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
크리스토퍼 애쉬 지음, 김진선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금요심야기도회 때마다 시편을 한편씩 강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00여편 정도 강해한 뒤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스펄전의 시편강해도 참고하고, 시편 설교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을 참고해 가면서 설교를 준비했었는데, 아주 밋밋하고 감동이 없는 것이 저는 물론이고 성도들에게도 고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남아 있는 50여편의 시편도 설교해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 부담감이 있어서 시편 설교에 관한 책을 보면 관심있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시편 119편'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보다는, 시편을 이해(또는 설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구조요청에 응답하는 내용이 담긴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9'라는 전화번호가 화재를 신고하는 번호임과 동시에 응급환자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번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게는 '119'가 마치 'SOS신호'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 책은 시편을 설교하다가 벽에 부딪친 사람들의 구조요청에 대답해 주는 책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시가 바로 119편이기 때문에, 시편 119편을 제대로 설교할 수 있다면 다른 시편을 설교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시편 119편을 설교하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시편 119편에 대해 소개하기를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 말씀을 사랑해야 할 이유, 말씀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는 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119편을 포함해서)을 가르치는(설교하는) 방법에 관해 소개하기를, 시편은 음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고, 노래로 느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며, 가슴 깊은 곳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 자신도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119편을 설교하고자 애쓴 것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시편 119편이 알파벳 시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시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모두 22개의 연으로 구성된 시로써, 각 연은 그 연의 순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1연의 첫 절은 알렙으로 시작하고 2연의 첫 절은 베트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연은 모두 여덟 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4절과 뒤의 4절로 다시 구분할 수 있으며, 앞의 4절과 뒤의 4절이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시편 119편에서 사용된 율법과 관련된 8개의 단어(교훈, 증거, 법도, 율레, 계명, 판단, 말씀, 약속)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한글성경(개역개정)에서는 말씀(Word)과 약속(Promise)를 아무 구분없이 '말씀'으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나머지 6개 단어에 대해서는 히브리어에 따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각 장의 해당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여덟 개의 단어들을 영어와 함께 병기해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연에서 사용된 '말씀'이  말씀(Word)인지 약속(Promise) 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여섯 단어들 역시 명확한 의미를 생각하며 읽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여덟 개의 단어가 모두 '언약'이라는 개념과 연결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계명, 율례, 판단, 교훈는 언약 백성에게 주어지는 '의무'이며,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언약'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의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언약에 따르는 모든 '율법'은 언약 백성에게 주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판단'과 '약속'의 의미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단어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과 일차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관한 설명에서 칼빈이 바울에 대해 비판한 내용(45쪽. 바울은 율법과 복음을 대조할 때 율법의 명령들과 위협만 언급하고 있다.. 선지자는 시편에서 율법이 복음에 적대시되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을 언급한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내용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후로는 1연부터 22연 까지의 본문을 중심으로 저자가 이해한 각 연의 중심 주제와 주목할 만한 내용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내용들을 다 언급할 수는 없고 저자의 설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한 가지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묵상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실제로 개역한글판 성경에서 '묵상'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개역개정판성경에서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저자는 '묵상'을 자신에게 큰 소리로 말씀을 읽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시편 119편 15절의 '묵상하며(개역한글),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개정개역)'의 원래 히브리어 단어인 '씨아흐'는 '자신과 큰 소리로 대화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더군요. 그러므로 15절의 '묵상하며'는 13절의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와 동일한 내용의 반복이라고 이해해야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설명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성경을 큰 소리로 읽어 자신의 귀에 들리게 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일은 구약의 성도들이 해 왔던 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나니 지금까지 '묵상'이라고 해 온 것이 실제로는 '성경이 말하는 묵상'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물론 그러한 묵상도 커다란 유익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묵상'을 제대로 실천할 경우에는 어떠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시편 119편을 설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176절짜리 시라면 몰라도 8절 정도의 시라면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자가 분석해 놓은 주제들과 내용들을 가이드 삼아 따라간다면 해석의 오류에 대한 두려움이나 중요한 내용을 뛰어넘는 것에 대한 염려 없이 설교를 준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저자의 설교가 상당히 지적인 면에 많이 치우쳐 있다고 느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시편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삼았던 세 가지 목적 가운데 두번째에 해당되는 '감동을 주는 면'에 있어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시편을 설교하는데 있어서 이 정도로 훌륭한 모델을 찾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시편을 설교하고자 하는 모든 설교자가 읽어야 할 필독서라 생각됩니다.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