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유쾌하게 - 약해진 자들과 동행하는 삶의 해석학
김혜령 지음 / IVP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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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가나 아이보다 노인이 많은 세상이다. 70년대생들이 가장 인구가 많다고 하는 데, 이들조차 노인으로 분류되는 시기가 오면 노인이 대다수가 되는 세상이 된다.

이 글은 치매환자가 된 아버지와 하루하루 더불어 살기 위해 애쓴 딸의 솔직담백한 글이다.
수기라고 하기엔 학술적이고, 지식서라고 하기엔 개인사를 많이 담은 에세이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서술방식이 신파로 흐르지 않아서 받아 들이기 좋았다.

의기양양하게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지만 저자도 사람인지라 몸은 힘들고 마음속에는 수많은 갈등들이 생겨난다. 본인이 살아가야 할 현실도 녹록치 않은 데, 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 시간을 인내하며 저자는 인간의 존재가치를 성찰하게 되고 이제껏 공부하고 연구해 온 윤리학, 기독교학, 철학, 신학의 도움을 받는다. 아니, 어쩌면 이 경험이 그녀가 깊은 철학을 하게 되는 데 더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치매를 배회의 병이라고 한다.
안과 밖을 순환하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 있는 지 알 수없어 계속 떠돈다.
또한, 치매는 분명 자신을 잃어버린 병이지만, 아직 죽지는 않은 병이다. 죽을 때까지 살아있고 존재하지만 원래 사람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상태!
도대체 산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저절로 철학하게 된다. 아버지는 살아있는 것인가, 아닌가?

이 책이 남달랐던 것은 저자가 슬픔과 아픔, 효도같은 의미가 아닌 '인간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통해 그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안에서 각자의 입장을 가진 이들이 느끼는 미안함과 고마움에 대한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거든' 이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딸에게 전한다.
아픔보다 더 슬픈 건, 사랑하던 사람들과 함께했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나로 인해 그들이 힘겨워지는 것이다.

막연히 알고 있던 치매환자와 보호자의 일상을 현실감있게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중년이 되면서 나이듦과 노후, 죽음에 대해 점점 생각이 많아지는 중이다
오래산다는 것이 더이상 축복이 아니기에 그저 살아있는 동안 즐겁게 살다가 적당한 때에 떠나는 것이 축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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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의 개그림 일기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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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생10년차의 망치가 그림일기를 썼다.
망치의 시선으로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1년 4계절을 보내며 기록했다.
사람도 모두 달라서 갈은 상황을 보고도 생각이 다 다르다. 그런데 반려견의 시선이라니.

망치와 사는 반려 가족들은 5살부터 90살까지 다양하다. 5살 솔이가 '하비' 라고 부르는 이가 망치의 반려인인데, 할아버지를 지칭하는 것 같다.
반려인 하비는 망치에게 안정적이면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주었다. 2층주택에 살고 산책할 공원도 있으니 반려견 친구들과 소통하기도 좋다.
사람이나 반려견이나 태어나서 사는 환경에 따라 팔자가 달라지듯이 망치의 견생은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1월1일 설날에 인간 가족들이 모두 모이자 소외되는 기분이 들어 속상해하기도 한다. 그때는 같이 사는 반려견 똥꼬와 함께 한다.
망치 주변에는 반려견 친구들이 참 많다. 종견 마르코, 맹인 안내견 래브라도, 군견 도버, 양치기 개 콜리, 투견 곤조가 있고 미국서 살다 온 행크, 불독 구찌, 외눈 봉달이, 유기견 보리도 있다. 인간만큼이나 다양하고 살아온 삶도 다르다.

인간의 키는 개들보다 높아서 반려견의 눈높이에서는 무엇이 보이는 지 잘 모른다. 사람들 종아리만 보일테고 땅에 있는 꽃, 벌레, 쓰레기까지 더 잘보인다. 후각이 좋으니 냄새로 느끼는 것도 많을 것이다.
개들이 서로 엉덩이 냄새를 맡거나 똥을 먹는 것은 인간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그들만의 세계이기도 하다.

책 시작에 밝혔듯, 망치는 개와 인간이 함께하는 세상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인간들은 반려견이 짐승이라는 이유로 감정이 없다고 생각해서 동물학대도 하고 유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반려견도 감정의 동물이라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 망치는 자신도 하비와의 산책을 나가기 싫을 때가 있고, 술 냄새나는 하비의 뽀뽀가 싫기도 하다. 개에게도 견격이 있고 충분히 느끼고 생각한다.

나 처럼 반려견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반려견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개 산책시 유의사항, 중성화 수술, 개 입마개, 개 피부병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망치의 시선으로 그림과 함께보니 재밌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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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부족해서 변명만 늘었다
박현준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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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다' . 그만큼 사람의 마음은 넓고, 깊고, 끝을 알 수 없다.
그 엄청난 깊이로 수없이 느끼고 생각하니 말하고, 쓰고, 표현하고 싶어진다. 에세이라는 장르는 그렇게 우리 곁에 왔다.

저자는 청춘이 고갈되어 아저씨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니 복잡다단한 감정을 거치며 말이 많아졌다고 한다.
인간은 고통을 받아들일 때,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비단, 고통이 아니더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의 다양한 감정들을 글로 나타낸다.

그런데도 저자의 감정이 곧 나의 감정처럼 유사하게도 느껴진다.
어머니의 밥상에서 느껴지는 그리움, 어머니의 잔소리에서 느껴지는 사랑은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에 대한 감정은 점점 무뎌지고, 나는 보잘것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의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경계해야 하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을 향한 이유없는 적개심이다. 부러우면 그냥 부럽다고 솔직 담백하게 느끼고 말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최선의 기술이고 자연스러운 배출이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기에 그럴싸 해보이려고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도 자꾸자꾸 마음을 다 잡아본다.
어떤 것에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기를.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내 그릇의 크기인 것 같다.
투덜투덜 한풀이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이렇게 감정변화를 겪고 호되게 느끼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멀어져 가는 것들을 향해 덤덤히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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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는 상실
정덕현 지음 / 세종마루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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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이라는 말 안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을까? 분명, 사라지고 잃어버림을 의미하는 데 함축된 의미는 넓고 깊다.
그 의미를 글로 쓴다기에 궁금했다.
책에는 전부 6편의 단편이 있지만,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담은 글은 <상실의 깊이>이다
그가 글로 쓰는 상실은 어떤 것일까?

상실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똑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상실감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화자는 나를 '당신' 으로 칭하며, 나에 대해 정의한다.
한때 나는 잘 나가는 중견기업의 대표였고 그때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날개는 영원하지 않았으니 이혼 당하고, 실업자가 되어 버렸다.

모 그룹 부회장의 운전사로 취직하고 운전훈련소에서 훈련도 받는다. 한달도 못 채우고 해고당하는 운전사를 대비해.
그러나 이제는 방귀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찌질한 중년남성의 모습으로 부회장의 명령에 무릎꿇고 있다.
그 순간, 아들이 그 모습을 본다.
더 이상의 굴욕이 뭐가 있을까 싶지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찌질한 중년 남성은 해고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느낀다. 그것이 지금 그의 현실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 정략결혼한 아내의 방종, 아들의 일탈 등 그가 잃어버린 상실에 깊이는 있는 걸까?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걸까? 이제 그의 삶은 마치 국밥에 빠진 나비 애벌레 같다.
얼마나 더 잃어버리면 다시 채워질까?

인간의 삶은 비우고 채워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것이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가득찼다고 느낀 순간, 모두 비워버리더니 다시 하나씩 채우기 시작한다. 인생이 버라이어티하면서도 스펙타클한 이유이다.
'나' 아니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진짜 내 모습을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다. 나에게도 날 아프게 하는 상실이 있음을, 그리고 그 상실을 채우는 것도 나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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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처음으로 세계사가 재밌다 - 역사학의 대가가 한 권으로 농축한 세계의 역사
니시무라 데이지 지음, 박현지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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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세계사가 항상 재미있었다. 그러나 간혹 역사에 알레르기를 보일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세계사를 재밌게 이야기해주는 이야기꾼이 책을 썼다. 고대문명 부터 20세기 까지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100가지를 뽑아 스토리텔링 해준다.

고대 이야기에서 가장 재밌는 건, 역시 피리미드다. 피라미드 밑면은 정사각형 사각뿔이며 각 측면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에 접하고 있다. 자른 돌들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쌓아 올려져 있다.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생명과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은 자는 반드시 부활한다' 고 믿었기에 이런 위대한 작품들도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절대군주의 영생에 대한 갈구는 중국 진시황제릉에 있는 1500여개의 병마용에서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인류의 역사를 보면 마치 다음 생이란 없는 듯, 탐욕스럽게 부와 명예를 갈구하고 타인들에게 해를 가하면서 까지 뺏고 죽고 죽여왔다.
제국주의자들은 약소국을 식민지화하며 부를 축적하고 노예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각국에서 독립전쟁과 혁명이 일어나며 봉건사회와 종교중심 사회, 계급사회에서 산업과 자본중심의 민주주의 사회로 변모해 간다
미국의 흑인노예해방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 링컨의 수염 에피소드와 스토우 부인의 소설, 게티즈버그 연설에 링컨의 암살까지 모든 것이 영화같다.
여기까지 보면 인류애를 찾아가는 듯 보이지만 인간사는 다시금 흑역사를 반복한다.

산업혁명이후 자본주의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불러 일으킨다. 유럽에는 파시즘과 나치의 광풍이 일어나며 2번의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 같은 인간으로써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자행된다.
그 결과 원자폭탄이 터지고 세계는 둘로 나뉘어 싸우는 냉전시대에 들어선다.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시대가 끝나나 했더니 최근, 세계 각국은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시하며 과거의 자국중심주의로 회귀하는 듯 보인다.

세상사 모든 것이 정반합(正反合) 의 단계를 거치며 분열과 발전 그리고 안정을 반복해 간다. 역사는 그런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의 시기는 새로운 발전을 위해 다시금 혼란으로 들어서는 시기같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저출산고령화로 경제성장이 둔해지고, 급격한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의 발전으로 대응하기 바쁘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현실을 타개하는 해법은 어쩌면 지난 역사에 있을 지도 모른다.
역사를 보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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