環顧六尺身 환고육척신  기껏 여섯 자 밖에 안되는 몸뚱이

一日能幾食 일일능기식  하루에 몇 끼나 먹는다고

尙營口腹謀 상영구복모  아직도 그 몸뚱이 먹여 살리려

未去雲山碧 미거운산벽  구름 낀 푸른 산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단 말가


<이규보(1168-1241), 「우음(偶吟)>


누구나 한 번 쯤은 큰 결단의 순간에 선다. 시의 주인공 역시 그런 결단의 순간에 섰다. 지겨운 밥벌이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그만 둘 것인지? 


그런데 시의 주인공은 결단의 순간에서 망설이고 있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그간의 삶과는 확연히 달라지는 새로운 삶이 전개될텐데. 하지만 단지 그것 뿐일까? 어떤 삶이 펼쳐지든 그것을 수용할 자세가 갖춰져 있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왜 망설이는 걸까? 간단하다. 그간의 삶에서 힘들었지만 단맛을 보았고, 그 단맛을 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기만 하고 단맛도 보지 못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새로운 선택이후의 삶이 이전의 삶보다 나아질 확률이 더 높을테니 말이다. 결국 시의 주인공은 그저 그렇고 그런 자기 위안 혹은 기만의 푸념을 늘어 놓고 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시의 주인공은 나약하다고 비난받아야 할까? 그럴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자기 위안 혹은 기만의 푸념이 외려 강한 결단의 삶보다 나을수도 있다고 볼 수는 없을까? 많은 이들이 갈림길에서 흔들리지만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밥벌이 때문이 아닐까? 위 시에서는 밥벌이를 아주 하찮게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 밥벌이만큼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숭고한 것이 없다. 하루에 세끼 밥 먹는 것을 사흘만 멈춰보라. 담 안넘는 사람 없다. 그런 밥을 버는 일이 어찌 하찮은 것이라 말할 수 있으랴. 여기 구름 낀 푸른 산은 그저 환상일 뿐이지, 현실이 아니다. 구름 낀 푸른 산이 내 입에 무엇을 넣어준다 말인가.


그래서 그랬을까, 결국 이 시의 주인공(지은이인 이규보)도 다시 제자리에 남았다. 비난하지 말자. 누구나 그런 자기 위안 혹은 기만의 푸념은 한 두 번쯤 해봤을테니. 


사족. 요즘 산에다 멋진 집을 짓고 여유있게 지내는 이들이 많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이들이 자기 기만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에다 멋진 집을 짓고 온갖 편의 시설 들여놓고 사는 것은 산에 대한 모독이다. 산에 산다면 최소한의 집에 최소한의 시설로 자연에 흠을 내지 않고 살아야 한다. 편의 시설은 시정에 어울린다. 시정의 편의와 대자연의 소박함을 함께 누리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양다리 걸치면 잘못하다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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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이세요~”

 

주말, 부모님 산소에 벌초하러 갔더니 당질뻘 되는 종손이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멋쩍어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 가을 두 차례 산소를 찾는 것뿐인데 정성이라니. 하긴, 부모님 산소를 돌보지 않는 이들도 많다고 하니 그런 이들에 비하면 정성을 들인다는 말을 들을 만도 하다.

 

산소 돌보는 일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어렵기도 하고 의미도 못 느끼기 때문이란다. 수긍 가는 면이 있다. 모처럼 쉬어야 할 주말에 산소에 가서 일해야 하니 힘들기도 할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로 죽으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팽배한 세상에서 망자를 모신 산소를 관리한다는 것에 의미 또한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기만 할까?

 

사진은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고 읽는다. ‘한 자손이 여러 조상을 모신 묘지란 뜻으로,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초기 제주에서 (불온분자) 예비 검속에 걸렸다가 집단총살된 132분의 무덤 표지석이다. 총살 직후 가족들에게 시신이 인계되지 않고 종전 후 시신이 인도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자 무작위 무덤을 조성하고 후손되는 이들이 함께 위령제를 지내게 되어 이런 표지석을 세우게 되었다.

 

한국 현대사는 이념과 전쟁으로 얼룩져 한 인물의 공과를 쉽사리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건 무리한 공권력으로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이다. 이 무덤에 있는 이들이 설혹 사상적으로 위험한 이들이었다 해도 정당한 절차 없이 집단총살했다는 것은 과도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들 중에 사상적으로 무리한 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이들 또한 없지 않았을 테니 더더욱 그러한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과거의 일이니 번거롭게 들먹이지 말고 이들의 시신을 묻은 무덤도 누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니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잘못된 과거의 일은 늦게라도 바로 잡아야 하고, 그런 잘못된 과거의 일을 보여주는 무덤을 보전해야 교훈이 되어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산소 관리와 산소의 의미로 돌아가 보자. 산소 관리하는 일이 번거로워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다. 산소 하나 관리하는데 드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1년에 한, 두 차례 산소를 방문하여 1시간 남짓 보내는 것이 그렇게 번거로운 일일까? 산소 관리가 번거롭다는 것은 실제 일이 번거롭다기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심리적 불편을 말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심리적 불편은 산소의 의미와 관계가 깊다. 물질만능주의 때문에 죽으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사회에 팽배하여 산소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백조일손지지처럼 교훈을 얻기 위해서 정체(定體)를 유지하는 것처럼,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산소를 유지한다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음속에 간직하면 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눈에서 안 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산소라는 정체(定體)가 없으면 자신의 뿌리를 점차 잊게 된다. 산소라는 정체를 유지하여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때로는 그곳을 찾아 하소연도 하며 심리적 어려움을 털어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번거로운 일이 없게 모든 것을 없애고 마음에서도 지워버리는 것이 좋을까?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볼 일이다. (산소에 대한 부정적 주장에는 앞에서 언급한 관리의 어려움이나 무의미 외에도 토지 문제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간 보고 느낀 가장 일반적인 이유만을 대상으로 나의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허점이 많을 것이다. 너그러이 보아 주시길!)

 

이 약간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 본래 이 글자는 하나로 표기했으며, 는 남근을 그린 것이다. 이는 생식 혹은 생산을 주관하는 신을 표현한 것이다. . (의 약자, 귀신 신)(버금 차)의 합자로, 시조신을 모신 사당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으로 뜻을 표현했고, 는 음()을 담당한다. 두 설명에서 공통된 의미는 신으로, 이 글자는 일반적으로 시조신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조상 조.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祖上(조상), 始祖(시조) 등을 들 수 있겠다.

 

(아들 자)(이을 계)의 합자이다. 아들의 피를 이어받은 자, 즉 손자란 의미이다. 손자 손.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子孫(자손), 孫女(손녀) 등을 들 수 있겠다.

 

올해는 부모님 산소에 보태어 그간 잘 돌보지 않는 듯이 보이는 증조부 산소와 고조부 산소도 함께 벌초했다. 세 기를 깎는데 들인 시간은 세 시간 정도. 깨끗하게 손질한 산소에 절을 하며 내년 봄에 다시 뵙겠다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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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9-18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원묘지 아니면 산소가기 힘들지요.게다가 서울등 대도시에 살고 있는데 묘소가 시골에 있다면 더더욱 가기 힘듭니다.저만해도 할아버지등 여러 조상의 산소가 시골에 있는데 서울에서 차로 가도 4시간 이상 걸리는데다 묘소가 이산 저산에 흩어져 있어 등산하듯이 올라가서 돌다보면 5~6시간 걸린 정도니까요.그래 벌초하러 한번가면 새벽에 나와 자정에 올라올 정도입니다.이러니 시골에 가면 후손이 돌보지 않는 묘소가 부지기수 있지요.

찔레꽃 2020-09-18 15: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 ^ 저도 공감해요. 다만 저는, 단지 그.런. 이유들이 산소 불유지의 진짜 이유인가를 한 번 자문겸 타문해 본 거랍니다. 올해는 벌초를 가시나(가셨나) 모르겠네요? 코로나19로 권장하지 않는 추세인데....
 

"선생님, 정치의 필수 요소는 무엇인지요?"

"국방, 경제, 신뢰라고 생각한다."

"부득이 하나를 덜어야 한다면..."

"국방을 빼야겠지."

"나머지 둘에서 하나를 더 뺀다면..."

"경제를 빼야하지 않을까? 신뢰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본다. 그것이 빠지면 정치 자체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오는 자공과 공자의 대화이다. 자공은 장사 수완이 좋은 제자였다. 정치의 필수 요소 세가지를 들었으면 그것으로 족할 법도 한데 굳이 그 세가지 요소의 서열을 매기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장사 수완이 좋은 그의 면모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사 수완이란 적기에 물건의 우열과 가격의 고하를 잘 매겨 처리하는 능력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 가치 서열에 보태어 자신의 장기인 장사의 필수 요소도 함게 생각해봤을지 모른다. 장사 수완이 좋다는 것은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니, 한 대답을 통해 또 다른 상황의 답을 구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이 지나친 추측은 아닐 것이다. 

 

스승의 답변을 들으며 자공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장사 수완이 좋은 명민한 제자였으니, 직감적으로 '역시 스승님이다!'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덜 명민한 제자였다면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수긍을 했을 것이다. 

 

국방이나 경제는 가시적인 것이고 믿음은 비가시적인 것이다. 평범한 이들은 가시적인 것에 우위를 둔다. 그러나 비범한 이들은 비가시적인 것에 우위를 둔다.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그럴까? 먼 옛날에서 사례를 찾지 말고 현대사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전쟁을 할 때 남베트남은 전쟁 물자에 있어 분명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패했다. 가장 큰 요인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때문이었다. 신뢰하지 않는 정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울 군인은 없다. 북베트남군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견고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들은 부족한 전쟁 물자를 신뢰라는 무형의 힘으로 극복했다. (베트남 전쟁의 승패를 단순히 정부에 대한 신뢰와 불신으로 가름짓는 것이 무리한 발언이란 것 잘 안다. 단지 신뢰의 힘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발언한 것이라 이해하고 넘어가 주시길!) 장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얕은 수로야 당장의 이익을 꾀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이고 큰 이익을 위해선 고객과의 신뢰가 우선돼야 하지 않겠는가. 자공은 필시 즉각적으로 스승의 말에 수긍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은 '교우지도 막여신의(交友之道 莫如信義)'라고 읽는다. '벗을 사귀는 도리론 신의만한 것이 없다'란 뜻이다. 여기 벗은 평범한 의미의 친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를 제외한 타인 일체를 말하는 것일수도 있다. 나는 후자로 보고 싶다. 신의는 정확하게는 '믿음과 의리'이겠지만 더 주안점을 둔 것은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고래로 벗을 사귀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오륜의 붕우유신(朋友有信)이나 화랑 세속오계의 교우이신(交友以信)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흔히 말하는 유교의 덕목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이 다섯가지 덕목을 오행[金木水火土]에 견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을 중심에 놓고 인의예지를 사방에 배치한다(오행도에서는 토(土)를 중심에 놓고 금목수화(金木水火)를 사방에 배치한다). 인의예지라는 덕목의 중심에 신을 놓았다는 것은 인의예지라는 덕목의 핵심이 신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를 제외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심지어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의예지가 아닌 신이라고 말할수 있다. 신의 바탕이 있을 때 인의예지가 의미있는 덕목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신뢰를 잃으면 사랑의 마음이 줄어들지 않던가. (일반적으론 인의예지신의 핵심 덕목으로 인을 든다. 여기서는 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오행 배치도의 그림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보았다.)

 

목하 우리는 믿음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정부의 피눈물나는 코로나19 방역 노력을 무산시키려는 집단 행동을 보라. 그들의 그릇된 믿음이 만들어 낸 가공할 위력에 전 국민이 놀라고 있지 않은가. 그릇된 믿음이 바른 믿음으로 전환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릇된 믿음이든 바른 믿음이든 무형의 믿음이 만들어내는 그 힘은 유형의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별히 어려운 한자가 없어 한자 설명은 생략한다. 사진은 한 중국집에서 찍은 것이다. 숟가락집에 써있는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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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걱정 하나 없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갖고 다닌다

모진 비바람을 맞아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입에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갈 길 멀어 우는 철부지 소녀야

나의 피리 소릴 들으려므나 삘릴리 삘릴리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 도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송창식의피리 부는 사나이가사이다. 저 사나이는 어쩌다 떠돌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됐을까? 그리고 말년은 어땠을까? 저간의 사정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 가사에 없어 추측이 어렵다. 다행인 건 그의 떠돌이 생활이 불행하지 않다는 것. 외려 타인까지 위로하고 있다. 삘릴리 삘릴리.

 

널리 알려진 떠돌이 피리 부는, 아니 시 짓는 사나이가 있었다. 김삿갓. 저 피리 부는 사나이와 비슷한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는 떠돌 수밖에 없는 내력이 있었고 미미하나마 말년의 흔적도 남아있다. 과장(科場)에서 김익순(홍경래 난때 홍경래에게 항복하고 부역했던 관리)을 성토하는 시를 지어 장원했는데, 김익순이 바로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아 방랑길에 나섰고, 방랑 말년에는 병고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 피리 부는 사나이와 다른 점은 그의 방랑길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은 김삿갓의 자서전 격에 해당하는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이다(난고는 김삿갓의 호). 말 그대로, 그의 평생을 술회하고 있다.

 


鳥巢獸穴皆有居 조소수혈개유거  새도 둥우리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어 살 곳 있건만

顧我平生獨自傷 고아평생독자상  내 평생을 돌아보니 홀로 외롭구나.

芒鞋竹杖路千里 망혜죽장로천리  짚신과 대지팡이로 천리를 떠도나니

水性雲心家四方 수성운심가사방  흐르는 물이요 떠도는 구름이라, 사방이 내 집일세.

尤人不可怨天難 우인불가원천난  사람을 탓하고 하늘을 원망하기 어려우니

歲暮悲懷餘寸腸 세모비회여촌장  해 저물어 슬픈 회포만 가슴에 가득하도다.

初年自謂得樂地 초년자위득락지  나이 어릴 때는 행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漢北知吾生長鄕 한북지오생장향  도성은 내가 자란 고향이었노라.

簪纓先世富貴人 잠영선세부귀인  벼슬 높았던 선조들은 부귀한 사람들이었고

花柳長安名勝庄 화류장안명승장  아름다운 장안에서도 이름 높은 가문이었다네.

隣人也賀弄璋慶 인인야하농장경  이웃 사람들은 옥동자 얻었다 축하했었고

早晩前期冠蓋場 조만전기관개장  일찍 공명을 얻으리라 미리 기대했더라.

髮毛稍長命漸奇 발모초장명점기  수염 자라 성장함에 따라 운명이 기박해져

灰劫殘門飜海桑 회겁잔문번해상  가문이 멸족되어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도다.

依無親戚世情薄 의무친척세정박  의지할 친척 없고 세상 인심 야박한데

哭盡爺孃家事荒 곡진야양가사황  부모까지 돌아가니 집안이 몹시 황폐했네.

終南曉鍾一納履 종남효종일납리  종남산 새벽 종소리에 짚신 한 켤레 둘러메고

風土東邦心細量 풍토동방심세양  동쪽 풍토 향해 길 떠날 것 결심했다네.

心猶異域首丘狐 심유이역수구호  마음은 타향에서 고향 쪽으로 머리 둔 여우 같고

勢亦窮途觸藩羊 세역궁도촉번양  형세 또한 궁하니 울타리에 뿔 걸린 수양 같더라.

南州從古過客多 남주종고과객다  남쪽 고을에는 예로부터 지나는 길손 많았으니

轉蓬浮萍經幾霜 전봉부평경기상  쑥대 구르듯, 부평초 떠다니듯 몇 해를 보냈던고.

搖頭行勢豈本習 요두행세기본습  고개 숙이는 신세가 어찌 타고난 습성이랴!

楔口圖生惟所長 설구도생유소장  입 놀려서 삶을 꾀함만이 나아갈 바로세.

光陰漸向此中失 광음점향차중실  세월은 점차 이러는 동안 사라져 버리니

三角靑山何渺茫 삼각청산하묘망  삼각산 푸른 빛이 어찌 그리도 아득한가!

江山乞號慣千門 강산걸호관천문  팔도강산에 걸식하는 소리 허다한 문전에 익숙했고

風月行裝空一囊 풍월행장공일낭  풍월을 벗삼으니 행장의 주머니 텅 비었구나.

千金之子萬石君 천금지자만석군  천금을 가진 자와 만석꾼 두루 있어

厚薄家風均試嘗 후박가풍균시상  가풍의 후박함을 골고루 맛보았노라.

身窮每遇俗眼白 신궁매우속안백  몸이 궁하니 매번 뭇 사람이 냉대하고

歲去偏傷鬂髮蒼 세거편상빈발창  해가 갈수록 머리털 하얗게 됨을 슬퍼하노라.

歸兮亦難佇亦難 귀혜역난저역난  돌아가기도 어렵고 머무르기 또한 어려우니

幾日彷徨中路傍 기일방황중로방  얼마나 긴 세월 길가에서 방황해야 하는가!

 

(번역: 황병국)

 


한 해가 저물어가는 즈음 문득 자신의 처지와 인생 유전을 회고하는 것으로 말머리를 잡았다. 이어 과거 영화롭던 집안과 자신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뜻밖에 닥친 가문의 비극과 그로 인한 방랑 및 거기서 맛본 삶의 신산함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계속될 운명으로서의 방랑을 생각하며 우수에 젖고 있다. 이 시의 시안(詩眼)()’이다. 방랑길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

 

막연히기왕에 나선 방랑길이라면 유쾌하게 지낼 수는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환골탈태하는 출가자의 심정으로 말이다. 그러나 시대가 지워준 무게가 그런 마음을 갖게 하기엔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비록 멸문(滅門)된 폐족(廢族)이지만 사대부라는 신분 의식이 살아 있었고 포기할 수 없는 재기(再起)의 꿈이 꿈틀댔기 때문이다.“삼각산 푸른 빛이 어찌 그리도 아득한가!”는 그가 끝내 포기하지 못한 꿈에 대한 엘레지이다. 그는 시대가 지워진 무게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낯선 한자가 너무 많다. 시안에 해당하는 하나만 자세히 살펴보자.

 

(사람 인)(볕 양)의 합자이다. 남에게 받거나 남에게 입힌 상처란 의미이다. 으로 의미를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양은 겉으로 드러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상처는 겉으로 잘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상처 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傷痕(상흔), 外傷(외상) 등을 들 수 있겠다.

 

한때 장안의 화제가 됐던 이문열 씨의 소설 시인은 김삿갓을 야담의 주인공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시인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이문열 씨는 이곳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상식앞에서 언급했던, 뒤늦게 조부의 정체를 알게 됐다는 에 의문을 표한다. 과장에 들어설 나이가 될 때까지 과연 조부의 정체를 몰랐겠냐는 것이다. 더구나 멸문을 당하는 과정을 봤는데도 말이다. 일리 있는 시각이다. 이런 질문을 할 것 같다.“그럼, 조부의 정체를 알고서도 과장에서 조부를 공격하는 시를 지었다는 말인가!”이문열 씨는 그렇다고 보고, 그렇게 한 것은 바로 재기의 욕망 때문이었다고 해석한다. 이 역시 일리 있는 시각이다. 앞서 말한대로, 위 시에서도 그런 욕망이 비치기 때문이다. 김삿갓은 시대의 무게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가수 송창식 자신을 가리킨다고 봐도 대과없을 것이다. 듣기론 그도 성장기에 몹시 힘들게 지냈다고 한다. 서울예고에 수석 입학했으나 학비를 조달할 수 없어 끝내 졸업을 하지 못했다 하니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만 하다. 그가 떠돌이가 된 건 가난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김삿갓과 달리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시대를 만났기에 떠돌이 생활이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말년은 어떠한가? 그가 받는 연간 저작권료는 거의 억대에 가깝다고 한다. 행복한 말년이다.

 

우리 모두는 시대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한 생을 산다. 때로는 시대라는 숙명을 뛰어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은 시대라는 숙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불행하게 사는 것도 시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 또한 시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지나친 역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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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께 여쭈었다.)

내일 사냥을 나갈까요? 말까요?

(상제께서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

보리를 수확하여 먹었다.

 

인간처럼 미약한 존재가 없다. 토끼의 털도 없고 사자의 발톱도 없으며 곰의 힘도 없다. 그럼에도 자연계의 지배자가 된 건 생각이라는 특별한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배하지 못한 영역이 있었다. '앞 일(날)'이라는 불가시(不可視)의 영역. 하지만 이도 생각을 통해 해결했다. 점이라는 방법을 고안하여 앞 일을 헤아리게 된 것. 점으로 앞 일을 헤아릴 수 있게 됨에 따라 인간은 명실공히 자연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사진은 아이스크림 '거북이' 포장지이다. 한글 '거북이' 밑에 있는 것은 '거북 귀'자이고 왼쪽의 글자들은 갑골문으로 지금 사용하는 서체인 해서로 바꾸면 '射(쏠 사) 明(밝을 명) 卽(곧 즉) 成(이룰 성) 來(올 래)' 자이다. (갑골문을 해서로 바꾼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갑골문에 관한 상식이 박약하기 때문. 來는 원래 보리라는 뜻이었다. 보리는 춘궁기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는 식물이라 '신이 보내 온 선물'이라 여겨 후일 '오다'라는 뜻으로도 사용하게 됐다. 이 글에서는 '보리'라는 뜻으로 보았다.)

 

갑골문은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새긴 문자이기에 갑골문이라 부른다. 한자의 초기 형태로 알려져 있으며 상나라(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에서 사용하던 문자이다. 한자의 초기 형태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완정(完整)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이 이전 원형에 해당하는 고문자가 진화되어 만들어진 문자로 본다. 갑골문의 주 내용은 특정 사안에 대해 점친 것과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서두의 문구는 '거북이' 포장지에 나온 갑골문을 가지고 재미삼아 점사 형태로 해석해 본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갑골문 파편은 16만 편이다(위키 백과 참조). 갑골문이 본격 발굴되기 이전 망실된 것 까지 합하면 그 양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갑골문 파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갑골점이 그만큼 신빙성이 높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갑골점은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구멍을 파놓고 이곳에 뜨거운 쇠꼬챙이를 꽂아 생기는 균열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점 복[卜] 자와 점 점[占] 자의 'ㅏ' 모양은 이 균열을 그린 것이다.) 균열을 가지고 길흉을 점쳤다니 오늘 날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앞서 말한대로, 신빙성이 높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날도 여전히 인간은 앞 일(날)을 지배하기 위해 점을 친다.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생긴 균열 대신 컴퓨터라는 기기가 내놓는 데이터를 가지고 말이다. 갑골점이 신빙성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빗나가는 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오늘 날의 점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인간은 앞 일(날)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명실공히 자연계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앞 일(날)을 지배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러한 날을 위해 인간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왠지 이런 인간의 생각이 두렵다. 완벽한 지배를 위한 생각은 자만(自滿)이다. 자만은 패착(敗着)을 초래한다. 갑골점을 통해 앞 일(날)을 지배할 수 있었던 상나라는 주나라에 멸망당했다. 앞 일(날)을 완벽히 지배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인간의 미래에 낙관보다 비관적인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여담. 세상을 놀라게 한 고고학적 발견은 우연히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갑골문의 발견도 그렇다. 갑골문의 발견자는 왕의영(王懿榮, 1845-1900)인데, 그는 정치인이자 금석학자였다. 어느 날 학질에 걸려 그 당시 학질에 좋다는 용골(龍骨, 발굴된 오래 된 뼈)을 사와 달여 먹으려다 용골에 새겨진 범상치 않은 문자를 눈여겨 보게 된다. 20세기 세상을 놀라게 한 고고학 발굴의 하나로 평가되는 갑골문 발견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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