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훈.


이 이름 들어 보셨나요? 전통 복장을 한 젊은 학자로, 현재 연세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이예요. 오랜 기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교에 진학했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어요. 사라진 전통 교육을 몸소 체험한 이로, 근(현)대 교육과 전통 교육을 머리와 가슴으로 온전히 비교 설명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언젠가 이 이가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겪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무척 흥미롭게 들은 부분이 있어요.


검정고시를 위해 학원에 다니다 크게 아파 상당 기간 공부를 못했다고 해요. 당시는 그 이유를 정확히 몰랐는데 대학에 진학한 뒤 아팠던 근본 원인을 알게 됐다고 해요. 그건 바로 학원의 시간표였어요. 기계적으로 짜여진 학습 시간과 쉬는 시간에 맞춰 획일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에 자신의 몸이 적응을 못해 병이 났다는 거예요. 그가 경험한 전통 교육은 이와 달랐어요. 각자의 학습 과목과 진도가 다르기에 획일적인 시간과 휴식이 없었어요. 자신의 몸은 여기에 오랜 기간 적응돼 있었는데 그 리듬이 깨지면서 병이 났다고 본 거예요. 병의 원인을 사회학적으로 통찰하는 언급이 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한재훈 씨와 반대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대학에 들어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강의 시간표였어요. 이동해 가면서 수업을 듣고 중간에 비는 시간도 있고 친구들과 시간표도 다른 것에 적응이 안돼더군요. 제 경우엔, 한재훈 씨와 달리, 몸이 오랜 기간 기계적이고 획일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에 적응이 돼있어 그렇지 못한 환경을 접하자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던 거예요.


사진의 한자는 직행(直行)이라고 읽어요. 곧바로 가다란 뜻이죠. 친척 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갔다가 지하철에서 찍은 거예요. 관절전문병원 의료 광고 문구인데, 왠지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직행이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속도와 효율'을 염두에 둔 말이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속도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죠. 그런데 그 속도와 효율의 끝은 무엇일까요?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근(현)대 교육 - 앞서 든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시간표가 그 한 실례죠 - 을 받으며 병이 난 한재훈 씨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커요(제 경험은 한재훈씨와 반대 상황이지만 이 역시 속도와 효율 중시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병폐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론 한재훈씨의 발병 사례와 다를 바 없어요). 무엇보다 속도와 효율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라는 거예요. 최고의 가치란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어야 하는데 탈이 나게 만든다면 그 가치엔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수 없죠. 저 관절전문병원의 광고 문구 '직행'은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가치이자 심각히 되돌아보아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直은 乚(숨길 은)과 十(열 십)과 目(눈 목)의 합자예요. 많은[十] 이들[目]이 주목하는 것은 제 아무리 숨겨도[ 乚]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의미예요. 능동의 의미로 바뀌어, 숨기지 않고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해요. 곧을 직. 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直視(직시), 正直(정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行은 본래 사거리를 그린 거예요. 다니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다닐 행. 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行動(행동), 慣行(관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는 경우가 있죠. 효율과 속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미 몸이 여기에 만성이 돼있어서 말이죠. 왠지 한재훈 씨 처럼 일찍이 현대 사회와 다른 전통 사회를 깊이 체험해 본 이들은 내공이 있어 효율과 속도의 문제를 이겨낼 힘이 있을 것 같아요. 새삼 초중등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돼요. (제가 전통 체험을 하자든가 한학 교육을 시키자든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란 것, 아시죠?)


여담 둘. 관절이 안좋으면 무조건 관절전문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정확한 판단이 안서요. 몸은 기계가 아니고 유기체라 관절이 안좋으면 그와 관련된 다른 요인들도 안좋을텐데 관절전문병원만 간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말이죠. 무식한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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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원(柳宗元, 773-819))재인전(梓人傳)은 한 재인(목수의 우두머리)에 대한 전기문으로, 그에 대한 기술을 통해 재상의 역할과 임무 및 가치를 빗대어 말한 작품이에요. 이 글은 약간 시니컬하게 시작돼요. 어느 날 자신이 아는 집에 세들게 된 한 재인을 만났는데, 그 재인이 자신은 여러 목수들을 부리며 자신이 없으면 집짓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요. 그러기에 관가를 지을 적에는 일반 목수의 세 배, 사가를 지을 적에는 일반 목수 총 임금의 절반을 받는다고 호언해요. 그런데 정작 자신의 망가진 침대 다리 하나도 못 고치고 후일 목수를 불러다 수리할 것이라고 말하자, 유종원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그를 비웃어요. ‘~ 능력도 없으면서 녹(祿)만 탐하고 재물만 좋아하는 자로군!’

  

그런데 후일 그가 집짓는 곳에서 하는 일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어요. 작은 설계도 한 장이 벽에 붙어 있는데 큰 집을 짓는데 한 치의 오차도 생기지 않게 그려놓은 것을 보고 감탄해요. 모든 목수들이 그의 명령대로 일을 수행하고, 그의 지시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심한 질책을 받아도 아무 말 못하고 서운한 감정도 품지 않는 것에 놀라요. 건물이 완성되자 대들보엔 오직 그의 이름만 씌여지고 함께 일한 많은 목수들의 이름은 씌여지지 않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요. 여기서 유종원은 이 재인의 역할과 임무 및 가치를 재상의 역할과 임무 및 가치에 빗대어 말해요.

  

재인이 많은 목수들을 적절히 부리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재상 역시 많은 관리들을 적절히 부리는 역할을 담당하며, 재인이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는 목수들을 질타한다면 재상 역시 제 역할을 못하는 관리들을 처벌하고 좋은 관리를 등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며, 재인이 설계도를 갖고 집을 짓는 대체를 관할한다면 재상 역시 국정에 대한 철학과 도를 가지고 국정의 대체를 관할하며, 집이 완성되었을 때 그 공이 오롯이 재인에게 돌아가듯 정치가 잘되면 그 공은 오롯이 재상에게 돌아간다고 말하죠

  

유종원은 재인전후반부에서 재인이 각각의 소임을 맡은 목수들의 일을 일일이 간여하지 않듯 재상도 그와 같아야 하며, 아울러 집 주인이 재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야 튼튼한 집이 지어지듯 군주도 재상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야 국정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는 과감한 발언을 해요. 재인전은 유종원의 정치철학을 나타낸 글이자, 당시 신진 사류들의 정치철학을 대변한 글이기도 해요.

  

사진의 한자는, 한글로 표기되어 있듯, 대목장(大木匠)이라고 읽어요. “목수는 궁전이나 사원등 큰 건물을 짓는 장인목수와 민가를 짓는 일반목수로 대별되는데 장인목수의 우두머리를 대목장이라고해요. “목수의 우두머리인 대목의 역할은 많은 장인들을 지휘 통솔하는 능력 뿐 아니라 건축과 관련된 모든 기술과 기법을 충분히 갖춘 이들만이 수행할 수있죠. 대목은 수십 년을 두고 스승으로부터 이를 물려받아 갈고 닦은이들이에요(이상 인용문, 국립문화재연구소, 대목장). 


최근 제가 사는 동네의 목수 한 분이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대목장으로 지정되었어요(경사스러운 일이죠). 사진은 이 분의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간판인데, 사진을 찍으며 문득 유종원의 재인전이 생각나 인용해 봤어요. 유종원은 재인의 역할과 재상의 역할을 견줘 이해했지만, 비단 재인만이 재상의 역할에 견줘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거예요. 오랫동안 공력을 쌓아 최고 책임자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일은 모두 재상의 역할에 견줘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유종원이 그의 글 후반부에서 강조하듯 최고책임자의 중요한 덕목은 적절한 임무와 책임성 부여이지, 간섭과 통제가 아니에요. 간혹 최고책임자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이 중요한 덕목을 망각하여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도 무형문화재 대목장 지정을 받은 저 분은 왠지 그런 최고 책임자는 아닐 듯해요. 대목장을 지정받기까지 최고 책임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좋은 성과를 냈기에 대목장 지정을 받은 것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이 낯설어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볼까요?

  

(상자 방)(도끼 근)의 합자예요. 본래, 연장을 사용하여 만든 목기(木器)란 의미였어요. 지금은 주로 물건을 만드는 장인으로 뜻으로 사용하는데, 본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장인 장.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匠人(장인), 巨匠(거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유종원은 재인전서두에서 재인이 자신의 부서진 침대 다리 하나 수리 못한다고 비꼬았는데 이는 순전한 오해였어요. 재인은 그 일을 하지 않은 것 뿐,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재인은 대목장과 같은데, 앞서 말했듯, 대목장은 여러 목수 기술을 두루 경험한 뒤에 오르는 지위이기에 그깟 침대 다리 하나 수리 못할 사람은 아니죠.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멋진 글을 위해 그렇게 서두를 설정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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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봉건의 피아노란 시예요. 피아노 소리에 대한 흥취를 대담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 있어요. 청각 예술인 음악을 시각 예술인 시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죠. 그러다보니 이런 강렬하면서도 도발적인 이미지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여요. 많은 이들이 피아노 연주를 듣지만 그 연주의 정수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전봉건은 그 많지 않은 이들 중 하나였을 것 같아요. 그랬기에 이 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사진은 당대의 시인 고황(顧況, 생몰년 미상)이 지은 이공봉의 공후 연주를 노래하다[李供奉彈箜篌歌]의 일부분이에요. 프랑스에 가있는 딸아이가 찍어 보낸 사진인데, 위아래에 프랑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프랑스어 번역 밑에 원문을 소개해 놓은 것으로 보여요. 읽어 볼까요? (간자체로 쓰고 원시와 다른 한자를 쓴 것도 있어 번체자로 쓰고 잘못 쓴 한자도 바로 잡았어요.)

 

胡曲漢曲聲皆好 호곡한곡성개호   호곡(胡曲) 한곡(漢曲) 그가 타는 소린 다 좋아

彈著曲髓曲肝腦 탄착곡수곡간뇌   곡들의 정수를 연주하기 때문이지.

徃徃從空入户來 왕왕종곡입호래   그 소리 왕왕 공중을 타고 민가에도 전해져

瞥瞥隨風落春草 별별수풍낙춘초   언뜻언뜻 바람타고 봄풀에 내리기도.

草頭只覺風吹入 초두미각풍취입   풀들은 그 바람 아는 듯

風來草即隨風立 풍래초즉수풍립   바람 불면 바람 따라 일어서지.

草亦不知風到來 초역부지풍도래   풀들은 바람 불어오는 곳 모르고

風亦不知聲緩急 풍역부지성완급   실어 보낸 바람도 소리 완급은 이해 못해.

 

이공봉 공봉은 벼슬이름, 이름은 빙(凴) - 이 연주하는 절묘한 공후 솜씨를 찬미하고 있어요. 그의 손길이 닿으면 세상의 어떤 곡도 다 명곡이 된다고 했으니, 이 이상의 극찬은 없을 거예요. 더불어 그의 연주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풀과 바람을 통해 그의 공후 소리가 갖는 절묘함을 한 번 더 찬미했어요.

 

그런데 풀과 바람을 통해 이공봉의 공후 소리가 갖는 절묘함을 찬미한 내용은 은연중 시인 자신의 감상안(鑑賞眼)을 자랑한 것이기도 해요. 이해 못하는 대상을 통해 이해하는 자신을 드러낸 것이니까요. 여기 풀과 바람은, 어쩌면, 시인을 제외한 세상 모든 이들을 상정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전봉건이 피아노 연주에 남다른 감흥을 느꼈듯 고황 역시 이공봉의 공후 연주에 남다른 감흥을 느꼈던 거예요. 그런 남다른 감흥을 평범한 이들은 이해 못할 거라고 은연중 자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몇 자만 자세히 살펴볼까요?

 

(활 궁)(홑 단)의 합자예요. 한 번에 하나씩 활을 쏜다는 뜻이에요. 쏠 탄. 연주하다란 의미의 타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활줄을 당겨 활을 쏘듯 줄을 당기거나 쳐서 연주를 한다는 의미로요. 탈 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彈丸(탄환), 彈奏(탄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눈 목)(해진옷 폐)의 합자예요. 언뜻보다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언뜻볼 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瞥瞥(별별, 언뜻언뜻 보이는 모양), 瞥眼間(별안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볼 견)(배울 학) 약자의 합자예요.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사물을 인지하듯 이치를 터득해 무지몽매한 상태를 벗어난다는 의미예요. 은 뜻을, 의 약자는 뜻과 음()을 담당해요. 깨달을 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覺醒(각성), 觸覺(촉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실 사)(느즈러질 원)의 합자예요. 풀어 헤쳐진 실처럼 느슨하다란 의미예요. 느슨할 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緩慢(완만), 緩衝(완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마음 심)(미칠 급)의 합자예요. 옷폭이 좁다란 뜻이에요. 급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옷폭이 좁다보니 입는데 허둥대고 허둥대다보니 마음도 급하게 된다는 의미로요. 급할 급.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뒤에서 앞으로 가려고 급하게 서두른다는 의미로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急行(급행), 火急(화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공후는 우리 고조선 시대의 노래 공후인(箜篌引)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악기예요. 본래 서역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파됐어요. 당나라 때 최전성기를 누렸고, 지금은 사라진 악기예요(현대 중국에 들어와 복원됐다고 해요). 서양의 하프와 비슷한 악기로 알려져 있어요. 당나라 때 최전성기를 누린 것은 황실의 애호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반대로 공후가 사라진 것도 황실의 애호와 관련이 깊은데, 황실의 애호를 받는 음악이 민간에 전파되는 것을 원치 않아 왕조의 멸망과 함께 쇠멸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사진의 내용에서도 그런 폐쇄적 느낌이 나타나 있어요. 민가에 이따금 들린다는 것이 그것이죠. 공후는 아무리 좋은 음악도 많은 이들과 함께 해야 오래가지 그렇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여민락(與民樂)’의 교훈을 일깨우는 악기라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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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3-2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공후란 악기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서양악기 하프와 많이 비슷하네요.
호곡은 오랑캐나라 (서역)의 곡, 한곡은 한나라 곡을 말하는것이겠지요? 이것 역시 이공봉 자신의 감상안을 드러낸게 아닌가 싶네요.
전봉건의 피아노라는 시는 학교 다닐때 국어 시간에 배운 것 같기도 하고요.
어렵지만 재미있게 써주셔서 매번 읽어보게 됩니다.

찔레꽃 2019-03-24 11:33   좋아요 0 | URL
깊은 관심에 깊이 감사드려요^ ^ hnine님의 댓글이 저를 더욱 분발하게 만듭니다 ^ ^
 


 

저 그런 불효자식 아니에요!”

 

변기에 앉으면 담배 냄새가 났어요. 혹 꽁초를 변기에 버렸냐고 아들아이에게 물었어요. 아이가 얼굴을 붉히며 저 말을 했어요.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아이는 생각 외로 과민 반응을 보였어요. 그런데 이후 변기에서 담배 냄새가 사라졌어요.

 

아이는 21살이지만 담배를 피운지는 꽤 됐어요. 그러나 담배를 핀다고 꾸지람을 한 적은 없어요. 다만 건강이 염려된다는 말과 꽁초 처리만 잘 하라고 했죠. 관대한(?) 처사가 되려 본인에게는 부담이 됐는지 애써 담배를 억제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하지만 이따금 참을 수 없을 때는 화장실에서 피웠던 것 같아요. 당연히 꽁초는 변기에 버렸고. 하지만 실내에서 몰래 담배를 핀다는 것에 본인 스스로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렇지 불효자식까지 언급을.

 

아이에게 를 말한 적 없고 기대한 적 없는데 뜻밖의 말을 들어서 그 날 아이의 말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만일 내가 아이의 나이였고 아버지께 내가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들었다면 나는 어떤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효가 아직은 우리 의식 속에 살아있는 덕목이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구요.

 

사진은 예산군 광시면을 지나다 찍은 거예요. 송시열이 쓴 박승휴(朴承休, 1606 ­ 1659)의 비문이에요. 박승휴의 생애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그의 효행이에요. 송시열은 그의 효행을 드러내기 위해 비문 첫머리에 그가 아버지를 여읜 후 보여준 모습을 인상 깊게 서술했어요.

 

孝宗己亥 朴執義子美新免先考喪 承召還京 余亟往候之 公餘哀在面 言咽而淚淫 座人不能視 自世敎衰 喪紀先壞 其哀與戚相當者鮮矣 匪今而魯由也 笑朝祥而暮歌者 子張以聖門高弟 喪畢而琴 衎衎而樂 乃今得見如子美者 勞心慱慱之詩 庶幾其不作矣 然公形貌黝黑 聲音厪厪 其危身之狀 不翅多矣 余固已憂之 果以其年十一月十七日不起 嗚呼 無以勸善居喪者矣 효종기해 박집의자미신면선고상 승소환경 여극왕후지 공여애재면 언열이누음 좌인불능시 자세교쇠 상기선괴 기애여척상당자선의 비금이노유야 소조상이모가자 자장이성문고제 상필이금 간간이락 내금득견여자미자 노심단단지시 서기기부작의 연공형모유흑 성음근근 기위신지상 불시다의 여고이우지 과이기년십일월십칠일불기 오호 무이권선거상자의

 

효종 기해년(1659) 집의(執義) 박자미(자미는 박승휴의 자())가 부친상을 마친 뒤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에 올라왔다. 나는 한 달음에 달려가 그를 만났다. 공의 얼굴에는 슬픈 빛이 역력했고 목소리는 울먹였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나를 비롯한 함께 자리한 사람들은 차마 공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세교(世敎)가 쇠해진 뒤부터 가장 먼저 파괴된 것이 상례(喪禮)의 기강이다. 그 슬픈 마음과 형상이 일치하는 자를 찾아보기란 극히 힘들다.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성인이 사셨던 노나라에서도 그러했으니 상중(喪中) 제사를 지낼 때 아침나절에는 키득거리고 저녁나절에는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자장(子張)같은 성인의 수제자도 초상을 마치고는 거문고를 타며 즐거운 행색을 보였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세태에서 박자미 같은 이를 봤다면 저 상례를 소홀히 여김을 슬퍼한 소관(素冠)같은 시는 결코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은 안색이 심히 좋지 않았고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건강이 심히 안 좋아 보였다. 나는 공의 건강이 매우 염려스러웠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는 것인지 그해 1117일 공은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공이 보여준 상례의 모습은 진실로 타인의 모본이 될 만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감히 권하지는 못하겠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이기지 못해 끝내 돌아간 것을 보면 그가 생전에 얼마나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어요. 아버지에게만 그랬던 것은 당연히 아니에요. 어머니에게도 그러했어요. 비문 뒷면에 보면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단지(斷指)하여 그 피를 어머니에게 먹였다는 일화가 나와요. 그의 효행이 특별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박승휴의 효행은, 송시열의 언급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특별한 것이었어요. 효를 강조했던 전통사회에서도 박승휴 같은 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죠. 이는 효의 실천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반증해요. 설령 박승휴 같은 효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죠.

 

그럼에도 전통사회에서 효를 강제했던 것은, 흔히 말하듯,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유교와 상관성이 깊기 때문이에요. 유교라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린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를 권장한다면 그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 번 뿌리를 내린 전통은 좋고 나쁨을 떠나 의식 깊이 남아있기 마련이죠. 효를 여전히 아름다운 인정으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런 인정의 발로라기보다는 의식 깊이 뿌리내린 효라는 전통가치가 발로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어요. 아들아이가 불효 운운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사진의 한자중 핵심적인 한자 다섯 자만 자세히 살펴볼까요?

 

(울 곡)(달아날 망)의 합자예요. 이 세상에서 달아나 그 모습을 찾을 길 없어 슬퍼한다는 의미예요. 죽을 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喪家(상가), 喪失(상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입 구)(옷 의)의 합자예요. 슬퍼서 운다는 의미예요. 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슬플 애.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哀悼(애도), 哀歡(애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작은 도끼란 의미예요. (도끼 월)로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도끼 척. 슬퍼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차자(借字)한 거예요. 슬퍼할 척.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戚戚(척척, 근심하는 모양), 戚揚(척양, 크고 작은 도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힘 력)(등불 형) 약자의 합자예요. 등불을 켠 것처럼 집에 불이 붙어 타면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끌려고 애쓴다는 의미예요. 힘쓸 로. 근심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근심할 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勤勞(근로), 勞心焦思(노심초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근심하다란 의미예요. (마음 심)으로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근심할 단.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慱慱(단단, 근심하여 여윈 모양)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패륜이 극성을 부리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그렇다고 효를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처방이 아닐 거예요. 그렇다고 자식과 부모라는 혈연관계를 무시한 채 딱딱한 법률만으로 패륜을 치료할 수도 없을 거구요. 무엇보다 인간 대 인간이라는 대 전제하에 상호 존중이라는 가치를 강조해야 시대에 맞는 처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찍은 한 열혈 효자의 비문을 보며 내린 효에 대한 새로운(?)정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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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란 말이 있어요. 문체 속에는 그 사람을 대변하는 제요소가 들어가 있다란  의미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문체 수련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해요. 어차피 천품은 감출 수 없으니 인위적으로 문체 수련을 한다하여 무슨 특별한 문체가 만들어지겠냐는 거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충실히 하면 그것이 그만의 문체가 된다는 거예요. 일리 있는 말이에요. 혹 문체에 답답함을 느낀다면 문장 수련에 힘을 쏟기 보다는 뒤늦게라도 인격을 수련하는데 더 힘을 쏟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문장에 그 사람의 개성이 묻어나듯 시에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개성이 묻어난다고 생각해요. “시는 곧 그 사람이다라고 보는 거죠. 시를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천품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진은 재도천중만국명(纔到天中萬國明)”이라고 읽어요. “하늘 한 가운데 이르니 온 세상이 밝도다라는 뜻이에요. ‘무엇이란 주체가 빠져있는데,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요, 태양이 그 주체예요. 이 구절 앞에는 본디 한 구절이 더 있는데 그것을 함께 읽으면 주체인 태양의 위상을 한결 더 깊이 인식할 수 있어요. 생략된 구절은 미리해저천산암(未離海底千山暗)”인데 아직 바다 밑을 떠나지 않았을 적엔 온 세상 산이 다 어둡더니라고 풀이해요

  

두 구절, 특히 사진의 구절에서 어떤 느낌이 느껴지시는지요? 저는 웅대한 기상을 느꼈어요. 단순히 태양이 뜨기 전 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탁하여 자신의 웅대한 기상을 표현한 것으로 말이죠. 태양이 뜨기 전의 모습은 미미한 현재의 모습을, 태양이 중천에 뜬 모습은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편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런 정도의 웅대한 기상은 흔히 제왕의 기상이라고 하죠

  

이 시는 송나라를 건국한 조광윤이 미미한 신분 시절에 지은 것이라고 해요. 이 시를 지을 적에 조광윤이 천하를 바로 세우겠다는 당말 510국의 혼란 시기였기에 야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시에는 그런 야망, 아니 웅혼한 기상이 잘 드러나 있어요. 이런 웅혼한 기상의 표현은 시구를 조탁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타고난 천품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죠. 시는 곧 그 사람이니까요

  

사진은 한 지인이 한자를 모르겠다고 - 특히 첫 번째 한자 - 알려달라고 보낸 거예요. 덕분에 좋은 글감을 얻었어요

  

낯설게 보이는 두 글자만 자세히 살펴볼까요?

  

(실 사)(토끼 참)의 합자예요. 붉은 색에 약간의 검은 빛이 감도는 옷감이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지금은 이 뜻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겨우라는 부사의 의미로 사용해요. ‘겨우라는 의미는 약간의 검은 빛이 감돈다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겨우 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今纔(금재, 이제 / 겨우), 纔小(재소, 조금 / 잠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이를지)(칼 도)의 합자예요. 이르다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칼은 예리하여 사물에 빠르게 접촉되는데, 그처럼 빠르게 이르렀다란 의미로요. 이를 도.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到着(도착), 到達(도달)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우리나라 개국 왕조 인물 중에도 송태조 조광윤과 같은 풍의 시를 지은 사람이 있어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그이인데, 제가 보기엔, 송태조 조광윤에 비해 기상이 약간 떨어져요. 그래도 확실히 범인(凡人)의 경지는 넘어선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여요. 이 시 역시 억지로 조탁한 것이 아니고 타고난 천품이 자연스럽게 발로된 거라고 봐요.

  

引手攀蘿上碧峰 인수반라상벽봉    칡덩굴 부여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一庵高臥白雲中 일암고와백운중    암자 하나 높이 흰 구름 속에 누워 있네

若將眼界爲吾土 약장안계위오토    만약 눈에 들어오는 곳을 모두 우리 땅으로 한다면

楚越江南豈不容 초월강남기불용    강남의 초나라 월나라들 마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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