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화용론

 

철학자들은 사실을 진술(陳述)하는 것stating of fact 내지 기술적(記述的) 정보descriptive information를 전달하는 것만이 언어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언어에는 진술하기나 기술하기 이외에도 질문하기, 명령하기, 예측하기, 인사하기, 농담하기, 이야기하기story-telling 등등 많은 활동들이 있으며, 그것들 중 참이나 거짓이라고 적절하게 가려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언어의 이러한 영역들은 과거에 상대적으로 덜 탐구되어왔다. 하지만 지난 50년 동안 John Langshaw Austin, Herbert Paul Grice, John Rogers Searle 등을 위시한 일군의 철학자들은 이렇듯 다양한 언어활동들의 목적을 기술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고안해왔다. 後期 Wittgenstein이 언어의 실천적인practical 차원, 즉 특정 목적purpose을 위한 언어의 사용use에 주목한 것에 고무되어 이러한 철학자들이 모색하고 발전시킨 기본 체계들은 매우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지난 40여년간 언어철학 및 이론언어학 분야에서 학문적 주류에 대한 시금석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번 에서는 이러한 이론들의 초기 형태 및 그 이론적 동기를 탐구하고 몇몇 적용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서법과 효력에 대한 再考

 

緖論에서 우리는 의미효력force을 구분한 바 있다. 전자는 의미론과 연관되는 반면 후자는 대체로 화용론(話用論)pragmatics과 연관된다. 7.1에 있는 문장들은 동일한 명제를 표현하지만, 그 명제에 각기 다른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보통 사용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문법적인 차이는 서법(敍法)mood의 차이이다.

 

7.1 서법과 효력

문장

 

서법

 

해당 서법에 의해

주로 표현되는 효력

이러한 맥락에서

보통 말해지는 명제(내용)

너는 회를 먹는다.

 

직설법/서술법

Indicative/Declarative

주장

Assertion

네가 회를 먹는다는 것

That you are going to eat raw fish

너 회 먹어?

 

의문법

Interrogative

질문

Question

회 먹어라.

 

명령법

Imperative

명령

Qommand

영어에서 명령의 주체 및 의도된 청중은 대체로 암묵적이다.

 

효력이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심리적 사안인 것처럼 여겨진다. 가령 보통의 경우 우리는 스스로 의도한intend 경우에만 무언가를 질문하거나 주장한다. 반면 서법은 명백히 규약적인 사안이다. 가령 의문법 문장을 사용하는 것은 화자가 청자에게 질문하고 있음을, 다시 말해 한 명제에 의문적 효력을 부여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규약이 존재한다. 가령 영어에서 의문법은 대체로 주어와 동사의 순서가 도치됨으로써 표현된다.

하지만 서법과 효력의 관계는 다소 유동적이기도 하다. 즉 특정 효력을 나타내는 데에 단 하나의 서법만이 결부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서법의 문장을 단지 발화한다고 해서, 그 서법에 의해 대체로 전달된다고 여겨지는 효력을 그 문장에 결부시켜 표현하는 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회 먹어라라는 문장을 발화하면서도 아무것도 진지하게 명령하거나 권하거나 제안하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법은 효력에 대한 필요조건도 아니다. 가령 직설법 문장의 말미를 어조나 억양을 높이면서 발화함으로써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이 역시 언어적 규약에 속하는 사안이다. 영어를 예로 들자면 문장 끝에서 목소리를 올리는 식으로 ‘You are going to eat raw fish’를 말할 경우, 화자가 무언가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질문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규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음성으로 이뤄지는 발화가 아니라 문장으로 표기되는 경우엔 ‘You are going to eat raw fish?’와 같이 직설법 문장에 물음표를 붙임으로써 의문적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

 

 

화행론

 

그런데 효력이 표현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당신이 회를 먹는지 여부를 묻는다.

I ask you that you are going to eat raw fish.

나는 당신이 회를 먹는다고 주장한다I assert that.

나는 당신이 회를 먹을 것을 명령한다I command that.

 

앞 절에서 살펴본 식으로 서법에 따라 통상적으로 효력을 표현하는 다소 복잡한 언어적 규약을 이용하는 대신, 서법들 간의 구분을 아예 폐기해버리고 위와 같은 식으로 나는 인지 여부를 묻는다’, ‘나는 라고 주장한다’, ‘나는 할 것을 명한다와 같은 일군의 연산자operator를 도입하여 효력을 표현할 수도 있다.

J. L. Austin은 유명한 논문 수행적(遂行的) 발화Performative Utterances(1961)에서 영어에 이런 형태의 표현들이 있다는 데에 주목하였으며, 이런 문장들의 문법적 구조가 철학자들을 오도(誤導)하기mislead 쉽다고 지적하였다. 첫 번째 문장인 나는 당신이 회를 먹는지 여부를 묻는다를 생각해보자. 표면적으로는, 이 문장의 발화가 어쨌든 실제로는 무언가를 주장하고 있다고, 청자가 회를 먹는지 여부를 화자가 묻고 있다는 것을 화자 스스로가 주장하는 발화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Austin은 이러한 생각이 사태를 혼동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라는 표현의 목적은 화자 자신을 기술하는 것to describe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 회를 먹는지 여부를 묻는다고 말하는 화자는 스스로를 기술하고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 말의 목적이 진정 화자 자신에 대한 기술이었다면, 화자는 그저 스스로를 잘못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화자는 자신이 무언가를 묻고 있다고 기술하였으나, 화자는 무언가를 묻고 있는 게 아니라 기술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자가 기술한 바는 자동적으로 거짓이 되어버린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전혀 아니다.] 만약 청자가 농담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네! 너 지금 묻고 있는 게 아니네!’ 하고 반응할 것이다. 분명 이러한 발화의 목적은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이후에 나오는 단어들에 의해 표현되는 내용에 관해 화자가 묻고 있다는 효력을 유발하는bring about 이다. 적절한 조건 하에서 이러한 발화가 이뤄질 경우 무언가를 묻는다는 행위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러한 고찰에 따라 Austin, 말함으로써in saying 모종의 행위(行爲)act가 수행되는perform 특정 단어들이 있다는 착상에 이르게 된다. 그러한 행위들은 피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무언가를 기술하거나 보고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Austin의 요점은 다음과 같은 사례들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사과한다.

나는 이로써hereby 내 담배 케이스를 내 조카에게 유증(遺贈)한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이 배를 Queen Elizabeth라 명명(命名)한다.

 

Austin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발화가 이뤄지는 상황이 행위를 무효한void것으로 만들지 않는 한(가령 위 문장들이 연극 공연에서 대사로 말해진 게 아니라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말해졌다든가, 마지막 사례의 경우 화자가 배를 명명할 만한 적절한 권한이 있는 사람인 경우 등), 이러한 단어들을 발화하는 것은 [발화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곧 사과하고 유증하고 약속하고 명명하기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 문장들을 구두로 발화verbal act of uttering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report the fact하고 있는 게 아니다. 즉 그 행위를 화자의 발화행위 이외의 요소들로 구성되는 -구어적인 행위non-verbal act인 것처럼 여기면서, 그 행위가 언어적 행위와 별도로 수행되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행위들의 수행은 위 문장들에 대한 발화에 의해 전적으로 구성된다constituted. 이에 Austin나는 사과한다’, ‘나는 유증한다’, ‘나는 약속한다’, ‘나는 명령한다’, ‘나는 명명한다등과 같은 형태의 단어들을 수행적(遂行的) 동사performative verb라 칭하였다. 두 번째 사례에 나타나는 이로써hereby라는 단어는 수행적 동사가 쓰이는 수행적 발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 준다.

논문 수행문(遂行文)Performatives을 쓸 당시 Austin은 언어적 발화가 수행적인 것과 -수행적인 것(Austin은 후자를 사실 기술문constative이라 불렀다)으로 양분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모든 발화가 한편으로 (몇몇 규약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는(행위를 수행하는) 발화와, 다른 한편으로 무언가를 말하거나 진술state하거나 주장assert하는 발화로 남김없이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차이점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한가지 문제는, 진술의 고유한 특징이라 여겨져 온 진리치-평가가능성truth-evaluability이라는 속성을 갖는지 여부가, 진술과 수행문을 명확하게 구분해주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선 한편으로, 수행문 역시 사실에 직면한다confront facts”. 사태에 부합하지 않는 부당한 경고unjustified warning를 하는 경우라든가, 지키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화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약속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가령 내가 그 얼음에 손 데지 않게 조심해!’라고 경고하거나 다음 주 수요일에 5+712임을 증명해볼게라는 약속을 한다면, 청자는 이 말을 진지한 발언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농담이라 여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 진술을 참이다거짓이다라고 기술하는 것은 대부분 매우 대강의crude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Raglan 왕은 그 전투에서 승리하였다를 생각해보자. Raglan 왕이 부대의 지휘관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 전투는 병사들의 전투였으며, 이는 전투에서의 승리가 지휘관의 전략과는 무관했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진술을 참이다라든가 거짓이다라고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은 많은 사안들을 무시한 채 대략적으로만 이뤄지는 셈이다.

두 번째 문제는, 나는 주장한다, 나는 묻는다 등의 표현들이 분명 수행적 동사처럼 여겨지긴 하지만, 가령 나는 피고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라 말하는 것과 피고는 결백합니다라 말하는 것은, 피고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역할을 동등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문 닫아!’나는 당신에게 문을 닫을 것을 명령합니다는 문을 닫으라고 명령하는 역할을 동일하게 수행한다. 이럴진대 행위하기doing와 말하기saying를 굳이 구분해야 할 근거가 있겠는가? 이러한 고찰은 말하기가 행위하기로부터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실 말하기 역시, 다소 특별한 종류의 행위이긴 하지만, 어쨌든 일종의 행위이다. 게다가 넓게 보아 진술하기로 분류되는 행위 자체에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말하기, 상기시키기reminding, 얘기하기telling, 통지하기informing, 기술하기, 비판하기, 주의를 환기하기alerting 등등. 이를 감안하건대 수행문/-수행문 간의 경계선은 더욱 흐려진다.

일련의 비판적 고찰에 따라 Austin은 새로운 이론을 고안하기에 이른다. 이 이론은 매우 유명해지게 되어 그가 칭한바 화행(話行)speech-act이라는 현상을 다루는 분야에서 거의 표준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표준적인 화행은 세 가지 주요 하위-행위sub-actions로서 발화행위locutionary act, 발화수반(隨伴)행위(발화--행위)illocutionary act, 발화효과행위(발화성취행위)perlocutionary act 등으로 구성된다(네 번째로 특성 음소(音素)phoneme를 발화하는 조음행위phonic act가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이를 다루지 않는다). 앞서 들었던 회를 먹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 사례에 이 도식을 적용해보면 다음의 7.2와 같다:

 

7.2 화행에 따른 효력 구분

화행

정의

효력

발화행위

 

내용(인지적/표현적 의미)을 표현하는 행위

 

의도된 청자가 회를 먹는다는 명제를 표현하기

발화수반행위

 

 

말함으로써in speaking 수행되는 행위

(특히 효력을 표현하며, 이는 발화수반적 효력illocutionary force이라고도 칭해진다)

표현된 명제가 참인지 여부를 질문하기

 

발화효과행위

 

화자의 발화수반행위에 의해 수행됨으로써 청자에게 효과가 가해지는 행위

일례로, 청자로 하여금 자신이 회를 먹는지 여부를 답하도록 하기


이 도식은 화행론speech-act theory의 핵심 체계로서 Austin에 의해 처음 고안되고 차후 J. R. Searle에 의해 수정 및 발전되었다(Frege는 한 주장이 한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양자에 공통되는 내용common content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AustinSearle은 이러한 착상을 여타 서법들까지 포함하도록 확장한 셈이다). 너 회 먹어?라고 질문하는 사례를 취해보자. 우선 화자는 네가 회를 먹는다는 명제 내지 내용을 표현하는 발화행위를 수행한다. 이 경우 화자는 의문법 형식의 문장을 발화함으로써 그 명제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Austin은 이를 온전한 표준적인 뜻으로in the full normal sense 무언가를 말하는’” 행위라 칭하였다). 이 때 청자가 화자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있다는 등과 같이 발화가 이뤄지는 상황이 적절하고 정상적이라면, 화자는 그 발화행위를 통해 회를 먹는지 여부를 청자에게 묻는 발화수반행위를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발화효과행위는 청자의 반응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발화효과행위가 성공적이라면, 이는 자신이 회를 먹는지 여부를 청자로 하여금 답하게끔 하거나 그와 유사한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의미론은 발화행위와 관련되는바, 각종 언어표현들을 그 의미에 따라 분류하고 다양한 유형의 언어표현들이 갖는 의미를 기술한다. 발화행위는 명제를 표현하는 온전한 문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우리 언어에는 아야!’가 화자의 신체 일부의 고통을 표현한다는 규약이 존재한다. 다만 이 경우 표현되는 의미란 -명제적인non-propositional 것으로서, 인지적cognitive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표현적expressive이다. 그러한 의미는 화자의 상태를 표현하되 무언가를 기술하지는 않는다. ‘아이고!’, ‘제기랄!’ 등의 어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표현들은, 고양이가 꼬리를 밟혔을 때 내는 소리 마냥 고통이나 어떤 문제로 인해 야기되는caused 단순한 소음noise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당신이 실수로 외국인의 발을 밟아 그 사람이 ‘Ouch!’ 하고 말한다면 당신은 즉각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아야!’[자동적으로 나오는 무의미한 소리라기보다는] 고통을 표현한다는 것 역시 하나의 언어적 규약이다.

반면 화용론은 우선적으로 발화수반행위와 관련된다(종종 화행이라는 용어는 사실상 발화수반행위로만 제한되곤 한다). Austin에 따르면 발화수반행위는 대체로 규약적이다. 즉 적절한 종류의 발화수반행위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특정 규칙rule 내지 표준standard이 존재한다. 발화수반행위의 시도가 실패하는 경우란 대체로, 그 행위가 달성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선제(先題)presupposition가 애초에 성립되어있지 않았던 경우이다. 예를 들면 일전에 부과된 과태료가 행정착오로 잘못 부과되었던 것이라 이미 취하되었는데도, 이 사실을 모르는 당신이 과태료를 납부하려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선제 개념에 대해서는 잠시 뒤 살펴볼 것이다). 그러한 경우 당신이 책임을 지려 하는 상황 자체가 결함이 있음에 따라, 그 상황에 책임을 진다는 당신의 행위 역시 애초에 수행되지 못한다. 반면, 발화수반행위가 일단 성공적으로 달성된 경우, 어떤 주장의 거짓됨이라는 속성은 Austin이 말한바 다양한 종류의 부적절성infelicity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진실되지 못한 주장이라든가 약속, 고의로 하는 거짓 경고 등과 같이 다양한 양태의 부적절한 발화수반행위들이 존재한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경우에는 화자가 발화수반행위를 의도하지mean않았다고 해서, 즉 여차여차한 행위를 할 의도intention가 화자에게 없었다고 해서, 화자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가령 사과할게라고 말함으로써 사과를 하는 것은 인사를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내심 상대방을 그다지 반기거나 존중하지 않더라도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 어쨌든 형식적으로나마 인사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미안한 마음이 없으면서도 일반적으로 사과의 표시로 간주되는 발화행위를 하는 것은, 어쨌든 사과하기라는 발화수반행위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발화수반행위에는 앞서 언급한 기본적인 것들 외에도 매우 다양한 것들이 있다. 우리는 발화행위를 통해 꾸짖기, 기술하기, 경고하기, 주문하기, 요청하기, 비판하기, 견책하기, 환영하기, 책망하기, 칭찬하기, 인사하기, 질책하기, 청원하기, 나무라기 등등 실로 다양한 발화수반행위들을 수행한다(이들 중 일부 유형은 여타 것들을 하위 유형으로 포섭할 수도 있다).

발화효과행위에 대한 연구는 언어적 규약을 탐구한다기보다는 실제로 발생하는 언어적 사건들에서 발견되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특징들을 탐구한다고 할 수 있다. 발화수반행위에 의해 수행되는 발화효과행위는 청자에게 가해지는 특정 효과를 수반한다. 그렇기에 발화효과행위는 타동사transitive verb를 활용하여 기술될 수 있어야 하며, 이때 동사의 주어는 화자이고 목적어는 청자이다. 예를 들어 그렇게 말함으로써 Patton 장군은 부대원들의 사기를 고취하였다는 하나의 발화효과행위를 기술하는 문장이다. 이외에도 화자는 발화수반행위를 통해 청자를 화나게 하거나, 설득하거나, 청자의 관심을 끌거나, 놀래키거나, 지루하게 만드는 등 실로 다양한 효과를 청자에게 야기할 수 있다. 여기서 이로써라는 단어에 다시 주목해볼 수 있다. ‘이로써 나는 당신에게 문을 닫으라고 명령한다이로써가 올바르게 사용된 경우인 반면, ‘이로써 나는 당신이 문을 닫도록 설득하였다는 잘못 사용된 경우이다. [전자에서 명령하기라는 발화수반행위는 청자의 발화행위를 통해 충분히 성공적으로 달성되는바, ‘이로써라는 말에 의해 즉 나의 발화행위를 통해라는 말에 의해 나타내어질 수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설득되기라는 발화수반행위가 성공적으로 달성되는지 여부는 화자의 발화행위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청자가 실제로 설득되었는지에 따라 최종적으로 결정되는바, ‘이로써라는 말로 나타내어질 수 없다.] 발화효과행위는 반드시 의도적intentional일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화자가 행한 things that the speaker did으로 기술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Patton 장군이 자신의 발화를 통해 부대원들의 사기를 고취하고자 의도했더라도, 도리어 부대원들이 위축되는 결과가 야기될 수도 있다. 그 경우 부대원들을 위축시키기라는 발화효과행위는, 의도적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어쨌든 Patton 장군이 자신의 발화를 통해 행한 일이다.

발화효과행위에도 특정한 한계점이나 범위는 없다. 다만 발화효과행위는 발화수반행위와 달리 일반적으로 규약에 지배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발화효과행위는 언어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말하기란 명백히 의도적인 활동intentional activity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되는대로 지껄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특정한 이유에 따라, 즉 우리가 말을 건네는 상대방에게 어떤 효과를 가하기 위해 말을 한다. 의도했던 바와는 다른 발화효과행위가 야기되거나 혹은 아무런 효과가 야기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어쨌든 발화효과행위는 보통 우리가 말할 때 최종적으로 겨냥하는 목표인 셈이다.

 

 

함의

 

정보전달conveying information은 의미론적인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어떤 경우, 발화에 명시적으로 부호화encoded되지는 않은 정보가 그 발화에 의해 의도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전달되는 정보란 엄밀히 말하면 발화와 연관된 의미론적인 사안에 속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Grice가 제시한 유명한 사례를 들어보자. Jones의 부모님이 아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의 교장선생인 Smith 씨에게 Jones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Smith는 답하길 글쎄요, 그 애가 퇴학을 당하진 않았지요하고 말한다. 이 대답에 자연스럽게 Jones 부부는 아들의 생활태도가 나쁘다는 메시지를 Smith 씨가 의도했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Smith 교장은 그러한 내용을 말하지 않았으며, 그의 말은 그러한 내용을 논리적으로 함축logically entail하지도 않는다. 교장의 말이 참이면서도 Jones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상상가능conceivable하기[즉 선험적논리적으로 배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Smith 교장은 자신의 발화를 통해 Jones의 학교생활이 불량하다는 메시지를 분명 성공적으로 전달하였다. 그러니 Jones 부부가 아들의 학교생활이 방정치 못하다고 결론 내린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추론은 아니더라도 어떤 다른 의미에서는] 올바른 추론이었던 셈이다.

Grice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대화적 함의(含意)(암시함축)conversational implicature 내지는 축약하여 함의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Smith 교장의 진술은 Jones의 학교생활이 불량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함축하지는 않지만] 대화적으로 함의한다implicate. 함의 개념을 일반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진술 P는 다음의 경우 명제 Q함의한다
: PQ를 논리적으로 함축하지는 않지만, 대화의 맥락상 충분한 정보를 갖춘well-informed 능숙한competent 청자1)라면 화자가 Q를 전달하려 의도한다고 여기는 경우.

1) 원문에는 ‘speaker’로 되어 있으나 착오인 듯하다.


Austin의 화행론적 용어를 활용하여 말하자면, Grice식의 함의란 일종의 의도된 발화효과적 효력intended perlocutionary force이라 할 수 있다.

주의할 사항이 있다. 전술하였듯이 설사 Jones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더라도 Smith의 말은 적어도 참일 수 있으며, 그 경우에도 Smith는 어쨌든 올바르게 말한 셈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대화적 함의는 언제든 취하될cancelled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교장이 앞의 발언에 이어서 아직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셔서 혹여 걱정하실까 말씀드리는데, 어제 급식실에서 있었던 불미스런 일 때문에 Jones네 학급 인원들 중 거의 절반이 근신 조치를 받았거든요하고 덧붙였다 해보자. 그 경우 ‘Jones가 퇴학을 당하지는 않았다는 앞서의 발언에 의해 함의된바 ‘Jones의 생활태도가 불량하다는 내용은 취소될 것이다.2) 교장의 발화를 앞 단락에서의 Jones 부부와 같은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교장이 자신이 함의했던 바를 이런 식으로 취소하지 않는 경우에만 합당하다.


2) (原註) Grice규약적 함의conventional implicature대화적 함의를 구분한다. 규약적 함의는 취하될 수 없는바, 어떤 문장이 특정 내용을 규약적으로 함의하는 경우 그 문장을 발화하는 화자는 함의된 바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가령 그는 서둘러 집에 갔다,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서둘러 집에 갔다고 말하는 것과 논리적으로 모순되지는 않지만, 그가 서둘러 집에 가야 할 이유가 있음을 언제나 함의한다.


이번에는 Smith 교장이, Jones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글쎄요, 그 애가 퇴학을 당하진 않았지요하고 말하고는, 자신의 발언이 함의하는 바를 취소하지 않았다 해보자. 그는 아무런 거짓된 것도 말하지 않았다. [Jones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해도] 교장의 말이 의미론적으로 부적절semantically improper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 그의 말은 화용론적으로pragmatically 부적절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교장이 Jones의 생활태도가 좋지 못하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고 추론하는 것이 청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 하에서 교장의 말은 화용론적으로 부적절하다.

Grice에 따르면 이러한 대화적 함의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화를 지배하는 일반적인 준칙(準則)maxim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Grice는 이러한 준칙들 집합을 협조원리cooperative principle라 칭하였다. 협조원리는 다음과 같은 몇몇 하위-준칙들로 구성된다:

 

의 준칙maxim of quality: 거짓이라 믿는 바를 말하지 말 것, 적절한 증거adequate evidence가 결여된 바를 말하지 말 것.


방식manner의 준칙: 간결하게 말할 것be brief, 애매성ambiguity모호성obscurity불분명성vagueness을 피할 것.


관계relation의 준칙: [대화의 맥락상] 적절한 사안만을 말할 것be relavant.


quantity의 준칙: 당면 목적상 요구되는 바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정보만을 말할 것.

 

이런 준칙들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대화란 하나의 관습(慣習)practice, 즉 특정 규칙들에 의해 통제되는 관습적 활동practical activity이다. 다만 위의 준칙들이 모든 대화에서 전적으로 지켜지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위반되는 것은 아닌바, 각 준칙들은 대화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정도로 준수될 수도 있고 위반될 수도 있다. 대화란 애초에 엄밀하게 정의되는 성질의 활동이 아니기에, 농담, 이론적 논의, 논쟁, 논증, 진솔한 대화, 가벼운 잡담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대화들은, 각각에 고유한 규칙 내지 원리의 통제를 받음과 더불어 위의 준칙들에 각기 다른 정도의 가중치를 둔 채로 이뤄질 것이다.

어쨌든 협조원리를 통해 Grice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다양한 종류의 대화에서 대화 참여자들이 상호 협조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상대방이 상호 이해를 돕는 방식으로 말할 것이라 간주한 채로 대화에 임한다. 따라서 대화적 함의가 작동하는 이유 역시, 화자들 서로가 협조원리의 하위-준칙들을 준수하려 노력하면서 말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참여자들이 서로를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 여긴다는 사실과 매우 유사하다. [게임 참여자들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게임에 임한다면 게임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듯이(혹은 적어도 게임이 아주 시시하고 재미없어지듯이), 대화 참여자들이 협조원리의 준칙들을 준수하지 않고 서로를 그런 식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면, 어떤 종류의 대화든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초입에 제시된 사례에서 Jones 부부 역시 Smith 교장이 최대한 정보적인informative 내용을 말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Jones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면 교장은 그에 준하도록 사실대로 올바르게 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퇴학을 면하는 것은 건전한 학교생활에 대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과는 거리가 멀며, 만약 Jones의 생활태도가 좋다는 게 사실이라면, 교장은 퇴학을 당하지 않았다는 말보다는 더 정확하고 사실에 근접한 말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Jones 부부가 다음과 같이 추론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정당하다: Smith 교장은 최대한 정보적이고 진실되게 말하려 노력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끔 정중하게 말하려 노력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긍정적인 내용을 말한 셈인데, 그게 바로 ‘Jones가 퇴학을 당하지는 않았다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 이 말은 Jones가 학교생활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을 대화상 함의한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교장은 우리 아들의 생활태도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정보를 전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함의 개념의 적용

 

함의 개념은 언어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방해하거나 복잡하게 만드는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에 유용하다. 예를 들어 자연언어에서 라면 이다if then 로 표현되는 실질적 조건문에 대한 진리-함수적 분석에 따르면 다음 진술은 참이다:

 

당나귀가 벼룩보다 작다면, 당나귀는 고양이보다 크다.

 

이 문장이 참인 이유는, 진리-함수적 분석에 따르면 전건이 거짓일 경우 조건문 전체는 참이기 때문이다(1, ‘논리적 구문론과 논리적 연산자참조).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기이하게 여겨진다. 벼룩보다 작으면서 고양이보다 큰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위 조건문은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문의 부적절성은 의미론적인 측면에서보다는 화용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위 문장 자체가 의미론적으로 참이긴 하지만,] 위 문장을 말하는 것은 분명 올바르지 않다. 다만 위 문장의 발화가 잘못된 이유는 그 문장이 참이 될 수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나귀가 벼룩보다 작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즉 위 조건문의 전건의 진리치가 거짓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이 조건문은 그 누구에게도 정보적이지 않다. 당나귀가 말과 비슷한 동물이며 벼룩보다야 훨씬 크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렇듯 전건의 거짓됨이 누구에게든 명백히 알려져 있기에, 위 조건문의 전건이 참이면서 후건 역시 참인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누구나 다 안다. 진리-함수적 분석에 따르면 전건의 거짓은 조건문 전체의 참을 함축하기 때문에(그러나 그 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조건문을 주장하는 것은 발화가 정보적이어야 한다는 의 준칙을 어기는 셈이다. 따라서 이 조건문은 의미론적으로 참이지만 화용론적으로 부적절하다pragmatically improper.

일반적으로, 조건진술conditional statement을 주장하는 것이 적절해지는(즉 정보적이게 되는) 경우는, 전건과 후건 양자의 진리치가 적어도 대화 참여자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unknown 경우 내지는 청자가 모를 것이라고 화자가 합당하게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따라서 일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전건이 거짓이라는 점이 명백히 알려져 있는 조건문은 주장가능하지 않다never assertible. 위의 당나귀-조건문이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앞 단락에서 살펴보았듯이 위 조건문의 전후건 양자의 진리치는 명백히 알려져 있는바, 조건문의 주장가능성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그런데 조건문이 적절하게 주장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직관 외에도, 우리에게는 조건문의 내용 자체의 적절성 내지 정당성에 대한 직관 역시 존재한다. 가령 ‘2보다 큰 모든 짝수가 두 소수의 합이라면, 화성에는 생명체가 존재한다, 후건 양자의 진리치가 알려져 있지 않음에도 진지하게 발언하기엔 곤란한 조건문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적절하게 주장가능한 동시에 내용의 측면에서도 적절한 조건문의 경우,] 조건문의 구성요소가 갖는 진리치가 조건진술을 정당화하는 요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 진술을 정당화해주는가? 바로 전후건 간에 성립하는 모종의 연관성connection으로서,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는 대체로 인과적 연관성causal connection인 경우가 많다. 가령 저 고기가 상했다면 저 개는 그걸 토해낼 것이다라고 말하는 화자는, 그 고기가 상했는지 혹은 그 개가 고기를 토해낼는지 여부를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가 상한 고기를 먹으면 대체로 뱉어낸다고 믿고 있기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조건문을 받아들인 사람이 연후에 전건이 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논리학의 전건 긍정규칙에 의해] 후건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또는 전건을 받아들인 연후에 후건이 거짓임을 알게 되면, [후건 부정규칙에 의해] 전건 역시 거짓임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이를 일반화하자면, 조건문을 주장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는, 후건 양자의 진리치가 알려져 있지 않거나 혹은 명시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화자가 합당하게 추정할 수 있으면서, 그 조건문을 주장할 법한 여타 근거를 화자가 지니고 있는 경우에 한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협조원리가 위반된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왜 니가 김태희면 나는 장동건이다’3)와 같은 식의 농담을 제대로 된 농담으로 받아들이는지를 설명해준다. 이 문장의 화자는 상대방이 김태희가 아님을 알고 있다. 화자가 장동건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든 이가 알고 있기 때문에 [혹은 모든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리라고 화자가 추측하기 때문에] 청자는 화자의 말을 상대방이 김태희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즉 청자는 화자의 조건문 전체를 받아들이되 그 후건이 명백히 참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하여, 후건 부정규칙에 의해 전건이 거짓임을 말하고자 한다는 것이 이 조건문의 발화 의도라고 추론하는 셈이다.] 이런 식의 발화가 이렇듯 적절한 농담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은 일상에서 우리가 조건문을 암묵적으로 진리-함수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러한 진리-함수적 이해가 작동할 수 있게 하는 화용론적인 발화조건이 먼저 성립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화자가 실제로 장동건이라거나 혹은 정말로 김태희 만큼 외모가 출중한 사람을 두고 위의 발언을 한다면, 이는 적절한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3) 원문에서 제시된 사례는 저게 갈까마귀라면 나는 원숭이 삼촌이다이다.


협조원리를 위반하는 발화(특히 의 준칙을 위반한 발화)가 화용론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진단은, 선언문이 의미론적논리적으로 참임에도 그에 대한 발화가 기이하거나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가령 Marie의 차가 피아트임을 아는 사람이 ‘Marie의 차는 피아트이거나 폭스바겐이다라고 말한다면, [앞의 선언지가 참이기에] 그 선언문 전체가 참이긴 하지만 그 발화는 부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두 선언지 중 하나가 명백히 참임을 알면서도 두 개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은 [필요한 만큼의 정보 이상도 이하도 말하지 말라는 양의 준칙을 어기는바] 오도적misleading일 것이다.4)대왕고래보다 큰 모든 포유류는 야행성이다라는 보편 양화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양화문에 대한 고전적인 술어논리에 따르면, 대왕고래보다 큰 포유류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보편 양화문은 참이다.5) 하지만 이 문장을 말하는 것은 오도적이다. 그보다는 대왕고래보다 큰 포유류는 없다고 주장하는 편이 더욱 정보적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많은 사례들에서 보이는바 정통적인 의미론 내지 논리학과 일상적인 언어적 직관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이나 반직관성은 Grice적인 관점에 의해 다소 해소될 수 있다.


4) (原註) 이 선언문은 ‘Marie의 차가 피아트가 아니라면 그건 폭스바겐이다와 진리-함수적으로 동치truth-functionally equivalent이다. Marie의 차는 피아트이기에 전건은 거짓이며 따라서 조건문 전체는 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즉 전건의 진리치가 명백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조건문은 주장하기에는 화용론적으로 부적절하다. ‘Marie의 차가 폭스바겐이 아니라면 그건 피아트이다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조건문 역시 본문의 선언문과 진리-함수적으로 동치인데, 후건이 참이기에 조건문 전체가 참이라는 점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선언지 중 하나의 진리치가 명백히 알려진 선언문의 발화는, 본 각주가 붙은 단락에서 설명되듯이 의 준칙을 어기기에 화용론적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설명될 수도 있고, 본 각주 및 본문에서 앞서 살펴보았듯 선언문과 조건문 간 논리적 동치관계에 근거하여, 후건의 진리치가 청자에게 알려져 있지 않거나 그렇다고 추정될 수 있는 경우에만 조건문의 발화가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조건문의 주장가능성에 의해 설명될 수도 있다.]

5) 이 양화문을 형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x에 대해 ((x는 포유류이다 & 모든 y에 대해 (y는 대왕고래다 xy보다 크다)) x는 야행성이다)
(x)((Mx&(y)(WyBxy))Nx))

본문에서 말해지듯이 대왕고래보다 큰 포유류는 없기에, 내부 부속문으로 취해진 조건문 형식의 명제함수에서 전건 ‘Mx&(y)(WyBxy)’는 모든 x에 대해 거짓이다. 그에 따라 명제함수 전체는 모든 x에 대해 사소하게 참이며, 따라서 최종적으로 보편 양화문 전체 역시 사소하게 참이다.


적은 수의 단어들로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우리가 대화에서의 협조성에(특히 관계 및 의 준칙에) 암묵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 런던의 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열기로 했는데, 오기로 했던 친구 중 한 명이 오후 늦게 야 미안, 나 지금 출장 때문에 에딘버러에 와 있어라고 문자를 보냈다 해보자. 대화의 맥락상 가용할 수 있는 여러 정보들이 주어져 있는 한(일테면 단지 파티 때문에 에딘버러에서 런던까지 가기엔 너무 멀고 번거롭다든가 등), 그 친구의 문자는 그 말만으로도 오늘 저녁 파티에 자신이 참석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그런데 협조원리는 Grice적인 관점이 지닌 더욱 복잡한 측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에서 대화적 준칙들은 대화 참여자들이 발화에 의해 어떤 명제가 표현되는지를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했다. 즉 앞의 사례들에서 협조원리의 준칙들은, 발화에 의해 문자적으로 표현되는 명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발동한 게 아니라, 발화에 의해 함의되는 바를 들춰내기 위해 발동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의미론과 화용론이 상호 침투하여 함께 작동해야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당신의 룸메이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보자:

 

집주인이 화요일에 창문 고쳐줄 거라 말했어.

The landlord said on Tuesday he would fix the window.

 

이 문장은 애매하다. 룸메이트의 말이 표현하는 명제는, 집주인이 창문을 고쳐주겠다고 진술한 날이 화요일이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집주인이 창문을 고쳐주기로 한 날이 화요일이라는 것인가? 이런 경우 대체로 청자는, 화자가 지니고 있을 법한 믿음들 및 목적들과 유관한 정보들을 포함하여 발화의 맥락과 연관된 정보들을 토대로 위 발화가 지닌 애매성을 제거함으로써, 둘 중 어떤 명제가 화자의 의도에 부합하는지 결정할 것이다. 가령 당신은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도 있다: ‘집주인이 평일에는 매우 바빠서, 건물을 점검하거나 보수할 일이 생기면 대체로 주말에 들른다는 사실을 나랑 룸메이트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룸메이트의 말을 첫 번째로 해석하는 편이 더욱 그럴듯하다.’

이러한 경우를 감안하건대, 발화에 의해 어떤 명제가 표현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과 발화에서 어떤 내용이 함의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별개의 것이라기보다는] 발화의 해석과 연관된 모든 정보를 검토하는 동일한 하나의 해석절차가 지닌 두 가지 측면이라고 간주하는 편히 합당하다.

 

 

선제

: Russell의 기술구 이론에 대한 StrawsonDonnellan의 반박

 

Strawson. Russell의 한정 기술구 이론에 따르면(3참조) ‘F(F한 그것)’ 형식의 표현인 한정 기술구는 대상을 지시하는 의미론적 기능을 갖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한정 기술구의 유의미성은 단일한 F한 것 내지는 F한 것들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왕은 부유하다와 같은 문장은 미국의 왕인 사람이 단 하나 존재하고 그 사람이 부유하다는 명제를 말하고 있다. 미국의 왕은 없기 때문에 그 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는 거짓이다.

이에 대해 Peter Frederic Strawson(1919-2006)은 유명한 논문 지시에 관하여On Referring(1950)에서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펼쳤다: 누군가 실제로 미국의 왕은 부자야!’ 하고 말한다면, 청자는 그 사람의 말이 단순히 거짓이라고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청자는 아니, 미국의 왕은 부자가 아니야!’ 하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자연스러운 반응은 뭔 소리야. 뭘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미국엔 왕이 없어와 같은 식이 될 것이다. 즉 우리는 화자의 말에서 진리치-평가가능한truth-evaluable 그 무엇도 애초에 말해지지 않았음을 지적할 것이다. Strawson에 따르면, 화자는 무언가를 지시하기 위해 미국의 왕이라는 사용하였지만, 그러한 시도가 단지 실패fail했을 따름이다. 이는 눈가리개를 하고 피냐타piñata를 치는 놀이에서, 피냐타가 없는데도 피냐타를 치려고 막대기를 휘두르는 격이다. Strawson에 따르면 한정 기술구의 사용은 그 지시체의 존재를 선제(先題)한다presppose. 즉 한정 기술구가 사용되는 경우, 그 지시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통상 명시적으로 말해지지는 않고 다만 선제될 뿐이다.

화용론적 개념으로서의 선제와 의미론적논리적 개념으로서의 함축을 명확하게 대비시켜보자면 다음과 같다:

 

PQ를 함축한다면, Q가 거짓일 경우 P는 거짓이다.

PQ를 선제한다면, Q가 거짓일 경우 P는 참도 거짓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StrawsonF’ 형태를 지닌 지시적 표현의 의미가 그 표현이 무언가를 지시하는 데에 성공하였는지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Strawson이 보기에 의미란 언어표현이 지니는 특징인 반면, 지시란 화행 즉 언어표현의 사용이 지닌 특징이다. 지시하기refering는 우리가 하는 그 무엇이지 추상적으로 생각된 언어표현의 속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정 기술구를 포함한) 임의의 단칭용어의 지시는, 용어가 문장 내에서 표준적으로 사용됨으로써 화용론적으로 선제될 뿐 의미론적으로 함축되지는 않는다.

사실상 Strawson은 다음과 같은 Frege적인 착상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셈이다: F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문장 FG하다의 의미에는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않되 다만 그 문장에 대한 발화는 여하한 진리치도 갖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Strawson에게 의미란 Frege주의적인 뜻과 같다. 따라서 적어도 언뜻 보기에 StrawsonFrege와 마찬가지로 2장에서 살펴본바 아메리카의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같이 참인 단칭존재 부정문의 문제에 직면하는 듯하다. 하지만 언어의 의미론적 기능이라든가 명제, 뜻과 같이 일상과는 다소 동떨어진 측면보다는 언어가 구체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에 천착함으로써, Strawson은 일상언어의 실행practice이라는 측면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 이런 점으로 인해 그는 Austin과 더불어 일상언어철학자ordinary language philosopher로 분류되고는 한다. 일상언어철학자들은 일상언어의 표면적인 현상을 면밀히 탐구함으로써, 단칭존재 부정문 퍼즐과 같은 까다로운 문제들에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선제 개념은 이러한 일상언어철학적 접근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철학적언어학적 화용론 양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제 개념은 지시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언어 전반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앞서 Austin의 이론을 살펴볼 때도 선제현상의 사례가 언급된 바 있다. ‘그녀는 그에게 키스했던 것을 후회했다는 그녀가 그에게 키스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선제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다는 그가 이전에 피아노를 연주했었음을 선제한다. ‘그녀는 탈세를 범하길 그만두었다는 그녀가 탈세를 한 적이 있음을 선제한다.

 

Donnellan. Keith Sedgwick Donnellan은 한정 기술구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Russell과도 다르고 Strawson과도 다른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한정 기술구는 적어도 어떤 경우에는 지시적 표현의 기능을 수행한다. Smith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Jones의 재판현장에 당신과 내가 청중으로 참석해 있다 해보자. 사실 Smith를 살해한 진범은 온전한 정신을 갖춘 냉혈한 살인마 Brown이다. 하지만 부당하게 기소된 당사자 Brown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며 당신과 나 역시 Jones가 진범이라 믿고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설득된 이유 중 하나는 피고석에서 Jones가 보여준 기괴하고 미친 듯한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Jones는 제정신이 아니다. 재판을 참관하던 내가 당신에게 ‘Smith 살인범은 미친놈이야하고 속삭이자 당신은 내가 보기에도 그래하고 답한다.

이 상황에서 나의 발화는 어떤 식으로든 ‘Jones는 미친놈이다와 동등한 의미를 갖는바, 분명 나는 Jones에 관해 참인 무언가를 말하였다. 그런데 Russell에 따르면 내가 발화한 문장은 거짓이다. Russell의 분석에 따르면 ‘Smith 살인범(Smith를 살해한 바로 그 사람the person)’이라는 한정 기술구를 만족하는 대상은 제정신을 갖춘 살인마 Brown이기 때문에, ‘Smith 살인범은 미친놈이다Jones에 관해서가 아니라 Brown에 관해 그가 미쳤다는 명제를 표현한다. [하지만 그러한 실제 사실이야 어찌되었든 나는 거짓인 문장을 사용하여 어떤 점에서는 Jones에 관해 참인 무언가를 말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Donnellan지시와 한정 기술구Reference and Definite Description(1966)에서 한정 기술구의 지시적 사용referential use속성적(귀속적) 사용attributive use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한정 기술구를 말함으로써 화자가 청자로 하여금 지시체를 확인할 수 있게 하려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 그 한정 기술구는 지시적이다. 반면 Russell의 관점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 무엇이 되었든 한정 기술구를 만족하는 대상에 관해 청자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 그 한정 기술구는 속성적(귀속적)이다. 이러한 구분에서 핵심은 지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기술구 자체는 그다지 본질적인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지시적으로 사용된 한정 기술구는 단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동원되는 보조적인 도구일 뿐, 화자가 진정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일부가 아니다. 화자가 의도한 메시지가 [발화가 이뤄지는 맥락상 어떤 식으로든] 성공적으로 소통되는 한, 그 메시지가 어떤 언어적 포현으로 포장되어 전달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Donnellan이 보기에 Russell의 관점이 지닌 문제점은, 이렇듯 한 대상이 한정 기술구를 만족하지 않더라도 그 기술구가 사용됨으로써 의도된 그 대상이 성공적으로 지시되는 경우를 적절하게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Donnellan에 따르면 1950년 논문에서 개략적으로 제시되었던 Strawson의 관점 역시 이러한 구분을 포착해내지 못한다. 적어도 그 F가 존재하는 경우라면, ‘F’가 사용됨으로써 다름 아닌 바로 그 F가 성공적으로 지시된다는 데에는 Strawson역시 Russell에게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Jones 사례에서 보았듯이 F’를 만족하는 대상이 엄연히 존재하더라도, 발화된 F’가 자동적으로 그 대상을 지시한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

위 사례를 제시하면서 나는 ‘Smith 살인범은 미친놈이다라는 나의 발화에 의해 표현된 명제라 말하지 않고 단지 모호하게 내가 의사소통한 것이라는 식으로 서술하였다. 위 사례의 맥락에서 내가 발화한 그 문장은 Brown에 관해 거짓인 명제를 표현한 것인가, 아니면 Jones에 관해 참인 명제를 표현한 것인가? 만약 전자라면 굳이 Russell의 관점에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만, 이러한 설명은 실제 이뤄진 언어적 상황을 올바르게 포착하지 못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답이 후자라면, 설사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Smith를 살해한 진범이 Jones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이 알게 되었더라도, ‘Smith 살인범은 미쳤다라는 나의 발화가 ‘Jones는 미쳤다와 동치이며 이는 어쨌든 참이라는 데에 당신은 동의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 이 문제와 관련하여 Kripke화자-지시와 의미론적 지시Speaker’s Reference and Semantic Reference(1977)에서, Grice적인 관점과 밀접히 연관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을 거론하면서, Russell의 이론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도 이 문제가 정리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강도 두명이 물건을 훔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명이 상대방에게 작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 경찰들 오고 있어하고 말한다면, 그러한 특정 맥락에서 화자에 의해 의도된 내용은 그 문장의 문자적(축자적(逐字的)) 의미literal meaning와 분명 다르다. 그 강도가 의도한 바는 이제 그만 털고 튀자!’와 같은 식이 될 것이다. 따라서 화자-의미speaker’s meaning의미론적 의미semantic meaning가 구분되어야 한다. 후자가 언어표현의 사용을 지배하는 언어적 규칙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 전자는 Grice의 협조 준칙들 및 화자가 품은 다양한 특정 의도들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대화적 함의 개념은 화자-의미에 속하는 사안으로 간주되는 편이 적절하다.)

Grice가 제시한 화자-의미 및 의미론적 의미 구분과 유사하게, Kripke화자-지시speaker’s reference와 의미론적 지시를 구분한다. 당신과 내가 먼 거리에 있는 Bob을 보고 있는데 우리 둘 다 그를 Jarda로 착각하고 있다 해보자. 내가 ‘Jarda 쟤 뭐해?’ 하고 묻자 당신이 낙엽 치우고 있네하고 답한다. 이 상황에서 의미론적 지시체는 Jarda이지만 화자-지시체speaker’s referentBob이다. [고유명 ‘Jarda’가 의미론적으로 지시하는 대상은 Jarda이지만, 내가 그 고유명을 사용하여(발화하여) 가리킨 사람은 실제로는 저 멀리 보이는 Bob이었기 때문이다.] 앞서의 Smith 살해범 사례 역시 이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다. ‘Smith 살해범은 미친놈이다라는 나의 발화에서 ‘Smith 살해범의 의미론적 지시체는 진범 Brown이지만 화자-지시체는 저기 피고인석에 있는 Jones이다. 이렇게 볼진대 한정 기술구의 지시체에 대해 Donnellan이 제시한 구분은 화용론적인 차이에 기인한 것일 뿐, 의미론적인 것은 아닌 셈이다. Donnellan 식의 구분을 받아들인다 해서 지시적 용어 내지 한정 기술구에 대한 Russell 식의 의미론적 분석에 결점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Kripke의 주장이다. 공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일자드라이버를 끌로 착각하여 그것을 끌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듯 한 도구의 목적이나 사용법을 착각하여 그 도구를 오용하더라도 어쨌든 기도한 작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처럼, Donnellan이 제시한 현상은 기실 그다지 복잡하거나 불가사의한 현상은 아닌 것이다. [도구를 잘못 사용하고도 목적이 달성되었다 해서 그 도구의 원래 쓰임새가 바뀐다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한정 기술구를 지시적으로 사용하여 그 기술구를 만족하지 않는 대상을 성공적으로 지시했다고 해서, 그 기술구와 올바른 지시체 간의 의미론적 관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은유

 

은유(隱喩)mephor는 다루기 매우 까다로운 주제다보니 이에 대한 논의는 언어철학 이외에도 심리학, 인식론, 문예비평, 과학철학, 심리철학 등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는 복잡한 논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는 이번 장에서 살펴본 화용론적인 수단들이 은유 현상을 밝혀내는 데에 일말의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알아보는 정도로만 은유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그 이상의 심화된 내용을 원한다면 추가적인 읽을거리 목록에 제시된 문헌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우선 은유의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Richard는 사자다.

 

[]은 요요yo-yo.

 

그의 말은 그 문제에 일말의 빛을 던져주었다cast some light on.

 

그녀는 격정에 휘말렸다.

She was carried away by passion.

 

빛은 파동으로 이루어져있다consist of.

 

그는 그녀로 인해 애태웠다.

He burns for her.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I’ve some new ideas floating around in my head.

 

그녀는 그녀 세대에서 가장 화려한 꽃이었다.

 

나는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 있어.

I’m on a highway to hell.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공짜는 없다].

 

Giovanni는 아버지의 전철(前轍)을 밟았다follow in footsteps.

 

은유란 대체 무엇인가? 다음과 같이 매우 다양하면서도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이는 설명들이 시도되어왔지만, 모두 최종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은유는 비교를 진술한다state a comparison.
이는 올바르지 않다. 은유는 비교를 단순히 진술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뉴욕은 파리보다 크다역시 비교를 진술하지만 은유적이지는 않다. 기껏해야 은유는 비교를 함축imply하거나 암시suggest할 뿐이다.


은유는 곧 직유simile이다.
이는 올바르지 않다. 대체로 은유는 그에 대응하는 직유보다 더욱 강렬하고 인상적인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Richard는 사자다‘Richard는 마치 사자 같다를 비교해보라.

은유는 유사성similarity을 진술한다.
이는 올바르지 않다. 유사성을 진술하는 것은 오히려 직유이기 때문이다. 직유법이 사용된 내 사랑은 장미와 같다는 유사성을 진술하지만, ‘내 사랑은 장미다라는 은유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직유가 문자 그대로 참literally true이면서도 그에 대응하는 은유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은유는 문자 그대로 거짓이다.
이는 올바르지 않다. 가령 앞서 언급된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는 문자 그대로 참이다.


하나의 은유는 문자 그대로의 문장들literal sentences의 연언과 동치이다.
이는 올바르지 않다. 가령 Seamus Heaney6)눈이 먼 채, 구덩이마다 쌓인 감자들은 어떤 문장들의 연언과 동치인가? 그런 것은 없다.


은유에서 단어들의 의미는 문자적 의미literal meaning에서 은유적 의미metaphorical meaning로 전환된다.
이는 올바르지 않다. 가령 사자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덩치 큰 고양잇과 동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Richard는 사자다라는 은유는 그것이 원래 지니는 은유적 효력을 잃게 될 것이다. [즉 어떤 경우에는 문자적 의미가 은유적 의미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6) 195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의 시인.

 

이러한 설명들에 비해, 은유적임being metaphorical이라는 속성을 화용론적인 문제로 본다면 은유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문장 내지 명제가 아니라 특정 화행이 은유적임이라는 속성을 갖는다고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은유적인 화행에서 문장들은 일상적인 방식으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따라 사용되지 않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위에 언급된 은유에 관한 생각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문제는 은유를 특별한 종류의 의미와 연관지어 기술한다는 데에 기인한다. 따라서 그렇게 하기보다는 은유를 특정한 종류의 언어사용으로 기술해야 한다. Austin의 용어를 활용하자면 은유는 발화행위적인 사안이 아니며, 곧 살펴보겠지만 은유가 발화수반적인 사안인지 여부도 의심해볼 만한 몇몇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은유에 화용론적으로 접근한다 해도 어려움은 남는다. 은유라 불리는 것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변별적 특징이 있는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는 은유에 관한 만족스러운 설명이라면 반드시 포섭해야 할 몇몇 요소들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올바른 은유적 발화metaphorical utterance는 단순하게 문자 그대로 이해될 경우(즉 문장의 규약적 의미conventional meaning를 내용으로 갖는 진술을 표현한다고 간주될 경우) Grice의 협조원리를 어기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그녀로 인해 애태웠다를 축자적으로 이해할 경우 대화에서 의미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즉 방식의 준칙이 위반된다.] ‘Richard는 사자다는 너무 뻔하게 거짓이며,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는 너무 뻔하게 참이다. [즉 질의 준칙이 위반된다.] 은유가 발화되는 대화에서도 청자는 화자가 협조원리를 준수할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에, 은유적 발화가 성공적이라면 청자로 하여금 화자의 발화를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보려 노력하게끔 유도할 것이다.

(2) 그렇지만 은유적 유의미성metaphorical significance은 문자적 의미에 의존한다. 전술했듯 사자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덩치 큰 고양잇과 동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Richard는 사자다라는 은유는 그것이 원래 지니는 은유적 유의미성을 지니지 않을 것이다.

(3) 은유는 인지적 기능cognitive function을 지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파동은 물이나 공기와 같은 물리적 매개체를 통해 전달되는 압력의 이동 영역인 반면 빛은 진공상태에서도 전파된다. 따라서 빛이 그 자체로 파동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빛을 파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유용하고 정보적이다.

(4) 은유는 표현적 기능expressive function을 지닐 수도 있다. 시와 같은 문학작품에서, 혹은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지각하는지 묘사할 때,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지각한 것이 어떠한지what it is like를 전달하기 위해 종종 은유적 표현들이 동원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3)(4)의 구분은 은유에 대한 설명에서 핵심적인 사안이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의 언어가 인지적(표상적(表象的)representational) 기능과 표현적 기능 모두 갖는다는 것을 이미 살펴보았다. 은유 역시 마찬가지로서, 은유는 무언가를 기술하기도 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은유가 갖는 이러한 기능들에 공통적으로 상상(想像)imagination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은유의 인지적 기능과 얽힌 상상의 사례로서 원자(原子)atom의 모양에 대한 은유적 묘사를 들 수 있다. 한 대상을 중심으로 그보다 작은 대상들이 회전운동을 하는 양태는, 사실 원자의 실제 모양은 아니지만 원자에 대한 유용한 모형model으로 받아들여진다. -인지적인, 즉 표현적인 기능과 얽힌 상상의 사례로는 고통에 대한 일상적인 은유적 묘사를 들 수 있다. 가령 우리는 어떤 고통에 대해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듯하다고 표현하고는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그녀가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가슴에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한다. 양자를 모두 갖는 은유와 상상이 연관된 사례로는 RomeoJuliet을 들 수 있겠다. I. A. Richard가 말했듯 RomeoJuliet에 대해 ‘Juliet은 태양이다라고 할 때 느꼈을 독특한 그 느낌, 아름다운 Juliet에 대한 상상과 태양에 대한 상상이 상호작용하여 일어난 것이다. 은유와 얽힌 이러한 모든 상상작용들을 하나로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청자로 하여금 그러한 상상을 떠올리게끔 자극하는 것이 은유적 발화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Austin의 화행론의 전문용어를 활용하자면 은유는 특정 종류의 의도된 발화효과행위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역사적 사항

 

Ludwig Wittgenstein의 유명한 두 저서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1953)청색책과 갈색책The Blue and Brown Books(1930년대. 이 책은 Wittgenstein 생전에는 출간되지 않았고, 다만 1930년대에 비공식적인 해적판 형태로 케임브리지에서 암암리에 널리 읽히고 있었다)은 소위 일상언어철학이 발흥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 흐름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절정에 달하였다. Gilbert Ryle(1900-76), Peter Frederic Strawson(1919-2006), John Langshaw Austin(1911-60), Norman Malcolm(1911-90), O. K. Bouwsma(1898-1978) 등을 비롯하여 이 흐름에 동조했던 많은 인물들은 일상언어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얻어낸 결과를 철학적 문제들에 적용함으로써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다. 언어에 관한 철학적 이론들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언어적 활동과 명확하게 부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작금의 철학자들이 이전에 비해 더욱 민감해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일상언어철학의 유산은 여전히 주효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일상언어철학이 끼친 가장 현저한 영향은, 구문론 및 의미론과 더불어 언어연구의 한 하위-분과이면서 종종 두 분야와 경쟁하기도 하는 화용론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였다는 점이다.

1970년까지 Austin의 저서는 특히 John Rogers Searle화행: 언어철학 小論Speech Acts: An Essay in the Philosophy of Language(1969)과 연후의 표현과 의미: 화행론에 관한Expression and Meaning: Studies in the Speech Acts(1979)를 저술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반면 Herbert Paul Grice는 특히 그의 小論 논리학과 대화Logic and Conversation(1975)를 통해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번 장에서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GriceAustinSearle이 논했던 규약 개념을 화자-의도 및 청자-의도speaker’s and herer’s intention 간의 구분으로 대체함으로써, 두 인물과는 다른 관점에서 나름의 완결성을 갖춘 대안적인 이론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Austin-Searle의 패러다임과 Grice주의적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이 상당히 발전 및 개정되거나 도전을 받기도 하였다: (1) Stephen Schiffer를 비롯한 일부 인물들은 Grice의 좀 더 일반적인 착상, 즉 화행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설명을 다듬어 의도-기반 의미론Intention-Based Semantics으로 발전시켰다(Schiffer, 의미Meaning, 옥스퍼드대학출판부, 1972 참조). 이 이론은 인지과학 및 심리철학 분야에서 제기된 특정 이론과 잘 부합하는 데가 있다. (2) 지난 30년간 함의개념에 관한 매우 많은 수의 문헌들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함의의 다양한 유형들 및 새로운 대화적 준칙들이 탐구되고, Grice가 본디 제시했던 준칙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례들을 다루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고안되었다. (3) Dan SperberDeirdre Wilson에 의해 제안된 적합성(연관성) 이론relavance theory에 따르면, Grice의 준칙들은 다음과 같은 최적의 적합성 원리principle of optimal relavance 혹은 의사소통적 효율성의 원리principle of communicative efficiency라는 단일하고 일반적인 원리로 대체되어야 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대화의 최초 시점에 화자가 청자의 인지적 상태에 관한 정보들을 비롯하여 대화의 모든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면, 화자는 자신이 기도한 방식으로 청자의 인지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한 것만을 말해야 한다. Grice의 이론과 적합성 이론은 경우에 따라 상충하기도 하며 언제나 후자가 더 낫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적합성 이론은 Grice가 제시한 준칙들에 비해 더욱 직관적이고 유연성 있으며 압축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의 요약

 

문장의 서법이란 구문론적인 성질로서, 특정 서법은 한 문장이 발화될 때 그에 부여되는 특정 효력과 관습적으로 결부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you are’‘are you’처럼 주어와 동사의 순서를 도치시키는 것은 대표적으로 서술법과 의문법 간의 차이점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서술법 문장을 발화함으로써 질문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관습은 종종 무시되기도 한다. [즉 서법과 효력 간의 관계는 필요충분조건 관계가 아니다.]

표준적인 세 가지 효력 유형인 주장, 의문, 명령을 다루기 위해 좀 더 세밀한 이론이 고안되었다. 주장이라는 화행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Austin의 유명한 구분에 따르면 발화에서 우리는 한 명제를 표현하는 발화행위와 그 명제를 주장하는 발화수반행위와 청자로 하여금 그 명제를 믿도록 하는 발화효과행위를 각기 구분해야 한다. 발화행위와 발화수반행위는 대체로 화자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지만 발화효과행위는 청자에게 가해지는 효과에 따라 전적으로 결정된다. 발화수반행위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의도적이고 어느 정도까지 규약적인가 하는 문제에는 논란이 많다. 일상에서 화자는 자신이 성공적으로 달성코자 하는 발화효과행위를 의도하면서 발화하지만, 실제로 야기된 발화효과행위는 화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발화효과행위는 어쨌든 발화함으로써 화자가 행하거나 야기한 것으로 간주된다.

한 진술에서 PQ함의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PQ를 논리적으로 함축하지는 않지만, 대화의 맥락상 충분한 정보를 갖춘 능숙한 청자라면 화자가 Q를 전달하려 의도한다고 여기는 경우. 함의 개념은 우리가 일상에서 물론 너는 쟤가 못생겼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걸 넌지시 내비쳤지imply라 말할 때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바를 포착해낸다. 대화적 함의로 알려진 이러한 현상을 지배하는 엄밀한 규칙은 없지만, 핵심적인 착상에 따르면 협조원리라 불리는 다음의 구성적 규칙들이 일상의 대화에서 통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거짓이라 믿는 바를 말하지 말 것, 애매성모호성불분명성을 피할 것, 간략하게 말할 것, 맥락상 적절한 사안만을 말할 것, 당면 목적상 요구되는 바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보만을 말할 것. 화자의 발화가 무언가를 대화적으로 함축하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작업에는 이러한 대화 규칙을 화자가 충실하게 지키면서 말하고 있다는 가정이 개입되어 있다. 화자의 말이 Q를 비록 논리적으로 함축하지는 않을지라도, 화자가 협조원리를 준수하고자 노력하면서 발화하였다고 가정한다면, 화자의 말은 Q를 의도하였던 것으로 청자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화용론에서 핵심적인 또다른 개념은 다음과 같은 선제 개념이다: PQ를 선제한다면, Q가 거짓일 경우 P는 참도 거짓도 아니다(이와 대조적으로 PQ를 함축한다면, Q가 거짓일 경우 P는 거짓이다). Strawson은 이러한 선제 개념을 토대로 Russell의 한정 기술구 이론을 다음과 같이 공박한다: 단일한 그 F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Russell이 말하듯 FG하다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렇다기보다는, 화자가 한정 기술구 F’를 사용함으로써 FG하다라는 문장은 F’의 지시체가 존재함을 선제하게 되는데 이 선제가 거짓이기 때문에, 그 문장에 대한 발화는 진리치를 갖는 진술을 애초에 표현하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올바르다. Donnellan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FG하다Russell이 주장한 의미에서는 거짓이라 하더라도 다른 의미에서는 여전히 참인 진술을 표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정 기술구가 사용되는 방식을 지시적 사용 및 Russell이 제안한 바와 같은 속성적(귀속적) 사용 두 가지로 구분한다. 이 논쟁에 대해 Kripke는 화자-지시와 의미론적 지시를 구분할 것을 제안하면서, 이를 토대로 StrawsonDonnellan이 각기 제시한 현상들 모두 순수하게 화용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기에 Russell의 이론에는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한 한 최종적으로 Russell의 편을 든다.

 

 

탐구 문제

 

1. 타인의 대화를 몰래 엿들으면서 대화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발화수반행위들을 식별해보라. 그것들 중 이번 초입의 서법과 효력에 대한 再考에서 살펴본 효력의 기본적인 범주들과 부합하는 것들은 얼마나 있는가?


2. 다음 주장에는 어떤 문제가 있겠는가?: ‘발화의 목적은 언제나 동일한 한 가지, 즉 화자의 정신적 상태mental state를 표현하는 것이다.’


3. 모든 유형의 (발화수반적) 화행이 규약적이라 할 수 있는가? 주장할 때, 약속할 때, 혼인 서약을 할 때 각각 , 그렇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을 비교해보라.


4. 대화적 함의 현상에 대한 Grice적인 관점은 다소 복잡한 것처럼 여겨진다. 대화적 함의를 설명하기 위해 Grice가 기술한 복잡하고 난해한 언어분석 절차가 일상대화에서는 좀체 발생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Grice 이론의 옹호자는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5.다음 문장을 보자:

나는 그 케익을 조금 먹었다.

이 문장의 화자가 실제로는 그 케익을 전부 먹어버렸다고 해보자. 그 경우 화자는 거짓말을 한 것인가(즉 화자는 자신이 거짓이라 믿는 문장을 의도적으로 말했다 할 수 있는가)?


6.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는 문자 그대로 참이며, 따라서 모든 은유가 문자 그대로 거짓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정을 포함하지 않으면서 문자 그대로 참인 은유가 있는가? [즉 문자 그대로 참인 긍정문이되 은유적 효력도 갖는 문장이나 표현이 있는가?] ‘사업은 사업이다는 어떤가? 이것이 과연 은유이긴 한가? 이 문장에 대한 발화는 의도한 은유적 효과를 어떻게 달성하는가?

 

주요 읽을거리

 

Austin, J. L. (1962), 단어를 통해 행위하는 방법How To Do Things With Word, 2.

Donnellan, K. S. (1966), 지시와 한정 기술구Reference and Definite Descriptions.

Grice, H. P. (1989), 논리와 대화Logic and Conversation」〔1975: 단어 사용에 관한 연구Studies in the Way of Words, 22-40쪽에 수록.

Kripke, S. (1977), 화자-지시와 의미론적 지시Speaker’s Reference and Semantic Reference.

Searle, J. R. (1969), 화행: 언어철학 小論Speech Acts: An Essay in the Philosophy of Language.

(1979), 은유Metaphor.

Strawson, P. F. (1950), 지시에 관하여On Referring.

 

 

추가적인 읽을거리

 

D. Harris, D. Fogal, M. Moss , 화행에 관한 새로운 연구New Work on Speech Acts.

Hills, D. 은유Metaphor,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에 등재.

E. Lepore, M Stone (2014), 상상력과 규약Imagination and Convention.

D. Sperber, D. Wilson (1995), 적합성 이론: 의사소통과 인지Relevance: Communication and Cognitio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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