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오후다. 겨울 오후는, 봄 오후보다 당연히 낫고 여름 오후보다 무조건 낫고 가을 오후보다 월등히 낫다. 겨울 오후가 단연 최고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그래도 특히 어떤 면에서 그렇냐, 라고 한다면 '발음하기에' 라고 대답을 한다. 뭐 그렇다는 것이다.
프사를 바꾸고 싶다.
언제든지 바꿔왔고 수시로 바꿔왔으니 바꾸는 게 뭐 그리 대수랴마는 이번엔 좀처럼 기회가 닿지를 않으니 이거? 여배우만큼 세상에 흔한 것도 없다는, 그토록 가학적인(?) 기치를 나부끼며 앞으로 나의 프사는 무조건 여배우다! 를 선언한지도 어언.. 기억이 안난다. 생긴 게 어떻든 무슨 짓을 하든 어떤 영화를 찍든 어떤 영화를 누리든 내 알바 아니고, 난 그냥 내 프사를 여배우로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껏 달려왔다.(달려온 것 치고는?) 여기엔 특별한 각오나 의지도 없었고 내세울만한 명분도 없었다. 그냥 막 달려왔..나? 그래 달려왔다고 치자. 다만 여기서. 프사는 나의 얼굴. 프사는 나의 정신. 프사는 나의 페르소나. 프사는 나의 상황. 프사는 나의 노스탤지어. 프사는 나의 사랑. 프사는, 프사는... 그러니까 나는 마치 프사를, 이 모든 것인양 했느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가 나를 속인 것도 아니고 누구를 속인 것도 아닙니다. 이웃님들 중에 누가 그러시겠습니까) 아 그러니까 그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뭘까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러니까 프사는 곧, 나의 웬수. 아 이제와서 실토를. 누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혼자 신나서 실토를 하는구나. 혼자 시체놀이만 잘 하는 게 아니고 이런 놀이에도 은근 끼가 있었네.
이 정도 정신이면 난 지금이라도 당장 프사를 바꿔야만 한다. 바꾸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시간도 허락해선 안된다. 당장 안바꾸면 천지가 요동칠.. 아무튼 바꾸는 일만 남았다. 나의 웬수를 찾아야 한다. 세상 천지에 널리고 널린 게 여배우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찾아야 한다니. 아, 웃기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