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원(柳宗元, 773-819))재인전(梓人傳)은 한 재인(목수의 우두머리)에 대한 전기문으로, 그에 대한 기술을 통해 재상의 역할과 임무 및 가치를 빗대어 말한 작품이에요. 이 글은 약간 시니컬하게 시작돼요. 어느 날 자신이 아는 집에 세들게 된 한 재인을 만났는데, 그 재인이 자신은 여러 목수들을 부리며 자신이 없으면 집짓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요. 그러기에 관가를 지을 적에는 일반 목수의 세 배, 사가를 지을 적에는 일반 목수 총 임금의 절반을 받는다고 호언해요. 그런데 정작 자신의 망가진 침대 다리 하나도 못 고치고 후일 목수를 불러다 수리할 것이라고 말하자, 유종원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그를 비웃어요. ‘~ 능력도 없으면서 녹(祿)만 탐하고 재물만 좋아하는 자로군!’

  

그런데 후일 그가 집짓는 곳에서 하는 일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어요. 작은 설계도 한 장이 벽에 붙어 있는데 큰 집을 짓는데 한 치의 오차도 생기지 않게 그려놓은 것을 보고 감탄해요. 모든 목수들이 그의 명령대로 일을 수행하고, 그의 지시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심한 질책을 받아도 아무 말 못하고 서운한 감정도 품지 않는 것에 놀라요. 건물이 완성되자 대들보엔 오직 그의 이름만 씌여지고 함께 일한 많은 목수들의 이름은 씌여지지 않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요. 여기서 유종원은 이 재인의 역할과 임무 및 가치를 재상의 역할과 임무 및 가치에 빗대어 말해요.

  

재인이 많은 목수들을 적절히 부리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재상 역시 많은 관리들을 적절히 부리는 역할을 담당하며, 재인이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는 목수들을 질타한다면 재상 역시 제 역할을 못하는 관리들을 처벌하고 좋은 관리를 등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며, 재인이 설계도를 갖고 집을 짓는 대체를 관할한다면 재상 역시 국정에 대한 철학과 도를 가지고 국정의 대체를 관할하며, 집이 완성되었을 때 그 공이 오롯이 재인에게 돌아가듯 정치가 잘되면 그 공은 오롯이 재상에게 돌아간다고 말하죠

  

유종원은 재인전후반부에서 재인이 각각의 소임을 맡은 목수들의 일을 일일이 간여하지 않듯 재상도 그와 같아야 하며, 아울러 집 주인이 재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야 튼튼한 집이 지어지듯 군주도 재상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야 국정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는 과감한 발언을 해요. 재인전은 유종원의 정치철학을 나타낸 글이자, 당시 신진 사류들의 정치철학을 대변한 글이기도 해요.

  

사진의 한자는, 한글로 표기되어 있듯, 대목장(大木匠)이라고 읽어요. “목수는 궁전이나 사원등 큰 건물을 짓는 장인목수와 민가를 짓는 일반목수로 대별되는데 장인목수의 우두머리를 대목장이라고해요. “목수의 우두머리인 대목의 역할은 많은 장인들을 지휘 통솔하는 능력 뿐 아니라 건축과 관련된 모든 기술과 기법을 충분히 갖춘 이들만이 수행할 수있죠. 대목은 수십 년을 두고 스승으로부터 이를 물려받아 갈고 닦은이들이에요(이상 인용문, 국립문화재연구소, 대목장). 


최근 제가 사는 동네의 목수 한 분이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대목장으로 지정되었어요(경사스러운 일이죠). 사진은 이 분의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간판인데, 사진을 찍으며 문득 유종원의 재인전이 생각나 인용해 봤어요. 유종원은 재인의 역할과 재상의 역할을 견줘 이해했지만, 비단 재인만이 재상의 역할에 견줘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거예요. 오랫동안 공력을 쌓아 최고 책임자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일은 모두 재상의 역할에 견줘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유종원이 그의 글 후반부에서 강조하듯 최고책임자의 중요한 덕목은 적절한 임무와 책임성 부여이지, 간섭과 통제가 아니에요. 간혹 최고책임자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이 중요한 덕목을 망각하여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도 무형문화재 대목장 지정을 받은 저 분은 왠지 그런 최고 책임자는 아닐 듯해요. 대목장을 지정받기까지 최고 책임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좋은 성과를 냈기에 대목장 지정을 받은 것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이 낯설어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볼까요?

  

(상자 방)(도끼 근)의 합자예요. 본래, 연장을 사용하여 만든 목기(木器)란 의미였어요. 지금은 주로 물건을 만드는 장인으로 뜻으로 사용하는데, 본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장인 장.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匠人(장인), 巨匠(거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유종원은 재인전서두에서 재인이 자신의 부서진 침대 다리 하나 수리 못한다고 비꼬았는데 이는 순전한 오해였어요. 재인은 그 일을 하지 않은 것 뿐,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재인은 대목장과 같은데, 앞서 말했듯, 대목장은 여러 목수 기술을 두루 경험한 뒤에 오르는 지위이기에 그깟 침대 다리 하나 수리 못할 사람은 아니죠.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멋진 글을 위해 그렇게 서두를 설정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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