어 보도록 하죠.

 

保寧道中憶土亭先生 보령도중억토정선생     보령가는 길에 토정 선생을 생각하다

 

碩人千里昔同遊 석인천리석동유      옛날 선생과 함께 먼 길을 다닐 적

期我終身少過尤 기아종신소과우      이내 몸 종신토록 허물 없으리라 생각했네

今日重來思不見 금일중래사불견      오늘 다시 선생을 뵈러 왔으나 뵈올 길 없어라

可憐誰進濟民謀 가련수진제민모      아아, 이제는 그 누가 제민책을 낸단 말가

* 시비의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임의로 고쳤어요. ^ ^

 

 

낯선 한자를 몇 자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頁(머리 혈)과 石(돌 석)의 합자예요. 머리가 크다는 의미예요. 頁로 뜻을 나타냈어요. 石은 음을 담당해요. 클 석. 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碩士(석사), 碩果不食(석과불식,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으로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자손에게 복을 끼쳐 준다는 의미로 사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辶(걸을 착)과 斿(깃발 유)의 합자예요.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듯 특별한 목적없이 한가롭게 여기저기 거닌다는 뜻이에요. 놀(거닐) 유. 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遊覽(유람), 外遊(외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乙(싹이 땅위로 솟아나는 모양. 여기서는 특별하다는 의미로 사용)과 又(손을 단순화 시킨 모양)의 합자예요. 물건을 손에 놓고 그 중에서 특별한 것을 골라낸다는 의미예요. 다를(더욱) 우. 허물이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 경우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허물이란 일상적인 행동과 다른 특별한 행동이란 의미로요. 허물 우. 尤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尤甚(우심, 더욱 심함), 尤悔(우회, 허물과 후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忄(마음 심)과 粦(燐의 약자, 도깨비불 린)의 합자예요. 슬프고 애닯다는 의미예요.  忄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粦은 음을 담당하면서(린→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도깨비 불은 시체의 인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를 보면 놀라고 슬픈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로요. 불쌍히여길 련. 憐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憐憫(연민), 哀憐(애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言(말씀 언)과 某(梅의 약자, 매화 매)의 합자예요. 어려움에 대처해나가는 지략이란 의미예요. 지략은 말로 표현되기에 言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某는 음을 담당하면서(매→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매실이 떫고 씁쓸한 맛에서 시고 달콤한 맛으로 변하듯 어려움을 편안함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지략이란 의미로요. 꾀 모. 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圖謨(도모), 謀議(모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클 석    놀 유    허물 우    불쌍히여길 련    꾀할 모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覽   (  )   (  )悔   (  )果不食   (   )

 

3. 다음 시를 읽고 풀이해 보시오.

  

   碩人千里昔同遊/ 期我終身少過尤/ 今日重來思不見/ 可憐誰進濟民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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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시

 

아, 맑은 강이여 흰 갈매기 노니는 곳이로다

아, 흰 갈매기여 맑은 강가에 노닐고 있구나

맑은 강은 흰 갈매기의 깨끗함을 좋아하니

흰 갈매기 오래도록 맑은 강가에 머무리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소 입구에 있는 시비(오른 쪽 사진)의 시예요. 읽어 보시니 어떤가요? 전 그리 뛰어난 시라고 느껴지지 않더군요. 일단은 형식면에서 동일한 운자와 시어를 반복해 사용했기에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어요. 내용도 그리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지 않구요. 고작 유유상종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거든요.

 

선생의 시라고 보기엔 왠지 좀 어색해 보여서 인터넷 자료를 찾아 보았더니, 제 예감이 적중했어요. 『고금소총』엔 어느 무인이 남긴 시라고 되어 있고 『토정선생유사 에도 선생의 작품으로 전해지나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더군요.

 

이런 정체 불명의 시를 왜 많은 비용을 들여 돌에 새겨 놓은 걸까요? 후손이나 이 일을 추진한 분들의 무성의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약간의 성의만 있었으면 이 작품을 새기지 않았을 것 같아요. 대신 익히 알려지고 선생의 삶과도 핍진한 '대인설(大人說)'을 새겼을 것 같아요.

 

 

사람에게는 네가지 바램이 있다. 안으로는 신령스러우며 의지가 굳기를 원하고, 밖으로는 부하고 귀하기를 원한다. 귀하려면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부하려면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의지를 굳게 하려면 남과 다투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신령스러우려면 지식을 갖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지식을 갖고 있지 않지만 신령스럽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천성이 어둡고 우둔한 자가 그러하다. 남과 다투지 않지만 의지가 굳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천성이 나약한 자가 그러하다. 욕심이 없지만 부유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빈한한 운명의 소유자가 그러하다. 벼슬을 하지 않지만 귀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신분이 미천한 자가 그러하다. 지식이 없으면서도 신령스럽고 남과 다투지 않으면서도 의지가 굳으며 욕심이 없으면서도 부유하고 벼슬이 없으면서도 귀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대인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人有四願 內願靈强 外願富貴 貴莫貴於不爵 不莫富於不欲 强莫强於不爭 靈莫靈於不知 然而不知而不靈 昏愚者有之 不爭而不强 懦弱者油之 不欲而不富 貧窮者有之 不爵而不貴 微賤者有之 不知而能靈 不爭而能强 不欲而能富 不爵而能貴 唯大人能之).

 

이런, 선생의 시를 소개하려고 한 것이 엉뚱하게 후인의 무성의를 탓하는 내용으로 흘렀네요. 제가 약간 흥분했었나 봐요. 하하하. 아무튼 이따금 이런 무성의한 작품이나 해설을 대하면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님께서는 어떠신지요?

 

한자를 좀 살펴 볼까요? '선생의 시'에서 나온 한자 중 鷗와 邊이 좀 낯설어 보이죠?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죠.

 

는 鳥(새 조)와 區(漚의 약자, 거품 구)의 합자예요. 갈매기라는 뜻이에요. 鳥로 뜻을 표현했어요. 區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갈매기는 거품처럼 물 위를 가볍게 날아 다닌다는 의미로요. 갈매기 구. 鷗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鷗汀(구정, 갈매기가 있는 물가), 鷗鶴(구학, 갈매기와 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辶(걸을 착)과 自(스스로 자)와 方(旁의 옛 글자, 곁 방)의 합자예요. 자신이 있는 곳에서 걸어 갈만한 곳, 즉 근방이란 의미예요. 가 변. 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周邊(주변), 邊方(변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갈매기 구   가 변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方   (   )汀

 

3. 설명이 잘못돼 실소를 자아낸 해설판을 하나 소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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