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무엇이냐고 제게 질문한다면, 저는 한마디로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감정은 바로 ‘정보’라고요. 즉,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함입니다.
(...)
따라서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 감정이 주는 정보를 취해 처해있는 상황에서 적절히 행동하고 대처함으로써 생존하고 적응하면 됩니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자극이나 대상에 대해 생각했다는 겁니다. (...) 그렇기에 생각하지 않으면 감정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판단하지 않으면 불쾌하지 않습니다.
결국, 상처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상처는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판단하지 않으면 상처도 받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평가를 보류하는 연습을 시작해 보세요.

그런데 감정은 결코 해결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발생한 감정은 오직 느끼고 표현되어 사라지기를 원할 뿐입니다. 감정은 자극에 반응해서 발생하고, 느끼고 표현하면 사라지면서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화가 났을 땐 그 화를 느끼고 표현하면 사라지고, 슬플 땐 그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면 사라집니다.(...) 그러니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감정이 보내는 신호에만 신경쓰게 하는 거지요. 심리학에서 ‘신경을 쓴다’는 것은 ‘주의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주의는 에너지와 같습니다. 결국 에너지는 해소되지 못한 감정에 쓰게 되는 겁니다.
인간이 한 번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 신기하게도 지친 감정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별다른 휴식 없이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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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

그런데 우리는 물리적으로 접촉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경계를 침범하는 행위를 하곤 합니다. 바로 ‘조언’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한 말이지만, 조언을 듣는 사람은 자신의 경계가 침범됐다고 지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언이나 지적은 분노를 유발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가, 또는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조언이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어 화를 유발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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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에서 실수는 흔히 있는 일이다. 자신의 그릇된 부분을 사과하면 상대도 자연히 ‘그러고 보니 내 말에도 실수가 있었다’하고 깨닫게 된다. 일부러 상대의 실수를 지적해 마음을 더 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 사소한 말투의 차이로 이후 돌아오는 상대방의 대응은 천지차이가 된다.

이렇게 사과하러 갈 때 선물은 통상 과자 세트로 정해져 있다. 무슨 만화 같은 얘기냐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사과의 표시’로 지참하는 것이므로 주는 쪽으로서는 빨리 없애버릴 수 있는 편이 체면상 좋다. 만일 놓아둘 수 있는 물건을 주면 그것을 볼 때마다 자신의 실수를 떠올리게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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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 회사 현장과
매우 유사하다...

‘웃자고 하는데
죽자고 달려든다’
같은 대화도 떠오른다.

지금까지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의미를 충실히 주고받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 정서적으로 공감을 얻는 일을 중시했다. 그래서 의미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게 여겼고 술자리가 중요한 소통의 장이 되어왔다. 논리족인 합의보다 정서적으로 공감을 얻고자 한 것이다. 함께 술을 마시고 골프를 쳤다. 함께 목욕했다는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공감이 그 상황 또는 인간관계의 추진력이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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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ms1123 2021-12-14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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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단상들.

죽음은 삶에서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인생에서
드러나는 죽음의 흔적들.

죽음과 공존하듯,
하루하루 죽어가는 사람들과
공존하는 것이 정치일까?

https://m.blog.daum.net/futureishere/2903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묘지가 사람들의 생활공간 가까이에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리쿠르고스 Lycourgos(스파르타의 입법자)가 그토록 말했건만, 오늘날 사람들은 되도록 죽음을 외면한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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