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4백 가까이 들었데!”
“정말?”
“어쩌면 더 들었을지도 몰라.”
“…”
이웃 지인의 아내 분이 살 빼는데 들인 비용을 두고 아내와 나눈 대화의 일단이에요. 살 빼는 일과 거리가 먼 우리 내외인지라 살 빼는데 거금이 들어간 일에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더구나 그분의 식단 얘기를 들으니 더 놀랍더군요. 육식을 뺀 채식 중심이고 다소 특이한 채소 두어 가지가 첨가된 것 뿐 이었거든요. 여기에 운동과 반신욕 그리고 야식 금지가 추가 됐고요. 이런 정도라면 별도의 거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이 외에 무슨 특별한 지도가 추가되기에 그리 큰 거금이 드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나도 알아. 지금 하고 있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니란 걸.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을 못 뺄 것 같아서…. 자기도 알다시피 돈이 들어가면 아까워서라도 하게 되잖아.” 지인의 아내 분이 했다는 말인데, 처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 분은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시는 분이거든요. 숭고한 가치를 가르치는 분이 자신의 의지를 돈에 맡긴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거예요. 평소 바른 말 바른 행동을 강조하며 농담조로 “내가 도덕 선생이라서”운운하셨던 분인데….
돈은 고래(古來)로부터 인간을 움직이는 큰 동인(動因)이었죠. “뱃속의 아이도 돈 준다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는 이런 돈의 위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죠. 현대는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대이니 돈의 위력은 더 강해졌죠. 도덕 선생님이라고 돈의 지배를 벗어날 순 없을 거예요. 그러니 “돈이 들어가면 아까워서라도 하게 되잖아”라는 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말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동서고금의 숭고한 가치를 지도하는 분조차 돈에게 자신의 의지를 맡긴다고 생각하니 왠지….
사진은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고 읽어요(사진은 안면도 한 수목원에서 찍었어요). ‘스스로 굳세게 힘쓰며 쉬지 않는다’란 뜻이에요. 주역(周易)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나오는 말이에요. 꾸준한 노력을 강조할 때 많이 사용하는 성어죠. 그런데 이 말 앞에 나오는 생략된 '천행건 군자이(天行健 君子以,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가 사실은 더 의미심장해요. 자강불식의 근거를 하늘의 운행 모습인 ‘건(健, 굳셈)’에서 찾고 있거든요. ‘건’은 계절과 밤낮의 교체를 잠시도 중지하거나 바꾸지 않는 하늘의 모습을 상징한 말이에요. 하늘의 운행에서 행위의 근거를 찾은 사람이 행위의 목표를 어디에 뒀을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예요. 반면 돈의 위력을 행위의 근거로 삼은 사람이 행위의 목표를 어디에 둘지도 불문가지고요.
이웃 지인의 아내 분이 자신이 알고 있는 숭고한 가치를 체중 감량의 동인으로 삼을 수는 없었을까, 생각해봐요. 예컨대 결식아동을 돕거나 난민 구호 기금을 내기 위해 하루 한 끼 식사를 줄이거나 야식을 줄일 수는 없었을까, 싶은 거죠. 그것은 곧 인(仁, 사랑 혹은 베풂)을 행위의 동인으로 삼는 것인데, 이런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을 닮는 것이니 자강불식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체중감량은 저절로 달성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너무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생각일까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强은 虫(벌레 충)과 弘(넓을 홍)의 합자예요. 쌀벌레가 쌀을 갉아 먹는 소리란 의미예요. 虫은 뜻을, 弘은 음(홍→강)을 담당해요. 지금은 원의미로는 사용하지 않고 굳세다란 의미로만 사용해요. 본래 굳세다란 의미는 彊으로 표기했는데(自强不息도 본래는 自彊不息으로 표기) 후일 强으로 표기하게 됐어요. 음도 같고 글자 쓰기도 수월해 대체된 것으로 보여요. 굳셀 강. 强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强弱(강약), 强勸(강권, 억지로 권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息은 自(스스로 자)와 心(마음 심)의 합자예요. 自는 본래 코를 그린 글자였어요. 여기서는 본래 의미로 사용됐어요. 코를 통해 심기가 출입한다는 의미예요. 숨쉴 식. 息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瞬息間(순식간), 休息(휴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지인 아내 분을 흉봤으니 내처 끝까지 흉을 봐야겠어요. 지인 아내 분은 현재 체중 감량에 성공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오래 갈 것 같지 않아요. 어제 지인이 갑자기 전어 구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어요. 아내가 몹시 먹고 싶어 한다면서요. 전어 구이 집에서 처가 지인 아내 분께 전어는 먹어도 되냐고 물으니, 지도해주시는 분이 먹어도 된다고 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물경 일곱 마리를 먹는 거예요. 저와 아내는 한 두 마리밖에 안 먹었는데. 속으로 혀를 차며 한 마디 했어요. ‘애고, 오래 못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실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