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어느 추운 골목길마다 울려퍼지던 일들에 대해 난 잘 알지 못한다. 어릴 때 살던 동네는 변변한 대문도 없던 농촌이라서 이렇다할 골목도 없었다. 그나마 기억이 있다면 그건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풍경이 전부일 것이다. 어쩌다 마음 속에 그리게 되는 도시의 풍경에서 희미한 가로등과 좁은 골목길은 거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깊은 밤에 남은 팥죽을 데울 팥죽도 없는 이런 깊은 밤에 휘어진 척추를 땅에 묻기라도 하듯이 앉아있다. 이럴려고 한 것은 아닌데 쓰고 보니 스스로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1차 연민이 시작된 건가.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내일까지 이어지는 크리스마스로 여기저기서 온통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하겠지.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그 자체가 아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제 드디어 본무대의 막이 올랐다. 그리고 내일이 지나면 얼마 남지도 않은 연말에 불이 붙듯 가속이 붙을 것이다. 26일부터 31일까지의 시간. 가는구나. 정말 가는구나. 좋은 시절 다 가고 이제 심기일전 사기충천할 일만 남았구나. 열심히 살아야 할 일이 남은 건데, 뭘까. 이 묘한 슬픔은. 산다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분명 슬픈 일이기도 하다는 걸 대체 누가 가르쳐준 걸까. 무언가를 향해 달려간다는 건 그리워할 틈도 없이 세상과 세월을 줄줄 놓치고 살아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나에게 가장 슬펐던 가슴 미어지는 날이 있다면 그건 12월 26일이다. 작년 이맘때. 일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아니지만 12월 25일 바로 다음날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 유일하게 울면서 쓴 일기장의 날짜가 12월 2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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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4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5-12-26 02:57   좋아요 1 | URL
오늘도 어김없이 밤이 깊어..버렸네요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고 맞이하는 시간이니 아쉬울것도 없고 슬플것도 없는 그냥 고즈넉한 밤입니다. 그러고보니 이제 12월 26일이네요. 누구에게라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 님의 그 마음에 감사드려요^^

서니데이 2015-12-25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컨디션님,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하고 좋은하루되세요^^

컨디션 2015-12-26 03:0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메어리 & 해피 크리스마스응^^

2015-12-27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7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5-12-2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에 새 사람이 되기로 하고 일단 연말까지는 마음대로 보내는 건 어떨까요^^ 내년까지 오늘빼고 앞으로 3일밖에 안 남았는걸요^^;
참, 곤도 마리에의 정리시리즈는 어디까지 읽으셨나요??

컨디션 2015-12-27 23:10   좋아요 1 | URL
오늘 빼고 3일밖에 안남으니 그냥 마음대로(하던대로ㅋ) 보내는 것도..? 예, 괜찮다고 봅니당ㅎㅎ
정리시리즈는 1권 달랑 읽었더랬죠. 그거면 저로선 충분하다고 봐요. 일단 버려야 한다는 마음을 먹도록 도와주는 강력한 책이니까요.^^

서니데이 2015-12-27 23:12   좋아요 0 | URL
저는 최근에 3권을 보았는데, 안에 실린 사진 때문인지는 몰라도 좋았거든요^^ 버리는 것을 넘어서 정리에 대해 다시 보게 하는 점도 있었고요,

컨디션 2015-12-27 23:21   좋아요 1 | URL
오, 3권은 또 그런 효과(?)가 있군요. 사진으로 보여주는 정리의 명장면은 과연 어떨까요. 어쩌면 저로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때문에 흠칫, 할 수도 있을 듯요.. 암튼 강추해주신 만큼 한번 꼭 찾아서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