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정신 삼일째가 좋을까.

여튼 나는, 그리고 남편은, 오늘부로 삼일째 술을 입에 안댔다. 아이들이 놀라워 하고 있다. 첫째날, 3월 1일은 수월했다고 볼 수 있다. 첫날이니 만큼 당연히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좀 달랐다. 묘한 긴장감이 줄타기를 했다. 어느 한쪽이라도 술에 ㅅ 자라도 꺼내는 순간에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별 일 없었다. 좀 우울한 것 외엔 잘 넘겼다. 그렇다면 오늘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냉랭한 전선을 맞이했다. 반드시 슈퍼에 들러야 할 일이 생겼는데(술이 아닌) 남편이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혼자 다녀오라는 것이다. 나는 오늘따라 무척이나 후줄근하게 납작하게 눌린 머리를 하고서(모자를 안챙겼다) 슈퍼에 가야만 했다. 늘 둘이서 같이, 일을 마친 작업복 차림으로 퇴근길 장을 보는 게(술이 주류이고 주류가 곧 술이라는 모토 아래) 일상이 되어버린 부부에게,암튼 그렇게 파다하게 소문이 난 커플의 위상(?)을 쌓아왔는데 오늘은 예외가 발생한 것이다. 술을 사지 않을 바에야 슈퍼에 갈 이유가 없다는 건가. 아니 그런 이유로 의욕상실에 무기력을? 남편의 표정을 정면으로 살피진 않았지만 옆모습만 보아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온도가 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88.7 fm을 듣다가 나눈 대화 중에 작은 서운함이 생긴 게 분명한데 그걸 이런 식으로 보복(?)하는 건가 싶어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미안했던지, 집에 와서는 주섬주섬 냉장고에 물건을 넣어주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빨래도 개 주었다. 모레 토요일 비 소식이 있다고 하니 내일 저녁은 `진짜 불금` 아니겠냐고, 이 말도 어색하게 하는 것이다. 술 안마시니 온통 어색한 것 투성이다. 그 말 많던 남자가 말도 별로 안한다. 방에 들어가 책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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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3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6-03-04 07:26   좋아요 3 | URL
일단 반갑습니다.유레카님^^
3일 연속음주도 흔치 않은 일이니만큼 뭔가 같은 전선(?)에 투입된 동지 같아서요ㅎㅎ

저는, 아니 저희는 앞으로 이 알콜중독인지 의존인지 아니 도피인지 모를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 이렇게 하기로 했어요. 정해놓고 마시자. 지정한 날짜에만. 이를테면, 뭔가를 마쳤을 때. 거름을 다 준 날, 어느 구역의 전지작업을 끝낸 날, 이런 식으로요. 물론 이제 겨우 시도했기 때문에 중간에 무수한 변수와 반칙이 횡횡하겠지만요..ㅠㅠ

2016-03-04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6-03-05 01:21   좋아요 1 | URL
매일매일 다른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요^^ 불금을 불금답게 모처럼 보냈는데 남는 건.. 오타없는 답글 달아야겠다는 정신줄 한가닥 뿐입니다요 ㅎㅎ

서니데이 2016-03-04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컨디션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오늘도 퀴즈 준비합니다.

컨디션 2016-03-05 01:22   좋아요 1 | URL
어,. 퀴즈.. 지금쯤 이미 마감 되었겠네요.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