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세요~”

 

주말, 부모님 산소에 벌초하러 갔더니 당질뻘 되는 종손이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멋쩍어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 가을 두 차례 산소를 찾는 것뿐인데 정성이라니. 하긴, 부모님 산소를 돌보지 않는 이들도 많다고 하니 그런 이들에 비하면 정성을 들인다는 말을 들을 만도 하다.

 

산소 돌보는 일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어렵기도 하고 의미도 못 느끼기 때문이란다. 수긍 가는 면이 있다. 모처럼 쉬어야 할 주말에 산소에 가서 일해야 하니 힘들기도 할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로 죽으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팽배한 세상에서 망자를 모신 산소를 관리한다는 것에 의미 또한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기만 할까?

 

사진은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고 읽는다. ‘한 자손이 여러 조상을 모신 묘지란 뜻으로,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초기 제주에서 (불온분자) 예비 검속에 걸렸다가 집단총살된 132분의 무덤 표지석이다. 총살 직후 가족들에게 시신이 인계되지 않고 종전 후 시신이 인도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자 무작위 무덤을 조성하고 후손되는 이들이 함께 위령제를 지내게 되어 이런 표지석을 세우게 되었다.

 

한국 현대사는 이념과 전쟁으로 얼룩져 한 인물의 공과를 쉽사리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건 무리한 공권력으로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이다. 이 무덤에 있는 이들이 설혹 사상적으로 위험한 이들이었다 해도 정당한 절차 없이 집단총살했다는 것은 과도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들 중에 사상적으로 무리한 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이들 또한 없지 않았을 테니 더더욱 그러한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과거의 일이니 번거롭게 들먹이지 말고 이들의 시신을 묻은 무덤도 누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니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잘못된 과거의 일은 늦게라도 바로 잡아야 하고, 그런 잘못된 과거의 일을 보여주는 무덤을 보전해야 교훈이 되어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산소 관리와 산소의 의미로 돌아가 보자. 산소 관리하는 일이 번거로워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다. 산소 하나 관리하는데 드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1년에 한, 두 차례 산소를 방문하여 1시간 남짓 보내는 것이 그렇게 번거로운 일일까? 산소 관리가 번거롭다는 것은 실제 일이 번거롭다기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심리적 불편을 말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심리적 불편은 산소의 의미와 관계가 깊다. 물질만능주의 때문에 죽으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사회에 팽배하여 산소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백조일손지지처럼 교훈을 얻기 위해서 정체(定體)를 유지하는 것처럼,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산소를 유지한다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음속에 간직하면 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눈에서 안 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산소라는 정체(定體)가 없으면 자신의 뿌리를 점차 잊게 된다. 산소라는 정체를 유지하여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때로는 그곳을 찾아 하소연도 하며 심리적 어려움을 털어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번거로운 일이 없게 모든 것을 없애고 마음에서도 지워버리는 것이 좋을까?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볼 일이다. (산소에 대한 부정적 주장에는 앞에서 언급한 관리의 어려움이나 무의미 외에도 토지 문제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간 보고 느낀 가장 일반적인 이유만을 대상으로 나의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허점이 많을 것이다. 너그러이 보아 주시길!)

 

이 약간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 본래 이 글자는 하나로 표기했으며, 는 남근을 그린 것이다. 이는 생식 혹은 생산을 주관하는 신을 표현한 것이다. . (의 약자, 귀신 신)(버금 차)의 합자로, 시조신을 모신 사당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으로 뜻을 표현했고, 는 음()을 담당한다. 두 설명에서 공통된 의미는 신으로, 이 글자는 일반적으로 시조신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조상 조.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祖上(조상), 始祖(시조) 등을 들 수 있겠다.

 

(아들 자)(이을 계)의 합자이다. 아들의 피를 이어받은 자, 즉 손자란 의미이다. 손자 손.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子孫(자손), 孫女(손녀) 등을 들 수 있겠다.

 

올해는 부모님 산소에 보태어 그간 잘 돌보지 않는 듯이 보이는 증조부 산소와 고조부 산소도 함께 벌초했다. 세 기를 깎는데 들인 시간은 세 시간 정도. 깨끗하게 손질한 산소에 절을 하며 내년 봄에 다시 뵙겠다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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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9-18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원묘지 아니면 산소가기 힘들지요.게다가 서울등 대도시에 살고 있는데 묘소가 시골에 있다면 더더욱 가기 힘듭니다.저만해도 할아버지등 여러 조상의 산소가 시골에 있는데 서울에서 차로 가도 4시간 이상 걸리는데다 묘소가 이산 저산에 흩어져 있어 등산하듯이 올라가서 돌다보면 5~6시간 걸린 정도니까요.그래 벌초하러 한번가면 새벽에 나와 자정에 올라올 정도입니다.이러니 시골에 가면 후손이 돌보지 않는 묘소가 부지기수 있지요.

찔레꽃 2020-09-18 15: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 ^ 저도 공감해요. 다만 저는, 단지 그.런. 이유들이 산소 불유지의 진짜 이유인가를 한 번 자문겸 타문해 본 거랍니다. 올해는 벌초를 가시나(가셨나) 모르겠네요? 코로나19로 권장하지 않는 추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