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시
아, 맑은 강이여 흰 갈매기 노니는 곳이로다
아, 흰 갈매기여 맑은 강가에 노닐고 있구나
맑은 강은 흰 갈매기의 깨끗함을 좋아하니
흰 갈매기 오래도록 맑은 강가에 머무리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소 입구에 있는 시비(오른 쪽 사진)의 시예요. 읽어 보시니 어떤가요? 전 그리 뛰어난 시라고 느껴지지 않더군요. 일단은 형식면에서 동일한 운자와 시어를 반복해 사용했기에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어요. 내용도 그리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지 않구요. 고작 유유상종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거든요.
선생의 시라고 보기엔 왠지 좀 어색해 보여서 인터넷 자료를 찾아 보았더니, 제 예감이 적중했어요. 『고금소총』엔 어느 무인이 남긴 시라고 되어 있고 『토정선생유사』 에도 선생의 작품으로 전해지나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더군요.
이런 정체 불명의 시를 왜 많은 비용을 들여 돌에 새겨 놓은 걸까요? 후손이나 이 일을 추진한 분들의 무성의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약간의 성의만 있었으면 이 작품을 새기지 않았을 것 같아요. 대신 익히 알려지고 선생의 삶과도 핍진한 '대인설(大人說)'을 새겼을 것 같아요.
사람에게는 네가지 바램이 있다. 안으로는 신령스러우며 의지가 굳기를 원하고, 밖으로는 부하고 귀하기를 원한다. 귀하려면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부하려면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의지를 굳게 하려면 남과 다투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신령스러우려면 지식을 갖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지식을 갖고 있지 않지만 신령스럽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천성이 어둡고 우둔한 자가 그러하다. 남과 다투지 않지만 의지가 굳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천성이 나약한 자가 그러하다. 욕심이 없지만 부유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빈한한 운명의 소유자가 그러하다. 벼슬을 하지 않지만 귀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신분이 미천한 자가 그러하다. 지식이 없으면서도 신령스럽고 남과 다투지 않으면서도 의지가 굳으며 욕심이 없으면서도 부유하고 벼슬이 없으면서도 귀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대인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人有四願 內願靈强 外願富貴 貴莫貴於不爵 不莫富於不欲 强莫强於不爭 靈莫靈於不知 然而不知而不靈 昏愚者有之 不爭而不强 懦弱者油之 不欲而不富 貧窮者有之 不爵而不貴 微賤者有之 不知而能靈 不爭而能强 不欲而能富 不爵而能貴 唯大人能之).
이런, 선생의 시를 소개하려고 한 것이 엉뚱하게 후인의 무성의를 탓하는 내용으로 흘렀네요. 제가 약간 흥분했었나 봐요. 하하하. 아무튼 이따금 이런 무성의한 작품이나 해설을 대하면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님께서는 어떠신지요?
한자를 좀 살펴 볼까요? '선생의 시'에서 나온 한자 중 鷗와 邊이 좀 낯설어 보이죠?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죠.
鷗는 鳥(새 조)와 區(漚의 약자, 거품 구)의 합자예요. 갈매기라는 뜻이에요. 鳥로 뜻을 표현했어요. 區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갈매기는 거품처럼 물 위를 가볍게 날아 다닌다는 의미로요. 갈매기 구. 鷗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鷗汀(구정, 갈매기가 있는 물가), 鷗鶴(구학, 갈매기와 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邊은 辶(걸을 착)과 自(스스로 자)와 方(旁의 옛 글자, 곁 방)의 합자예요. 자신이 있는 곳에서 걸어 갈만한 곳, 즉 근방이란 의미예요. 가 변. 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周邊(주변), 邊方(변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鷗 갈매기 구 邊 가 변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方 ( )汀
3. 설명이 잘못돼 실소를 자아낸 해설판을 하나 소개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