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자금성의 황혼』(돌베개, 2008) 21쪽>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며 의() 또한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 삶보다 소중한 것이 있기에 삶을 구차히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이며, 죽음이 싫지만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이 있기에 구차히 환란(患亂)을 피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진은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1906~1967)가 그의 외국인 사부였던 존스톤(Johnston, 중국명 莊士敦(장사돈))의 저서 자금성의 황혼(Twilight in the Forbidden City)에 써 준 추천사예요(글씨는 신하였던 정효서의 글씨). 읽어 볼까요?

  


甲子十月 予自北府入日本使館 莊士敦師傅首翼予出於險地 且先見日使芳澤言之 芳澤乃禮予 假館而避亂軍 乙丑二月 予復移居天津 距今七年 而莊士敦前後從予於北京天津之間者約十三年中 更患亂倉皇顚沛之際 唯莊士敦知之最上 今乃能秉筆記其所歷 多他人所不及知者 嗟夫 喪亂之餘 得此目擊身經之寶錄 信乎其可貴也 莊士敦雄文高行爲中國儒者所不及 此書旣出 予知其爲當世所重必矣 辛未九月


갑자십월 여자북부입일본사관 장사돈사부수익여출어험지 차선견일사방택언지 방택내예여 가관이피난군 을축이월 여부이거천진 거금칠년 이장사돈전후종여어북경천진지간자약십삼년중 경환난창황전패지제 유장사돈지지최상 금내능병필기기소력 다타인소부급지자 차부 상난지여 득차목격신경지보록 신호기가귀야 장사돈웅문고행위중국유자소불급 차서기출 여지기위당세소중필의 신미구월

 

갑자년(1924) 10월 나는 북부(부의의 아버지인 순친왕의 저택)에서 일본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장사돈(Johnston) 사부는 앞장서 나를 험지에서 구출해 주었다. 또한 먼저 일본 공사 방택(요시자와)을 만나 나의 상황을 얘기했기에 방택은 나를 예우하고 처소를 내주어 반란군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을축년(1925) 2월 나는 다시 거처를 천진으로 옮겼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다. 장사돈 사부는 이 일 전후로 북경에서 천진까지 나를 수종(隨從)한 것이 대략 13년이 된다. 게다가 가장 어렵고 혼란한 시기의 일들은 오직 장사부 만이 가장 잘 안다. 이제 그가 붓을 잡아 그 사이의 내력을 썼는바 남들은 잘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관해 이처럼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소중한 기록을 얻었으니 참으로 귀한 기록이라 할 만한다. 장사부의 웅혼한 글과 행동은 중국의 유자들도 따라오지 못할 바가 있다. 이 책이 출간 후 세상으로부터 중한 대우를 받으리란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신미년(1931) 9.

  


부의는 3세 무렵 황제 위에 올라 15년을 자금성에서 유폐되다시피 보내다 공화주의자였던 풍옥상에게 내몰려 자금성을 나오게 돼요. 이후 풍옥상의 위해(危害)를 피해 일본 공사관에 피신했다 다시 천진의 일본 조계지(租界地)로 옮겨 7년여를 보내요. 부의는 자금성 출궁 전후로 13년여를 자신과 함께 지내며 힘든 시기마다 자신을 보살펴 준 장사돈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어요. 더불어 어려운 시절의 일들에 대한 진위를 가린 장사돈의 저서가 갖는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요. 이 글을 읽으면 더없이 외롭고 힘든 처지에 있었던(있는) 한 청년 황제의 애틋한 모습이 떠오르며 까닭모를 동정심이 밀려와요. 그러면서도 이 동정심에 대해 자문(自問)을 하게 돼요. ‘이게 과연 올바른 동정심일까?’

 

부의가 일개 범인(凡人)이라면 이 동정심은 정당하지만, 그가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문제의식의 바탕엔 저 맹자의 언급(인용문)이 있어요. 저 말의 표면적 주체는 맹자이지만, 이면적으론 정치 지도자를 겨냥한 거예요. 맹자는 정치철학서이기 때문이죠. 맹자는 (삶의 대척점. 죽음)’의 갈림길에서 정치 지도자가 택해야 할 길은 라고 주장해요. 그것이 삶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소중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요. 그것은 명분/명예예요. 정치에서 이보다 더 중한 것이 없기 때문이죠. 명분/명예 없는 지도자의 명을 그 누가 따르던가요? 정치 지도자가 명분/명예를 잃으면 살아 있으되 살아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삶과 의의 갈림길에서 의를 택해야한다고 말한 거예요. 부의는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어요. 그런데 그는 위난(危難)의 시기에 보다 을 택했어요. 이런 그에게 동정심을 갖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자문을 아니 할 수 없어요.

 

혹자는 이런 이의(異議)를 달지도 모르겠어요. “부의는 모든 실권(實權)을 잃은 명목상의 황제일 뿐이었다. 그가 무슨 명분과 명예가 필요해 를 중시한단 말인가?” 타당한 이의예요. 그러나 당시 민중의 의식에는 여전히 존황(尊皇)의식이 면면히 흐르고 있었고, 이는 공화주의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랬기에 황제를 자금성에서 바로 내쫓거나 죽이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상황이라면 황제에게는 여전히 명분/명예를 지킬 의무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더구나 그는 웅건(雄健)한 만주족의 기상을 물려받은 황제였어요. 위난의 시기에 의보다 삶을 택한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죠.

 

부의가 삶보다 의를 선택할 기회는 세 번 있었어요. 풍옥상에게 자금성에서 쫓겨났을 때(1924)와 일본으로부터 만주국 집정(執政)을 요청받았을 때(1931) 그리고 소련에 의해 만주국이 패망했을 때(1945)예요. 세 선택의 갈림길에서 부이는 모두 삶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그 결과는 살아있으되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존재로서의 삶이었죠. 만일 그가 삶보다 의를 선택했다면 죽었으되 영원히 사는 삶을 살 수 있었을 거예요. 위난의 시기에 부의는 장려(壯麗)한 죽음을 택했어야 했어요. 너무 과한 주문일까요?

  


주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广(집 엄)(줄 부)의 합자예요. 문서를 보관하는 장소라는 의미예요. 广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소중히 주고받아야 할 문서를 보관하는 장소란 의미로요. 곳집 부. 마을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 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마을 부.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府庫(부고, 궁정의 문서나 재보를 보관하는 장소), 政府(정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본래 분노했다는 의미예요. 분노하면 치고받기에 (칠 복)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지금은 주로 도탑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본 의미에서 유추된 뜻이에요. 분노가 팽배하듯 덕이 두텁다란 의미로요. 도타울 돈. 서직(黍稷, 기장)을 담은 그릇을 표현한 글자로 보기도 해요. 제기 대.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敦篤(돈독), 敦槩(대개, 곡식을 됫박에 담고 그 위를 반듯하게 밀어내는 평평한 나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약자, 언덕 부)(다 첨)의 합자예요.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험준한 장소란 의미예요. 험할 험.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保險(보험), 危險(위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사람 인)(빌 가)의 합자예요. 거짓이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빌려온 것은 내 것이 아니기에 진짜가 아니고 가짜[거짓]란 의미로요. 거짓 가.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假面(가면), 假飾(가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걸을 착)(법 벽)의 합자예요. 피하다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법은 어기면 처벌을 받기에 사람들이 피하려든다는 의미로요. 피할 피.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逃避(도피), 回避(회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머리 혈)(참 진)의 합자예요. 정수리란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정수리 전. 넘어지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 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넘어질 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山顚(산전, 산 꼭대기), 顚倒(전도, 거꾸로 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물 수)(저자 시)의 합자예요. 물 이름이에요. 로 뜻을, 로 음()을 표현했어요. 물이름 패. 넘어지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뜻을 가탁한 거예요. 넘어질 패.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沛水(패수), 顚沛(전패, 엎어지고 자빠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울 곡)(없을 망)의 합자예요. 현세에서 그 모습을 찾을 길 없어, 즉 죽어서 슬퍼한다란 의미예요. 죽을 상. 잃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 의미에서 유추된 뜻이에요. 잃을 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初喪(초상), 喪失(상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새 추)(팔뚝 굉)의 약자가 합쳐진 거예요. 수컷 새란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의 약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암컷 새에 비해 힘이 센[의 약자가 가진 의미] 것이 수컷 새란 의미로요. 수컷 웅. 뛰어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 의미에서 유추된 뜻이에요. 뛰어날 웅.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雌雄(자웅), 雄壯(웅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부의가 의보다 삶을 우선시한 건 그의 사부들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요. 세 살 무렵부터 자금성에 들어와 생활한 그에게 사부들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점에서 부의의 명예롭지 못한 선택의 책임은 부의에게만 물을 것이 아니라 그의 스승들에게도 물어야 할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는 당연히 장사돈도 포함돼야 할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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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18-11-1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회찬‘씨가 생각나는 글입니다. 그분은 ‘살아도 죽은 거나 다름 없는 불명예‘를 과감히 버리고 영원히 명예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무심은 그분의 사라짐을 지금도 안타까워합니다.

찔레꽃 2018-11-18 10:15   좋아요 0 | URL
선생님, 잘 지내시죠? 저 역시 그 분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죽음을 높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지만 경우엔 따라서 필요한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명분과 명예가 필요한 경우. 노 의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글을 썼는데, 선생님 평을 듣고 보니, 묘하게 그 분을 생각나게 하는 글이 되었습니다. 노 의원을 생각하는 마음이 잠재돼있다 저도 모르게 발현됐나 봅니다. 역시...
 



엄마, 거긴 절이 아니예요!”

 

“‘가 들어가 있으니, 절 아니니?”

 

오래 전 어머니와 나눈 대화의 일절. 동네 분들과 현충사를 방문하게 됐는데, 어머니는 현충사를 절 이름으로 알고 계셨어요. 절 이름에 붙는 가 들어가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실 만도 했죠. 하지만 당시 어렸던 저는 (절 사)’가 아니고 (사당 사)’라는 걸 알려드릴 만한 지식이 없었어요. 다만 수학여행 때 현충사를 다녀온 경험으로 절이 아니란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죠. 어머니는 제 말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으셨어요.

 

현충사.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방문했을 장소이죠. 특히 70년대 학교를 다녔던 분들은,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거의 반강제적으로 이곳을 다녀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현충사가 국민 교육장처럼 된 데는 박정희 대통령의 입김이 컸죠. 박정희 대통령은 왜 이순신을 그렇게 띄웠던 걸까요?

 

답은 현충에 있는 것 같아요. 국가에 대한 충성, 아니 당시 상황으로 말하면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양성하기 위해 이순신을 띄웠던 것 아닐까 싶은 거죠. 조국 근대화를 위해 분골쇄신(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는 뜻으로, 정성으로 노력함을 이르는 말)할 수 있는 역군을 양성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런 점은 처음 현충사라는 편액을 내렸던 숙종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다만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아니고 왕실과 조정에 맹종할 수 있는 신료를 길러낸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

 

그렇다면 정작 이순신 자신은 충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선조가 이순신을 자신의 대항마로 간주해 그를 의심하고 질시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죠. 이 점을 뒤집어 보면 이순신의 충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어요. 그는 맹목적 충견이 되는 것을 충이라 여기지 않고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 다시 말하면 충이란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 충실한 것을 충이라 여겼다고 보여요. 충(忠)은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불편부당한[] 양심[]의 소리에 따라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예요. 이런 그였기에 선조의 무리한 출정 요구를 거부했고, 과거도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치르려 했던 것이죠(과거를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치르겠다는 것은 왕의 권한을 대신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과거는 왕이 주관하는 것이니까요. 선조가 이순신을 경계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죠). 비록 그것이 지배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인 줄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죠.

 

사진은 현충사(顯忠祠) 정확하게는 구현충사 현판이에요. ‘현충은 충성을 드러내 찬양한다는 의미이고, ‘는 사당이란 의미예요. 현충사란 이름은 다른 분들의 사당 이름으로도 쓰여요. 다만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가 다른 현충사에 비해 널리 알려진 것 뿐 이예요. 낙관 부분은 정해(丁亥, 1707) 사월일(四月日) 선사(宣賜, 임금이 하사함)라고 읽어요. 사진은 아내가 동창들과 현충사에 놀러 갔다가 찍어왔어요. 당신도 옛날 우리 어머니처럼 현충사의 를 혹시 절 이름 끝에 붙는 로 생각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더군요. 현판을 한 참 응시하노라니, 불현 듯 에 관한 의문이 생겨 몇 마디 중얼거렸어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머리 혈)(살필 현)의 합자예요. 환하게 빛나는 머리 장식이란 의미예요. 은 뜻을, 은 뜻과 음을 담당해요. 햇빛 아래에서 실을 살펴본다는 의미로 본 의미 환하게 빛나는을 보충해 주고 있어요. 드러날 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顯彰(현창, 밝게 나타냄), 顯現(현현, 명백하게 나타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마음 심)(가운데 중)의 합자예요. 불편부당한 정직한 마음으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예요. 본디 개인적인 가치관이었는데 후에 공적인 가치관으로 변했죠. 충성 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忠誠(충성), 忠義(충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약자, 제사 사)(의 약자, 말씀 사)의 합자예요. 천지신명에게 제물을 별로 마련하지 못하고 축원의 말만 길게 하는 봄철의 제사란 의미예요. 사당이란 의미는 본 의미에서 연역된 거예요. 제사를 드리는 장소란 의미로요. 사당 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祠堂(사당), 祠宇(사우, 사당과 같은 의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한문 현판을 단 현충사는 구 본관으로 불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휘호 현충사 현판을 단 현충사는 신 본관으로 불려요. 신 본관의 박정희 대통령 한글 휘호를 떼고 구 본관의 현충사 현판(숙종 어필)을 달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둘 다 존치키로 결정 났어요(2018년 문화재청 결정). 구 분관과 신 본관이 별도로 있고 거기에 맞는 현판이 있으니 둘 다 존치키로 결정한 것이죠. 장군의 혼령은 어느 곳에 깃들이실지 궁금해요. 어쩌면 아무 곳에 깃들이지 않으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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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뜨거!”

 

아침에 뜨거운 물을 정수리에 부으면 정신이 깬다는 말을 들었어요. 뜨거운 물을 부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온도 조절을 못해 화상을 입을 뻔 했어요. 하지만 정신이 깬 것은 확실했어요. 이후로도 아침에 종종 정수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요. 물론 온도 조절을 해서요.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 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어요. 늘 눈을 뜨면 온갖 잡념이 밀려와 이리저리 뒤척여요. 그러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 잡념은 오간데 없이 사라져요. 정수리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정신은 더 맑아지죠. 제게 아침 잡념을 없애는 방법은 기신(몸을 일으킴)과 정수리에 물붓기예요.

 

사진은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찍은 종문(종에 새긴 글)이에요. 흔히 저녁 종송(종을 칠 때 부르는 찬가)으로 불리는 글이죠. 읽어 볼까요?

 

문종성번뇌단(聞鐘聲煩惱斷)   종소리 들으시고 번뇌를 끊으소서

지혜장보리생(智慧長菩提生)   지혜 자라고 보리심 발하게 하소서

이지옥출삼계(離地獄出三界)   지옥고 여의고 삼계를 뛰쳐나와

원성불도중생(願成佛度衆生)   성불하시고 중생제도 하옵소서

 

이 종송은 타인에게 권면하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고, 본인에게 권하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어요. 여기서는 타인에게 권면하는 내용으로 풀었어요. 이 종송의 핵심은 번뇌 끊기예요. 번뇌 끊기가 돼야 이후의 일들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저녁이 되면 한낮의 온갖 상념이 물밀 듯 밀려와 마음은 그야말로 번뇌망상에 휩싸이죠. 이 순간 격한 종성이 귓가를 때리면 번뇌망상은 가뭇없이 사라질 거예요. 마치 기신과 함께 아침 잡념이 흔적 없이 사라지듯. 저녁의 번뇌망상을 없애는데 종소리만이 유효하진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종소리를 사용한 건 무슨 까닭일까요? 그 소리가 멀리까지 미칠 수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보다 많은 이들이 번뇌망상에서 벗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말이죠.

 

사진의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쇠 금)(아이 동)의 합자예요. 악기중 하나인 종이란 의미예요. 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종 종.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鍾鼓(종고, 종과 북), 打鐘(타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귀 이)(경쇠 경) 약자의 합자예요. 경쇠가 울릴 때 나는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귀를 통해 들리는 그 무엇이란 의미예요. 소리 성.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聲樂(성악), 音聲(음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불 화)(머리 혈)의 합자예요. []로 인해 머리가 아프다는 의미예요. 괴로워할 번. 번거로울 번.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煩悶(번민), 煩雜(번잡)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불만스럽다는 의미예요. (의 약자, 마음 심)은 뜻을,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괴로워할 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懊惱(오뇌, 뉘우쳐 한탄하고 번뇌함), 苦惱(고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도끼 근)(끊을 절)의 옛 글자가 합쳐진 거예요. 도끼를 사용하여 물체를 끊는다는 의미예요. 끊을 단.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斷切(단절), 分斷(분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새 추)(산신 이)의 합자예요. 본래 꾀꼬리를 뜻하는 글자였어요. 로 뜻을, 로 음을 표현했어요. 떠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꾀꼬리가 앉아있던 나뭇가지를 떠났다란 의미로요. 떠날 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離別(이별), 分離(분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맹자에 보면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야기(밤 사이 기운)의 축적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어요. 야기의 축적은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사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온갖 상념에 밀리지 않고 몸의 기운을 똑바로 조정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곧 번뇌가 사라진 그 상태와 진배없는 것 아닌가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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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11-0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레꽃님 이 시리즈 책으로 내셨으면 좋겠어요.

찔레꽃 2018-11-08 08:38   좋아요 0 | URL
아.... 깊은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4백 가까이 들었데!”

정말?”

어쩌면 더 들었을지도 몰라.”


이웃 지인의 아내 분이 살 빼는데 들인 비용을 두고 아내와 나눈 대화의 일단이에요. 살 빼는 일과 거리가 먼 우리 내외인지라 살 빼는데 거금이 들어간 일에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더구나 그분의 식단 얘기를 들으니 더 놀랍더군요. 육식을 뺀 채식 중심이고 다소 특이한 채소 두어 가지가 첨가된 것 뿐 이었거든요. 여기에 운동과 반신욕 그리고 야식 금지가 추가 됐고요. 이런 정도라면 별도의 거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이 외에 무슨 특별한 지도가 추가되기에 그리 큰 거금이 드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나도 알아. 지금 하고 있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니란 걸.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을 못 뺄 것 같아서. 자기도 알다시피 돈이 들어가면 아까워서라도 하게 되잖아.” 지인의 아내 분이 했다는 말인데, 처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 분은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시는 분이거든요. 숭고한 가치를 가르치는 분이 자신의 의지를 돈에 맡긴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거예요. 평소 바른 말 바른 행동을 강조하며 농담조로 내가 도덕 선생이라서운운하셨던 분인데.

 

돈은 고래(古來)로부터 인간을 움직이는 큰 동인(動因)이었죠. “뱃속의 아이도 돈 준다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는 이런 돈의 위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죠. 현대는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대이니 돈의 위력은 더 강해졌죠. 도덕 선생님이라고 돈의 지배를 벗어날 순 없을 거예요. 그러니 돈이 들어가면 아까워서라도 하게 되잖아라는 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말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동서고금의 숭고한 가치를 지도하는 분조차 돈에게 자신의 의지를 맡긴다고 생각하니 왠지.

 

사진은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고 읽어요(사진은 안면도 한 수목원에서 찍었어요). ‘스스로 굳세게 힘쓰며 쉬지 않는다란 뜻이에요. 주역(周易)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나오는 말이에요. 꾸준한 노력을 강조할 때 많이 사용하는 성어죠. 그런데 이 말 앞에 나오는 생략된 '천행건 군자이(天行健 君子以,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가 사실은 더 의미심장해요. 자강불식의 근거를 하늘의 운행 모습인 (, 굳셈)’에서 찾고 있거든요. ‘은 계절과 밤낮의 교체를 잠시도 중지하거나 바꾸지 않는 하늘의 모습을 상징한 말이에요. 하늘의 운행에서 행위의 근거를 찾은 사람이 행위의 목표를 어디에 뒀을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예요. 반면 돈의 위력을 행위의 근거로 삼은 사람이 행위의 목표를 어디에 둘지도 불문가지고요.

 

이웃 지인의 아내 분이 자신이 알고 있는 숭고한 가치를 체중 감량의 동인으로 삼을 수는 없었을까, 생각해봐요. 예컨대 결식아동을 돕거나 난민 구호 기금을 내기 위해 하루 한 끼 식사를 줄이거나 야식을 줄일 수는 없었을까, 싶은 거죠. 그것은 곧 인(, 사랑 혹은 베풂)을 행위의 동인으로 삼는 것인데, 이런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을 닮는 것이니 자강불식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체중감량은 저절로 달성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너무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생각일까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벌레 충)(넓을 홍)의 합자예요. 쌀벌레가 쌀을 갉아 먹는 소리란 의미예요. 은 뜻을, 은 음()을 담당해요. 지금은 원의미로는 사용하지 않고 굳세다란 의미로만 사용해요. 본래 굳세다란 의미는 으로 표기했는데(自强不息도 본래는 自彊不息으로 표기) 후일 으로 표기하게 됐어요. 음도 같고 글자 쓰기도 수월해 대체된 것으로 보여요. 굳셀 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强弱(강약), 强勸(강권, 억지로 권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스스로 자)(마음 심)의 합자예요. 는 본래 코를 그린 글자였어요. 여기서는 본래 의미로 사용됐어요. 코를 통해 심기가 출입한다는 의미예요. 숨쉴 식.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瞬息間(순식간), 休息(휴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지인 아내 분을 흉봤으니 내처 끝까지 흉을 봐야겠어요. 지인 아내 분은 현재 체중 감량에 성공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오래 갈 것 같지 않아요. 어제 지인이 갑자기 전어 구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어요. 아내가 몹시 먹고 싶어 한다면서요. 전어 구이 집에서 처가 지인 아내 분께 전어는 먹어도 되냐고 물으니, 지도해주시는 분이 먹어도 된다고 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물경 일곱 마리를 먹는 거예요. 저와 아내는 한 두 마리밖에 안 먹었는데. 속으로 혀를 차며 한 마디 했어요. ‘애고, 오래 못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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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세한도(歲寒圖)의 작자가 찔레꽃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헛소리 말라고요? 아녜요, 이 바쁜 세상에 제가 왜 헛소리를 하겠어요. 증거를 대보라고요? 사진에 보이시지 않나요? 제가 세한도 발문(跋文)을 쓰고 있는 모습. 이래도 제가 헛소리를 하고 있나요?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고요?

 

하하하. 농담한 것 다 아시죠? 사진은 세한도(歲寒圖) 미니어처에서 찍은 장면이에요. 주말에 안면도의 한 수목원을 찾았는데 세한도 체험 사진을 찍게 해놓은 곳이 있더군요. 재미있을 것 같아 얼른 찍었어요. 그러면서 아주 잠깐 세한도를 그리고 발문을 썼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마음 한 자락을 느껴 봤어요.

 

아시다시피,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 가 있을 당시 그를 잊지 않고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선사한 작품이죠. ‘세한이란 말은 논어에 나오는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란 문장의 앞머리에서 따온 것으로, 문장 전체의 의미를 세한이란 두 글자로 압축 표현한 거예요. 문장의 뜻은 차가운 계절이 돼서야 송백(松百)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 군자의 됨됨이를 송백의 생태에 가탁한 것이죠.

 

이 말은 공자가 한 말인데, 세한도 발문을 보면 공자가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특별한 경험이 있었기에 한 말일 거라는 내용이 나와요. 바로 추사 자신과 이상적의 관계 같은 그런 특별한 경험이 있었기에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이 아닐까, 라고 추측한 것이죠. 추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저 말을 했던 공자의 마음을 추체험했던 거예요.

 

, 그럼 세한도의 발문 전체를 한 번 읽어 볼까요? 문장이 길으니 단락을 나눠 읽어 보도록 하죠.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常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차개비세지상유 구지천만리지원 적유년이득지 비일시지사야)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如世之趨權利者(차세지도도 유권리지시추 위지비심비력여차 이불이귀지권리 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여세지추권리자)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태사공운 이권리합자 권리진이교소 군역세지도도중일인 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불이권리시아야 태사공지언비야)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松柏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柏也 歲寒以後一松柏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공자왈 세한연후 지송백후조 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세한이전일송백야 세한이후일송백야 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然由前之君 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금군지어아 유전이무가언 유후이무손언 연유전지군 무가칭 유후지군 역가견칭어성인야야 성인지특칭 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烏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如下邳榜門 迫切之極矣 悲夫 阮堂老人書(오호 서경순후지세 이급정지현 빈객여지성쇠 여하비방문 박절지극의 비부 완당노인서)

 

뜻을 알아 볼까요?

 

지난 해(1843, 헌종9)만학집(晩學集)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두 책을 부쳐주었고, 금년에 또 우경(藕畊)이 지은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을 부쳐주었다. 이들 책은 모두 세상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이고 여러 해를 거듭하여 입수한 것이지, 한 때에 해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도도한 풍조는 오로지 권세가와 재력가만을 붙좇는 것이다. 이들 책을 구하려고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소비하였는데, 이것을 권세가와 재력가들에게 갖다 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치 세인들이 권세가와 재력가에게 붙좇듯이 안겨주었다.

 

사마천이,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 경우에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하였다. 그대 역시 세속의 거센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와 재력가를 붙좇는 세속의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나 재력을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공자께서, “일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하셨다. 소나무 · 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은 소나무 · 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없는 소나무 · 잣나무이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엄동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송백의 굳은 절조만을 위함이 아니다. 역시 엄동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이다.

 

! 전한(前漢)의 순박한 시대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도 그 빈객들이 그들의 부침(浮沈)에 따라 붙좇고 돌아섰다. 그러고 보면 하규(下邽, 세한도에는 下邳(하비)로 표기돼 있다. 추사가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땅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을 써 붙여 염량세태(炎凉世態)를 풍자한 처사 따위는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이상 번역 김동석)

 

핵심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나무 목)(황새 관)의 합자예요. 무궁화 나무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무궁화 권. 권세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가탁한 거예요. 권세 권.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權門(권문), 權力(권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벼 화)(칼 도)의 합자예요. 곡식[]을 수확[]했다는 의미예요. 이로울 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有利(유리), 利害(이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물 수)(쓿을 요)의 합자예요. 물이 물어서 넘친다는 의미예요. 로 뜻을, 로 음()을 표현했어요. 창일할 도.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滔滔(도도), 滔天(도천, 큰물이 하늘에 까지 이름.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업신여김. 죄악 등이 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풀 초)(그을릴 초)의 합자예요. 바래지 않은 마()라는 뜻이에요. 로 뜻을, 로 음을 표현했어요. 생마 초. 야위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야윌 초.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蕉布(초포), 蕉萃(최췌, 憔悴와 통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풀 초)(마칠 졸)의 합자예요. 잡초가 무성하다는 의미예요. 로 뜻을, 로 음()을 표현했어요. 모일 췌. 야위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 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많이 모인데서 시달려 야위었다란 의미로요. 야윌 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蕉萃(초췌), 萃聚(췌취, 모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달릴 주)(부를 소)의 합자예요. 뛰어 넘다란 의미예요. 로 뜻을, 로 음()을 표현했어요. 뛰어넘을 초.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超越(초월), 超然(초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얼음 빙)(두루 주)의 합자예요. 날이 차가워져 초목의 가지와 잎들이 시든다는 의미예요. 으로 뜻을 로 음()을 표현했어요. 시들 조.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凋落(조락), 凋枯(조고, 시들어 마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힘 력)(수맥 경)의 합자예요. 굳세다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힘차게 흐르는 수맥처럼 굳세다란 의미로요. 굳셀 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勁卒(경졸, 강한 군사), 勁弓(경궁, 센 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세한도는 국보(180)로 지정될 정도로 문인화의 절정을 보여준 작품이죠. 그런데 모든 작품은 돌출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향의 수승(受承, 받아 이음)관계에서 나오죠. 세한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박철상 씨 견해에 의하면, 세한도의 뿌리는 소동파의 언송도(偃松圖, 누운 소나무 그림)’에 대한 옹방강의 시에 있다고 해요. “고목이 된 소나무는 비스듬히 나뭇가지 드리우고 집에 기대어 있네라는 시구가 그것이라는 거죠. 세한도의 풍경과 맞아 떨어지잖아요? 이 시구가 추사의 마음속에 오랜 세월 무르녹아 있다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이 세한도라는 거죠. 일리 있는 견해예요.

 

그런데 세한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추사의 유배 체험이에요. 만일 그에게 유배 체험이 없었다면 제 아무리 그의 내면에 언송도의 시구가 무르녹아 있었다 해도 세한도 같은 작품이 나오기 어려웠을 거예요. 언송도의 시구가 준 영향이 씨줄이었다면 유배 체험은 날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양자가 만날 수 있었기에 세한도라는 한 필의 귀한 옷감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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