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문제는 제대로 승리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패배하지 못한 데 있다. 제대로 패배했다면 점프력 강화 훈련으로 몸짱이 되었을 텐데. (정신으로) 승리했으므로 개선을 도모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현실이 결국 여우의 방문을 두드릴 거다. 이제 그만 침대에서 일어나. 나와서 청소하고 밥 먹고 운동하고 사회에 나가서 멀쩡한 사람처럼 굴어.


<정신승리란 무엇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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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지친 나머지 그러한 마음의 힘을 낼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는 마음보다는 몸을 움직여 주변의 언덕을 오르는 것은 어떨까. 죽음의 기억이 자신을 압도할 때, 무의미와 슬픔이 파도처럼 들이닥칠 때, 절벽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오르는 중이라고 상상하라. 이렇게 시인 안희연은 권유했다. 슬픔은 마음뿐 아니라 몸을 침범하는 것이어서, 슬픈 사람은 절벽이나 수렁을 상상할 뿐, 언덕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절벽과 달리 언덕은 그 위에 시원한 바람을 이고 있다. 그리하여 언덕에 힘들여 오른다는 것은 그 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절망하지 않고 다시 언덕을 내려올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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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로 할 것은 이 하기 싫은 일을 해치우고 보상으로 받을 여가가 아니다. 구원은 비천하고 무의미한 노동을 즐길 만한 노동으로 만드는 데서 올 것이다.


<삶의 쳇바퀴를 사랑하기 위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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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없애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노동의 질을 바꾸는 것이 구원이다. 일로부터 벗어나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즐길 수 있어야 구원이 있다.


<삶의 쳇바퀴를 사랑하기 위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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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여가는 인간을 공허하고, 무료하고, 빈둥거리고 낭비하게끔 만든다. 노동을 없애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노동의 질을 바꾸는 것이 구원이다. 일로부터 벗어나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즐길 수 있어야 구원이 있다. 구원은 비천하고 무의미한 노동을 즐길 만한 노동으로 만드는 데서 올 것이다.


<삶의 쳇바퀴를 사랑하기 위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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