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만한 수많은 사연의 주인공이었지만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소개하는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1960년대 법무부 시절 그와 함께 일했던 새크라멘토 법대의 도로시 랜즈버그 부학장은 <LA타임스> 인터뷰에서 "도어는 늘 겸손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낼 뿐이었다. 우리가 그를 사랑했고, 그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것도 그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 <존 마이클 도어: 색깔없는 인권, 1960년대 흑인 인권 투쟁 현장을 누비며> 중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존은 미국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용감한 법률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 <존 마이클 도어: 색깔없는 인권, 1960년대 흑인 인권 투쟁 현장을 누비며> 중에서
(…) 당시에도 세상이 많이 나아진 뒤로도 단 한 번 자신의 행적을 삶의 밑천으로 삼지 않았다. - <존 마이클 도어: 색깔없는 인권, 1960년대 흑인 인권 투쟁 현장을 누비며> 중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노트의 세 장을 글자로 채우는 일, 그것도 유이치에게 배운 일이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다 쓰는 거야"라고 그는 말했다. 머릿속에는 바로 문장으로 옮길 수 있는 생각들도 있었지만, 도무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혹은 막연한 공포 같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공책의 여백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오로지 막막할 뿐이라면 그 막막함에 대해 쓰라고 유이치는 말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고독’이다. 그것은 내가 노래와 그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고언제나 가장 소중한 친구이다. 고독에서 사유의 힘이 오고혼자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함이 온다. 진정한 고독은 따뜻한 위로를 준다. 내가 부르는 노래가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