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신의 술래잡기

사신의 술래잡기 ㅣ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많은 추리소설이 그렇듯이 사건과 탐정, 그리고 그 옆의 탐정을 도와주는 인물이 있다. 경찰도 가끔은 능력있게 그려지지만, 좀 능력이 부족해보이는 경찰도 필요하다.

모삼과 무즈선, 좀 능력이 부족해보이는 오팀장, 반대로 좀 능력있어보이는 초지엔.

모삼의 라이벌은 사건이라기보다는 L이라는 범인이다. 연쇄살인범으로 그동안은 별로 공통점없는 여대생들을 죽이고 1000개가 넘는 조각으로 시신을 토막내었다면, 자신을 잡기 위해 나선 모삼에게 자신이 모삼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삼의 약혼녀를 살해한 때는 그녀를 강간하고 약혼녀가 임신하고 있던 아이까지 빼내어놓는 잔인함을 보인다.

셜록와 그의 친구 왓슨은 소설속에서나 영화, 드라마에서 모두 손발이 척척 맞는다.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주며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마찬가지로 모삼과 무즈선은 모삼이 셜록처럼 앞만보고 나아가는 스타일이라면 무즈선은 왓슨처럼 좀 더 냉정하고 우아하게 모삼이 잠시 놓친 것을 말해주고 모삼과 거의 같이 현장에서 증거자료를 찾아내고 추리하며 멋진 호흡을 보여준다.

L이 모삼을 이기기 위해 심리적으로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통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모삼은 해결해나간다. L이 게임하듯 던져준 시신과 짧은 정해진 시간은 이 책을 읽는 나를 긴장하고 땀나게 한다. 모삼과 함께 뛰게 하고, 무즈선처럼 모삼을 향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가 모삼을 어떻게 다음 사건에 끌어내고, 모삼은 또 어떻게 L에게 다가갈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책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책의 말미에 가면 알 수 있다. L이 아직 안 나왔는데, 내가 읽을 쪽수가 몇 쪽 안 남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시리즈로 계속되던지, 이 제목으로 2편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에세이] 흐드러지다

흐드러지다 - 혼자여서 아름다운 청춘의 이야기
신혜정 글.그림 / 마음의숲 / 2016년 3월

'발길 닿는대로'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시간 날때마다 걷기를 하는 나는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마음대로 쉰다. 그런데, '흐드러지다'라는 말이 '발길 닿는대로'와 딱 어울리는 말이라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미세먼지가 좀 심하긴 하지만 꽃망울이 화려하게 피기 시작하는 이 봄과도 딱 어울리는 말이다 싶고 뭔가 부족했던 것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다.

여행은 그 자체로만으로도 가슴 설레지만, 해외로 그것도 혼자서 하는 해외여행은 더욱 가슴 설레지 않을수가 없다. 패키지여행을 떠나서도 사진을 찍으며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담기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작가는 자신의 글솜씨와 그림솜씨를 여행하면서 아주 멋지게 보여주고 있었다.

독일, 터키, 라다크, 그리고 돌아와서 자신의 여행을 뒤돌아보며 생각한 편린들까지도 잘 모아모아 읊조리듯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가 다닌 독일의 골목길과 카페에 내가 서있고 앉아있는 느낌이었고, 터키의 이슬람 사원에 내가 발 씻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라다크의 골목과 그 곳에서의 사람들을 내가 함께 만난 듯 한 느낌이 든다. 주소를 받아적듯이 적어서 그곳으로 여행하고 싶다.

여태껏 내가 알았던 독일은 그저 깔끔하고 너무도 이성적인 사람들만이 살아서 그리 따뜻한 느낌을 받지 못했었는데, 작가는 내게 독일에서 오래 지내다보면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얘기해준다. 그래서 독일에서 발길 닿는대로 머무르기도 하고 돌아다니다 흐드러지다.

터키라고 하면 그저 큰 풍선이나 타고 자연경관에 마음껏 취하다 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시아와 유럽의 사이에서 어떤 불안과 긴장감을 느끼며 또 어떤 사람들의 순수함과 순박함을 느낄 수 있는지까지 이야기 하며 뒷골목에서 내가 서있는 느낌으로 흐드러지다.

인도는 그저 다양한 문화를 볼 수 있지만 대신 지저분한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라다크에서 작가는 종교를 뛰어넘는 뭔가를 느낀듯 하다. 여행의 마지막에 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여행객의 지침도 보이지만 그래서 더 이 여행이 흐드러질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시를 짓는 작가여서인지 참 예쁜 말과 예쁜 그림으로 책을 예쁘게도 만들었다.

[소설] 몽화

몽화 - 1940, 세 소녀 이야기
권비영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3월

각자의 십대를 기억하는가?

입시지옥으로 힘들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힘들었어도 모두들 십대에 대한 기억은 꽃비가 내리듯 아련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차 있을 것이다. 친구와 함께 재잘거리며 놀던 그 기억들 때문이라도 말이다. 우리나라 1940년에는 그런 소녀들의 재잘거림과 밝은 웃음소리가 함부로 들릴 수 없는 시기였다. 그 것을 기억하는 이들의 움직임으로 이런 소설이 나와주었다는 자체가 참 고맙다.

동네 여자 아이들이 자꾸 끌려간다는 흉흉한 소문과 창씨개명에 반대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영실을 뒤로한채 만주로 떠나버리자 영실의 어머니는 영실을 경성 이모네 맡기고 만주로 남편을 찾아 떠난다. 경성에서 국밥집을 하면서 어렵사리 사는 이모네 맡겨진 영실은 생각과는 다른 이모의 살림에 사촌동생 동수를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모네 집이 있는 곳과는 다른 개천건너 화려하고 큰 집들이 즐비한 동네로 마실을 다니던 영실은 그 곳에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으로 잘 사는 집안의 딸 정인과 기생의 집 화월각에서 얹혀사는 은화를 만나게 된다. 세소녀들은 각자의 인생이 불만스럽기만 하다. 영실은 중학교에 다니고 싶고, 중학교에 다니는 정인은 곧 프랑스로 유학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와 새어머니, 오빠의 우울증 등이 괴롭다. 은화는 얼굴도 기억하지 못 하는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와 기생들만 사는 화월각에서 자신도 결국은 기생으로 머리를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어서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그렇게 같은 나이의 같은 동네에 사는 세 소녀들은 각자의 인생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풀리게 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오빠와 같이 미술공부를 하게 되는 정인과 이모의 정부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가서 일하는 유학생이 된 영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뛰쳐나오긴 했지만 일본으로 팔려간 은화.

세 소녀는 엉킨 인생의 실타래를 각자 풀어가는 데 있어서 참 힘든 과정을 거친다.

만주에 간 아버지를 일본에서 극적으로 만난 영실, 팔려간 곳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은화는 칠복의 도움으로 만나지만 곧 다시 헤어지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을 알지 못 한채 영실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결국 아버지를 그리며 부산에서 터를 잡게 된다.

이 세 소녀의 삶이 앞으로 어찌 펼쳐질지 너무도 궁금해지는 열린 엔딩이어서 더 가슴이 먹먹한 책이었다.

[교육] 너는 특별하지 않아

너는 특별하지 않아 - 어느 교사의 맵고 따뜻한 한마디
데이비드 매컬로 지음, 박중서 옮김 / 민음사 / 2016년 2월

우리나라에선 기본적으로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동안 특별히 겹치지 않는다면 모두 12분의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누구나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주신 은사님이 계실것이고 어떤 이에겐 자신에게 호된 가르침으로 기억되는 은사님이 계실 것있다.

나는 운좋게도 12년동안 매년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신 선생님들을 만났고, 대학에서도 나를 이끌어주신 교수님을 만나서 내 인생의 멘토로 삼고 있다. 아마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없어도, 졸업식때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 한마디 정도는 기억하지 않을까?

데이비드 매컬로는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30년넘게 가르친 교사이다. 그 분이 어느날, 졸업식에서 한말씀하신 것이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몇 년전,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교장선생님께서 꿀벌복장을 하고 나오셔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젠 인터넷을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일들이 빠르게 전달되는 것 같다.

미국에선 신년사, 졸업축사 등에서 참으로 좋은 말들이 많이도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도 좋은 말씀을 많이들 하실텐데 그 말씀들을 듣는 청중들이 유튜브까진 옮기지 않는가보다.

기본적으로 아이가 한 가정에 하나 둘이다보니,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특별하길 바라고, 그 아이에게 온 정성을 들여 키우면서, 분유 CF에서 조차도 '내 아이는 특별하니까요'라고 외치는 세상이 되었다. 내 아이의 부족한 면을 보기보다는,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지에 더 초점을 두는 학부모들이 늘어나면서 모든 아이들이 가정에서는 특별하다고 대우받지만, 학교나 학원에서는 사회성 부족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나쁜 쪽으로 특별한 아이들로 자라고 있는건 아닌지...

매컬로는 책 제목처럼 개인개인이 모두 특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모두 자신이 가진 개성은 각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해ㄹ를 끼치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특별함을 가지진 않았다고 말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우리나라의 학부모처럼 미국의 학부모 중에도 자신의 아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해서 교사에게 좋은 점수를 요구한다던가,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을 보고는 우리나라만 교육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것 처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접게 되었다.

[소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겐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과에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책의 시작이 그렇다. 분홍빛 예쁜 표지의 눈이 동그란 소녀는 학교 선생님들이 평가하기로는 집중장애가 있는 학생이다. 친구들에게는 작고 특이한 소녀이고, 엄마와 아빠에겐 특이한 아이가 아닌 완벽한 아이이다.

이름도 예쁜 엘사에겐 온전히 그녀의 편인 할머니가 계시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엘사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특이한 사람들이다. 그 중 할머니는 가장 특이하고, 어쩌면 가장 질서가 없이 보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의 손녀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여지없이 평범한 할머니에 불과하다.

모든 이들이 엘사를 특이하다고 평하고 엘사의 행동을 세상의 규칙이라는 틀에 맞추려고 할때, 할머니는 그녀의 행동의 이유를 물어봐주고, 들어주고, 그녀의 행동을 지지하기 위해 살짝 법에 위반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엘사에겐 할머니가 슈퍼 히어로이다.

딸 울리카를 돌봐야 하지만, 세상의 다른 돌봄을 위해 자꾸 떠나기만 했던 의사 할머니는 그곳에서 만난 사연많은 이들을 데려와 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그들의 사연많음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세상에 적응이 완벽하지 않은 엘사에게 할머니가 남긴 보물찾기 편지들을 통해 알게 된다.

엘사의 할머니의 편지를 전해주면서 깨닫게 되는 세상과 사람들의 인생에는 그마다의 이유가 너무도 분명하다. 곧 여덟살이 될 엘사는 왜 할머니의 행동이 괴팍하게 보여졌는지, 한 아파트의 주민들이 왜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생활을 하는지 그들의 인생을 들으면서 이해하게 된다.

[오베라는 남자]에선 오베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원칙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면,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선 일곱살 소녀 엘사가 바라본 세상을 할머니라는 렌즈를 통해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배려를 배워가는가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 작품이 오베보다 더 먼저 읽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으면서 펑펑 울던 독자중 한명인 나는, [오베라는 남자]를 읽으면서도 울었고,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읽으면서도 매 쪽마다 소녀의 감성이 그대로 내게 느껴져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 두꺼운 책인만큼 눈물 흘릴 시간이 길다는걸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고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