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Russell의 의미론

 

Russell의 과업

 

Frege로 하여금 뜻과 지시를 구분하도록 추동시킨 두 가지 문제는 공허한 단칭용어의 문제와 인지적 가치의 문제였다. 이번 장에서는 Russell의 의미론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 두 문제를 다음과 같이 칭할 것이다:

 

1. 존재existence의 문제

2. 동일성indentity의 문제

 

첫 번째로 존재 문제란 다음과 같은 문장의 명백한 유의미성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Kennedy 형제의 암살범the man who killed the Kenneys은 마피아 조직원이었다.

Vulcan은 뜨겁다.1)


1) (原註) 한때 천문학자들은 수성의 공전궤도 내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이 있다고 믿었으며 그 행성을 Vulcan이라 칭하였다. 2장의 소박한 의미론의 두 문제절 참조.

 

BobbyJohn은 한 사람에 의해 살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Kennedy 형제를 죽인 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Vulcan과 같은 행성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위 두 문장에서 단칭용어 ‘Kennedy 형제의 암살범‘Vulcan’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공허한 단칭용어이다. 그럼에도 분명 두 문장은 유의미하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문장이 참일 수 있다는 점 역시 존재 문제에 속한다:

 

JonesVulcan이 뜨겁다고 믿는다.

 

이 문장이 참이라는 사실은 Vulcan이 뜨겁다는 명제가 존재함을 함축하는데, 그 경우 ‘Vulcan’은 지시체를 갖지 않음에도 유의미해야 한다.

이보다 더욱 결정적이고 복잡한 종류의 존재 문제는 Frege도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한 소위 단칭존재부정문의 문제이다. 다음 두 문장을 보라:

 

Ness호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Vulcan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문장은 유의미할 뿐만 아니라 참이다. 그런데 두 문장의 참을 의미론적으로 결정하는 절차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수는 없다: 단칭용어 ‘Ness호 괴물‘Vulcan’의 지시체를 찾아내어 그것들이 술어 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만족하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Spot은 배고프다의 진리치를 결정하기 위해 단칭용어 ‘Spot’의 지시체를 찾아내어 그것이 술어 은 배고프다를 만족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위 두 문장의 경우 ‘Ness호 괴물‘Vulcan’의 지시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문장의 술어가 만족되는지 여부를 가려낼 수 있게 해줄 대상 자체가 없다.

두 번째로 동일성 문제란, -지시적 단칭용어가 나타나는 문장들이 Frege가 말한 인지적 가치의 측면에서 상이할 수 있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참인 두 문장 쌍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금성 = 금성.

금성 = 개밥바라기.

 

두 문장 모두 참이긴 하지만 인지적 가치의 측면에서는 분명 상이하다. 다음 두 문장 역시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일한 것을 말하는 문장들이 각기 다른 인지적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금성은 행성이다.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

 

물론 후자의 두 문장 쌍은 ‘x=y’ 형식의 동일성 진술이 아니지만 금성과 개밥바라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소박한 의미론과 같이 지시의 측면에서만 의미를 설명하는 이론은 두 문장의 차이를 만족스럽게 설명해내지 못한다.

이렇듯 언어표현들이 -지시적임에도 상이한 인지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명제적 태도를 귀속시키는 문장들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체성 원리가 성립하지 않는 듯하다:

 

GeorgeScott = Waverley의 저자the author of Waverley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

GeorgeScott = Scott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

 

Russell이 직접 들었던 이 예시에 따르면 후에 George 4세가 된 섭정 왕자 George는 스코틀랜드의 그 유명한 소설의 저자가 시인 Walter Scott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고 하며, 실제로 Scott은 그 작품의 저자이다. [따라서 위의 첫 번째 문장은 참이며, 대체성 원리에 따르면 그 문장에서 Waverley의 저자를 그와 -지시적인 ‘Scott’으로 대체한 두 번째 문장 역시 참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ScottScott인지 여부를 궁금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다음 두 문장 역시 진리치를 달리할 수 있다:

 

George는 금성이 행성이라고 믿는다.

George는 개밥바라기가 행성이라고 믿는다.

 

[앞서 외연적 맥락에서 나타난 금성-개밥바라기 사례와 마찬가지로, 내포적 맥락을 갖는 후자의 두 문장 쌍에서 명사절에 있는 문장들은 전자 쌍에서처럼 ‘x=y’ 형식의 동일성 문장이 아니지만 -지시적 단칭용어가 나타나고 있기에, 소박한 의미론은 두 문장의 진리치 차이를 적절히 설명해내지 못한다.]

 

Frege는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뜻과 지시를 구분하였지만 Russell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한 구분을 상정하지 않고도 존재 문제와 동일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욱 경제적인 방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Russell은 의미가 지시일 뿐이라는 소박한 의미론의 주요 원리를 받아들이되, 두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Frege주의적인 뜻을 상정해야 할 필요성을 다른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한정 기술구 이론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단칭용어는 단순한 것과 복합적인 것으로 나뉠 수 있다. 단순 단칭용어는 파리Pris’, ‘Michelangelo’와 같은 고유명이다(물론 대부분의 人名‘Winston Churchill’과 같이 형태상 둘 이상의 단어들로 이뤄지긴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복잡함은 도외시한 채 인명을 포함한 모든 고유명을 단순 단칭용어로 간주하자). 반면 복합 단칭용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프랑스의 수도the capital of France

Alexander의 아버지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the most intelligent human being

 

중요한 것은 모든 복합 단칭용어들이 다음과 같은 형식의 표현으로 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F(F한 그것)the F

 

여기서 F는 임의의 술어이다. 예컨대 복합 단칭용어 ‘Alexander의 아버지Alexander’s father‘Alexander의 그 아버지the father of Alexander표기될 수 있다.2)


2) (原註) 사실 이 예시에는 좀 복잡한 데가 있다. 가령 ‘Sally의 선생님Sally’s teacher‘Sally의 아버지가 유일성uniqueness을 함축하는 방식으로 유일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Sally의 아버지가 유일성을 갖는 이유는 의미론적 사안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반면 ‘Sally의 선생님이 말하고 있었다의 맥락에서 ‘Sally의 선생님‘Sally의 어떤 선생님과 동등하며 따라서 단칭용어는 아닌 셈이다. ‘Sally의 선생님이나 ‘Sally의 아버지와 같은 표현들은 애매한ambiguous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그 애매성은 ‘Sally의 그 선생님the teacher’, ‘Sally의 어떤 선생님a teacher’, ‘Sally의 아무 선생님이든any teacher과 같이 양화사가 보충된 형태로 변환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의도된 양화사가 무엇인지[즉 어떤 양화사가 보충되어야 하는지]는 통상적으로 대화가 이뤄지는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


F’ 형식을 지닌 단칭용어를 Russell한정 기술구(限定 記述句)definite description라 칭하였다. Russell의 기술구 이론theory of description이란 정관사 the라는 단어에 관한 이론이다. 1장에서 규정한 바에 따르면 문장에서 단칭용어를 제거하고 남는 것이 술어이다. 따라서 한정 기술구가 포함된 임의의 문장은 다음 형식을 지닌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3):


3) (原註) 이 역시 조금 복잡한 데가 있다. 이에 대해 명백한 반례가 되는 양상(樣相)modal 어휘나 명제적 태도 연산자가 포함된 표현들은 일단 도외시하기로 한다.

 

(1) FG하다(F한 그것은 G하다)The F is G.

 

여기서 술어 ‘𝛼G하다는 복합적일 수도 있다.

이제 다음 예시를 생각해보자:

 

(2) 현재 프랑스의 왕the present King of France은 현명하다.

 

Frege의 이론에 따르면 이 문장은 뜻을 표현하기에 유의미하긴 하지만, ‘현재 프랑스의 왕이 지시체를 갖지 않기에 참도 거짓도 아니다. Russell은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Frege가 말했듯이 뜻을 표현하는 유의미한 문장은 진리-조건을 표현하기 때문에, 즉 표현되는 명제가 참이라면 세계가 그러해야 할 하나의 방식을 표현하기 때문에, 반드시 참이나 거짓 둘 중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름지기 문장은 세계가 명제의 진리-조건대로 존재하기에 참이든가 그렇지 않기에 거짓이든가 둘 중 하나여야 한다. (2)는 분명 특정 진리-조건을 표현한다. 따라서 참이 아니라면 거짓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유의미하되(즉 명제를 표현하되) 참이 아닌 문장에 대해 거짓이라 말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리치 공백을 일단 받아들이면 어떤 문장이 유의미하면서도 참이 아닐 경우, 참도-거짓도-아닌 문장과 거짓인 문장 간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며, 이는 언어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인 이해방식과 상충한다. 하나의 진리-조건이 표현된다면 그 조건은 분명 만족되거나 만족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2)의 진리-조건은 명백하다. Russell에 따르면 (2)는 다음과 같은 존재 구절existence clause, 유일성uniqueness 구절, 정언적categorical 구절 등의 세 문장이 연언문으로 결합된 것과 논리적으로 동치이다:

 

(2a) 현재 프랑스의 왕이 존재한다.

(2b) 현재 프랑스의 왕이 하나보다 많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c) 모든 현재 프랑스의 왕은 현명하다.

 

조금만 숙고해보면 (2)가 참이기 위해 (2a)(2c)는 전체로서는 충분조건이며 개별적으로는 필요조건임을 알 수 있다. 세 문장의 연언은 (2)와 필연적으로 동치이다necessarily equivalent. 이를 일반화하자면 (2a)(2c)가 형식화된 다음 세 문장의 연언은 형식 (1)과 필연적으로 동치이다:

 

(1a) 그러한 x가 존재한다 (Fx).

(x)Fx

(1b) 부정: 그러한 xy가 존재한다 (xyFxFy).

(x)(y)(xyFxFy)

(1c) 모든 x에 대해 (FxGx).

(x)(FxGx)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1)정확히 하나의 F가 존재하며, 모든 FG이다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1a)(1c)의 연언은 다음과 같이 더욱 축약된 식과 논리적으로 동치이다:

 

(1) 그러한 x가 존재한다 (Fx 모든 y에 대해 (Fyy=x) Gx). 4)

(x)(Fx(y)(Fyy=x)Gx)


4) (原註) 이 식 역시 다음과 같이 더 축약될 수 있다: ‘그러한 x가 존재한다, 모든 y에 대해 ((Fyx=y)Gx)’ [(x)(y)((Fyx=y)Gx)].

 

여기서 내부 개방문을 구성하는 하위-sub-formula 모든 y에 대해(Fyy=x)[(y)(Fyy=x)]’는 불명료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좀 더 명확히 하자면 이는 다음과 동치이다:

 

모든 y에 대해 (yx부정: Fy)

(y)(yx→∼Fy)

 

이는 ‘x를 제외한 모든 것은 -F이다non-F(F하지 않다)’를 말하고 있다. Russell이 주장하는 요지는 (1) 형식을 지닌 모든 문장이 (1) 형식의 문장으로 분석되는바 양자는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RussellFG하다‘GF가 존재한다There is an F that is G[몇몇 FG하다Some F is G]’ 간의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다음 사항을 강조한다: Russell에 관점에서 전자는 정확히 하나의 FG임을 말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적어도at least 하나의 FG임을 말하고 있다. 다르게 말해 라는 정관사는 일종의 양화사로서, ‘가 존재한다’, ‘몇몇의과 같은 존재 양화사 및 모든’, ‘각각의와 같은 보편 양화사와 동일한 층위에 속하는 언어표현이다. 다음 어구들을 보자:

 

F

몇몇 F

어떤an F

모든 F

각각의 F

 

이것들은 모두 술어 G하다와 결합되어 온전한 문장을 형성할 수 있으며, 술어 F가 지칭하는 대상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위 어구들은 의미를 갖는다. 다르게 말해 위 표현들은 모두 기술구(記述句)description이다. 그 중 첫 번째만이 한정 기술구definite description이며 나머지는 한정 기술구indefinite description이다. [한정적이든 한정적이든 모든 기술구는 그것이 기술하는describe 사물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유의미하다.]

소박하게 생각하면 한정 기술구 F’1항 술어의 공란에 삽입됨으로써 하나의 문장을 형성하기에, 이름 ‘Sigmund Freud’와 같은 지시적 표현referring expression 즉 진정한genuine 단칭용어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위와 같은 Russell의 고찰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앞선 분석에 따라 (1)(1) 내지 (1a)(1c)의 연언으로 분석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FG하다는 단순한 형식인 ‘Fa’(‘aF하다’)와 완전히 다르다. (1) 내지 (1a)(1c)의 연언과 다르게 ‘Fa’는 가능한 가장 단순한 형식의 원자적 서술문이다. 요컨대 FG하다논리적 형식logical form표층 형식surface form(문법적grammatical 내지 언어적linguistic 형식)은 매우 다르다.

 

한 가지 주목할 사항으로서, Russell은 정관사 를 분석하는 이러한 방법을 맥락적 정의(定義)contextual definition 혹은 사용--정의definition-in-use라 칭하였다. 우선 이와 쌍을 이루는 명시적explicit 혹은 직접적direct 정의를 먼저 살펴보자. 한 기호symbol를 명시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주어진 기호를 문법적으로 그와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다른 기호로 대체하는 것이다(이 때 정의되는 표현[정의항definiendum]은 단순하며, 정의하는 표현[정의항definiens]은 대체로 복합적이다). 가령 총각미혼 남성으로 정의하는 것이 명시적 정의의 대표적 사례로서, 양자는 동일한 문법적 범주에 속하는 동등한 표현들이다. 명시적 정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쌍조건문 형식으로 주어진다:

 

정의df: 모든 x에 대해, x는 미혼 남성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총각이다.

 

이 정의에 의거하여 총각이라는 기호는 어디서든 미혼 남성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그 역 또한 성립한다vice versa.

반면 한 기호를 맥락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주어진 기호를 포함하고 있는 문장 전체whole sentence를 그 기호가 포함되어있지 않은 다른 문장으로 변환하는 규칙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에 Russell또는 F’를 정의하되, 그와 동등한 또 다른 하나의 단어나 기호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그 단어가 포함된 다음 형식의 임의의 문장

FG하다.

 

에 대해 이 문장의 내용과 동일한 내용을 그와 다른 문장으로 -표현re-express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또는 F’를 대체할 다른 단칭용어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적 정의에 따라 분석된 결과가 (1)로서, (1)(1)가 축약된 형태였던 셈이다. 따라서 (1)에는 F’를 대체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아무런 기호도(단순하든 복합적이든) 포함되어있지 않다. [한정 기술구 F’는 여타 단칭용어로 대체되는 게 아니라 분석에 의해 사라진다.]

 

[상술하였듯 기술구의 경우 기술되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기술구가 포함된 문장은 유의미한 반면,] Russell논리적 고유명logically proper name이라 칭한 표현의 경우 그것이 포함된 문장은 이름의 담지자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유의미하다. ‘a’가 논리적 고유명으로 의도된 단칭용어라면, ‘a’가 지시체를 결여하는 경우 문장 ‘Fa’는 무의미하다.5) 반면 앞서 살펴본 Russell의 분석에 따르면, (1) ‘FG하다의 유의미성은 그 F가 존재한다는 것을 선제(先題)presupposition하지 않는다. [즉 기술구의 적용대상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1)은 유의미하다.] F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1)은 거짓이며 따라서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1)의 의미는 (1)에 의해 더욱 명백하게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한정 기술구가 진정한 지시적 표현이 아니라는(또는 한정 기술구가 단독적으로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have no meaning in isolation) 말의 핵심이다. 이런 연유로 Russell은 그 F가 존재하는 경우 F’와 그 F 간의 관계를 지시관계 내지 의미관계가 아니라 지칭denoting관계라고 구분하여 칭하였다(다만 우리의 논의에서는 그의 용어법을 엄격히 따르지 않을 것이다). [지시관계는 언어표현의 지시체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성립하는 반면 지칭관계는 지시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성립한다.]


5) 1장의 역사적 사항절 및 이번 장의 초입에서 언급되었듯이 Russell이 의미와 지시를 동일시하는 소박한 의미론의 주요 원리를 받아들이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다만 본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Russell은 통상적인ordinary 모든 고유명이 아니라 그가 칭한바 논리적 고유명logically proper name에 한해 소박한 의미론을 받아들인다. 그가 말하는 논리적 고유명과 그 지시체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이후의 직접대면에 의한 지식과 기술구에 의한 지식절에서 상세히 논의된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사항이 있다. Russell의 이론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 왕은 현명하다가 거짓이기 때문에, 부정문negation현재 프랑스 왕이 현명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는 참이다. [여기서 핵심은 전자의 부정문이 우리의 직관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현재 프랑스 왕은 현명하지 않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RussellFG하다내적 부정문internal negation외적external 부정문을 구분한다. 먼저 내적 부정문은 다음 형식을 지니고 있다:

 

FG하지 않다The F is not-G. (내적 부정)

 

이는 정확히 하나의 F가 존재하며 그것은 G하지 않다를 의미한다. 반면 외적 부정문은 다음 형식을 취한다:

 

부정: FG하다. (외적 부정)

 

이는 그 FG하다는 것이 단지 거짓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정되기 이전의 원래 문장이 거짓이어서] 외적 부정문이 참이더라도 그에 대응하는 내적 부정문은 [원래 문장과 마찬가지로] 거짓일 수 있다. [‘FG하다FG하지 않다가 모두 거짓이라 해서 배중률이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표층적인 문법적 수준에서 보이는 바와는 다르게 두 문장은 논리적의미론적인 수준에서는 애초에 모순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예시로 다음 두 문장을 보자:

 

Ness호 괴물은 헤엄치지 않는다. (내적 부정, 거짓)

부정: Ness호 괴물은 헤엄친다. (외적 부정, )

 

전자가 참이기 위해서는 Ness호 괴물이 존재하고 헤엄치지 않는다는 것이 요구되는 반면, 후자가 참이기 위해서는 그 괴물이 존재하고 헤엄치지 않거나 혹은 그 괴물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기만 하면 충분하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내적 부정문의 진리-조건은 그에 대응하는 외적 부정문의 진리-조건을 함축하는 반면 그 역은 아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외적 부정문의 거짓-조건은 내적 부정문의 거짓-조건을 함축하되 그 역은 아니다. 그렇기에 위 사례처럼 내적 부정문이 거짓이면서도 외적 부정문은 참인 사례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누차 강조되었듯이 이는 기술구의 적용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발생한다(기술구의 적용대상이 존재하되 단지 술어를 만족하지 않는 경우라면 내적 부정문 역시 참일 것이다).]

내적/외적 부정문을 형식화하여 표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적 부정:

그러한 x가 존재한다 (Fx 모든 y에 대해 (Fyy=x) 부정: Gx).

(x)(Fx(y)(Fyy=x)Gx)

 

외적 부정:

부정: 그러한 x가 존재한다 (Fx 모든 y에 대해 (Fyy=x) Gx)).

(x)(Fx(y)(Fyy=x)Gx)

 

형식문에서 더욱 명료히 드러나듯이 내적/외적 부정문은 부정 기호의 위치에 따라 구분된다. 다소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내적 부정문의 경우 부정 연산자는 한정 기술구(즉 양화사)범위scope 내부에 나타나는바, 후자는 전자에 비해 넓은wide 범위를 취한다. 외적 부정문의 경우 부정 연산자는 한정 기술구의 범위 외부에 나타나는바, 후자는 전자에 비해 좁은narrrow 범위를 취한다.

 

 

기술구 이론의 적용

 

-는 존재 문제를 다루고 은 동일성 문제를 다룬다.

 

Frege의 이론에서 다음 문장은 참도 거짓도 아니다:

 

(3) Kennedy 형제의 암살범은 쿠바인이다.

 

이 문장은 특정 명제를 표현하기에 유의미하긴 하지만 참도 거짓도 아니다. 그 이유는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Frege는 이 문장을 다음 형식을 지닌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Fa

 

여기서 단칭용어 ‘a’가 지시체를 결여하는 경우 지시의 구성성 원리에 따라 문장 전체 역시 지시체 즉 진리치를 결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식에 따르면 (3)은 단칭용어 ‘Kennedy 형제의 암살범에 술어 은 쿠바인이다를 귀속시키고 있는바, 그 술어가 그러한 대상에 적용될 경우 참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거짓이다. (3)은 그 부정문이 참일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거짓이다. 하지만 단칭용어 ‘Kennedy 형제의 살인범이 지시체를 결여하기에 (3)의 진리-조건이 만족되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이러한 절차는 시작될 수조차 없으며 그에 따라 아무런 진리치도 결정되지 못한다. 반면 상술하였듯 Russell의 이론에서 (3)은 거짓으로 판명된다. Russell의 기술구 이론에 따르면 ‘Kennedy 형제의 암살범은 단칭용어가 아니라 기술구로서, 그 기술구가 분석됨에 따라 (3)의 논리적 형식이 ‘Fa’ 형식과는 판이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기술구가 분석된 형식의 진리-조건은 만족되거나 만족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다음 문장을 생각해보자(여기서 ‘Ness호 괴물‘Ness호에 사는 (유일한) 괴물을 의미하는 한정 기술구라고 가정한다):

 

(4) Ness호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2장에서 설명하였듯이 존재한다라는 단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 가능하다. 첫 번째로, ‘은 뚱뚱하다’, ‘은 현명하다처럼 통상적인 1-수준 술어first-level predicate로 간주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석된다면 존재nonexistence술어인 은 존재하지 않는다do not exist는 모든 대상에 대해 거짓이기에, (4)와 같은 형식의 모든 문장은 결코 참일 수 없다. 다시 Frege의 이론을 떠올려보라. (4)의 진리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Ness호 괴물의 지시체를 찾아내어 존재 술어가 그에 대해 참인지(즉 그것이 존재 술어를 만족하는지) 여부가 판가름되어야 한다. ‘Ness호 괴물이 지시체를 갖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4)는 거짓으로 판명된다. (4)가 정말 거짓이라면 Frege 이론에는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4)가 분명 참이라는 점이다. (4)가 참이라는 것이 Frege 이론 내에서 어떻게 결정될 수 있겠는가? ‘Ness호 괴물이 치시체를 갖지 않는다면 (4)참도 거짓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바 당연히 참이 아니다. 이는 Frege 이론에 따라 (3)이 참도 거짓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던 것과 동일한 귀결이다.

존재한다를 통상적인 1-수준 술어로 해석할 경우 Russell의 이론에서 (4)는 참인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FregeRussell 모두 존재한다에 대한 이런 관점을 채택하지 않으며, ‘존재한다에 대한 두 번째 해석으로서 존재는 존재 양화사existential quantifier에 의해서만 표현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예를 들어 개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면 술어 은 개다에 양화사를 부가하여6)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는 개다)[(x)Dx]’와 같이 말해야 한다. 반면 단칭용어에는 존재 양화사[(는 물론이요 보편 양화사 역시)]가 유의미하게 결합될 수 없다. 예컨대 Fido가 존재함을 말하기 위해 그러한 x가 존재한다 (Fido)[(x)f]’라 표기할 수는 없다. 존재표현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 따르자면 (4)는 어떻게 분석되는가? Frege 이론에서 문제가 되는 사안은 [‘존재한다를 양화사로 해석하더라도] (4)의 내용을 표현할 직접적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Ness호 괴물이 단칭용어라면, (4)에는 양화사가 결합됨으로써 문장을 형성할 수 있게끔 해주는 술어 자체가 없는 셈이다.7) [(4)Fido 문장의 경우처럼 그러한 x가 존재한다 (Ness호 괴물)[(x)n]’과 같은 -적형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6) 논리학적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술어 ‘𝛼는 개다[D𝛼]’가 나타나는 개방문 ‘x는 개다[Dx]’의 변항을 존재 양화사로 속박해야 한다.

7) 논리학적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변항과 결합되어 개방문을 형성한 뒤 그 변항을 양화사가 속박할 수 있게끔 해줄 술어가 없는 셈이다.


(4)의 진정한 형식을 다음과 같이 분석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4) 부정: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Ness호 괴물) [(x)x=n]

 

물론 앞서와 다르게 이 문장에는 ‘𝛽=Ness호 괴물[𝛽=n]’이라는 술어가 포함되어있긴 하다. [존재 양화사가 결합되어 적형문을 형성할 수 있도록, 의미상 적당한 술어인 동일성 관계술어가 도입된 셈이다.] (4)에서 이 술어는, 좌변이 존재 일반화된 뒤 문장 전체가 부정된 동일성 진술의 맥락에서 나타나고 있다. 동일성 진술은 좌변에서 명명된 대상이 우변에서 명명된 대상과 동일한 경우 참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거짓이다. 따라서 (4) 전체는 동일성 진술 형식의 내부 개방문 ‘x=Ness호 괴물이 좌변의 x로 취해지는 모든 대상에 대해 거짓이라 말하고 있다.8) 하지만 우변에서 명명되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동일성 진술 형식의 내부 개방문이 만족되는지 여부는 여전히 결정되지 않]는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Frege 이론이 단칭존재부정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궁극적인 결점은, ‘Ness호 괴물과 같은 표현들의 의미론적 기능을 지시적 용어라고 간주하는 데에 있다.


8) 사실 이는 ‘(x)xn’이며, 이는 부정 연산자와 보편/존재 양화사가 결합된 문장들 간 동치쌍에 의해 (4)와 동치이다.


Russell의 기술구 이론에 따르면 (4)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4)에 나타나는 ‘Ness호 괴물은 지시적 용어가 아니라 한정 기술구로 간주되며 이는 양화사를 이미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F’를 술어 Ness호 괴물이다로 해석한다면 (4)의 논리적 형식은 다음과 같다:

 

(4✻✻) 부정: 그러한 x가 존재한다 (Fx모든 y에 대해 (Fyy=x))

(x)(Fx(y)(Fyy=x))

 

[이 문장은 모든 x에 대해, 연언문 형식의 내부 개방문 ‘Fx모든 y에 대해 (Fyy=x)[Fx(y)(Fyy=x)]’이 거짓이라 말하고 있다. 연언문이 거짓이기 위해서는 연언지 중 하나만 거짓이어도 충분하며 첫 번째 연언지인 ‘Fx’가 모든 x에 대해 거짓이므로 (4✻✻) 전체는 참이다. 이는 원래의 문장 (4)가 참이라는 우리의 직관에 부합한다.] (물론 Ness호 괴물이 하나보다 많더라도[(Ness호 괴물이 정확히 하나임을 말하고 있는 두 번째 연언지 모든 y에 대해 (Fyy=x)’가 거짓이더라도] (4✻✻)는 참이 된다.)

전 장에서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문제는 일반존재부정문에서는 발생하지 않으며 오직 단칭존재부정문에서만 발생한다. 예컨대 FregeRussell용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논리적 형식이 모든 x에 대해 (x는 용이 아니다)[(x)Dx]’, 또는 그와 동치인 부정: 그러한 x가 존재한다(x는 용이다)[(x)Dx]’로 분석된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요컨대 일반존재부정문의 경우 과 같은 일반용어가 문법적으로 주어 자리에 오긴 하지만 기실 의미론적으로는 단칭용어가 아니라 은 용이다와 같은 술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술어의 외연이 집합이더라도 공허한 단칭용어가 포함된 단칭존재부정문의 경우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기술구 이론은 동일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Russell이 들었던 George 4세에 관한 예를 다시 살펴보자:

 

(5) George 4세는 Scott = Waverley의 저자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

(6) George 4세가 Scott = Scott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두 문장은 분명 참이며, 이와 더불어 다음 문장 역시 참이다:

 

(7) Scott = Waverley의 저자.

 

Waverley의 저자를 지시적 용어로 간주한다면, (5)(7)로부터 [대체성 원리에 따라] 다음을 추론할 수 있다:

 

(8) George 4세는 Scott = Scott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

 

이는 (6)과 명백히 모순된다. 요컨대 [대체성 원리와] (7)에 따르면 ‘Scott’가 나타나는 곳마다 그것을 Waverley의 저자로 대체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5)로부터 (8)을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참인 전제들로부터 올바른 추론규칙에 의해 도출된 (8)(6)과 모순된다. [전제들이 참이고 도출과정이 타당하므로, 남은 문제는 Waverley의 저자를 지시적 용어로 간주한 데에 있는 셈이다.]

기술구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난점은 다음과 같이 해결될 수 있다: 우선 Waverley의 저자는 한정 기술구이다. 동일성 문장 (7)은 그 기술구를 포함하는 FG하다의 형식을 지니고 있는바, 이 경우 ‘F’Waverley의 저자이다이고 ‘G’=Scott(Scott과 동일하다)’이다. 이에 (7)을 기술구 이론에 따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고쳐쓴다:

 

(9)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Waverley의 저자이다모든 y에 대해 (yWaverley의 저자이다y=x)x=Scott).
(x)(Wx(y)(Wyy=x)x=c)

 

그런데 (7)은 명제적 태도 문장인 (5)에서 명사절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5) 역시 다음과 같이 분석된다:

 

(5) George 4세는 다음이 참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Waverley의 저자이다모든 y에 대해 (yWaverley의 저자이다y=x)x=Scott).
Wg[(x)(Wx(y)(Wyy=x)x=c)]
[(편의를 위해 ‘Wx[p]’‘xp가 참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를 의미하는 명제적 태도 연산자로 도입하자.)]

 

(5)의 진정한 논리적의미론적 형식인 (5)(6)과 모순되지 않는다. (5)에서 나타나는 단칭용어란 (‘George 4Waverley를 제외하면) ‘Scott’ 뿐이며, 따라서 (7)에 의거한다고 해도 (5)로부터 (8)을 도출할 수는 없다. 한정 기술구 Waverley의 저자Russell이 말했듯이 분석에 의해 사라진다disappear”. 핵심은 원래의 문장 (5)에는 겉보기와 다르게 ‘Scott’로 대체될 단칭용어가 없었다는 점[Waverley의 저자는 본디 단칭용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제가 남아있다. 다음이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10) Mary는 귀신 고블린이라고 믿는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귀신과 고블린 모두 존재하지 않으므로 두 술어 은 귀신이다은 고블린이다-외연적이며 따라서 상호대체 가능하다. 이에 위 문장으로부터 ‘Mary는 귀신 귀신이라고 믿는다가 도출된다. 요컨대 (Frege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외연을 갖는 술어들이 -지시적임을 받아들인다면 Russell 역시 문제에 봉착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ussell-외연적 술어들이 각기 다른 실체, 예를 들면 속성property 또는 보편자(普遍者)universal를 지시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위장된 한정 기술구로서의 이름

 

Russell은 존재 문제와 동일성 문제가 한정 기술구뿐만 아니라 고유명의 경우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공허한 고유명이 나타나는 단칭존재부정문은 분명 유의미하면서 참이다:

 

(11) Pegasus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지시적 고유명이 나타나는 다음 세 문장은 일관적인 듯하다:

 

(12) JohnGeorge Eliot이 작가라고 믿는다.

(13) JohnMariane Evans가 작가라고 믿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14) George Eliot = Mariane Evans.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ussell은 통상적인 고유명ordinary proper name실제로는 지시적 표현이 아니라 단지 위장된 한정 기술구disguised definite description라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존재 문제의 사례로 제시된 고유명 ‘Pegasus’의 실제 의미는 한정 기술구 형태의 날개 달린 말the winged horse과 같은 것이 된다. [이 기술구는 앞서 살펴본 기술구 이론에 따라 분석되고, 그 결과 나타나는 술어 은 날개 달린 말이다를 만족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에 (12)는 참인 것으로 판명된다.] 이러한 방책은 [고유명이 그 지시체와 결부된 속성이나 사항들을 기술하는 뜻을 갖는다는] Frege의 이론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Frege의 이론은 (12)가 유의미하면서도 진리치를 갖는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하는 반면 Russell의 이론은 이를 만족스럽게 설명해낸다. Frege 이론은 (12)가 유의미하되 참도 거짓도 아니라고 판정하지만, Russell의 기술구 이론은 ‘Pegasus’날개 달린 말이 위장된 형태의 기술구로 간주하여 이를 분석해낸 뒤 분석된 문장이 참임을 결정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직관에 부합한다.

동일성 문제의 사례로 제시된 ‘George Eliot’은 어떠한가? ‘Pegasus’와 달리 이러한 고유명의 경우엔 이름과 결부된 의미를 갖는 단 하나의 한정 기술구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듯하다. 예컨대George Eliot에 대해 AMiddlemarchDaniel Deronda의 저자로만 알고 있고, BSilas MarnerFloss 강변의 물방앗간의 저자로만 알고 있다 해보자. 그럼에도 AB 둘 다 ‘George Eliot은 독일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문장을 무리 없이 이해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Russell은 각 고유명이 특정한 하나의 한정 기술구와 동등한 것은 아니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한 사람이 통상적인 고유명을 사용하거나 이해understand할 때마다, 그 고유명은 그 사람의 생각 속에서 특정한 하나의 한정 기술구와 동등하다. 이를 일반화하자면, 고유명 ‘a’가 나타나는 임의의 문장 a에 대해 다음이 성립한다:

 

임의의 주체subject B와 임의의 고유명 ‘a’에 대해, B‘a’를 문장 a에서 사용할 때마다, B에게는 aF가 동의적인 문장이라 받아들여지는 그러한 하나의 한정 기술구 F’가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고유명은 다소 특이한 성격을 갖는바, 통상적인 고유명이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 그 고유명은 하나의 한정 기술구가 축약된 것과 마찬가지이되, 사용될 때마다 항상 동일한 기술구가 축약되는 것은 아니다.

 

 

직접대면에 의한 인식과 기술구에 의한 인식

 

내가 Wiggins 씨라 불리는 이를 마을 빵집 주인으로만 알고 있고 그에게 딸이 하나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고 하자. 당신은 동일인 Wiggins 씨를 당신의 친구 Esmeralda의 아버지로만 알고 있고 그가 종사하는 직업은 모른다 하자. 이 경우 Frege에 따르면, 내가 ‘Wiggins 씨는 참 재미있는 분이셔라 말한다면 당신은 나의 진술을 이해하는 것처럼 반응하겠지만, 나의 진술을 나는 마을 빵집 사장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다로 이해하고 당신은 ‘Esmeralda의 아버지는 참 재미있는 분이다로 이해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는 공통적인 토대란 무엇인가? 우리가 공통으로 이해하는 아무런 명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난점에 대해 Frege는 고유명의 지시체에 대해 대화 참여자들 간 공통 지식이 없더라도[즉 동일한 지시체를 결정해주는 각기 다른 뜻들을 이해하고 있더라도], 일상적이고 -과학적인non-scientific 목적에서라면 어떻게든 조악한 방식으로나마 의사소통이 이뤄진다고 생각하였다. 언어표현의 지시체가 동일하기만 하다면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데에는 그다지 큰 무리가 없으며, 그 경우 우리는 다소 격하된 의미의 의사소통을 하는 셈이다.

Russell 역시 [고유명을 의미론적으로 Frege의 뜻과 유사한 위장된 한정 기술구로 간주하기에] 다소 동일한 난점을 지니고 있지만 Frege에 비해 좀 더 공들인 해답을 내놓는다. Russell을 따라 고유명이 실제로는 한정 기술구가 축약된 것이라 해보자. 그렇다면 진정한 지시적 표현이란 과연 있는가? Russell이 말한 논리적 고유명logically proper name이라는 것이 있는가?

[지시체의 존재를 선제하는 진정한 지시적 표현, 지시체가 있는 경우에만 유의미한 논리적 고유명이] 만약 없다고 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귀결을 가져온다. 아무런 지시적 표현이 없다면 아무런 원자문장도 전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자문장이 존재하지 않음에 따라 ‘FaRab’같은 진리-함수적 복합문장 역시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원자문장이 없다고 하면 왜 문제가 되는가? 원자문장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모든 문장은 다음과 같은 형식의 일반화 문장generalisation들일 것이다:

 

모든 x에 대해 (x)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

 

(물론 이러한 일반문들이 논리적 연결사로 결합된 진리-함수적 복합문 역시 존재하겠지만, 이는 차치해두도록 하자.) 이러한 일반문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컨대 첫 번째 형식처럼 모든 xF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보편 양화문은 각각의 대상 x에 대해 ‘Fx’가 참이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x에 대해 (x)’ 형식의 보편 양화문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음은, 그 내부 개방문의 모든 대입례each instance가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양화문 전체가 참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는 데에 근거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설명하자면 a, b, c 등등이 [논의영역 내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일 경우, 보편 양화문 모든 x에 대해 (Fx) [(x)Fx]’는 그 대입례들의 연언인 ‘Fa이고 Fb이고 Fc이고 [FaFbFc ]’를 의미한다. 이렇듯 일반화 문장들에 대한 이해는 그 대입례들인 원자문장들에 대한 이해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런 연유로 원자문장이 불가능하다면 언어에 대한 적절한 설명 역시 불가능하며, 원자문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문장의 유의미성을 담보해주는 진정한 지시적 표현 즉 논리적 고유명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통상적인 고유명이 논리적 고유명이 아니라 가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첫째, 통상적인 고유명이 포함된 문장의 유의미성은 이름의 담지자의 존재를 선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공허한 단칭용어의 경우 지시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용어가 나타나는 문장은 유의미하다. Le Verrier는 존재하지도 않는 Vulcan이 뜨겁다는 명제를 믿을 수 있었다.] 둘째, nn가 통상적인 고유명이고 n=n가 참이더라도, 양자가 모든 문장에서 진리지 보존적으로salva veritate(즉 진리치의 변경 없이) 상호대체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명제적 태도가 드러나는 문장에서는 -지시적 표현들을 상호 대체하여도 진지리가 보존되지 않는다. ‘Hesperus = Phosporus’가 참이더라도, John은 전자가 행성이라 믿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고 믿을 수 있다.

[통상적인 고유명이 이렇듯 지시체를 통해 문장의 유의의미성을 보증해주는 논리적 고유명이 아니라면] 우리는 ‘Pegasus는 날 수 있다와 같이 공허한 고유명이 포함된 문장의 의미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의미가 지시와 동일하다는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 원리를 고수하는 Russell로서는, 지시체의 존재가 유의미성을 담보해주는 논리적 고유명과 다르게, 통상적인 고유명이 지시를 결여함에도 유의미하게 사용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Pegasus는 날 수 있다는 문장의 내용content에 대해 우리가 특정한 태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인 것처럼 여겨진다. JohnPegasus가 존재한다고 믿는 한에서라면 Pegasus가 날 수 있다는 믿음 역시 충분히 가질 수 있으며, 그 경우 Pegasus가 날 수 있다는 명제가 분명 존재해야만 한다. 믿음belief이란 명제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Pegasus’와 같은 통상적인 고유명이 공허함에도 유의미할 수 있음은, 이름의 담지자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 단지 우리가 실수mistake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논리적 고유명은 그 지시체의 존재 여부에 대해 실수할 수 없는 그러한 이름이어야 한다.

-지시적 고유명들의 상호대체 실패 역시 마찬가지이다. ‘George Eliot = Mariane Evans’가 참임에도 불구하고 두 고유명의 의미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즉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 원리를 고수하는 Russell로서는, 지시체의 동일성이 동의성을 담보해주는 논리적 고유명과 다르게, -지시적인 통상적 고유명들의 의미가 상이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George Eliot = Mariane Evans임을 믿지 않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상적 고유명들의 지시체가 동일함에도 의미가 다를 수 있음은, 이름의 담지자들 간 동일성 여부에 대해 단지 우리가 실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논리적 고유명은 그 담지자가 어떤 대상인지에 대해 즉 지시체의 동일성에 대해 실수할 수 없는 그러한 이름이어야 한다.

논리적 고유명에 대한 요점을 한데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논리적 고유명이란, 그 담지자의 존재 동일성에 대해 실수할 수 없는 이름이다. 대상이 여차여차하다such-and-such고 기술하는 용어 즉 한정 기술구가 논리적 고유명임을 부정하기 위해 Russell이 들었던 이유들은 이제 더 이상 주효하지 않다.9)


9) ‘한정 기술구 이론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최초에 Russell이 한정 기술구를 진정한 지시적 표현이 아니라 간주했던 이유는, 기술구가 포함된 문장의 심층적인 논리적의미론적 형식이 분석됨에 따라, 한정 기술구의 의미론적 역할이 단칭용어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위장된 한정 기술구로서의 이름절에서 살펴보았듯이 통상적인 고유명 역시 심층적인 분석 수준에서는 한정 기술구가 위장된 표현인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이는 통상적인 고유명도 논리적 고유명이 아님을 함축한다.) 반면 연후에 논리적 고유명에 대한 기준으로서 언어표현의 유의미함 자체가 표현의 지시체를 담보해야 한다는 조건이 밝혀짐에 따라, 한정 기술구(와 통상적 고유명)이 진정한 지시적 표현이 아닌 궁극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논리적 고유명에 대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게 된 셈이다.


과연 그러한 논리적 고유명이라는 것이 있는가? Russell에 따르면 그렇다. 그 존재와 동일성에 대해 우리가 실수할 수 없는 사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적어도 Russell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한 것들로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

 

감각-자료sense-data

보편자(普遍者)universal

자아the self

 

에 대한 논의는 언어철학의 영역을 벗어나기에 차치해두고 여기서는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한다.

 

감각-자료

 

만약 당신이 지금 시각적으로 빨간색을 경험하고 있거나 목에서 간지러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러한 경험과 느낌을 잘못 느낀 것이라 가정하거나 혹은 하나의 감각-자료sense-datum를 그것 아닌 다른 감각-자료와 혼동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해 보인다. 당신은 어떤 소리를 빨간색으로 오인할 수는 없다. Berkeley가 말했듯이 감각적 느낌이나 감각적 경험에 대해서는 존재하는 것이 곧 지각되는 것이다to exist is to be perceived”. 그에 따르면 어떤 사물이 저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인 이유는, 그 사물이 저것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이것으로서 지각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Descartes주의적Cartesian관점에 따르면, 사유의 주체는 주체의 정신mind 속 내용을 즉각적으로automatically 알고 있다. [따라서 감각-자료 혹은 감각-경험은 논리적 고유명의 지시체에 대한 기준으로서 그 존재와 동일성에 대해 실수할 수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감각-자료에 대해 ‘Sigmund’, ‘Elizabeth’와 같은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 감각-자료가 논리적 고유명의 지시체라는 Russell의 주장은 실제로는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책상과 같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들에 관해 무언가를 말한다. 내가 어지럽혀진 내 책상을 보며 이 책상은 어수선하다고 말한다 해보자. Russell에 따르면 그 경우 내가 실제로 하고있는 일이란 책상에 대한 감각-자료를 통해via 책상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책상 자체가 아니라 책상의 감각-자료인 것이다.] 물론 책상이 실제로 거기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착각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지닌 감각적 인상(印象)sense impression에 대해서는 결코 실수할 수 없다. [책상에 대한 환각을 경험하는 경우 책상 자체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환각으로 경험하고 있는 나의 느낌은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나의 진술은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THIS(책상-모양으로 이뤄진 감각-자료들의 집단)의 외적 원인the external cause THIS은 어수선하다.

 

물론 나의 실제 발화에서는 이것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경험한 감각-자료들을 직접적으로directly 지시하기 위해 나는 그 단어를 생각 속에서 사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즉 나는 지시대명사 이것을 감각-자료를 지시하는 논리적 고유명으로 사용한 셈이다. 반면 책상 자체는 Russell의 용어법에 따르면 직접적으로 지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의 외적 원인the external cause of THIS이라는 한정 기술구에 의해) ‘지칭denote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한정 기술구는 기술구 이론에 따라 분석될 것이다.

 

보편자

 

내가 지구는 둥글다고 생각한다 해보자.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지구가 논리적 고유명이라 가정하자.) 물론 나는 둥긂roundness이라는 속성property을 예화하는instantiate 대상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 실수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실수할 수 있는 속성들은 분명 매우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나는 둥긂이라는 속성의 존재 자체에 대해 실수할 수 있는가? 이는 불가능한 듯하다. 나는 둥긂이라는 속성이 여타 속성과 동일한지 여부에 대해 실수할 수 있는가? 이는 상상가능한imaginable 듯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둔각임being eauiangular이라는 속성과 등변임being equilateral이라는 속성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혹자는 도대체 어떤 속성이 둥긂이라고 불리는지에 대해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들은 차치한 채 다음과 같이 가정해보자: 지구는 둥글다와 같은 명제에서 둥긂 등의 속성을 지시하거나 의미할 때, 우리는 그 속성의 존재와 동일성에 대해 실수할 수 없다. 1항 속성뿐만 아니라 n-항 관계까지 포함되도록 이를 일반화하자면, 하나의 원자문장을 생각하는 경우 우리의 사고는 그 명제에서 말해지는 보편자의 존재와 동일성에 대해 실수할 수 없다.

Russell의 용어로 말해보자면 원자명제의 적절한 주어subject 역할을 할 수 있는 실체는 우리가 지각하는perceive 실체 즉 감각-자료이다. 원자명제의 술어 역할을 할 수 있는 실체는 우리가 생각하는conceive 실체 즉 보편자이다. 감각-자료는 지각perception의 대상이고 보편자는 사고thought의 대상으로서 양자는 원자명제의 구조 내에서 논리적으로 각기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감각-자료와 보편자에 대해 우리가 맺는 관계는 인식론적으로 매우 특별한바, 우리는 양자의 존재와 동일성에 대해 결코 실수할 수 없다. Russell은 이를 직접대면의 관계relation of acquaintance라 칭하여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원리를 정식화한다:

 

직접대면의 원리principle of acquaintance: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임의의 명제는 우리가 직접 대면하는 실체들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즉 명제를 구성할 때 우리는 우리가 직접대면한 사물들에 관한 지식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Russell에 따르면 우리는 책상이나 나무 자체를 직접 대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책상이나 나무에 관한 원자명제 혹은 그것들을 [구성요소로서] “포함하는contain원자명제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참이라면 우리가 사물들에 관해 말하며 의사소통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해 Russell은 다소 당혹스럽긴 하지만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답변을 제시한다. 우리 목전에 책상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이 책상은 둥글다라고 말한다. 그 경우 나는 내가 지각한 감각-자료들에 대한 지시와 의 외적 원인이라는 개념을 포함하는 하나의 한정 기술구를 통해via 그 책상을 지칭denote한 셈이다. 내가 지각한 감각-자료들 집단을 ‘𝜙’라 칭하여 그 한정 기술구를 ‘𝜙의 외적 원인이라 하자. 내 말을 들은 당신은 당신 자신의 감각-지각sense-perception을 통해 새로운 기술구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나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당신의 감각-자료들 집단을 ‘𝜓’라 칭하여 당신의 한정 기술구를 ‘𝜓의 외적 원인이라 하자. 모든 상황과 조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한, 𝜙의 외적 원인 = 𝜓의 외적 원인이다. 이에 우리가 가정해본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생각한다: 𝜙의 외적 원인은 둥글다.

당신은 생각한다: 𝜓의 외적 원인은 둥글다.

𝜙의 외적 원인 = 𝜓의 외적 원인.

 

물론 우리는 상대방의 감각-자료를 직접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둘 중 어느 누구도 𝜙의 외적 원인 = 𝜓의 외적 원인임을 단정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우리 둘 다 책상에 대해서는 Russell이 칭한바 직접대면에 의한 지식knowledge by acquaintance을 갖고 있지 않다. [즉 전술했듯이 우리가 책상 자체를 직접 대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𝜙의 외적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당신은 𝜓의 외적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여기서, 우리의 지각에 감각-자료를 야기하는 외부대상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회의주의는 잠시 제쳐두도록 하자), 우리 둘 다 어떤 대상 x(책상)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셈이며,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사물이 곧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물과 동일하다는 점은 그러한 사실에 의해 보증된다. Russell의 용어로 말하자면 우리는 책상의 존재에 대해 기술구에 의한 지식knowledge by description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과 나는 다음과 같은 형식의 단칭명제singular proposition

 

a는 둥글다,

 

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셈이며, 이 명제가 내가 생각하는 명제 및 당신이 생각하는 명제 양자와 동치임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명제 자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왜냐하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a를 직접대면할 수는 없으며, 다만 a는 둥글다와 같은 명제가 존재한다는 것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재reality에 대해 맺는 인식론적 관계를 이렇듯 경험주의적empirical으로 사고하는 방식은 Locke Hume의 인식론과 매우 흡사하다. 이런 연유로 Russell은 일반적으로 경험주의자empiricist로 간주된다.

 

 

역사적 사항

 

수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Mathematics(1903)에서 Russell은 언어를 아주 투명한transparent 것으로 생각하였다. 우리는 언어에서 의미된 실체를 언어를 통해 see수 있으며, 언어의 기저에 있는 논리적 형식, 즉 사실(事實), 보편자, 대상 등이 지니고 있는 형식이 언어표현의 외적 형식과 상당히 대응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에 Russell은 소박한 의미론에 대체로 동의하였다. 그가 부분적으로 소박한 의미론으로부터 차츰 벗어나기 시작한 결정적인 지점은 지칭 개념denoting concepts에 관한 이론으로서, 이는 다소간 Frege의 핵심 착상에 동의하는 이론이었다. 이 관점에 의해 Russell은 언어 자체에 관한 질문이 도외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어를 통해 의미하고자 하는 실재에 대한 사안일 뿐, 오롯이 언어 자체를 탐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정적으로 지칭에 관하여On Denoting(1905)에서 표명된 기술구 이론에 이르는바, 그 이론에 따르면 언어의 논리적 형식은 표층적인 문법형식과 매우 다를 수 있다. 이 글이 발표될 당시까지도 Frege의 저작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분석철학은 Russell의 이 논문에서 시작되었다고 여겨지고는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Russell은 논리적으로 훈련된 철학자들만이 캐낼 수 있는 철학적인 광맥의 발견자, 조악한 일상언어의 기저에 수정같이 맑고 순수한 형태로 숨겨져 있는 명제라는 영역의 개척자였던 셈이다.

[Russell의 철학은 시기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변모하였는데] 이번 장에서 살펴본 형태의 Russell 철학은 철학의 문제들The Problems of Philosophy(1912)에서 개진된 것이다. (이 시기는 수학이 논리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소위 논리주의 논제thesis of Logicism를 정교화하기 위해, A. N. Whitehead와 더불어 대작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1910, 1912, 1913)를 공저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관점은 다시 급격하게 변하여 그 유명한 논리 원자론logical atomism에 이르게 된다. 이 이론의 골자를 대강 말해보자면, 일상적인 물질적 대상material object이란 단지 감각-자료들의 무리일 뿐, 감각-자료 배후에서 그것을 야기하는 어떤 것[(예컨대 Kant자체와 같은 감각-자료와는 별개의 물질적 실체)]이 아니다. 1910년부터 Russell에게 수학하기 시작한 젊은 WittgensteinRussell의 원자론적 착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초기 저서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1)에서 논리 원자론적 형태의 철학을 개진하였으며, Rudolf Carnap세계의 논리적 구조The Logical Structure of the World/Der logische Aufbau der Welt(1928)에서 Russell Wittgenstein의 논리 원자론과 많은 측면에서 유사하면서도 더욱 엄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Alfred Jules Ayer 역시 Russell의 논리 원자론의 기초적인 관점을 받아들인 인물들 중 하나이다. 세 인물의 이론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

8장과 10장에서 다뤄질 W. V. QuineRussell의 기술구 이론과 수학 기초론에 관한 작업으로부터 큰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인식론적 관점에서는 1912Russell이 제시한 형태의 원자론적 도식에 반대하고 전체론holism이라 일컬어지는 유명한 대안적 이론을 제시한다.

Frege와 더불어 여기 제시된 인물들 모두는 존재existence가 예컨대 둥긂과 같은 대상의 속성이 아니며 [따라서 통상적인 술어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존재 양화사에 의해서만 표현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반면 Alexius Meinong(1853-1920)은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였으며 이는 존재 문제에 관한 Russell의 입장과 종종 대비되고는 한다. [존재를 속성으로 간주하는] 소위 ‘Meinong주의Meinongism는 최근 형이상학적으로 정향된 언어철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로서, 이에 관해서는 12장에서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이번 장의 요약

 

Russell의 과업은 Frege가 뜻과 지시이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던 문제를, Frege와 달리 뜻이라는 범주를 상정하지 않고 지시만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 문제들은 크게 존재 문제와 명제적 태도 맥락에서의 대체 문제로 대별된다.

첫 번째 단계로 Russell은 기술구 이론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모든 단칭용어는 한정 기술구 F(F한 그것)’의 형태로 표기될 수 있으며, 몇몇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한정 기술구 F’를 포함하는 모든 문장은 (복합적일 수도 있는) 임의의 술어 ‘𝛼G하다에 대해 FG하다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FG하다그러한 x가 존재한다 (Fx 부정: 그러한 y가 존재한다(Fy xy) Gx)[(x)(Fx&∼(x)(Fyxy)Gx)]’와 동치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자연언어로 풀어보자면 ‘F한 것이 단 하나 존재하며, 모든 FG하다이다.

두 번째 단계로 Russell은 통상적인 고유명이 실제로는 위장된 한정 기술구, 즉 한정 기술구가 축약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누군가 이름 ‘Bob’을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 엄밀하게 말해 그 이름이 진정 의미하는 바는 내 앞에 있는 사람따위의 기술구와 동치이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고유명 ‘a’가 나타나는 문장] ‘aG하다[‘a’로 위장된 한정 기술구 F’가 나타나는] ‘FG하다의 형식을 지닌 것으로 분석되며, a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이 문장은 단순히 거짓인 것으로 판명된다. 반면 Frege의 이론에 따르면 그 경우 이 문장은 참도 거짓도 아닌 것으로 남는다. 뿐만 아니라 ‘a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같은 소위 단칭존재부정문부정: 그러한 것이 정확히 하나 존재한다 (Fx)[(x)(Fx&∼(x)(Fyxy))]’의 형식을 지닌 것으로 분석되며, a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이 문장은 참인 것으로 판명된다. 반면 Frege의 도식은 이러한 문장의 진리치 역시 올바르게 결정하지 못한다.

명제적 태도 문제의 해결책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서, 요는 명시적이든 위장된 것이든 한정 기술구를 기술구 이론에 따라 분석하는 것이다. Russell에 따르면 명제적 태도 맥락에 나타나는 한정 기술구가 일단 분석되기만 하면 철학적 퍼즐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예를 들어 ‘Scott = Waverley의 저자가 참이기에, ‘George 4세는 Scott = Waverley의 저자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George 4세가 Scott = Scott인지 여부를 궁금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는 일견 상호 일관적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한정 기술구 Waverley의 저자가 기술구 이론의 방식으로 분석되면 [‘Scott’으로 대체될 수 있는 단칭용어가 없음이 드러남에 따라] 이러한 모순은 사라지게 된다.

Russell이 보기에 진정한 논리적 고유명, 즉 위장된 한정 기술구로서 분석될 수는 없는 고유명이란 감각-자료(그리고 자아)를 나타내는 표현들이다. 이에 Russell은 그의 유명한 인식론적 입장으로서 직접대면에 의한 지식과 기술구에 의한 지식을 구분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인식론적 구도의 핵심은 직접대면의 원리로서, 이에 따르면 우리가 이해하는 임의의 명제는 우리가 직접대면한 실체들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탐구문제

 

1. 참인 단칭존재부정문의 문제를 Frege의 이론으로 해결하는 데에 내적/외적 부정을 구분하는 Russell의 전략이 활용될 수 있겠는가?

2. 연산자의 범위에 대한 Russell의 구분을 활용하여, ‘Ludwig는 선반 위의 그 쿠키가 바나나맛이라고 생각했다Ludwig의 착오에 따라 어떻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 논하라.10)


10) 이 문제는 일견 기이하게 여겨진다. 제시된 예문은 직관적으로 중의적이라 여겨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정 기술구 그 쿠키를 기술구 이론에 따라 분석하여 나타나는 존재 양화사의 범위와, 명제적 태도 연산자 라고 생각하다의 범위를 이번 장에서 소개된 바에 따라 구분해보면, 이 문장이 중의적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첫 번째로, 이 문장은 실제로 쿠키가 존재하고 Ludwig그것이 여차여차하다고 믿고 있음을 기술하는 문장, 선반 위에 쿠키가 있는데 Ludwig는 그것이 바나나맛이라 생각한다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Ludwig가 저지를 수 있는 착오는 존재하는 그 쿠키가 바나나맛인지 여부이다. 이는 한정 기술구의 존재 양화사가 넓은 범위를 취하는 것으로 해석된 경우로서,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는 선반 위의 쿠키이다모든 y에 대해 (y는 선반 위의 쿠키이다 y=x)Ludwig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x는 바나나맛이다])’로 분석된다. 명제적 태도 연산자 ‘xp라고 생각한다‘Tx[p]’로 도입하여 이 문장을 기호화하자면 ‘(x)(Cx(y)(Cyy=x)Tl[Bx])’이다. 전술한바 이 해석에서 Ludwig가 착각할 수 있는 사안은 형식문에서 명확히 드러나듯이 명제적 태도 연산자의 영향권 내에 있는 ‘Bx’뿐이다. 따라서 문장 전체의 진리치는 ‘Bx’가 만족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연언문 형식의 내부 개방문을 구성하는 각 연언지들을 모두 만족하는 x가 존재하는지(즉 선반 위에 쿠키가 있는지(‘Cx’), 그것이 단 하나인지(‘(y)(Cyy=x)’), Ludwig가 그것을 바나나맛이라 생각하는지(‘Tl[Bx]’) 등이 모두 만족되는지) 여부에 따라서만 결정된다. 전문적으로 논하자면, 존재 양화사가 넓은 범위를 취할 경우 양화사는 명제적 태도 연산자의 영향권 외부에 있는바 외연적 맥락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속박변항의 값(즉 논항)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문장 전체의 진리치에 관여한다.
두 번째로, 이 문장은 Ludwig가 쿠키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존재하는 것으로 믿어진 그것이 여차여차하다고 믿고 있음을 기술하는 문장, ‘Ludwig는 선반 위에 특정 쿠키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바나나맛이라 생각한다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Ludwig가 저지를 수 있는 착오에는 쿠키가 바나나맛인지 여부뿐만 아니라 쿠키가 존재하는지(그리고 그것이 단 하나인지) 여부 역시 포함된다. 이는 명제적 태도 연산자가 넓은 범위를 취하는 것으로 해석된 경우로서, ‘Ludwig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는 선반 위의 쿠키이다모든 y에 대해 (y는 선반 위의 쿠키이다 y=x)x는 바나나맛이다)]’로 분석된다. 앞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기호화하자면 ‘Tl[(x)(Cx(y)(Cyy=x)Bx)]’이다. 전술한바 이 해석에서 Ludwig가 착각할 수 있는 사안은 형식문에서 명확히 드러나듯이 명제적 태도 연산자의 영향권 내에 있는 ‘(x)(Cx(y)(Cyy=x)Bx)’ 전체이다. 따라서 문장 전체의 진리치는 이 존재 양화문의 진리치, 특히 실제로 선반 위에 쿠키가 있는지(‘(x)(Cx)’) 여부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Ludwig의 믿음의 내용에 따라서만 결정된다. 전문적으로 논하자면, 명제적 태도 연산자가 넓은 범위를 취할 경우 존재 양화사는 명제적 태도 연산자의 영향권 내부에 있는바 외연적 맥락이 아니라 내포적 맥락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속박변항의 값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문장 전체의 진리치와 무관하다. 간단히 말해 존재 양화사가 내포적 맥락에서 나타날 경우 변항의 값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은 이뤄지지 않는다.


3. ‘몇몇 길들여진 호랑이가 존재한다는 정말로 의미가 있는가? 이를 몇몇 길들여진 호랑이가 왕의 침실에 살고 있다와 비교해보라.

4. Alexius Meinong은 존재existence(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거의) 술어라고 생각했다, Pegasus라든가 Santa Claus와 같은 가상적 존재들은 비록 실존하지는 않지만fail to exist, 사유의 대상으로서 실존과는 다른 모종의 존재방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Russell은 초기에 이와 유사한 생각을 견지하였지만 기술구 이론을 정립하면서 이 생각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과연 Russell은 옳았는가? Russell의 기술구 이론과 달리, 표층적인 문법형식과 심층적인 논리적 형식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Meinong의 이론이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다르게 말하면 형이상학적인 경제성과 의미론적인 경제성 중 어느 것이 철학적으로 더 중요시되어야 하는가?]

5. Russell의 이론은 탁자나 나무와 같은 일상적인 사물에 대한 우리의 대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과연 만족스럽게 설명해내는가?

 

 

주요 읽을거리

 

Russell, B. (1905), 지칭에 관하여On Denoting, 분석에 관한 小論Essays in Analysis, 103-19쪽 및 논리와 지식Logic and Knowledge, 41-56쪽에 수록.

, (1911), 직접대면에 의한 지식과 기술구에 의한 지식Knowledge by Aquaintance and Knowledge by Description, 신비주의와 논리, 그리고 다른 小論Mysticism and Logic and Other Essays, 152-67쪽에 수록.

 

 

추가적인 읽을거리

 

Hylton, P. (2005), 명제, 함수, 분석: Russell 철학 選集Popositions, Functions, and Analysis: Selected Essays on Russell’s Philosophy. 평이하면서도 날카로운 Russell의 글들 및 RussellFrege를 비교하는 글도 수록되어 있다.

Neale, S. (1993), 기술구Descriptions. Russell의 기술구 이론을 명쾌하게 탐구하고 있다.

Sainsbury, M. (1979), 러셀Russell. Russell 철학의 주요 측면들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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