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한스러운 삶을 살아간 옛 여인들의 이야기인가? 과거도 현재도 편견과 차별에 몸부림치는 여성문인들의 평행이론에 관한 이야기인가?작가의 영혼이 나타나는 판타지 소설인가? 이 책에는 세 여인이 화자이다.현대를 사는 무명작가 은섬. 일제강점기의 중숙 그리고 그녀의 딸 작희. 은섬과 동료작가들이 유령작가를 보고 퇴마를 하러 미스터를 찾아간다는 독특한 내용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현대의 은섬과 과거의 중숙.작희를 번갈아가며 이어준다. 중숙은 신여성으로 공부하고 싶었지만 원치않는 혼인을 하고 딸을 낳았다. 남편은 집에 관심이 없어 중숙은 직접 작희라는 딸이름도 지어주고 홀로 서포를 운영해서 글을 쓰며 살아간다. 그 시절 여인의 삶이란 집안과 남편에게 종속되어 아들낳는 도구 정도로 치부되었지만 중숙은 남편에게 시달리는 시누를 돕고. 자기 몸종에게 공부도 시켜주며 여자들이 의지를 가지고 살기를 희망한다. 그런 어미를 보고 자란 딸 작희는 중숙이 숨을 거둔 후에도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애쓰지만 유부남인 영락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작희의 첫 작품인 "미쿠니 저택" 마저 가져가 버린다. 그렇게 작희는 사랑도 작품도 잃고 살아 갈 희망을 잃는다. 이 이야기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세상 모든 "쓰는 여자들", 세상 모든 "작희들" 에 대한 이야기이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여자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자가 글을 알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괘씸하던 시절부터 여자에게 글을 쓰는 행위가 자유로워진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많은 작희들은 편견과 유리천장에 둘러 쌓여 있다. 글을 쓰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돈도 빽도, 명성과 학벌도 있어야 조금이라도 관심 받을 수 있다. 현대의 은섬은 작희에게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작희에게 잃어버린 작품을 찾아주고 싶었으리라. 이 작품은 최근 읽은 소설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단순 액자형 소설이 될 수도 있었을 작품에 영혼과 퇴마 스토리를 가미해 트렌디한 느낌을 준다. 또한 영혼의 등장과 말은 책을 볼때 마다 의미를 다각도로 해석할 여지를 줘서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던 식당의 갑작스런 폐업으로 실직하게 된 루이자는 원치 않는 간병일을 하게 된다. 교통사고로 전신이 거의 마비된 윌은 까칠하고 상대하기 힘들지만 점점 친숙한 사이가 되어간다. 어느날, 우연히 윌이 6개월후에 생을 마감할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루이자는 윌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기 위한 여러가지 일들을 경험하게 해준다. 윌에게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설득하는데 주어진 시간 117일. 경마장도 가고 클래식 공연도 보러가고 사람없는 곳에 소풍. 화랑. 와인 테이스팅 루이자의 생일파티를 위해 그녀의 집에 방문하기도 한다. 둘은 함께 타투도 하고윌의 전 여자친구 결혼식에도 간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사랑스럽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다. 일자리에 대해 고민하고 사랑과 학업. 가족문제에 신경쓰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자기가 살던 삶 이외의 세계는 잘 모른다. 윌과 루이자도 평생을 자신이 속해있는 세상에서 그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살았지만 서로를 알고 마음을 열면서 다른 세상에도 눈을 뜬다. 윌에게는 루이자가 해주려는 어떤 경험보다도 그녀의 삶을 보고 느끼는 것이 더 신선하고 삶의 의욕을 주었을 것이다. 루이자 역시 윌과 보내는 시간에서 윌이 살아왔던 과거의 삶과 현재 겪고 있는 삶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를 얻는다. 그가 가진 것이 그녀에게는 없지만 그에게 없는 것이 그녀에게는 있다. 이제껏 나는 사랑이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사람들끼리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윌과 루이자를 보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만 가진다면 이들처럼 전혀 다르게 살아왔고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 마음이 뭉쿨하고 벅차올랐다. 그것은 장애인의 감동스토리 여서도 아니고 신데렐라 같은 사랑이야기 여서도 아니다.아마 윌과 루이자의 자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자유인이되 자유인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 본의아니게 집안의 가장이 되어 하고 싶은 일들을 억누르며 틀안에 갇힌 루이자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전신마비의 몸에 갇힌 윌은 둘다 자유를 갈망하고 서로를 보며 자유를 찾으려 한다. 자유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윌과 루이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를 찾는다. 책을 덮고도 한창동안 여운이 남았다. 왜 이 책이 그리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고, 영화화되었는지 알것 같다. 윌과 루이자의 또 다른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by히토쓰바시대학교 가토게이키 세미나~이 책은 일본 대학생들이 그들이 가진 세미나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한일관계와 분위기에 의문을 품은 일본 대학생들이 새로운 세대의 시선으로 한일관계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정치나 사회문제가 아닌 인간과 존엄의 문제로 보려고 한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고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일본 대학생들은 k팝과 k드라마에 익숙하고 한국여행과 문화에 자연스레 노출되면서 이전 세대가 가진 한국에 대한 편견에서 좀더 자유롭다. 그런 그들에게 일본역사에서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숨기고 가리기에 급급한 기성세대의 방식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k팝을 좋아한다고 부모님과 다투게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평소에 가졌던 궁금증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가지고 한일관계를 공부했다. 위안부가 왜 성노예였는지?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왜 반대하는지? 8월15일에 한국 연예인들이 왜 축하하는지? 왜 독도분쟁이 이어지고 있는지? 재일조선인은 왜 존재하는지?일본 청년들로서는 근현대사의 식민지부분을 제대로 교육받지 않아 궁금했던 사실들을 스스로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꼭 양국간의 역사적인 문제가 아니라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인 징병제나 민주화운동 등에 대해서도 다룬다. 인상적이었던건 일본학생들이 지금 분단된 한반도의 한국과 북한문제의 시작을 일본 식민지 지배 이후 어수선한 환경에서 촉발된 것이니 일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 점이다. 물론 소수이겠지만 일본의 젊은 학생들이 한반도 문제를 더 깊게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간의 문제를 역사와 현재의 이익으로 보는 시선은 언제나 분쟁과 갈등이 생긴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로 보아야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 같다. 인간으로써 해서 안될 일이 있었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 문화에 속해 살고 있다보면 이방인과 타인에 대한 나 자신의 시선도 왜곡되어 있다는 걸 모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나도 그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대학생들이 자신들을 돌아보려고 가진 세미나는 의미있는 것 같다. 모리스 스즈카는 "연루"라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과거의 잘못은 현대인이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그 잘못에서 파생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풍화과정에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불편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자학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배우지 않는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끝으로 본인 나라의 식민지배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일본 대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우리가모르는건슬픔이됩니다 #해피북스투유 #가토게이키세미나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서평단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환경역사판타지라고 할까 인간은 너무 위대해서 너무 많은 일을 했고 급기야 그들이 사는 지구를 위험에 빠트리는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 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하루아침에 지구는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케플러452b에 새로운 지구를 창조하기 위해 북극성에서 호세가 왔다. "좋은 세상" 이라는 뜻의 호세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3개의 열쇠를 찾아 지구상에서 천년왕국을 유지한 두 나라 중 하나인 신라를 다시 건설하려 한다. 호세는 전생에 법흥왕때는 화랑이었고 진성여왕때는 스님이었다. 과거 화랑이었던 수품이의 현생인 한별을 만나 함께 열쇠를 구하러 떠난다. 바다를 지키는 문무왕에게 옥룡 목걸이를 받고 전천리에서 열쇠를, 구형왕릉에서 운석을 찾는다. 이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준비는 다 되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다. 왕국이 건설되었는지 아닌지? 호세는 떠났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음의 상황을 상상한다. 지금의 우리 상황을 보여주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역시나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개발과 인간의 편리만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지금껏 산과 바다, 자연을 그냥 두지 못했다. 자연을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만 생각했다. 바다소는 육식으로 맛이 좋아 멸종하고 맛없는 펭권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들은 너무 놀랐다. 그러나 지구의 모두가 환경을 파괴하는데 앞장선 것은 아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그린피스나 지우스님같은 분도 있고, 자기 돈으로 고택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다. 금줄개구리. 비단벌레 . 강치같은 사라져간 또는 사라져가는 생물들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책에서는 내가 몰랐던 많은 환경오염의 사례와 그것을 지키려는 이들의 투쟁도 함께 보여준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인간의 욕심으로 죽고 사는 것이 슬프다. 인간도 지구상의 한 생명체에 불과한데 마치 신이 된 것 마냥 굴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로 인한 미래가 곧 인간에게도 닥쳐올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제라도 빨리 깨달아 달라져야 한다고.
어릴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늘 내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어릴때는 오히려 확실한 보호자인 부모님이 든든하게 그 역할을 해주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면 왠만한 일은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해야 어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렇게 몸만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모듣 순간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나에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을 해준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그렇게 자신을 좀더 사랑하라고. 모든 말들이 봄날의 꽃들처럼 아름다운 말들이다. 이 책은 모두 5개의 챕터로 되어 있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 힘든 순간에 들려주는 말, 꿋꿋하게 이겨내려고 격려하는 말, 사랑할때 좋은 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지해주는 말들이다. 나는 매일밤 조금씩 이 책을 읽고 잠들었다. 지친 하루에 잠들기 전, 내 옆에 누워 토닥이며 좋은 말을 해주는 수호천사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좋은 말, 아름다운 말들을 한아름 듣고 가슴에 새기며 잠들면 행복하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거친 세상에 혼자 힘들게 외롭게 살아간다고 느낀다면 이 책을 밤마다 읽어보시길. 그 글귀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신을 위로하고 토닥여 줄 것이다. 결코 넌 혼자가 아니라고. 맨 마지막 에필로그에 나오는 말이 이 책의 의미이다"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하시는 분들이나 자존감이 떨어지신 분들께" 모두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