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런 불효자식 아니에요!”

 

변기에 앉으면 담배 냄새가 났어요. 혹 꽁초를 변기에 버렸냐고 아들아이에게 물었어요. 아이가 얼굴을 붉히며 저 말을 했어요.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아이는 생각 외로 과민 반응을 보였어요. 그런데 이후 변기에서 담배 냄새가 사라졌어요.

 

아이는 21살이지만 담배를 피운지는 꽤 됐어요. 그러나 담배를 핀다고 꾸지람을 한 적은 없어요. 다만 건강이 염려된다는 말과 꽁초 처리만 잘 하라고 했죠. 관대한(?) 처사가 되려 본인에게는 부담이 됐는지 애써 담배를 억제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하지만 이따금 참을 수 없을 때는 화장실에서 피웠던 것 같아요. 당연히 꽁초는 변기에 버렸고. 하지만 실내에서 몰래 담배를 핀다는 것에 본인 스스로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렇지 불효자식까지 언급을.

 

아이에게 를 말한 적 없고 기대한 적 없는데 뜻밖의 말을 들어서 그 날 아이의 말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만일 내가 아이의 나이였고 아버지께 내가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들었다면 나는 어떤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효가 아직은 우리 의식 속에 살아있는 덕목이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구요.

 

사진은 예산군 광시면을 지나다 찍은 거예요. 송시열이 쓴 박승휴(朴承休, 1606 ­ 1659)의 비문이에요. 박승휴의 생애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그의 효행이에요. 송시열은 그의 효행을 드러내기 위해 비문 첫머리에 그가 아버지를 여읜 후 보여준 모습을 인상 깊게 서술했어요.

 

孝宗己亥 朴執義子美新免先考喪 承召還京 余亟往候之 公餘哀在面 言咽而淚淫 座人不能視 自世敎衰 喪紀先壞 其哀與戚相當者鮮矣 匪今而魯由也 笑朝祥而暮歌者 子張以聖門高弟 喪畢而琴 衎衎而樂 乃今得見如子美者 勞心慱慱之詩 庶幾其不作矣 然公形貌黝黑 聲音厪厪 其危身之狀 不翅多矣 余固已憂之 果以其年十一月十七日不起 嗚呼 無以勸善居喪者矣 효종기해 박집의자미신면선고상 승소환경 여극왕후지 공여애재면 언열이누음 좌인불능시 자세교쇠 상기선괴 기애여척상당자선의 비금이노유야 소조상이모가자 자장이성문고제 상필이금 간간이락 내금득견여자미자 노심단단지시 서기기부작의 연공형모유흑 성음근근 기위신지상 불시다의 여고이우지 과이기년십일월십칠일불기 오호 무이권선거상자의

 

효종 기해년(1659) 집의(執義) 박자미(자미는 박승휴의 자())가 부친상을 마친 뒤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에 올라왔다. 나는 한 달음에 달려가 그를 만났다. 공의 얼굴에는 슬픈 빛이 역력했고 목소리는 울먹였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나를 비롯한 함께 자리한 사람들은 차마 공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세교(世敎)가 쇠해진 뒤부터 가장 먼저 파괴된 것이 상례(喪禮)의 기강이다. 그 슬픈 마음과 형상이 일치하는 자를 찾아보기란 극히 힘들다.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성인이 사셨던 노나라에서도 그러했으니 상중(喪中) 제사를 지낼 때 아침나절에는 키득거리고 저녁나절에는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자장(子張)같은 성인의 수제자도 초상을 마치고는 거문고를 타며 즐거운 행색을 보였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세태에서 박자미 같은 이를 봤다면 저 상례를 소홀히 여김을 슬퍼한 소관(素冠)같은 시는 결코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은 안색이 심히 좋지 않았고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건강이 심히 안 좋아 보였다. 나는 공의 건강이 매우 염려스러웠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는 것인지 그해 1117일 공은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공이 보여준 상례의 모습은 진실로 타인의 모본이 될 만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감히 권하지는 못하겠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이기지 못해 끝내 돌아간 것을 보면 그가 생전에 얼마나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어요. 아버지에게만 그랬던 것은 당연히 아니에요. 어머니에게도 그러했어요. 비문 뒷면에 보면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단지(斷指)하여 그 피를 어머니에게 먹였다는 일화가 나와요. 그의 효행이 특별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박승휴의 효행은, 송시열의 언급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특별한 것이었어요. 효를 강조했던 전통사회에서도 박승휴 같은 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죠. 이는 효의 실천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반증해요. 설령 박승휴 같은 효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죠.

 

그럼에도 전통사회에서 효를 강제했던 것은, 흔히 말하듯,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유교와 상관성이 깊기 때문이에요. 유교라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린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를 권장한다면 그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 번 뿌리를 내린 전통은 좋고 나쁨을 떠나 의식 깊이 남아있기 마련이죠. 효를 여전히 아름다운 인정으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런 인정의 발로라기보다는 의식 깊이 뿌리내린 효라는 전통가치가 발로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어요. 아들아이가 불효 운운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사진의 한자중 핵심적인 한자 다섯 자만 자세히 살펴볼까요?

 

(울 곡)(달아날 망)의 합자예요. 이 세상에서 달아나 그 모습을 찾을 길 없어 슬퍼한다는 의미예요. 죽을 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喪家(상가), 喪失(상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입 구)(옷 의)의 합자예요. 슬퍼서 운다는 의미예요. 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슬플 애.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哀悼(애도), 哀歡(애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작은 도끼란 의미예요. (도끼 월)로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도끼 척. 슬퍼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차자(借字)한 거예요. 슬퍼할 척.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戚戚(척척, 근심하는 모양), 戚揚(척양, 크고 작은 도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힘 력)(등불 형) 약자의 합자예요. 등불을 켠 것처럼 집에 불이 붙어 타면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끌려고 애쓴다는 의미예요. 힘쓸 로. 근심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근심할 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勤勞(근로), 勞心焦思(노심초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근심하다란 의미예요. (마음 심)으로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근심할 단.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慱慱(단단, 근심하여 여윈 모양)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패륜이 극성을 부리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그렇다고 효를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처방이 아닐 거예요. 그렇다고 자식과 부모라는 혈연관계를 무시한 채 딱딱한 법률만으로 패륜을 치료할 수도 없을 거구요. 무엇보다 인간 대 인간이라는 대 전제하에 상호 존중이라는 가치를 강조해야 시대에 맞는 처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찍은 한 열혈 효자의 비문을 보며 내린 효에 대한 새로운(?)정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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