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트버그의 예수는 누구인가?
존 오트버그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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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통해 하늘과 맞닿아 본 세상이 얼마나 놀랍게 변화되었는지를 확인해 보라.

 

사순절은 이미 시작되었고 얼마 안 있으면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주일이 돌아오는 시점이라 예수님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지인들을 통해 탁월한 작가라고 소개받았던 존 오트버그가 쓴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당연히 읽어 보았지요. 듣던대로 글을 잘 쓰는 작가더군요. 막히는 데 없이 술술 읽혀지는 데다가, 생각해 볼 만한 내용들이 적지 않아 만족할 만한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세상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만 해도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달라졌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만 해도 이런 일들은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 이렇게 달라졌다 라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역사가 예수님 전과 예수님 후로 나뉘어졌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인간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으며(하나님의 형상으로, 유기와 영아 살해의 관습이 중단됨, 장애인들과 밑바닥 인생들을 존중하게 됨),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겸손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용서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사랑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나서 결혼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었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교육의 평등이 이루어졌으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학문의 통합과 수준의 상승이 이루어졌으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제시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세상의 질서가 재편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예술과 문학에 엄청난 영감이 던져졌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후의 변화는 너무나 놀라워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도, 그리고 에수님이 오셨을 때보다는 더 늦어졌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동일한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는 것이기에 오직 예수님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삶이 가능해졌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예수님이 오셔서 참 다행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제물로서의 가치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미치신 영향력의 결과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인해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성육신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된 의미있는 독서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맥락을 통해서 얻은 유익도 크다 할 수 있지만, 그외에도 소소한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기쁨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분노와 긍휼이 서로 동일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개인을 향한 엄청난 사랑이었으며 또한 인간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에 대한 고통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설명을 접하면서 저는 어째서 예수님의 분노가 죄가 아니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았다고 하는 표현이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면서 이 사건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여자들도 제자로 부르신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크게 공감이 되는 설명이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히기 전에 자신이 로마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매를 맞았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예수 공동체의 작은 전초 기지를 만들고 있다. 그도 알았듯이 교회가 시작될 때 교회 안에는 엘리트층 사람들도 한둘 있었겠지만 많지는 않았다. 엘리트층이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야 했다. 바울은 그들이 형제자매가 되도록 한 가정을 만들려 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울은 보잘 것 없는 그들이 신앙 때문에 고난당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힘이 없었다. 바울은 로마시민이라는 신분을 의지해 고난을 면할 수도 있었지만 지위가 낮은 교인들은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었다. 이 곤경 속에서 그는 고통스럽고도 영광스러운 하나의 기회를 보았다. 그래서 바울은 이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자기를 낮춘' 것이다. 그는 로마시민권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스스로 시민권이 없는 '보잘것 없는' 사람처럼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내면에 베어 들어 있던 서열과 명예 경쟁으로 얼룩진 삶, 엘리트 주의를 깨뜨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결정이며, 지혜로운 결정이며, 아름다운 본이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얼마나 멋진 설명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자의 설명이 있었기에 그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지, 지금까지는 도대체 바울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이러한 설명을 읽으면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데가볼리에 처음 방문하셨을 때 군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 연유로 그 지역에서 배척을 당했었지만, 두 번째로 방문하셨을 때에는 처음과 완전히 다른 환영을 받았다는 것도 저자의 설명을 통해 처음 인식하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오병이어 사건은 갈릴리 호수의 이스라엘 편에서 무리를 먹이신 사건이었고, 칠병이어 사건은 갈릴리 호수의 이방인 편에서 무리를 먹이신 사건이었다는 사실도 저자의 설명을 통해 처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무리가 먹고 남긴 빵과 고기가 이스라엘 편에서는 열 두 바구니였고, 이방인 편에서는 일곱 광주리였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와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의미하는 숫자라는 저자의 설명을 보면서 참으로 기가 막힌 설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예수님께서 로마의 식민 지배라는 상황 속에서 열심당처럼 항거하거나, 에세네파처럼 물러나거나, 사두개파처럼 동화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편을 택하셨다는 설명으로써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다양한 유대 종파와 예수님의 차이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후반부서 저자는 예수님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던 금요일과, 무덤 속에 계셨던 토요일, 그리고 부활하셨던 주일이 보여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별개의 장으로 따로 떼어 설명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몇 가지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숨기시다가, 잡히시고 난 다음부터 자신들의 적대자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심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그것이 참으로 예수님의 주도적인 이끄심에 따른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이 죽어서 누워 게셨다는 것만큼 놀라운 기적도 없다는 설명도 그 사건의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이후로 죽음이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라 친숙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역사적인 변화에 대한 설명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부활 신앙을 소유하게 된 성도들의 내면에서 여전히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에필로그를 통해 이 책의 핵심 주제를 정확하게 정리해 주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이 예수님을 통해 서로 만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땅이 누리게 된 변화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역사하는 원리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시면 하늘이 우리의 삶에 깃들게 되고, 우리의 삶은 하늘의 삶으로 바뀌어지게 되지요.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 앞에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다른 이들 앞에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하늘과 맞닿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고, 그 경험은 분명히 놀라운 변화를 그 삶에 가져왔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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