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이론들은 의미와 지시라는 개념을 그 어떤 의미로든 정의(定義)define하고자 시도하지 않고 그저 사용할 뿐이었다. 물론 ‘통속적 이론folk theory’에 비해서,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의미에 관해 말하는 상식적인 방식에 비해서는 그 개념들이 훨씬 더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는 있다. 앞선 이론들은 통속적인 이론에서 의미 및 지시에 대응하는 개념들에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요소들을 더욱 세밀하고 명료하게 다듬어 사용한 셈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서 Newton의 중력이론은 중력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지는 않고, 다만 그 개념을 더욱 세밀하게 다듬은 뒤 질량이라든가 거리와 같은 여타 물리학적 개념들과 연관 지어서 사용한다.
의미와 지시라는 개념 내지 현상은 직관적으로 상당히 친숙하지만, 그런 만큼 외려 어떤 점에서는 약간 기이하고 불가사의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현상들인가? 소화(消化)digestion현상이나 전하(電荷)현상과 같은 종류의 것인가? 아니면 수학적인 속성 내지는 여타 모종의 非-물리적 속성을 지닌 것인가? 내가 킬리만자로산 꼭대기에 있는 돌멩이에 관해 말하기 위해 이 문장에 쓰인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그 돌멩이를 언어적으로 지시할 때, 모종의 의미-선(線)meaning-ray 내지 지시-선referential-ray이라는 것이 발생해서 나의 마음과 그 대상을 연관 지어주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인가?
Donald Davidson은 의미와 지시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 개념들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사실들을 기술하고자 시도한다. 대체로 Davidson의 문제의식은 10장에서 살펴볼 인물인 Quine의 철학에서 고무되었다고 할 수 있다. Quine은 자연주의naturalism의 한 형태를 천명한 인물로서, Frege와 Russell을 비롯하여 여타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사용된 의미 개념에 회의적이었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우리가 언어를 갖는다는 현상이 무엇인지를 의미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가정하지 않은 채로 설명해줄 수 있는 대안적인 구상을 제시하였다. 이에 Davidson은 Frege와 Russell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가정에 의존하지 않고 언어적 현상을 탐구해야 한다는 Quine의 주장에 동의한다. 또한 만일 의미에 대한 생산적인 이론화 작업이 가능하다면, 의미 개념이란 경험적으로 답해질 수 있는 것이자 제3자의 관점에서from a third-point of view 언어-사용자language-user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Quine의 자연주의적 기조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Quine이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극히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반면, Davidson은 Quine에 비해 훨씬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적어도 Davidson은 의미이론theory of meaning이 자연과학 내에서 적절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한, 만족스런 의미이론을 수립할 가망성 자체가 전무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Davidson은 우리가 의미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know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의미와 관련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기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는 의미이론이 경험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상호-주관적으로 접근 가능한 이론으로 수립될 수 있는 방법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만족스런 의미이론이 수립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실질적으로 고취하였다.
전술했듯 Davidson은 Quine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저술시기 역시 Quine보다 이후이다. 하지만 의미이론에 대한 Davidson의 긍정적인 관점은 앞 章들에서 살펴본 주류 이론들에 대해 Quine의 관점보다 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Quine의 철학을 살펴보기에 앞서 Davidson의 이론을 우선 살펴보고자 한다.
방법론
Davidson의 핵심 개념은 L에 대한 의미이론theory of meaning for L이라는 착상이다. 이는 포르투갈語와 같은 특정 자연언어 L a given natural language L에 대한 모든 의미론적 사실semantical fact들을 진술하는 하나의 이론이다. L에 대한 이상적인 의미이론은, 문장과 같은 L의 모든 유의미한 표현들에 대해 그 의미를 진술해주는 하나의 정리를 함축한다entail a theorem는 점에서, 그 표현들의 의미를 진술한다. [즉 의미이론은 L에서 형성될 수 있는 모든 개별 문장들에 대해 그 의미를 낱낱이 명시하는 게 아니라, 그 문장들의 의미를 명시해주는 정리들이 도출될 수 있는 하나의 체계인 것이다. 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L에 대한 의미이론은 유한하게 공리화finite axiomatize 된 이론이어야 한다.] 여기서 의미이론에 의해 기술되는 언어는 대상언어object language라 불리고, 의미이론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는 메타언어meta language라 불린다. 이러한 의미이론은 현실에 존재하는 포르투갈語와 같은 우연적인 언어현상을 기술하고자 하는바 분명 경험적인 이론이다. 만약 (i) 대상언어로 취해질 수 있는 그 어떤 언어 L이 되었든, L에 대한 의미이론의 모습shape 내지 형식form이 어떠한지 말할 수 있고 [즉 임의의 언어에 대한 의미이론 일반이 갖춰야 할 형식을 기술할 수 있고], (ii) 일반적으로 그런 식의 이론이 “실제 현장에서in the field” 어떻게 입증confirm될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다면, 의미 일반에 대해 철학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안들은 다 밝혀내게 되는 셈이다. 요컨대 의미에 대한 철학적 지식은 (i) 의미이론의 일반형식general form과 (ii) 의미이론의 입증방식 두 가지를 기술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의미이론의 일반형식
구성성
이러한 의미이론은 과연 어떠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우선 의미이론은 緖論에서 살펴보았던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구성적(構成的)(합성적(合成的), 조합적(調合的))compositional이어야 한다: 의미이론은 한 문장의 의미가 그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의 의미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이 왜 충족되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한 언어를 안다know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하는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한 언어 L을 알고 있는 화자(話者)speaker를 생각해보자. 너무 길거나 복잡한 문장을 일단 차치해둔다면, 화자는 L의 한 문장이 제시될 경우 그 의미를 알 것이라는 점에서 L의 모든 문장들을 이해한다understand. 그런데 문장의 길이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 너무 길어질 경우 화자는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러니 화자가 현실적으로actually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의 집합은 유한한 셈이다. 하지만 이 집합이 유한한 이유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화자의 프로그램이 유한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드웨어야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즉 어떤 문장을 화자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그 문장의 의미를 결정하는 원리를 화자가 (암묵적으로라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화자가 그 원리를 올바르게 적용하지 못할 정도로 길거나 복잡하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다소 단순한 사례를 취하여, 우리가 이해하는 임의의 단칭용어가 X에 삽입될 경우 ‘X의 아버지’의 의미를 결정하는 원리를 우리 모두 파악하고 있다 해보자. 그런데 X에 삽입되는 표현 자체가 ‘…의 아버지’의 형식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X의 아버지의 아버지’, ‘X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등과 같이 이어지는 단칭용어들을 얻게 된다. 이렇듯 어떤 장치가 자신의 산출값output을 다시 자신에 대한 입력값input으로 취할 수 있는 재귀적 작동방식reflexive behaviour은 회귀적(回歸的) 절차recursion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식으로 회귀성을 갖는 언어표현을 이용하여 가령 ‘X의 아버지는 뚱뚱하다’와 같이 임의의 길이를 갖는 문장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전술했듯 특정 지점을 넘어서 문장이 너무 길어지면, 우리는 너무 혼란스럽고 지겨워져서 그것을 해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능력이 우연히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제한되어있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긴 문장 역시 이해하게 해 줄 그러한 원리를 우리는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 언어능력의 이러한 창조성(생산성)productivity이 반영되도록 언어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의미이론 일반의 형식이 구성적이어야 한다.]
의미이론에 구성성이 요구되는 이유는 다른 방식으로도 고찰될 수 있다. 화자가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로 이뤄진 문장의 의미를 안다는 그런 의미에서 한 문장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어떤 s와 p에 대해 단지 s가 p라는 것을 의미함that s means that p을 안다는 데에 그치는 일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La neige est blanche’라는 프랑스어 문장이 눈이 하얗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그 프랑스어 문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오스語 문자들이 나열된 어떤 문장의 의미가 눈이 하얗다는 것임을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듣게 되었다 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그 라오스語 문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특정 언어의 문장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장 전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문장 전체의 의미가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의 의미에 의해 결정되고 구성되는 방식 역시 알아야 한다. 일련의 언어표현을 이해한다는 것, 즉 방금 살펴본 방식대로 문장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구성적이다.
언어학자들이 종종 사용하는 용어법에 따라 이러한 논점을 말해보자면, 의미에 대한 설명은 언어적 숙달 능력capacity for linguistic competence이 어떻게 생성적generative 혹은 생산적productive인 성격을 갖는지를 적어도 추상적인 수준에서나마 보여주어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Frege는 언어적 능력이 창조적creative 능력임을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의미이론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지녀야 한다: 첫 번째로, 대상언어에 존재하는 (유한한 수효의) 각각의 단순표현들(非-복합적인 표현들)에 의미를 할당한다assign. 두 번째로, 유의미한 표현들을 문법적으로 올바르게 결합하는 방식에 따라 복합표현의 의미를 결정하는 원리를 진술한다.
잘못된 길
이러한 지침을 따르는 도중에, 우리는 대상언어에 있는 각각의 단순표현 내지 복합표현 e에 대해 의미이론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정리를 함축해야 한다고 가정하고픈 생각이 들 것이다:
e의 의미는 …이다.
The meaning of e is ….
여기서 ‘…’의 자리는 의미이론이 목표하는 대상object을 명명하는 단칭용어 즉 표현 e의 의미를 일컫는 단칭용어로 채워질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일견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런 식의 정리를 산출하는 의미이론은 표현들에 의미를 회귀적으로 할당하는 형식을 지닐 것이다. [즉 이렇게 구상된 의미이론은 우선 구성성 요건을 충족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해보면 이러한 도식이 우리가 원하던 방식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즉시 깨닫게 된다: 각 언어표현에 할당되는 그 의미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단순하거나 복합적인 언어적 항목item들에 할당되는 그 의미란 대체 어떤 종류의 실체entity인가? Frege에 따르면 우리는 뜻과 지시를 구분할 수 있다. 언어표현을 통해 이해되는 것은 바로 Frege가 말하는 뜻이므로, Davidson 식의 의미이론은 단순하거나 복합적인 각 표현들에 뜻을 할당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작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 물어본다면 우리는 즉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Frege의 도식에서 뜻은 특별한 종류의 실체이다. 가령 ‘Theaetatus’의 뜻은 그러한 하나의 실체이다. 하지만 그 실체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해 이름 ‘Theaetatus’의 뜻을 표현한다고 간주되는 적당한 기술구로서 ‘…한 그 남자’라는 기술구를 활용하여, ‘‘Theaetatus’의 뜻은 …한 그 남자이다’라고 답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어떤 이름의 뜻이 특정 남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는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추상적 실체인 뜻이 구체적⋅물리적 실체인 한 남자와 동일할 수는 없다.] ‘Theaetatus’의 뜻을 명시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식은, 그 이름의 뜻이 그저 ‘Theaetatus’의 뜻이라 말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Theaetatus’의 뜻은 ‘Theaetatus’의 뜻이다’라는 정리를 얻는다. 이는 그저 x = x 형식을 지닌 동일성 법칙의 한 사례일 뿐, 언어표현의 뜻에 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Frege적인 접근법에 따르면 ‘Theaetatus가 날아다닌다’의 뜻은 ‘Theaetatus’의 뜻과 ‘날아다닌다’의 뜻에 의해 구성된다. 여기서 ‘구성된다’는 말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명 이러한 접근법은 그 문장의 뜻을 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그 문장을 이해하게 해주지 않기 때문에, 즉 그 문장을 어떻게 해석(解釋)interpret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문장의 의미를 구성하는 실체들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만으로는 그 문장의 의미를 아는 데에 충분하지 않다. 요컨대 의미이론은 실체들이 단순히 나열된 목록list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바, 우리는 그러한 실체들이 한데 결합되는 방식 역시 알 필요가 있다. 이는 ‘Socrates는 Platon의 스승이다’와 같은 관계문장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 문장의 의미가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표현들의 의미들로 구성된다는 게 의미이론이 말해주는 전부라면, ‘Socrates는 Platon의 스승이다’의 의미와 ‘Platon은 Socrates의 스승이다’의 의미는 구분될 수 없다.
의미를 모종의 실체로 간주하는 이러한 접근법이 무망하다는 점은 다른 고찰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일언어 화자monolingual speaker로서 프랑스어만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의 언어에 대한 명시적인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프랑스어 자체에 대해 프랑스어로 표현된 의미이론을 알아야만 한다. 그런데 그 이론이 한국어로 번역(飜譯)translate된다면 그 의미이론은 한국어 화자에게도 프랑스어에 관한 의미론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정은 프랑스어로 서술된 일반상대성이론이 한국어로 번역되더라도 일반상대성이론 자체에 관한 지식이 한국어 화자에게 온전히 전달되고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지금 고찰되고 있는 접근법에 따르면 이러한 일은 불가능하다. 프랑스어에 관해 프랑스어로 표현된 이론이 한국어로 번역될 경우, 그 이론에서는 가령 ‘‘boire’의 뜻은 ‘boire’의 뜻이다’와 같은 문장이 정리로 도출될 텐데, 이 정리는 한국어만을 사용할 줄 아는 화자에게는 프랑스어로 된 그 단어의 의미를 전혀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Davidson의 방법: T-문장
이러한 난점들을 피하기 위해 Davidson이 취하고자 하는 방식은 문장의 의미가 그 자체로 모종의 실체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음 형식의 문장
e의 의미는 이다.
의 공란을 채워줄 단칭용어를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대신 Davidson이 실제로 제안하고자 하는 방식의 첫 단계는 일단 다음과 같은 문장을 고려해보는 것이다:
s는 p라는 것을 의미한다.
s means that p.
앞 章들에 걸쳐 우리는 명사절 ‘p라는 것’이 문장 ‘p’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를 지시하는 단칭용어라고 가정한 바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식으로 가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은 …라는 것을 의미한다means that’를, 한 문장을 다른 문장과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문장을 산출하는 표현으로 [즉 일종의 문장 연결사로] 간주해볼 수 있다. 따라서 s가 논의 중인 대상언어에 속하는 문장이라면, ‘p’의 자리는 그 언어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는 메타언어 문장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러한 문장의 한 사례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식이 될 것이다:
‘La neige est blanche’는 눈이 하얗다는 것을 의미한다.
‘La neige est blanche’ means that snow is white.
지금 우리의 과업은 대상언어로 형성된 임의의 문장에 대해 그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메타언어로 말해줄 이론을 고안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위 형식의 정리를 함축하는 이론은 그러한 과업을 달성해낸다고 할 수 있는가? 결과물을 보자면 그런 것처럼 여겨지긴 하지만, 이러한 이론을 고안하려는 시도는 매우 난감한 문제에 봉착한다. 문제는 이 이론이 ‘…라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s는 p라는 것을 의미한다’가 참인 정리로 도출되었다 해보자. 여기서 p를 그와 동일한 진리치를 지닌 다른 문장 q로 대체한 ‘s는 q라는 것을 의미한다’의 진리치는 ‘s는 p라는 것을 의미한다’의 진리치와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 간단히 말해 이 문장에서 ‘s’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非-외연적이다. 앞 장에서 살펴본 용어를 활용하여 말해보자면 사실 이 맥락은 단순-내포적인 게 아니라 超-내포적이다. 이 맥락은 가령 ‘p&q’의 경우와 다르다. 여기서 q를 그와 동일한 진리치를 갖는 임의의 문장 r로 대체하더라도, 바뀐 문장 전체의 진리치는 원래의 ‘p&q’와 동일하다. 반면 ‘s는 p라는 것을 의미한다’와 같은 超-내포적 맥락의 경우에는, p와 q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경우에만 전자를 후자로 대체하여 ‘s는 q라는 것을 의미한다’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의미이론이 ‘…라는 것을 의미한다’와 같은 형식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바에야 의미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이러한 이론은 의미 개념을 선제presuppose함으로써만 의미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Davidson에 따르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라는 것을 의미한다’와 같은 非-외연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 의미이론이다. 물론 의미이론이 어쨌든 다음과 유사한 무언가를 말해줄 수는 있어야 한다:
‘La neige est blanche’는 눈이 하얗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의미이론이 산출하는 진술은, 위 문장에서 ‘눈은 하얗다’가 사용된 것처럼, 사용된used 메타언어 문장을 통해서 명명된named 대상언어 문장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단, 이것이 순전히 외연적인 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우리 작업의 논리적 성격이 명확히 이해될 수 있어야만 한다.
Davidson의 제안에 따르면 이러한 외연성 요건은 ‘…은 참이다is true’라는 술어를 사용함으로써 충족될 수 있다. 다음 문장을 보자:
‘La neige est blanche’는 눈이 하얀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La neige est blanche’ is true iff snow is white.
이러한 문장은 Alfred Tarski의 용어법에 따라 T-문장T-sentence이라 불린다. 지금 Davidson이 제안하는 논점을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의미이론은 대상언어에 있는 각각의 문장 s에 대해, 다음과 같은 형식의 T-문장
s는 p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s is true iff p.
를 정리로서 함축해야 한다. 여기서 문장 연결사 ‘…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이다’는 확실히 외연적이며, 그러므로 이 연결사에 의해 형성된 문장의 논리 및 의미는 명료하다(이 연결사는 온전한 진리표를 지니고 있다). 이에 더해 술어 ‘α는 참이다’ 역시 외연적인바, ‘s는 참이다’와 ‘s = s✻’로부터 ‘s✻는 참이다’를 올바르게 추론할 수 있다.
확실히 T-문장은 한 문장의 진리-조건을 진술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T-문장이 한 문장의 뜻 내지 의미를 진술하는 것으로도 ‘간주될be regarded’ 수 있겠는가? 어떤 문장 s에 대한 T-문장은, ‘s는 p라는 것을 의미한다’와 같이 문자 그대로 s의 의미를 말해주는가? 분명 그렇지 않다. T-문장은 그 자체로는 대상언어 문장의 의미를 기술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Davidson은 T-문장이 대상언어에 있는 각 문장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진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Davidson의 요점은 한 언어에 대한 전체로서의as a whole 진리이론theory of truth이 그 언어에 대한 전체로서의 의미이론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의미이론이 한 언어의 의미를 기술하는 작업은 의미를 언어표현 낱낱에 직접적으로 할당하는 식이 아니라 진리이론을 경유하여 총체적으로 할당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Davidson의 유명한 전체론(全體論)holism 신조이다. Davidson이 의미에 대한 전체론적 관점을 견지하는 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을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진리이론의 구조, (2) 한 언어에 대한 진리이론이 올바른지correct 여부가 알려질 수 있는can be known 방식.
의미이론의 정확한 형식
한 언어에 존재하는 적형문(適形文)well-formed sentence의 수는 무한하기 때문에 그 언어를 위한 T-문장 역시 무한하게 많을 것이다. 따라서 진리이론이 의미이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그리고 의미이론이 어떤 식으로든 알려질 수 있는 것something knowable이어야 한다면, 한 언어에 대한 진리이론은 유한한 수의 진술들 집합으로 정식화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진리이론의 한 사례로서, 오로지 원자문장들 및 그것들이 진리-함수적으로 조합된 문장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매우 단순화된 ‘모형’ 언어‘toy’ language L에 대한 진리이론을 살펴보자. 물론 우리에겐 한국어나 프랑스어 같은 자연언어가 훨씬 친숙하게 여겨지겠지만 그러한 자연언어들은 작금의 당면 목적상 엄청나게 복잡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상의 언어를 예시로 삼는 편이 Davidson의 요지를 파악하기에는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이하에서 용어 ‘S1’과 ‘S2’는 메타언어에서 [즉 진리이론을 기술하는 언어에서] 메타언어적 변항metalinguistic variable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한 술어가 한 대상에 대해 참true-of인 경우에만 그 대상은 그 술어를 ‘만족한다satisfy’고 말해진다.)
(Ⅰ) 구문론
언어 L은 다음 항목들로 구성된다:
(a) 이름: a, b.
(b) 술어: Fα, Rαβ.
(c) 문장 연결사: ♥, ▽.
(d) 문장: 하나의 L-술어에 있는 모든 그리스 문자를 이름으로 대체한 결과는 L의 원자문장이다. L의 모든 원자문장은 L의 문장이다. L의 문장 앞에 ‘▽’가 결합된 것 역시 L의 문장이다. L의 문장 두 개를 ‘♥’로 결합한 것 역시 L의 문장이다. 그 이외의 어떤 표현도 L의 문장이 아니다.
(Ⅱ) 의미론
(a) ‘a’의 지시체 = Socrates.
‘b’의 지시체 = Platon.
(b) 임의의 x에 대해, x는 ‘Fα’를 만족한다 iff x는 철학자이다.
임의의 x와 y에 대해, x와 y는 ‘Rαβ’를 만족한다 iff x는 y의 스승이다.
(c) L에 있는 임의의 원자문장은 참이다 iff 이름(들)의 지시체(들)가 술어를 만족한다.
(d) S1과 S2가 L에 있는 임의의 원자문장이라면:
‘▽S1’은 참이다 iff S1은 참이 아니다.
‘S1♥S2’는 참이다 iff S1은 참이거나 S2는 참이다.
이상이 모형언어 L에 관한 사항들 전부이다.1)
1) (原註) 다만 언급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여기에는 개별 표현들이 적절한 범위 내에 묶여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괄호에 대한 사안이 누락되어 있다. 또한 2항술어를 만족하는 순서쌍(順序雙)ordered pairs 개념 역시 명확히 언급되지 않았다. 이 언어에는 더 많은 수의 이름들과 술어들이 추가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진리-함수적 연결사들은 여기 주어진 두 개의 연결사에 의해 정의될 수 있기에, L에 여타 연결사들을 추가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양화사가 추가된다면 이 언어가 새로운 방식으로 복잡해지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모형언어 사례에 대한 우리 논의의 단순성 내지 간결성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제 L에 대한 진리이론이 어떻게 T-문장을 함축하는지 구체적인 예시문을 들어 살펴보자. 하나의 L-문장 ‘▽Fb’를 생각해보자. 우선 조항 (Ⅱ-d)로부터 다음을 얻는다:
(1) ‘▽Fb’는 참이다 iff ‘Fb’가 참이 아니다.
조항 (Ⅱ-c)에 의해 다음을 얻는다:
(2) ‘Fb’는 참이다 iff ‘b’의 지시체가 ‘Fα’를 만족한다.
조항 (Ⅱ-a)에 의하면 ‘b’의 지시체 = Platon이므로, (2)로부터 다음을 얻는다:
(3) ‘Fb’는 참이다 iff Platon은 ‘Fα’를 만족한다.
‘따라서 조항 (Ⅱ-b)에 의해
(4) ‘Fb’는 참이다 iff Platon은 철학자이다.
이는 다음과 논리적으로 동치이다:
(5) ‘Fb’는 참이 아니다 iff Platon은 철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1)과 (5)로부터 최종적으로 다음을 도출한다:
(6) ‘▽Fb’는 참이다 iff Platon은 철학자가 아니다.
(6)은 L-문장 ‘▽Fb’에 대한 T-문장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 분명 ‘▽’는 L에서 부정기호에 해당한다(그리고 ‘♥’는 포괄적 의미의 ‘또는’인 선언기호에 해당한다). 현실세계에 비추어보자면 ‘▽Fb’는 거짓 문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6)이 참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1)-(6)은 언어 L에 대한for the language L T-문장을 도출(導出)derivation하는 절차를 구성하는데, 이 도출 자체는 메타언어로 수행되고carried out 있다. 즉 우리는 L의 의미론을 진술하고 그 정리를 추론하기 위해 한국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L 자체의 문장들은 (1)-(6)의 과정에서 사용use되고 있는 게 아니라 언급mention되고 있다. L에 대한 T-문장인 (6)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특별히 주목을 끈다: (6)은 하나의 L-문장의 진리-조건을 진술한다. (6)은, 이제껏 L에 주어진 의미이론 전체와 더불어, L의 화자가 (암묵적으로) 알know 것이라 기대되는 사안을 진술하고 있다. 물론 L-화자는 한국어를 모르겠지만 (6)에서 진술되는 내용 그 자체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이는 L-화자가 한국어를 모르더라도 ‘달은 지구를 공전한다’에서 진술되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척 단순한 언어이긴 하지만 어쨌든 L 역시 무한한 수의 문장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껏 살펴본 다소 간략한 의미이론은 앞서와 똑같은 방식을 통해 L의 모든 문장에 대해 T-문장을 함축한다. L보다 훨씬 복잡한 언어의 경우 그에 대한 진리이론은 여기서 우리가 살펴본 바보다 훨씬 복잡해지겠지만, 앞서 든 예시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기본 착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하다: 진리이론은 [우선 개별 언어표현에] 의미론적 속성semantic property들을 할당하며(가령 ‘…은 …에 의해 만족된다’와 같은 [메타언어의 의미론적] 술어는 언어표현의 지시에 대한 술어라 할 수 있다[?] [즉 진리이론이 함축하는 정리는 개별 언어표현이 특정 의미론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기술한다]), “회귀적인recursive” 장치(가령 조항 (Ⅱ-c) 및 (Ⅱ-d)와 같이 반복적으로 적용가능한repeatedly applicable 수단)를 사용하여 앞서 할당된 의미론적 속성들을 토대로 각 문장에 진리-조건을 할당한다.
의미이론의 경험적 입증: 원초적 해석
앞서 설정되었던 대단히 중요한 과업 하나는 의미이론이 제3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경험적으로 적용가능empirically applicable한지를 보이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그러한 이론이 한 언어의 진리-조건에 대한 외연적 이론이어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으며, 단순화된 예시를 통해 이것이 본질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러한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고안되고 실질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지는 아직 살펴보지 않았다. 단지 약정에 의해 참이 될 뿐인 가상적인 경우를 살펴보았을 뿐이다.
이제 당신이 아직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언어를 찾아내어 조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정글 지역을 탐험하는 언어학자라고 상상해보자. 탐험 도중 드디어 당신은 이전에 학계에 확인된 바도 없고 외부로 전파된 적도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한 부족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원초적 해석자radical interpreter의 처지에 있는 당신이 수행해야 할 과업은 이 언어에 대한 올바른 Davidson적 의미이론(즉 그 언어에 대한 진리이론)을 고안하는 것이다. 당신은 이 작업에 어떻게 착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고안한 이론이 올바른지 여부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겠는가(즉 그 이론을 경험적으로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는가)?
우선 당신은 원주민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생활을 관찰할 것이다. 그 와중에도 특히나 어떤 사항들을 유심히 관찰해야 하겠는가? 원주민들이 이따금 ‘Gav-a-gai’라 말하는 것을 당신이 듣게 되었다고 해보자(이는 본디 Quine이 제시했던 가상적 사례이다). 원주민들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에 관해 그 말을 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토끼가 나타났을 때에만 그 말을 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아내게 된다. 다음번에 토끼가 총총거리며 나타나자, 당신은 원주민 한 명에게 질문하는 억양으로 ‘Gavagai?’하고 묻는다. 물론 당신은 이러한 일련의 말소리가 원주민 언어에서 어떤 개별 단어들에 대응하는지 일절 모르는 상태이다. 당신의 말을 들은 원주민이 환하게 웃으며 ‘Jai!’라 말한다. 이번에는 토끼가 없는 상황에서 먼젓번과 동일한 시도를 해본다. 원주민은 ‘Nie!’라고 말한다.
당신은 ‘Jai’가 우리말의 ‘네, 맞아요’와 같이 긍정을 나타내는 기호sign of assent이고 ‘Nie’는 부정dissent을 나타내는 기호라고 추측한다. 이 원주민 언어에 ‘Nove語’라고 이름을 붙인 뒤, 당신은 다음 문장이 Nove語에 대한 하나의 T-문장이라는 잠정적인 가설을 세워본다:
‘Gavagai’는 토끼가 나타난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Nove語-에서-참이다.
‘Gavagai’ is true-in-Nove iff a rabbit is present.
그리고 이러한 절차를 원주민들이 말하는 여타 문장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해나간다. 지금까지 당신은 문장들에 진리-조건을 직접적으로 할당해왔다. 하지만 개별 문장별로 작업해나가는 이러한 단편적인 방식으로는 Nove語 전체the whole language에 대한 의미론을 고안하는 데에 턱없이 부족하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문장-이하 수준의 개별 표현들sub-sentential expressions에 의미를 할당함으로써, 그 언어 전체에 대한 구성적인 의미론compositional semantics 즉 구성적인 진리-이론compositional truth-theory을 정식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장-이하 표현들에 대한 가설은 어떻게 정식화할 수 있을까? Nove語의 또 다른 문장을 들은 당신은 그에 대한 잠정적인 T-문장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해본다:
‘Bavagai’는 원숭이가 나타난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Nove語-에서-참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단서가 얻어진 셈이다: 확실히 ‘agai’는 ‘…가 나타났다’ 내지는 ‘…가 있다’ 정도를 의미하는 표현이고, ‘Gav’는 토끼를, 'Bav'는 원숭이를 각각 의미한다. 다른 사례를 통해 ‘Bello’를 뱀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해보자. 당신은 뱀이 나타난 상황에서 ‘Bello-agai’ 하고 말해본다. 이에 대해 원주민이 긍정의 반응을 보인다면 이는 당신이 세운 가설을 더욱 입증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러한 방식과 유사한 절차를 통해 당신은 Nove語에 대한 의미론을 점차 완성해 나간다. 어느 날 유인원에 속하는 오랑우탄 한 마리가 나타난다. 이를 본 원주민 한 명이 ‘Bavagai!’ 하고 외친다. 이 상황에서 당신에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우선 ‘Bav’가 원숭이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원숭이-또는-유인원을 의미한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겉으로만 보기에 원숭이와 유인원은 매우 유사하게 생겼으므로 이는 나름 그럴듯한 가정이다. 다음으로, ‘Bav’는 오직 원숭이만을 의미하지만 Nove語 원주민들이 오랑우탄을 원숭이라고 잘못 믿고 있다falsely believe고 가정해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선택지를 취해야 하겠는가? 두 선택지 모두 동등한 정도로 설득력을 갖는다equally plausible고 가정하자. 당신은 어떤 근거에서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작업은 어느 정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다른 사례들이 발생할 때마다, 당신은 이전의 해석을 수정revise하거나 아니면 원주민들에게 잘못된 믿음false belief을 귀속시키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즉 원초적 해석자로서의 당신은 늘상 다음과 같은 처지에 있는 셈이다: 앞서 고안된 이론과 상충하는 사례들을 마주칠 때마다 관찰자료observation를 이론과 조화시키는 방식은 언제나 하나보다 많을 것이며, 그 중 하나의 특정 방식을 취할 경우 이전에 결정했던 이론적 선택은 수정되어야 한다. Davidson에 따르면 이러한 처지에서 각 사례들을 개별적으로individually 결정할 수 있게 해 줄 하나의 일반적인 규칙이란 없다. 오히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관찰자료들이 이론 내에 조화롭게 수용될 법한 전반적인 패턴overall pattern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어떤 선택지가 그 전체 패턴과 가장 잘 부합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관찰된 변칙적 상황을 의미론적 사안 각각에 개별적으로 조화시킬 것이 아니라, 해석된 의미 전체의 패턴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취사선택이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Davidson의 그 유명한 전체론 신조로서, 의미 전체론meaning holism 혹은 의미론적 전체론semantical holism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원초적 해석자가 해야 할 과업은, 한 언어의 각 단어들 내지 각 문장들을 개별적으로 해석하여 이를 경험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증거가 최대한 전반적으로 합치best overall fit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단어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올바른가?’ 하는 물음은 엄밀히 말해 무의미한 질문이다. 단지 우리가 의미 있게 물을 수 있는 것은 한 의미이론 전체가 올바르거나 경험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지 여부일 뿐이다. 물론 일상에서든 학문적 논의에서든 우리는 특정 단어들에 대해 앞서와 같은 물음을 종종 던지기는 한다. 다만 그 물음에 대한 특정 대답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전체로서의 언어에 대한 해석이 그러한 문답이 의미 있게 성립할 수 있는 배경으로 가정되어있기 때문인 것이다.2)
2) “우리는 앞서 문장의 부분들이 그것들이 나타나는 문장의 의미에 체계적으로 기여한다는 존재론적으로 중립적인 의미에서가 아닌 한, 문장의 부분들이 의미를 갖는다고 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의미를 가정하는 것이 텅 빈 곳에 그물을 던지는 일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제 다시 그 통찰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그 통찰이 가리키는 한 가지 방향은 의미에 대한 어떤 전체론적 견해이다. 만일 문장들의 의미가 문장들 전체의 구조에 의존하고 있고, 우리가 그 구조 내의 각 항목item들의 의미를 그것이 역할을 하는 문장들의 구조 전체로부터 추출함으로써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 언어의 모든 문장(그리고 단어)의 의미를 제시함으로써만 하나의 문장(또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Frege는 단어가 문장의 맥락에서만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동일한 취지에서 그는 문장(그리고 그에 따라 단어)이 한 언어[전체]의 맥락에서만 의미를 지닌다는 말을 보탤 수도 있었을 것이다.” Donald Davidson, 「진리와 의미Truth and Meaning」, 『진리와 해석에 관한 탐구Inquiries into Truth and Interpretation』(1984): 이윤일 譯, 나남, 2011, 64-5쪽, 번역 일부 수정,
이러한 관점에는 다소 불안정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전체로서의 의미할당 패턴들은 하나의 관찰된 자료에 비추었을 때 각기 동등한 정도로 그와 부합한다는 것, 즉 각각의 패턴들이 전부 동등한 정도로 합당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 경우 우리는 각기 나름대로의 방식에 따라 경험적으로 입증되는 복수의 이론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이론들 모두 원주민의 언어를 해석하거나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이론들은 상호 일치하지 않는바 원주민의 언어와 믿음을 각기 다르게 묘사할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인식한다면, 실제로는 한 이론이 경험적으로 입증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더라도, 그와는 다른 선택지를 취함으로써도 관찰자료와 잘 부합하는 다른 이론에 도달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석의 미결정성indeterminacy of interpretation 논제이다. 본디 이는 Quine이 이와는 약간 다른 맥락에서 번역translation이 미결정적indeterminate임을 논증하면서 제시했던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Davidson이 해석의 미결정성을 자신이 취하는 접근법의 한계점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Davidson은 자신의 접근법을 통하더라도 의미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미에 관한 사실들facts about meaning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우리가 시도하는 원초적 해석을 벗어난다는 식의 그림을 거부하는 것이다. 기실 원초적 해석자의 시야를 벗어나서는 그러한 의미-사실이랄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사용자를 해석하는 한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면, 그와는 다른 해석방식 역시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자비의 원칙, 믿음과 의미의 상호의존성
지금까지 우리는 의미이론을 ‘입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한 이론이 증거와 ‘부합한다’‘fit’ to evidence 는 것이 무엇인지, 의미이론을 입증해줄 그러한 증거란 과연 무엇인지 등에 관해 다소 모호하게 말해왔다.
Davidson에 따르면 원초적 해석자가 이용할 수 있는 주된 증거란 특정 환경에서 특정 문장에 대해 원주민 화자가 나타내는(현시(顯示)하는)manifest 바로서 참이라고-간주하는 태도holding-true이다. 예를 들어 원주민 화자는 앞서 묘사된 것과 같이 한 문장을 긍정하거나 혹은 주장assert함으로써 그러한 태도를 현시한다(긍정을 현시하는 반응이 무엇인지를 해석의 시작단계에서 추측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자는 어떤 종류의 발화utterance가 한 문장에 대한 주장을 구성하는지 역시 추측해야 한다).
다소 거칠게 말해보자면, 해석자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화자가 한 문장에 대해 참이라고-간주하는 태도와 관찰가능한 환경observable circumstance 간에 성립하는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것이다. 가령 어떤 문장에 대해 참이라고-간주하는 태도와 비가 오고 있는 환경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해보자. 이때 해석자는 비가 오고 있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그 문장이 참이라고 추론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초적 해석의 증거로서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은, ‘Gavagai’라든가 지금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장과 같이, 환경에 따라 진리치가 달라지는 문장들일 것이다. 이러한 문장들은 경우문장occasion sentence이라 칭해진다. 이와 대립되는 개념인 고정문장standing sentence은 원초적 해석의 증거로서는 유용하지 않다. 가령 화강암은 나무보다 단단하므로 원주민 화자는 화강암이 나무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장에 대해 언제나 그것을 참이라고-간주할 것이다. 그 경우 우리는 그 문장을 긍정하는 성향disposition의 변화와 그 문장의 진리치 변화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일반화해보자면, 특정 문장을 참이라고-간주하는 태도는 다음과 같이 원주민 화자의 믿음과 그 문장의 의미라는 두 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산물이다(도식 9.1):
믿음 문장의 의미 | 참이라고-간주된 문장 |
도식 9.1 한 문장을 참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두 요인
예를 들어 원주민 화자가 특정 환경에서 ‘Gavagai’를 참이라고 간주하는 이유는, 그 상황에 토끼가 존재한다고 화자가 믿기 때문[(믿음 요인)]인 동시에 ‘Gavagai’는 토끼가 나타난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기 때문[(문장의 의미(즉 진리-조건) 요인)]이다. 물론 어떤 경우엔 원주민 화자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음으로 인해 거짓인 사안에 대해 참이라고-간주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Davidson이 칭한바 믿음과 의미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 of belief and meaning이다. 여기서 믿음 개념은 참이라고-간주하는 태도와 실제로 참인 것 간에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담당한다. p라는 것이 실제로는 거짓임에도, 특정 주체에 의해 참이라고-간주된 어떤 문장이 p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주체에게 p라는 거짓 믿음을 귀속시킴으로써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들 것이다: 이런 식으로 거짓 믿음을 귀속시킴으로써 화자의 말을 해석하는 일이 매번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우리는 원주민 화자가 다음과 같이 토끼에 대해 언제나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Gavagai’를 관찰자료와 일관되게 해석할 수도 있었다: 가령 원주민 화자들은 토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토끼가 나타났다고 믿고 있을 수 있으며, 그 경우 우리는 ‘Gavagai’를 ‘토끼가 나타나지 않았다’로 해석해야 한다. 또는 ‘Gavagai’를 달이 불타고 있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라고 해석한 뒤, 원주민들은 토끼가 나타난 경우에만 달이 불탄다고 믿는다는 식으로 가정할 수도 있다. 물론 매우 기이하고 그럴듯하지 않은 가설들이긴 하지만, 대체 무엇이 이러한 가설을 원리적으로 배제할 수 있게 해주는가?
이러한 가능성들을 배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우리가 보기에 다소 기이한 가설들이 도입될 경우 그 어떤 의미이론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는 다르게 말하자면, 그러한 기이한 가설이 일단 허용될 경우, 그 어떤 의미이론이나 해석도식이 되었든 모든 증거와 부합하게끔 고안될 수 있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해석 작업을 시작하고 이를 적절히 [즉 받아들여질 만한 것으로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비가 오는지 여부라든가 토끼가 나타났는지 여부와 같이 상대적으로 명백한 사안에 대해 원주민 화자들이 대체로 올바른 믿음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라. 아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동등한 빈도로 말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면, 아이는 단어들의 의미를 전혀 추측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말해지는 것과 아이가 관찰할 수 있는 사안들 간에 그 어떤 관찰가능한 상관관계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Davidson의 유명한 자비의 원칙principle of charity이다. 화자가 주변 환경에 대해 대체로 참인 믿음들을 갖는다고 가정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언어도 해석되고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해석의 대상이 되는 화자에게 너무 많은 거짓 믿음을 귀속시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화자가 상당히 많은 양의 거짓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쨌든 화자의 말을 해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화자가 대체로 참인 믿음들을 갖는다는 가정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3) 따라서 해석의 대상이 되는 주체가 대부분 참인 믿음을 갖는다고 가정하는 것은 해석을 위한 방법론적인 의무methodological imperative이다. 다른 생명체creature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생명체에게 대체로 참인 믿음들을 귀속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과 우리가 대단히 많은 점에서 일치할 것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Davidson의 이러한 자비의 원칙을 7章, ‘함의’ 節에서 살펴본 Grice의 협조준칙들과 비교해보라.)
3) “타인의 발언이나 행위를 이해하는 일은, 심지어 가장 일탈적이고 기이한 행위라 할지라도, 그들에게서 대단히 많은 이성과 진리를 찾아내도록 요구한다. 타인을 너무 지나치게 비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그들이 무엇에 관해 그렇게 비합리적인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든다.” D. Davidson, 「믿음과 의미의 기초Belief and the Basis of Meaning」, 같은 책: 이윤일 譯, 같은 책, 253쪽, 번역 일부 수정,
이에서 더 나아가 Davidson은 언어를 사용하는 그 어떤 생명체도 체계적으로 틀릴systematically wrong 수 없다는 더욱 급진적인 형이상학적 결론을 제시하기에 이른다(따라서 우리가 가진 믿음들은 대부분 참이며, 이에 따라 회의주의는 논박되는 셈이다!).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으로서 전지적(全知的)인 해석자omniscient interpreter OI라는 존재를 생각해보자. OI는 그 어떤 생명체든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OI는 전지적이지 않은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OI가 지닌 믿음들은 모두 참이고, Davidson에 따르면 해석에는 자비의 원칙이 요구되기 때문에, OI는 해석되는 주체에게 대체로 참인 믿음들을 귀속시켜야 한다. OI는 전지적이므로 이 과정에서 틀릴 수 없다. 따라서 해석되는 주체의 믿음들은 대체로 참이다.
이 논증은 많은 도전을 받아왔다. 한 가지 떠올릴 법한 비판은, 전지적인 존재로서의 OI는 해석되는 주체가 지닌 믿음들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OI가 자비의 원칙에 의존해야 할 필요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해석되는 주체의 믿음들을 OI가 미리 알고 있지는 않다고 가정해보자. 말하자면 OI는 통상적인 해석자들이 알 법한 공적으로 관찰가능한 사실들만을 알고 있다. Davidson의 주장대로 해석을 위해 자비의 원칙에 따른 해석자와 被해석자 간의 일치가 요구된다면, 이 경우 OI는 그 주체를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 사항
Donald Davidson은 자신의 지적 자서전에서 강조하길, 의미란 무엇이 되었든 간에 공적인 것something public이어야 한다는 생각, 즉 원리적으로 해석자 내지 언어를 배우는 아이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일찍이 큰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가 이 주제에 관해 깊이 숙고한 뒤 1965년에 「의미이론과 학습 가능한 언어Theories of Meaning and Learnable Language」(Davidson 1984[『진리와 해석에 관한 탐구Inquiries into Truth and Interpretation』]에 수록) 및 1967년에 「진리와 의미Truth and Meaning」(‘주요 읽을거리’ 참조)를 각각 발표하고 나자, 그에 관한 문헌들이 잇따라 대거 쏟아져 나오면서 많은 파문을 일으켰고, 그의 관점을 적용 및 수정하려는 다양한 시도 역시 이뤄졌다. 머지않아 그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그의 관점을 논평했던 유명한 인물들로는 Richard Rorty(1931-2007), Tyler Burge, John McDowell, Ernie Lepore 등이 있다.
언어에 관한 Davidson의 이론은 실질적으로 엄청나게 풍부한 결실을 가져왔다. 그의 이론으로부터 고무된 많은 철학자들 및 언어학자들은 매우 다루기 힘든 골칫거리였던 부사, 서술적 형용사predicative adjective, 지표사 및 지시사, 시제(時制)tense, 서법(敍法)mood, 인과(因果)진술causal statement, 명제적 태도 등의 언어요소들을 Davidson적인 진리-조건이론을 통해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Davidson 자신 역시 저술활동 초기에 이러한 주제들에 천착하였다). 또한 Davidson은 [心身문제mind-body problem와 관련하여] ‘무법칙적 일원론anomalist monism’으로 알려진 관점을 발전시키면서 심리철학 분야에서도 매우 중요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신상태에 대한 기술mental description은 물리적 기술physical description로 환원되지 않지만not reducible, 그럼에도 양자는 동일한 (물리적) 대상을 기술한다.
후기의 저서들에서 Davidson은 의미이론에 대해 이전보다는 덜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사용하는 언어가 미묘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는 언어는 항시 변하기 마련이며, 우리는 때때로 (말장난malaprophism을 의도하면서) “잘못 말하는mis-speak”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의미이론’이라는 형식적인 대상들은 단지 이상화된 것일 수밖에 없으며, “여러 이론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각 이론들은 일정 시점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Davidson은 단호한 어조로 말하길, 언어가 자신의 의미이론의 진정한 주제라면 “언어라 할 만한 그러한 것은 기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번 章의 요약
Davidson은 의미 현상에 접근하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요구조건을 내세운다: 특정 언어 L에 대한 의미이론은 L의 각 문장에 대해, 그 문장의 의미를 어떤 측면에서 진술하거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정리를 함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론이 경험적으로 입증되는 방식을 설명해내야 한다. 이러한 의미이론의 일반적인 형식(특정 언어 L의 세부사항과는 무관한 의미이론 일반의 형식)을 성공적으로 기술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의미 역시 일반적으로 기술해내는 셈이다. 한 언어에서 구성될 수 있는 문장의 범위는 잠재적으로 무한하기 때문에, 의미이론은 구성적이어야 한다.
Davidson에 따르면 의미이론은 단순히 각 언어표현에 대해 Frege적인 뜻과 같은 모종의 실체를 할당하는 형식을 취할 수는 없다. 이러한 도식은 불가피하게 非-정보적uninformative일 뿐만 아니라 목록 문제list problem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식을 거부한 뒤 Davidson은 우선 한 언어에 대한 의미이론이 그 언어의 모든 문장 s에 대해 ‘s는 p라는 것을 의미한다’ 형식의 참인 진술을 도출하는 이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검토해본다. 이 착상의 문제점은 그러한 진술이 超-내포적이라는 데에 있다. 그 진술에는 [超-내포적 맥락을 조성하는] ‘…라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용어가 포함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런 식의 문장은 우리가 기도한바 의미를 순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명해내고자 하는 이론[즉 의미 개념에 의존하지 않은 채 의미를 설명하는 이론]에서는 사용될 수 없다. 이러한 고찰을 거친 뒤 Davidson은 진리이론이 의미이론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착상을 제안한다. 진리이론의 목표는 ‘s는 p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형식의 ‘T-문장’을 산출하는 것으로서, 이 T-문장 형식에서 s는 임의의 대상언어 문장이고 p는 메타언어 문장이다. 일찍이 Tarski는 단순 단칭용어에 대한 지시-할당referential-assignment 및 단순 술어에 대한 만족-조건satisfaction-condition 등과 같은 유한한 토대로부터 무한한 T-문장을 산출하는 의미론적 진리이론을 구성함으로써, Davidson이 구상한 형식의 진리이론이 어떻게 고안될 수 있는지 보여준 바 있다.
유념할 사항은, 참인 T-문장들이 대상언어 문장들 각각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개별적으로 기술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기보다, 한 언어의 문장들이 지닌 의미와 관련하여 기술되어야 할 모든 사안을 전달해주는 것은, 그 언어에 대한 모든 참인 T-문장들 그리고 오로지 참인 T-문장들만을 산출하는 전체로서의 진리이론이다. 요컨대 의미이론은 원자적atomic인 것이 아니라 전체론적homistic이다.
이런 형식을 갖는 의미이론이 실질적으로 입증되는 방식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전적으로 처음 접하는 언어에 대한 의미이론이 어떻게 고안되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Davidson적인 원초적 해석Davidsonian radical interpretation으로서, 이러한 작업은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토대하고 있는 바를 명료하게 드러내 줄 것이다. 우선 해석자가 작업을 시작해야 할 적절한 지점을 제공하는 것은 ‘나무는 탈[燃燒]burn 수 있다’와 같은 고정문장이 아니라 ‘비가 오고 있다’와 같은 경우문장이다. 해석자는 원어민 화자의 언어적 행동[즉 특정 환경에서 특정 경우문장을 발화하는 것]을 근거로 삼아 ‘‘Gavagai’는 토끼가 나타난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Nove語-에서-참이다’와 같은 가설적인 T-문장을 정립해볼 수 있다. 이러한 가설은 원주민 화자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언어행동을 계속 관찰함에 따라 여타 가설들과 더불어 점차 입증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장들을 그 이하 단위의 언어표현들로 분석하여 그 각각에 지시조건 및 만족조건을 할당함으로써 또 다른 T-문장이 산출될 것이며, 이 역시 차후의 관찰에 따라 입증될 것이다. 이러한 절차는 온전한 의미이론이 구성될 때까지 계속된다.
토끼가 나타난 상황에서 원주민 화자가 ‘Gavagai’에 대해 긍정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이 경우 우리가 추정해봄 직한 사안은, ‘Gavagai’는 토끼가 나타난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라는 것, 그리고 원주민 화자는 토끼가 나타났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Gavagai’는 특정 상황 하에서 원주민 화자에 의해 참이라고-간주되며, ‘Gavagai’는 그 상황 하에서 참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의 과정에서 언어의 진리-조건과 언어-사용자의 믿음 간의 합리적인 상관관계를] 추정하는 것을 Davidson의 자비의 원칙이라 한다. 이러한 가정이 없으면 해석은 전연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식의 원칙에 따르는 게 언제나 옳은 해석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거짓인 문장을 실수로 참이라고 간주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자이기 때문에, 해석에서는 이러한 실수가 허용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토끼가 없는데도 이따금 원주민 화자가 ‘Gavagai’에 대해 참이라고-견지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 경우에도 우리는 그것이 ‘토끼가 나타났다’를 의미한다는 이전의 해석을 여전히 고수할 수 있다. [화자가 토끼가 나타났다고 잘못 믿고 있거나 토끼가 아닌 무언가를 토끼로 착각하고 있다는 식으로 화자에게 거짓 믿음을 귀속시킴으로써, 우리가 해석해낸 의미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는 제한적으로만 취할 수 있는 선택지이다. 만약 그러한 경우가 너무 자주 발생한다면, 화자에게 거짓 믿음을 귀속시킴으로써 우리의 해석을 고수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러한 경우엔 [언어-사용자가 지닌 믿음의 합리성을 대체로 우리와 비슷하게끔 유지시킨 채] 우리의 해석을 수정해야 한다. 믿음과 의미는 이런 식으로 상호침투interpenetration한다.
탐구문제
1. 대개 토착민 부족들은 우리가 보기에 황당무계한 것들을 믿지만, 그들 역시 언어를 사용하며 우리는 그 언어를 충분히 조사 및 연구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被해석자에게 대체로 참인 믿음을 귀속시켜야 한다는 자비의 원칙과 긴장을 일으키지는 않는가? 자비의 원칙을 가령 다음과 같은 식으로 좀 더 세심하게 다듬는다면 이 사실과 더 잘 부합할 수 있겠는가?: 직접 당면한 환경 하에서 명백한 사안what is evident in the immediate environment에 대해서는 被해석자가 대체로 참인 믿음을 갖는다고 가정하라.
2. 만약 우리가 항상 참인 믿음만을 갖고 거짓인 믿음을 일절 갖지 않는다면, 분명 Davidson은 자신의 이론에 믿음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에 따라 그의 이론 내에서 사용되는 ‘…은 참이라고 간주된다is held true’는 표현은 단순히 ‘…은 참이다is true’로 대체될 것이다. 그 경우 도대체 믿음이란 것은 오로지 거짓 믿음이 존재할 경우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는 과연 합당한가?
5. 전체론은 한 언어에 존재하는 모든 표현들이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그렇다면 특정 의미를 지닌 단 하나의 문장만으로 이루어진 언어란 불가능한가?
6. 전체론은 한 언어에 존재하는 모든 표현들이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따라서 한 언어에 존재하는 모든 표현들의 의미를 배우지 않은 채 개별 표현의 의미를 배우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경우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 돼버린다. 우리는 한 언어 전체를 단번에 학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체론은 거짓이다. 이에 대해 전체론의 옹호자는 어떻게 답할 수 있곘는가?
7. Davidson은 다음과 같은 반론에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우선 다음 문장을 보자: ‘‘Gavagai’는 토끼가 나타난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며, 모든 캥거루는 캥거루이다.’ 이 진술은‘‘Gavagai’는 토끼가 나타난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와 정확히 동일한 진리-조건을 ‘Gavagai’에 할당한다. 따라서 Davidson의 입장에서 보자면 두 진술의 의미는 동일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 받아들여질 수 없다.
주요 읽을거리
우선 가장 중요한 문헌을 꼽자면 「진리와 의미Truth and Meaning」 및 「원초적 해석Radical Interpretation」이다. 두 글 모두 Davidson의 『진리와 해석에 관한 탐구Inquiries into Truth and Interpretation』(1984) 및 『Davidson 選集The Essential Davidson』(2006)에 실려 있다. 두 단행본 중 전자에는 「믿음과 의미의 토대Belief and the Basis of Meaning」, 「Foster에 대한 답변Reply to Foster」, 「지시 없는 실재Reality Without Reference」, 「지시 불가해성(不可解性)The Inscrutability of Reference」 등 언어철학적인 글들이 다수 실려 있으며, 후자에는 「비문(碑文)의 미묘한 혼란A Nice Derangrment of Epitaphs」이 실려 있다. 「…라고 말하는 것에 관하여On Saying That」와 「은유가 의미하는 것What Metaphors Mean」은 두 단헹본 모두에 실려 있다.
추가적인 읽을거리
Evnine, S. (1991), 『Donald Davidson』.
Malpas, J. 「Donald Davidson」,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