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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형태 어떤 분야의 학문을 하든, 명시적으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기초적이고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인 형이상학적 개입이 그 학문에 필요불가결함을, 샤피로는 인정하고 들어가는 듯하다 그 학자가 그렇게 개입하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something가 정확히 무엇<으로> 기술될 수 있는지, 아니면 여하간 <어떻게> 기술될 수 있는지 정도의 수준에서만, 우리가 명시적으로 말할 수 있는 형이상학과 인식론 둘 중 하나에의 가중치가 변별될 수 있다* 이상화된 수학적 대상을 무엇<으로> 식별하는 일, 가령 논리주의마냥 논리학으로, 혹은 형식주의마냥 기호들과 그 체계의 규칙으로 식별하는 일이 가망이 없다면, 직관주의자는 이상화된 <대상>에서 눈을 거둬들이고 <이상화>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샤피로가 지적하는 점은 그런 식으로 초점을 맞추는 일 자체도 형이상학적 개입이 이미 이뤄진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ㅡ그에 덧붙여, 형이상학과 인식론 양자에서 제기돠는 부담을 덜고자** 비숍식의 중립적 구성주의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여하한 수학철학적 사유도 경유하지 않은 채, 그저 일상적이고 평화롭게 이해되는 바로서의 수학 그 자체로 돌아가는 것인바, 이는 ‘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해 ‘수학은 수학이다‘라고 답하는 격이다 그리고 이는 그 질문을 그냥 무시하는 것과 진배없다 직관주의 입장에서 ˝자유선택 수열이 없어˝진 그 수학을 하겠다는 말이 이러한 무시(무시1)에 해당한다면(즉 직관주의가 이해한 <수학>을 ˝빈약하게˝ 만든다면), 고전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중간 배제[배중률]가 없˝어진 그 수학을 하겠다는 말 역시 그러한 무시(무시2)에 해당한다(즉 고전주의가 이해한 <수학>을 ˝빈약하게˝ 만든다) 샤피로가 지적하는 점은, 전자가 그러한 무시1을 용납할 수 없을진대, 후자도 그러한 무시2를 용납할 수 없는 충분한 근거가 있으며, 그 근거는 초두에 말한바 그 어떤 학문분야에 대해서도 형이상학적 개입이 상정된다는 역사적, 원리적, 철학적 현실이라는 점이다

2. 불분명하고 무심하지만 날카로운 비평적 논증의 한 사례이다 (내가 재구성한)

3. 우리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일상적인 직관을 벗어나는 수준에서라면, 존재론적으로 기운 철락자에겐 인식론적 부담이 큰 반면, 인식론적으로 기운 철학자에겐 존재론적 부담이 크다는 일반적 경향이 철학사를 통틀어 관찰된다


** 나는 언어철학에서 내포 문재와 관련하여 비슷한 스탠스를 취한 인물로 R. 몬테규를 생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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