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어느 추운 골목길마다 울려퍼지던 일들에 대해 난 잘 알지 못한다. 어릴 때 살던 동네는 변변한 대문도 없던 농촌이라서 이렇다할 골목도 없었다. 그나마 기억이 있다면 그건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풍경이 전부일 것이다. 어쩌다 마음 속에 그리게 되는 도시의 풍경에서 희미한 가로등과 좁은 골목길은 거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깊은 밤에 남은 팥죽을 데울 팥죽도 없는 이런 깊은 밤에 휘어진 척추를 땅에 묻기라도 하듯이 앉아있다. 이럴려고 한 것은 아닌데 쓰고 보니 스스로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1차 연민이 시작된 건가.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내일까지 이어지는 크리스마스로 여기저기서 온통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하겠지.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그 자체가 아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제 드디어 본무대의 막이 올랐다. 그리고 내일이 지나면 얼마 남지도 않은 연말에 불이 붙듯 가속이 붙을 것이다. 26일부터 31일까지의 시간. 가는구나. 정말 가는구나. 좋은 시절 다 가고 이제 심기일전 사기충천할 일만 남았구나. 열심히 살아야 할 일이 남은 건데, 뭘까. 이 묘한 슬픔은. 산다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분명 슬픈 일이기도 하다는 걸 대체 누가 가르쳐준 걸까. 무언가를 향해 달려간다는 건 그리워할 틈도 없이 세상과 세월을 줄줄 놓치고 살아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나에게 가장 슬펐던 가슴 미어지는 날이 있다면 그건 12월 26일이다. 작년 이맘때. 일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아니지만 12월 25일 바로 다음날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 유일하게 울면서 쓴 일기장의 날짜가 12월 2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