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여기 좋은 옥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걸 상자에 보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파시겠습니까?”

 

팔아야지! 그러나 그에 걸맞은 값을 기다린 후 팔련다.”

 

논어에 나오는 자공과 공자의 대화예요. 자공이 언급한 옥은 훌륭한 재능을, 상자에 보관한다는 것은 그 재능을 감추는 것을, 파는 것은 그 재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비유해요. 공자는 자공의 물음에 흑백 대답감춘다 혹은 판다 이 아닌 제3의 대답을 하고 있어요. 팔되 걸맞은 값을 기다린다는 것은 재능을 드러내되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適當(적당)한 상황과 인물을 만났을 때 드러내겠다는 것을 비유해요. 맹자는 일찍이 공자를 성인 중에서도 時中(시중)에 뛰어난 성인으로 평가한 적이 있는데, 자공과의 문답에서도 그런 면을 읽을 수 있어요.

 

흔히 유가와 도가를 대립적으로 보는데, 사실 두 사상은 대립보다는 상보 관계로 보는 게 더 타당해요. 특히 유가에서 그런 면모를 많이 볼 수 있어요. 공자의 時中(시중) 태도도 도가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요. 사기에 보면 공자가 노자를 만나 ()를 물었을 때(물론 이 두 거인의 만남에 대해선 실제다, 아니다란 논란이 분분해요. 여기서는 일단 실제 있었던 일로 상정했어요), 노자는 공자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해요: “그대가 말하는 성현들이란 모두 그 말을 한 사람의 육신의 뼈는 이미 썩어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말뿐인 존재들이요. 군자는 좋은 때를 만나면 좋은 마차를 타고 벼슬을 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나부끼는 풀같이 될 수 있소. 내 들으니 훌륭한 장사꾼은 좋은 물건일수록 깊숙이 숨겨 없는 것처럼 하고, 훌륭한 군자일수록 자신의 재능을 깊이 감춰 어리석은 이처럼 행동한다고 하오. 그대는 교만과 욕심 그리고 허위적 태도와 부질없는 야망을 버리도록 하오. 이 모두는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노자는 공자에게 時中(시중)出處進退(출처진퇴)를 권하고 있어요. 공자가 上記(상기) 자공과의 문답에서 보인 시중 적인 답변은 다분히 노자의 충고를 수용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사진은 심장약허(深藏若虛)’라고 읽어요. 노자가 공자에게 충고해준 말 중에 나온 “(훌륭한 장사꾼은 좋은 물건일수록) 깊숙이 숨겨 없는 것처럼 하고의 원문이에요. 실제 사용할 때는 훌륭한 장사꾼의 장사 방법이란 의미보다는 노자가 이 말 뒤에 한 훌륭한 군자일수록 자신의 재능을 깊이 감춰 어리석은 이처럼 행동한다의 뜻으로 사용하여 지식이나 재능을 뽐내지 않고 겸손함정도의 의미로 쓰고 있어요. 어느 초등학교교장실에서 찍은 거예요.

 

두 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十十(풀 초)(숨길 장)의 합자예요. [十十]로 덮어 숨겨서[] 안 보이게 한다란 의미지요. 본래 으로만 표기했는데 후에 十十가 추가되었어요. 은 음도 담당하죠. 감출 장.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守藏(수장), 所藏(소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언덕 구)(호피무늬 호)의 합자예요. 호피 무늬처럼 두드러져 보이는 흙더미란 의미예요. 는 뜻을, 는 뜻과 음()을 담당해요. 터 허. ‘비다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뜻을 차용한 거예요. 빌 허.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廢虛(폐허, 廢墟로도 표기), 虛無(허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요즘은 자기 광고 시대라고 하죠. 입시에서도 자기소개서가 도입되어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권장하고 있죠. 그런데 광고라고 하는 것이, 흔히 그렇듯, 실제보다 과장된 면모가 많죠. 입시에 자기소개서가 도입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적절한 도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칫 허위의식을 일찍부터 길러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심장약허란 문구를 보면서 드는 중늙은이의 부질없는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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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10월에 두 권의 소책자를 냈습니다. 『한시, 옷을 벗다』와 『맹자와의 대화』입니다. 『한시, 옷을 벗다』는 기존의 한시 감상서들이 표피적 감상만 실은 것에 아쉬움을 느껴 한시를 이렇게 깊이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낸 것이고, 『맹자와의 대화』는 『맹자』를 맹자와 대담하는 형식으로 개작하여 많은 이들이 『맹자』를 부담없이 접하도록 하기 위해 낸 것입니다. 둘 다 포켓용(B6) 150쪽 내외의 소책자로 만들었으며, POD(주문 제작) 방식으로 출간했습니다.

 

 

지난 번 『길에서 만난 한자』와 마찬가지로 님들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연락처를 주시면 도서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건강 유의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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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본다.

 

'나는 과연 자리에 연연하는가? 아니다! 다만 前轍(전철)을 밟고 싶지 않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 때를 봐라. 대통령을 모욕하던 검사들. 검사들은 자신이 세상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검사들의 조직을 어찌 개혁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제기되는 의혹에 나는 솔직히 잘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허니 이 난리가 아니겠는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벌여놓은 일, 내가 수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힘들다. 물러서고 싶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러나, 그러나 물러서지 않겠다. 이게 내 生(생)에 부과된 책무 아닌가.'

 

사진은 淸澗亭(청간정, 강원도 고성에 있는 정자)에 걸려있는 액자이다. 액자의 시를 보며 문득 조국을 떠올렸다. 그가 지금 마음 한 편으로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이런 곳 아닐까 싶었던 것. 사람이 싫어질만큼 시달리는 그가 찾을만한 곳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청강정은 주변의 風致(풍치)가 좋아 옛 문사들이 많이 찾았다. 지금도 여전히 풍치가 좋다.

 

 

 

 

사진의 시는 이 풍치를 노래했다. 한 번 읽어 보자.

 

天敎滄海無潮汐 천교창해무조석    조석 일지 않는 평온한 곳

亭似方舟在渚涯 정사방주재저애    방주처럼 물가에 고요히 서있네

紅旭欲昇先射牖 홍욱욕승선사유    붉은 해 뜰 적에 들창문 비추고

碧波纔動已吹衣 벽파요동이취의    푸른 물결 일 땐에 그 바람 옷깃에

童南樓艓遭風引 동남루접조풍인    아해들 실은 배 바람따라 왔으나

王母蟠桃着子遲 왕모반도착자지    서왕모 먹던 복상 그대까지 못가리

怊悵仙蹤不可接 초창선종불가접    선인 자취 찾으나 찾을 길 없나니

依闌空望白鷗飛 의란공망백구비    부질없이 난간 기대 갈매기만 보누나

 

청간정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쓴 시 같다. 첫 두 구에서는 청간정의 모습을, 그 다음 두 구에서는 청간정 안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렸다. 그 다음 두 구에서는 이곳의 정취를 仙境(선경)에 비겨 말했고, 마지막 두 구에서는 만날 수 없는 仙人(선인)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다. 이 시의 지은이는 문장가로 유명한 澤堂(택당) 李植(이식, 1584-1647)이다. 이 시의 결론격에 해당하는 마지막 두 구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잠시나마 부질없이 불로장생을 희구했던 것에 대한 자책으로 볼 수도 있는 것. 세 번째의 두 구에서 이미 불로장생이 불가능했던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조국은 부질없는 인생에 부질없이 나서서 부질없는 행동을 하여 부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인생은 짧은데 그런 부질없는 생각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에 그저 충실한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가 물러나든, 물러나지 않든, 언젠가는 이 곳에 한 번 들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리 대단한 것도 자연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것이다.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느낀다면, 자리에 있든 물러나든 남이 비난하든 칭찬하든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의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다섯 개만 추렸다.

 

汐은 氵(물 수)와 夕(저녁 석)의 합자이다. 저녁 때 밀려 들어왔다가 나가는 조수란 뜻이다. 석수 석. 汐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潮汐(조석), 海汐(해석) 등을 들 수 있겠다.

 

牖는 片(조각 편)과 戶(문 호)와  甫(남자의 미칭 보)의 합자이다. 나뭇조각으로 테를 두른 벽에 나 있는 들창이란 뜻이다. 甫는 음(보→유)을 담당한다. 들창 유. 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牖下(유하, 들창 밑. 방 안, 집 안의 뜻), 牖戶(유호, 들창과 문) 등을 들 수 있겠다.

 

艓는 舟(배 주)와 枼(잎엽, 葉과 통용)의 합자이다. 거룻배란 뜻이다. 舟는 뜻을, 枼은 음(엽→접)을 담당한다. 거룻배 접. 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艓舟(접주, 거룻배) 정도를 들 수 있겠다.

 

蟠은 虫(벌레 충)과 番(차례 번)의 합자이다. 쥐며느리란 벌레를 지칭한다. 虫은 뜻을, 番은 음(번→반)을 담당한다. 쥐며느리 반. 일반적으로는 '서리다(웅크린 모양)'란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원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서릴 반. 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蟠桃(반도, 신선 세계에 있다는 큰 복숭아. 장수를 기원하는데 사용)와 蟠龍(반룡, 땅 위에 서리고 있어 아직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한 용) 등을 들 수 있겠다.

 

悄는 忄(마음 심)과 召(부를 소)의 합자이다. 슬퍼하다란 뜻이다. 忄은 뜻을, 召는 음(소→초)을 담당한다. 슬퍼할 초. 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怊悵(초창, 슬퍼함), 怊乎(초호, 슬퍼하는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생활이 바빠 길을 떠나지 못한다. 마치 청간정에 다녀온 듯 썼지만, 사실은 인터넷에서 취재하여 쓴 것이다. 바쁜 일정이 끝나면 한 번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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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알 비누 사오너라!"

 

 아버지는 꼭 다이알 비누를 고집하셨다. 때가 잘 빠진다고 하셨다. 비누를 사오라고 하실 때  꼭  '다이알'이란 이름을 붙이셨다. 내게 비누는 곧 다이알이었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비누를 사오라고 시킨다면 무슨 비누를 사오라고 시킬까? 아무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비누를 사오라고 할 일이 없다. 여기저기서 선물받은 비누가 쌓여있기 때문.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늘 아침 새 비누를 꺼내려 포장지를 뜯는데 포장지에 사진의 이름이 써 있었다. 絪泫珍(인현진). 풀이가 잘 안돼 잠시 고민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造語(조어)였다. 絪(인)은 기운이란 뜻인데, 자신의 일에 당당한 여성을 의미한단다. 泫(현)은 빛나다란 뜻인데, 자신의 아름다운 미를 가꿀 줄 아는 여성을 의미한단다. 珍(진)은 보배란 뜻인데, 세상의 중심이 되는 보배로운 여성을 의미한단다. 화장품 제조업체인 신사임당에서 만든 화장용 고급 비누 이름이다. 재료를 보니, 여러가지 약초 성분이 들어가 있다. 화장용 고급 비누라 이름도 거기에 걸맞게 짓느라 이런 조어를 사용한 것 같다. 때만 잘 빠지지면 최고의 비누로 알고 있는 내겐 다소 사치스런 비누이다. 피부가 안좋아 고민하는 아내가 전용으로 사용하려 구입한 것 같았다.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댈 수 있나, 뜯던 포장지를 다시 여며 원자리에 놓았다. 다른 비누를 뜯을까하다 귀찮아 그냥 비누없이 세수를 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머리를 감을 때도 비누나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을 쓰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세탁 효과가 있는데 굳이 비누나 샴푸를 사용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나도 그이처럼 하고 싶은데, 못한다. 왠지 물비린내가 나서 남에게 폐를 끼칠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간 익숙해진 비누와 샴푸 사용에서 손을 떼기가 쉽지 않은 것도 있다. 오늘은 용기를 내서, 아니 귀찮아서 물로만 세수를 한 것이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을 보면 매일같이 세수를 한다. 까쓸까슬한 혀로 제 몸 이곳 저곳을 핥는다. 개들이 세수하는 것은 못봤다. 이따금 가려우면 흙바닥에 뒹구는 건 봤다. 사람도 넓은 의미의 동물이라고 보면 굳이 세수를 안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닦는다면, 지인처럼, 물로 닦아도 충분할 것 같다. 비누나 샴푸를 쓰는 건 자연스런 세수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피부를 더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아내에게 혼날 소리지만 비누나 샴푸를 사용하지 말고 그냥 물로만 세수하거나 머리를 감아보면 어떻겠냐고 권해보고 싶다. 더불어 나도 언젠가 직장을 그만 두고 타인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게 되면 고양이나 개처럼 지내거나 아니면 물로만 닦고 싶다. 가능할까?

 

한자를 자세히 살펴본다.

 

絪은 糹(실 사)와 因(인할 인)의 합자이다. 실이 상호 꼬여있듯 천지간의 기운이 합쳐진 기운이란 의미이다. 기운 인. 絪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絪蘊(인온, 만물을 생성하는 기운이 왕성한 모양) 정도를 들 수 있겠다.

 

泫은 氵(물 수)와 玄(검을 현)의 합자이다. 땅 속 깊이[玄] 흐르는 물이란 의미이다. 깊은물 현. 빛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의미에서 연역된 뜻이다. 땅 속 깊이 흐르던 물이 지상으로 분출하여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빛날 현. 눈물을 흘리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泫이 결합한 단어는 주로 이 뜻으로 사용된 것이 많다. 깊은 물이나 빛나다란 뜻으로 다른 단어와 결합된 예는 찾기 어렵다. 泫이 들어간 예로 泫露(현로, 떨어지는 이슬), 泫歎(현탄, 눈물을 흘리며 한탄함) 등을 들 수 있겠다.

 

珍은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㐱(숱많을 진)의 합자이다. 보물이란 의미이다. 王으로 뜻을, 㐱으로 음을 나타냈다. 보배 진. 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珍奇(진기, 희귀하고 기이함), 珍味(진미, 썩 좋은 맛)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비누라는 단어는 한자어도 외래어도 아닌 순 우리말이다. 조선 시대에 콩 · 팥 · 녹두 등을 갈아 세수할 때 쓰거나 빨래에 비벼서 때를 빼는 데 쓰고 이것을 '비노'라 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이 <박통사언해>(1677)에 있으며 한글로 '비노'라 쓰여 있다. 이 비노가 음운 변화를 거쳐 비누가 되었다. 개화기에 현재의 비누가 들어오며 양비누라 불렸다. 초창기에는 石鹸(석감)이나 '사분'이라고 불렀는데, 석감은 돌[石] 같은 고형의 잿물[鹸]을 뜻하고, 사분의 경우 포르투갈어의 Sabão(사버웅)이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을 음역한 것이라고 한다(이상 인용 출처: https://namu.wiki/w/%EB%B9%84%EB%8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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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성인들이 소인들의 마음을 이렇게도 잘 알까?"

 

정수리에 얼음물 세례를 받은 느낌이었다. 수업을 담당하시던 분이 결강을 하게 되었다. 육십을 넘긴 도인 풍모의 노인이 보강을 하셨다. 학식의 깊이는 원수업 담당자보다 못하지만 생각의 깊이는 그 분만 못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란 말씀은 내게 충격이었다. 성인(군자)과 소인의 대비적 언급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 수업 시간 내내 머리속에는 저 말만이 맴돌았다. 30 여년 전의 경험.

 

성인들이 소인들의 마음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인들의 마음에도 소인들의 마음이 있다는 것 아닐까? 반대도 가능하다. 소인들의 마음에도 성인들의 마음이 있다는 것 아닐까? 성인과 소인의 마음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다. 그러면 성인이 성인된 所以(소이)와 소인이 소인된 소이는 무엇일까?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확대해보자. 고통과 기쁨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통의 이면이 기쁨이고, 기쁨의 이면이 고통이다. 이 역시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보강을 나왔던 노인의 自問(자문)은 이러한 이치를 자신도 모르게 누설한 것이다. 깊은 생각의 결과일 것이다. 30 여년이 지난 뒤 드는 생각.

 

사진의 한자를 읽어 보자. 낙관 부분은 생략한다. 설중화도리(雪中花桃李) 용화불원재(龍華不遠在) 멸도무집고(滅度無集苦) 아정유상락(我淨有常樂). 이런 뜻이다. 눈 속에 도리화 피어나니 / 용화세계 먼 곳에 있지 않네 / 열반은 고통 없는 자리 / 내 마음 맑으면 항상 기쁘리.

 

눈 속에서 복숭아와 오얏 꽃이 필까? 불가능하다. 비유이다. 눈은 시련 혹은 고통을, 복숭아와 오얏 꽃은 행복 혹은 기쁨을 비유한 것이다. 첫째 구는 이런 뜻이다. 행복과 기쁨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생긴다! 둘째 구, 용화세계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낙원은 저 멀리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이 사바 세계에 있다는 것! 셋째 구 열반의 의미도 매 한가지이다. 고통이 끊긴 자리, 거기가 열반이지 별도의 열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 격의 넷째 구는 무슨 의미일까? 이렇듯 聖俗(성속)이 不二(불이)한 삶과 세계에서 항상 기쁠 수 있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무엇일까?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맑고 고요한 물처럼!

 

유교는 행복과 기쁨 그리고 고통과 시련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성인의 길과 소인의 길을 말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본인의 몫이다. 불교는 성인의 길과 소인의 길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행복과 기쁨의 길 그리고 고통과 시련의 길을 말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본인의 몫이다.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지만 주체의 자각적 선택이란 점에서는 두 가르침이 일치한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얻었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80201&docId=332381825  사진을 게시한 분의 사전 허락은 받지 않았다. 내용이 좋아 인용했다. 사진을 올린 분이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 보자.

 

滅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烕(없앨 혈)의 합자이다. 지상의 물이 햇빛에 말라 다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멸할 멸. 滅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消滅(소멸), 滅亡(멸망) 등을 들 수 있겠다.

 

執은 무릎 꿇은 죄수의 두 손에 수갑 채운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잡을 집. 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執行(집행), 執權(집권) 등을 들 수 있겠다.

 

淨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爭(다툴 쟁)의 합자이다.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氵로 뜻을 표현했다. 爭은 음(쟁→정)을 담당한다. 깨끗할 정. 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淨化(정화), 淸淨(청정) 등을 들 수 있겠다.

 

常은 巾(수건 건)과 尙(숭상할 상)의 합자이다. 깃발이란 의미이다. 巾은 뜻을, 尙은 음을 담당한다. 깃발 상. 항상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의미에서 유추된 뜻이다. 천자와 제후 장군 등 귀한 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항상 세워놓는 것이 깃발이란 의미로. 항상 상. 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通常(통상), 常識(상식)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그간 경어체로 글을 썼는데 평어체로 바꿔 봤어요. 어떠신지요? 아울러 어려운 용어의 경우, 그간은 한글을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했는데 이번엔 반대로 해봤어요. 한자를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식으로. 이유가 있어요.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해봤자 많은 이들이 한자를 모르기에 무의미한 표기란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럴 바엔 차라리 한자를 쓰고 괄호 안에 한글을 병기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경우도 한자를 못읽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괄호 안의 한글을 통해 한자를 인식하는 효과는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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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9-08-1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레꽃님의 이 글은 동양철학의 총화입니다!

2019-08-16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심이병욱 2019-08-1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어체로 바꾼 것, 한자 병기 방식을 바꾼 것, 모두 좋습니다

찔레꽃 2019-08-16 23:16   좋아요 0 | URL
무심 선생님, 조언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