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뜨거!”
아침에 뜨거운 물을 정수리에 부으면 정신이 ‘확’ 깬다는 말을 들었어요. 뜨거운 물을 부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온도 조절을 못해 화상을 입을 뻔 했어요. 하지만 정신이 ‘확’ 깬 것은 확실했어요. 이후로도 아침에 종종 정수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요. 물론 온도 조절을 해서요.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 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어요. 늘 눈을 뜨면 온갖 잡념이 밀려와 이리저리 뒤척여요. 그러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 잡념은 오간데 없이 사라져요. 정수리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정신은 더 맑아지죠. 제게 아침 잡념을 없애는 방법은 기신(몸을 일으킴)과 정수리에 물붓기예요.
사진은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찍은 종문(종에 새긴 글)이에요. 흔히 저녁 종송(종을 칠 때 부르는 찬가)으로 불리는 글이죠. 읽어 볼까요?
문종성번뇌단(聞鐘聲煩惱斷) 종소리 들으시고 번뇌를 끊으소서
지혜장보리생(智慧長菩提生) 지혜 자라고 보리심 발하게 하소서
이지옥출삼계(離地獄出三界) 지옥고 여의고 삼계를 뛰쳐나와
원성불도중생(願成佛度衆生) 성불하시고 중생제도 하옵소서
이 종송은 타인에게 권면하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고, 본인에게 권하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어요. 여기서는 타인에게 권면하는 내용으로 풀었어요. 이 종송의 핵심은 ‘번뇌 끊기’예요. 번뇌 끊기가 돼야 이후의 일들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저녁이 되면 한낮의 온갖 상념이 물밀 듯 밀려와 마음은 그야말로 번뇌망상에 휩싸이죠. 이 순간 격한 종성이 귓가를 때리면 번뇌망상은 가뭇없이 사라질 거예요. 마치 기신과 함께 아침 잡념이 흔적 없이 사라지듯. 저녁의 번뇌망상을 없애는데 종소리만이 유효하진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종소리를 사용한 건 무슨 까닭일까요? 그 소리가 멀리까지 미칠 수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보다 많은 이들이 번뇌망상에서 벗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말이죠.
사진의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鐘은 金(쇠 금)과 童(아이 동)의 합자예요. 악기중 하나인 종이란 의미예요. 金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童은 음(동→종)을 담당해요. 종 종. 鐘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鍾鼓(종고, 종과 북), 打鐘(타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聲은 耳(귀 이)와 磬(경쇠 경) 약자의 합자예요. 경쇠가 울릴 때 나는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귀를 통해 들리는 그 무엇이란 의미예요. 소리 성. 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聲樂(성악), 音聲(음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煩은 火(불 화)와 頁(머리 혈)의 합자예요. 열[火]로 인해 머리가 아프다는 의미예요. 괴로워할 번. 번거로울 번. 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煩悶(번민), 煩雜(번잡)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惱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불만스럽다는 의미예요. 忄(心의 약자, 마음 심)은 뜻을,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괴로워할 뇌. 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懊惱(오뇌, 뉘우쳐 한탄하고 번뇌함), 苦惱(고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斷은 斤(도끼 근)과 絶(끊을 절)의 옛 글자가 합쳐진 거예요. 도끼를 사용하여 물체를 끊는다는 의미예요. 끊을 단. 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斷切(단절), 分斷(분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離는 隹(새 추)와 离(산신 이)의 합자예요. 본래 꾀꼬리를 뜻하는 글자였어요. 隹로 뜻을, 离로 음을 표현했어요. 떠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꾀꼬리가 앉아있던 나뭇가지를 떠났다란 의미로요. 떠날 리. 離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離別(이별), 分離(분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맹자』에 보면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야기(밤 사이 기운)의 축적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어요. 야기의 축적은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사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온갖 상념에 밀리지 않고 몸의 기운을 똑바로 조정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곧 번뇌가 사라진 그 상태와 진배없는 것 아닌가 싶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