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훈.


이 이름 들어 보셨나요? 전통 복장을 한 젊은 학자로, 현재 연세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이예요. 오랜 기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교에 진학했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어요. 사라진 전통 교육을 몸소 체험한 이로, 근(현)대 교육과 전통 교육을 머리와 가슴으로 온전히 비교 설명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언젠가 이 이가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겪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무척 흥미롭게 들은 부분이 있어요.


검정고시를 위해 학원에 다니다 크게 아파 상당 기간 공부를 못했다고 해요. 당시는 그 이유를 정확히 몰랐는데 대학에 진학한 뒤 아팠던 근본 원인을 알게 됐다고 해요. 그건 바로 학원의 시간표였어요. 기계적으로 짜여진 학습 시간과 쉬는 시간에 맞춰 획일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에 자신의 몸이 적응을 못해 병이 났다는 거예요. 그가 경험한 전통 교육은 이와 달랐어요. 각자의 학습 과목과 진도가 다르기에 획일적인 시간과 휴식이 없었어요. 자신의 몸은 여기에 오랜 기간 적응돼 있었는데 그 리듬이 깨지면서 병이 났다고 본 거예요. 병의 원인을 사회학적으로 통찰하는 언급이 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한재훈 씨와 반대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대학에 들어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강의 시간표였어요. 이동해 가면서 수업을 듣고 중간에 비는 시간도 있고 친구들과 시간표도 다른 것에 적응이 안돼더군요. 제 경우엔, 한재훈 씨와 달리, 몸이 오랜 기간 기계적이고 획일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에 적응이 돼있어 그렇지 못한 환경을 접하자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던 거예요.


사진의 한자는 직행(直行)이라고 읽어요. 곧바로 가다란 뜻이죠. 친척 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갔다가 지하철에서 찍은 거예요. 관절전문병원 의료 광고 문구인데, 왠지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직행이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속도와 효율'을 염두에 둔 말이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속도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죠. 그런데 그 속도와 효율의 끝은 무엇일까요?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근(현)대 교육 - 앞서 든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시간표가 그 한 실례죠 - 을 받으며 병이 난 한재훈 씨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커요(제 경험은 한재훈씨와 반대 상황이지만 이 역시 속도와 효율 중시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병폐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론 한재훈씨의 발병 사례와 다를 바 없어요). 무엇보다 속도와 효율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라는 거예요. 최고의 가치란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어야 하는데 탈이 나게 만든다면 그 가치엔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수 없죠. 저 관절전문병원의 광고 문구 '직행'은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가치이자 심각히 되돌아보아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直은 乚(숨길 은)과 十(열 십)과 目(눈 목)의 합자예요. 많은[十] 이들[目]이 주목하는 것은 제 아무리 숨겨도[ 乚]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의미예요. 능동의 의미로 바뀌어, 숨기지 않고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해요. 곧을 직. 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直視(직시), 正直(정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行은 본래 사거리를 그린 거예요. 다니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다닐 행. 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行動(행동), 慣行(관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는 경우가 있죠. 효율과 속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미 몸이 여기에 만성이 돼있어서 말이죠. 왠지 한재훈 씨 처럼 일찍이 현대 사회와 다른 전통 사회를 깊이 체험해 본 이들은 내공이 있어 효율과 속도의 문제를 이겨낼 힘이 있을 것 같아요. 새삼 초중등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돼요. (제가 전통 체험을 하자든가 한학 교육을 시키자든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란 것, 아시죠?)


여담 둘. 관절이 안좋으면 무조건 관절전문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정확한 판단이 안서요. 몸은 기계가 아니고 유기체라 관절이 안좋으면 그와 관련된 다른 요인들도 안좋을텐데 관절전문병원만 간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말이죠. 무식한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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