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올까. 목에서는 컹컹 개짖는 소리가 나고 진눈곱같은 눈물이 자꾸 고인다. 난 이렇다할 목적도 없이 살고 있지만 요즘(봄부터 시작해서) 동물들을 자주 본다. 일부러 찾아다니면서까지 만나고 싶지 않지만 어쩌다보니 그리고 어쩔수없이 만나게 되는 동물들. 개구리, 두꺼비, 도마뱀, 뱀, 죽은 쥐, 파리, 모기, 벌, 까마귀, 황새, 딱새, 산비둘기, 까치, 노린재, 장수하늘소, 사슴벌레, 지렁이, 메뚜기, 개미, 거미, 비단벌레, 진딧물, 고양이, 개, 그리고 고라니.
오늘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고라니를 봤다. 흐르는 배수로였고 그 옆을 지나가던 차에서 두 남녀가 내렸다. (고라니가 먼저 자동차를 보고 당황해서 빠진 건지, 배수로에 빠진 고라니를 지나가던 차가 목격하고 차를 세운 건지,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다) 난 우비와 마스크 장갑 등으로 단단히 무장한 채 배수로 안쪽 경사지에서 소독(농약)을 하고 있었다. 어떤 차가 멈춰섰고 한 남자가 내렸고 뒤따라 여자도 내렸다. 남자가 무언가를 발견한듯 길 바로 옆 배수로를 훌쩍 건너더니 또 역시 무언가를 찾는 동작을 취했다. 처음엔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 줄 알았다. 난 어리둥절, 대체 와 저러지, 당황했고 바로 그때 고라니를 보았다. 머리와 등 부분만 내놓은 채 물살을 따라 헤엄치는(걸어가는?) 고라니를. 그리고 또 역시 그때 보고 말았다. 남자의 손에 주먹보다 더 큰 돌이 들려있는 것을. 난 소리쳤다. 그러지 마세요. 더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땀으로 젖은 마스크 때문에 소리가 나오지 않고 묻히는 것 같았다. 고라니는 살았을 것이라고, 돌에 맞지는 않았으니 살았을 거라고 했다. 배수로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깊은 곳으로 가지 않고 얕은 쪽으로 간 것 같다고, 밖으로 잘 나왔을 거라고 했다. 알고보니 남편도 목격자였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한 건 둘째고, 그 차가 두번을 또 지나가길래 배수로 주변을 서성이는 남편에게 뭐라 말을 걸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난 좀 무섭다. 세상살이가. 뭐 하나 제대로 기쁘거나 즐겁거나 행복한 것이 없지 않은가. 세상에 생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난 것이 슬프고 또 슬픈 일임을 갈수록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니. 정말 이게 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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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6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6-08-06 16:30   좋아요 1 | URL
언뜻 본 바로는 귀농한 젊은 부부 같았어요. 제가 너무 놀라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죽이지 마세요,라고 했는데도 얘네들은 그냥 두면 안된다며.. 고라니한테 돌을 던지려고 했어요. 실제로 던졌는지, 던지려다 말았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암튼 제가 너무 선명하게 겪은 일이라.. 아직도 심장이..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농작물을 뜯어먹고 피해를 준다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어요. 아무리 인간한테 주는 피해가 있다해도 어떻게 죽일 생각을 할 수 있나, 우리를 공격하는 맹수도 아닌데..그래야만 할 이유가 나름 있다해도, 그 입장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너무 힘드네요. 나도 같은 사람이지만, 어떤 혐오감 그러니까 육식을 하는 것, 뭘 먹는다는 것도 스스로 징그럽게 느껴져요. 이 페이퍼 괜히 올린 듯요. 자꾸 생각이 나고 그래서 답글 쓰려니 더 그래요.

hnine 2016-08-0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컨디션님. 몸이 많이 아프시군요.
저도 여기 이사오고서 마루 창 너머로 고라니가 돌아다니는 것을 몇번 보고 신기해했는데 요즘은 통 안보이더라고요.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요. 그 고라니들도, 어제 컨디션님이 보셨다는 고라니도, 모두 살았기를 살았기를...
저도 무헙네요 세상살이가 ㅠㅠ
아무튼 어서 컨디션님 몸이 회복되셨으면 좋겠어요.

컨디션 2016-08-06 16:39   좋아요 0 | URL
엎친데 덮친격으로 폭염에 감기에 몸살에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시야가 흐릿하게 만신창이가 된 것 같습니다. 알라딘에 올리는 찌질한 생활일기나마 즐겁고 유쾌하게(때론 경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요즘은 어째 넋두리 자기연민 한탄으로 이어지네요. 낮에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어요. 약에 의존해봤자 소용없지만, 어차피 감기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거라서 그걸 알면서도 이러고 삽니다. 걱정해주시는 마음, 고맙습니다..

2016-08-06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6-08-06 19:41   좋아요 1 | URL
죄송하다니요. 별말씀을요..댓글 달아주셔서 저는 답글 달 기회가 생겼고 그러면서 제 마음을 한번더 짚고 들여다볼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충격의 잔상을 혼자 내부에 오래 안고 있으면 안좋을테니까요. 페이퍼 올리는 것 하나도 어떤 눈치를 봐야하고 자기검열을 해가면서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임을(못났지만, 그 못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몸부림 같은 것을) 끊임없이 반복 전시하는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비댓으로 답글 안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 거구요. 그러니 이 모든 걸 이해해주시리라 믿구요, 늘 따뜻한 마음으로 염려해 주시니 감사하기도 하지만 죄송한 마음도 있어요.

아참, 그리고 청심환 먹을 정도는 아니예요^^

아, 그리고 이번 일로 알게 된 이 사람들 나중에라도 우연히 만나게 되면, 얘기를 건네볼 생각이예요. 어젠 너무 급작스러워 그냥 무섭기만 하고 말 붙이기도 싫었는데, 지금은 좀 달라요. 사실 너무나 평범하게 인상이 좋은 사람들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