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법정, 리영희, 함석헌..."
정치 지도자는 아니지만 그만 못지 않게 우리 시대를 이끌었던 큰 인물들이죠. 이 분들이 세상을 뜨셨을 때 많은 이들이 그들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슬퍼했죠. 이 분들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은 그 정도가 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슬픔도 이와 같았을 것 같아요.
사진의 추모시(追慕詩)는 토정 선생의 애제자 중봉 조헌이 지은 것인데 비록 28자 밖에 안되는 짧은 시지만 선생을 잃은 아쉬움과 슬픔을 곡진히 표현했어요(이 시는 앞서 소개했던 '선생의 시'를 새긴 바윗 돌 뒷면에 있어요).
정말 훌륭한 사람은 지근에 있는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죠. 중봉 조헌은 선생과 천리 길을 함께 다닌 길벗이자 제자였어요. 더없이 가까운 사이였죠. 그런 제자가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내 허물이 줄어 들 수 있겠다(期我終身小過尤)"고 말했다면 그 선생은 어떤 선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말이 필요없지 않을까요? 그토록 존경했던 선생을 잃었으니 제자된 사람으로 얼마나 슬펐겠어요.
그러나 조헌은 그 슬픔이 자신만의 슬픔이 아니라 이 나라 백성들의 슬픔이기도 하다는 말로 선생의 죽음이 갖는 아쉬움과 슬픔을 극대화했어요. "아아, 이제는 그 누가 제민책을 낸단 말가(可憐誰進濟民謀)"란 구절이 그것이에요. 큰 어른이란 자신을 소아(小我)에 가두지 않고 대아(大我)로 확장한 분들이죠. 하여 사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 양 가슴 아파하며 해결하려고 노력한(하는) 분들이죠. 조헌은 토정 선생을 그런 대인[碩人]으로 보았고, 그런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자신은 물론 백성 전체에게 크나 큰 슬픔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중봉 조헌의 추모시는 상투적인 추모시가 아니예요. 그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산화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됐던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스승을 추모하는 시를 썼는데 상투적인 추모시를 쓸리 없지요. 비록 소략한 28자의 추모시지만 그 어떤 수사가 넘쳐나는 추모시보다 더 훌륭한 추모시라 생각해요.
사진에 나온 한시를 한 번 읽어 볼까요? 시비에는 원 제목이 빠져 있어요. 추가해서 읽어 보도록 하죠.
保寧道中憶土亭先生 보령도중억토정선생 보령가는 길에 토정 선생을 생각하다
碩人千里昔同遊 석인천리석동유 옛날 선생과 함께 먼 길을 다닐 적
期我終身少過尤 기아종신소과우 이내 몸 종신토록 허물 없으리라 생각했네
今日重來思不見 금일중래사불견 오늘 다시 선생을 뵈러 왔으나 뵈올 길 없어라
可憐誰進濟民謀 가련수진제민모 아아, 이제는 그 누가 제민책을 낸단 말가
* 시비의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임의로 고쳤어요. ^ ^
낯선 한자를 몇 자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碩은 頁(머리 혈)과 石(돌 석)의 합자예요. 머리가 크다는 의미예요. 頁로 뜻을 나타냈어요. 石은 음을 담당해요. 클 석. 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碩士(석사), 碩果不食(석과불식,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으로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자손에게 복을 끼쳐 준다는 의미로 사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遊는 辶(걸을 착)과 斿(깃발 유)의 합자예요.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듯 특별한 목적없이 한가롭게 여기저기 거닌다는 뜻이에요. 놀(거닐) 유. 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遊覽(유람), 外遊(외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尤는 乙(싹이 땅위로 솟아나는 모양. 여기서는 특별하다는 의미로 사용)과 又(손을 단순화 시킨 모양)의 합자예요. 물건을 손에 놓고 그 중에서 특별한 것을 골라낸다는 의미예요. 다를(더욱) 우. 허물이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 경우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허물이란 일상적인 행동과 다른 특별한 행동이란 의미로요. 허물 우. 尤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尤甚(우심, 더욱 심함), 尤悔(우회, 허물과 후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憐은 忄(마음 심)과 粦(燐의 약자, 도깨비불 린)의 합자예요. 슬프고 애닯다는 의미예요. 忄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粦은 음을 담당하면서(린→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도깨비 불은 시체의 인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를 보면 놀라고 슬픈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로요. 불쌍히여길 련. 憐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憐憫(연민), 哀憐(애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謀는 言(말씀 언)과 某(梅의 약자, 매화 매)의 합자예요. 어려움에 대처해나가는 지략이란 의미예요. 지략은 말로 표현되기에 言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某는 음을 담당하면서(매→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매실이 떫고 씁쓸한 맛에서 시고 달콤한 맛으로 변하듯 어려움을 편안함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지략이란 의미로요. 꾀 모. 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圖謨(도모), 謀議(모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碩 클 석 遊 놀 유 尤 허물 우 憐 불쌍히여길 련 謀 꾀할 모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覽 圖( ) ( )悔 ( )果不食 ( )憫
3. 다음 시를 읽고 풀이해 보시오.
碩人千里昔同遊/ 期我終身少過尤/ 今日重來思不見/ 可憐誰進濟民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