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서양철학사 을유사상고전
버트런드 러셀 지음, 서상복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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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고유의 특징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일 수도 있는데, 후술할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단점이 더욱 부각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1. 러셀 자신과 역자가 강조하듯이 이 책은 서양철학의 흐름과 얽힌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양적으로도 철학적 내용보다는 역사적 내용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역사적 내용이 철학사의 흐름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계되는지가 그다지 명료하게 개진되어있지 않아서, 그 많은 역사적 내용들이 철학사를 이해하는 데에 질적으로도 유의미하게 기여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너무나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파편적으로 나열될 뿐이니, 나처럼 역사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다소 지루하게 여겨질 것이고, 역사적 내용보다는 순수 철학사적 지식에 큰 비중을 두어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을 바에야 차라리 교양 수준의 세계사 책 한 권을 읽고 철학사 한 권을 또 따로 읽는 편이 나을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허다한 역사적 내용과 철학적 이론들 사이에서 허우적대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양 분야에 숙련되어야만 지치지 않고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듯하다

2. 전문적인 철학사가들도 철학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에 다소의 회의를 표명하는 마당에, 러셀의 비판적 관점이 상당히 많이 노출된다는 점은 이 책에 대한 유의미한 비판이 그다지 못된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단점으로서 지적하고픈 측면은, 러셀이 각 철학자들을 비판하는 데에 끌어들이는 러셀 고유의 철학적 관점이나 이론에 대한 선이해가 없이는 이 책에 개진된 비판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일례로 16장의 버클리 철학이 평가되는 부분에서는 기초적인 인식론적 개념이나 직관을 활용하여 버클리의 논제들이 검토되는바, 비판적인 철학적 사고가 무엇인지를 날카롭고 명료하고 평이하게 예시해준다 하지만 이는 일부일 뿐이며,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비판되는 부분이라든가 플라톤의 지식론이 비판되는 부분은, 러셀의 논리철학적 언어철학적 인식론적 수학철학적 관점이나 이론을 접해보지 않은 이상, ㅃ비판의 논점이나 맥락조차도 파악하기 힘들게끔 서술되어있다 이럴진대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된 철학사적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여타 전문적인 철학사 책을 읽는 편이 나으며, 철학자들의 주요 이론에 대한 논증적인 비판을 염두에 둔다 해도 그것만 배타적으로 겨냥하여 평이하게 쓰인 여타 책들을 읽는 편이 더욱 소득이 많다

러셀의 저작이 다수 번역되어있긴 하지만 독자층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서인지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것들보다는 가벼운 성격의 저서들이 더 많은 듯하다 그런 분위기에 혹해 이 책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다가는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학술서라기보다는 교양서적에 가깝긴 하지만, 요구되는 교양의 수준이 너무 높은 교양서라는 점이 핵심적인 단점인 듯하다 워낙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책인 동시에 러셀의 방대한 역사적 철학사적 철학적 지식과 관점들이 다방면으로 녹아들어가있는 복합적인 성격의 저서이니만큼, 초심자가 읽기에는 당연히 버겁고, 철학에 다소 익숙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역사와 철학사 양자에 대한 적극적인 흥미와 강도 높은 지식을 동시에 갖추어야만 제대로 향유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전달해주는 여타 저서들이 많다는 점도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을 떨어뜨린다 러셀이 탁월한 <철학자>라는 점은 현대의 철학사적 평가가 증명해주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그가 탁월한 <철학사가>라는 점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기초적이고 교과서적인 수준으로 잘 정리된 철학사를 바란다면 전문적인 철학사가가 저술한 다른 책을 읽으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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