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이다. 1월 2일? 어딘가 멍청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 날짜의 애매함에 저항하고 싶다. 뭔가 더 필요하다. 그래 좋다. 이렇게 써보자. 2016년의 첫 토요일이라고. 불과 엊그제였던 12월 31일과 바로 어제였던 1월 1일은 내 생애 미친듯이 한 획을 그어보고자 어떤 발악이라도 했던 모양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체이탈까진 아니어도 걸어다닐 수가 없어서 새해 첫날 아침은 떡국을 패스해야만 했다. 내장이 꼬리칸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열차가 선로를 이탈할 뻔한 그 뻔한 일촉즉발의 사태를 경험하고 나니 큰 깨달음이 내게로 왔다. 아, 올해는 술을 끊자....아니 술 좀 작작 마시자...진심으로 반성하고 두 손 모아 다짐한다. 술을 끊을 수 없다면 술을 줄이는 방식. 그러니까 양도 양이지만 나에게(우리에게) 시급한 건 횟수라는 것.

 

어제는 늦은 밤 11시가 다 되어 아이들을 식탁으로 몰아서 앉혔다. 각자 일기장을 들고 나오라는 주문과 함께였다. 나는 어떤 훈육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키운 적이 없는 엄마인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종의 표방을 해보았다. 다들 머리가 컸으니만큼 내 입장을 십분 받들어주는 제스처를 취해주었으니 난 그걸로도 충분히 감동했다. 다들 하나같이 주어진 칸에 충실한 달랑 두 줄짜리 일기였지만 나로선 그걸로도 충분했다. 살면서 매일매일 흔적처럼 남기는 것이 쓰레기라는 자명한 사실에 진심으로 힘겨워 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마는, 나는 어제 남편이 내게 해준 말을(술 취해서 한 말치곤 무척 값진 말이었다)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 생각이다. 쓰레기를 안남길 수 없고 그리고 그것이 종국엔 모두 버려야할 진짜 쓰레기인 건 분명하지만, 그 쓰레기에 갇혀서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 아이가 첫울음을 열고 처음으로 옹알이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글자를 깨우치는 그 모든 의미있는 과정과 시간들이 왜 필요한지를 과연 내가 제대로 느끼기나 한 건지는 모르겠다. 모르지만 나아가는 것이다. 모른 척 하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그것 마저도 모른 채 살지만 않는다면. 그래. 모르지만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니, 내 의지와 상관없다 하더라도 난 내 의지에 의지하고자 한다. 정말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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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02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컨디션님도 올해 일기를 쓰실 예정이신가요. 일기를 쓰고 다시 읽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어쩌다 읽어보고 `이런 계속 비슷하게 살고 있잖아;;`라는 결론에 도달, 올해는 일기 쓰려고요.
컨디션님, 새해엔 우리, 오늘에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요.

컨디션 2016-01-04 15:10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 올리는 거의모든 게시물이 사실상 저의 일기나 다름없는데요,(다들 그러시려나?) 올해는 공책에 쓰는 일기에 힘써보려고 마음을 먹었달까요.. 서니데이님 올해는 그동안 써오신 일기와는 다른(비슷하지 않은) 일기를 쓰겠다는 다짐이신 거죠? ^^ 어찌됐든 저랑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 여러모로 동지애를 느낍니다ㅎㅎ

서니데이 2016-01-04 16:00   좋아요 0 | URL
저도 종이에 손으로 쓰는 일기를 올해는 쓰려고요. 알라딘 서재의 페이퍼와는 다른 거예요.^^
그러니 컨디션님의 의미와 같지 않을까요^^

서니데이 2016-01-03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컨디션님, 편안한 새해 첫 주말 보내세요. ^^

컨디션 2016-01-04 15:12   좋아요 1 | URL
새해 첫 주말 잘 보내고(사실 잘 보냈다고는 할수없는ㅜㅜ) 이제 새해 첫 월욜을 맞이햇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