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거긴 절이 아니예요!”
“‘사’가 들어가 있으니, 절 아니니?”
오래 전 어머니와 나눈 대화의 일절. 동네 분들과 현충사를 방문하게 됐는데, 어머니는 현충사를 절 이름으로 알고 계셨어요. 절 이름에 붙는 ‘사’가 들어가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실 만도 했죠. 하지만 당시 어렸던 저는 ‘사’가 ‘寺(절 사)’가 아니고 ‘祠(사당 사)’라는 걸 알려드릴 만한 지식이 없었어요. 다만 수학여행 때 현충사를 다녀온 경험으로 절이 아니란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죠. 어머니는 제 말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으셨어요.
현충사.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방문했을 장소이죠. 특히 70년대 학교를 다녔던 분들은,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거의 반강제적으로 이곳을 다녀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현충사가 국민 교육장처럼 된 데는 박정희 대통령의 입김이 컸죠. 박정희 대통령은 왜 이순신을 그렇게 띄웠던 걸까요?
답은 현충의 ‘충’에 있는 것 같아요. 국가에 대한 충성, 아니 당시 상황으로 말하면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양성하기 위해 이순신을 띄웠던 것 아닐까 싶은 거죠. 조국 근대화를 위해 분골쇄신(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는 뜻으로, 정성으로 노력함을 이르는 말)할 수 있는 역군을 양성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런 점은 처음 현충사라는 편액을 내렸던 숙종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다만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아니고 왕실과 조정에 맹종할 수 있는 신료를 길러낸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
그렇다면 정작 이순신 자신은 충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선조가 이순신을 자신의 대항마로 간주해 그를 의심하고 질시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죠. 이 점을 뒤집어 보면 이순신의 충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어요. 그는 맹목적 충견이 되는 것을 충이라 여기지 않고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 다시 말하면 충이란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 충실한 것을 충이라 여겼다고 보여요. 충(忠)은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불편부당한[中] 양심[心]의 소리에 따라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예요. 이런 그였기에 선조의 무리한 출정 요구를 거부했고, 과거도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치르려 했던 것이죠(과거를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치르겠다는 것은 왕의 권한을 대신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과거는 왕이 주관하는 것이니까요. 선조가 이순신을 경계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죠). 비록 그것이 지배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인 줄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죠.
사진은 현충사(顯忠祠) ― 정확하게는 구현충사 ― 현판이에요. ‘현충’은 충성을 드러내 찬양한다는 의미이고, ‘사’는 사당이란 의미예요. 현충사란 이름은 다른 분들의 사당 이름으로도 쓰여요. 다만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가 다른 현충사에 비해 널리 알려진 것 뿐 이예요. 낙관 부분은 정해(丁亥, 1707) 사월일(四月日) 선사(宣賜, 임금이 하사함)라고 읽어요. 사진은 아내가 동창들과 현충사에 놀러 갔다가 찍어왔어요. 당신도 옛날 우리 어머니처럼 현충사의 ‘사’를 혹시 절 이름 끝에 붙는 ‘사’로 생각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더군요. 현판을 한 참 응시하노라니, 불현 듯 ‘충’에 관한 의문이 생겨 몇 마디 중얼거렸어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顯은 頁(머리 혈)과 㬎(살필 현)의 합자예요. 환하게 빛나는 머리 장식이란 의미예요. 頁은 뜻을, 㬎은 뜻과 음을 담당해요. 㬎은 ‘햇빛 아래에서 실을 살펴본다’는 의미로 본 의미 ‘환하게 빛나는’을 보충해 주고 있어요. 드러날 현. 顯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顯彰(현창, 밝게 나타냄), 顯現(현현, 명백하게 나타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忠은 心(마음 심)과 中(가운데 중)의 합자예요. 불편부당한 정직한 마음으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예요. 본디 개인적인 가치관이었는데 후에 공적인 가치관으로 변했죠. 충성 충. 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忠誠(충성), 忠義(충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祠는 示(祀의 약자, 제사 사)와 司(詞의 약자, 말씀 사)의 합자예요. 천지신명에게 제물을 별로 마련하지 못하고 축원의 말만 길게 하는 봄철의 제사란 의미예요. 사당이란 의미는 본 의미에서 연역된 거예요. 제사를 드리는 장소란 의미로요. 사당 사. 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祠堂(사당), 祠宇(사우, 사당과 같은 의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한문 현판을 단 현충사는 구 본관으로 불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휘호 현충사 현판을 단 현충사는 신 본관으로 불려요. 신 본관의 박정희 대통령 한글 휘호를 떼고 구 본관의 현충사 현판(숙종 어필)을 달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둘 다 존치키로 결정 났어요(2018년 문화재청 결정). 구 분관과 신 본관이 별도로 있고 거기에 맞는 현판이 있으니 둘 다 존치키로 결정한 것이죠. 장군의 혼령은 어느 곳에 깃들이실지 궁금해요. 어쩌면 아무 곳에 깃들이지 않으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