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을 언젠가 볼 것이고, <아침 다섯시의 기적>은 결국 안읽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을 위한 기적"이 있다. 목적없이 살아온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목적없이 살아온 인생이 되었다. 목적없이 살아온 것에 대한 자책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젠 그릇이 달라졌다. 나는 그대론데 그릇이 달라졌다. 말이 안되나. 내 그릇을 이제 내가 알아본 것이다. 변하지 않은 크기. 앞으로도 달라질 것 없는 크기.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서의 크기. 그러니 목적은 나에게 너무 거대한 것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난 목적없이 살아갈 것이다. 내 용량을 위해, 내가 완전히 부서지지 않고도 쩍 하고 금이 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목적없이 사는 것이다. 목적과 목표가 다르다는 전제하에 내뱉는 말이다. 목표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목적없이 살 수 있었다는 이 얘기는 무슨 그지 발싸개 같기는 하지만 궤변을 일삼다 쾌변의 나락으로 떨어진 하수구의 인생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