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누군가를 떠밀 때 거기엔 아무런 법칙도 이유도 없기 마련이다.

-「143번 버스의 여자」에서

내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셈을 해본다. 일곱 시간은 잠을 자고, 나머지 열일곱 시간 중에 최소 아홉 시간은 회사에서 보낸다. 씻고 먹는 기본적인 행위에 드는 두세 시간, 준비와 이동에 드는 한 시간을 빼면 남는 건 네 시간 남짓이다. 주로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

-「시간과 물건」에서

타이밍을 놓친 분노만큼 해로운 게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학창 시절의 몇몇 기억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서

노래는 시간을 저장한다. 어떤 시기를 다시 복기하고 싶다면, 그 시기에 자주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된다. 노래는 그 노래를 들었던 시간과 공간 같은 환경적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절에 열심히 들었던 노래는 영원히 그 시절을 그대로 담아둔다.

-「노래가 저장하는 것」에서

그 순간, 눈앞에서 불이 번쩍 들어왔다. 주홍색 전구였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웬 남자가 택시 바로 앞에서 불을 켠 참이었다. 남자의 발밑으로는 수많은 과일 박스가 쌓여 있었다. 내가 탄 택시가 청과시장 골목을 지나는 중이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먼 천막에서부터 바로 옆 가게까지 불이 차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택시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길이 밝아져, 내 주위로 작은 빛들이 모여드는 것만 같았다. 어둡던 거리에 불이 켜지자 난전에 나와 있는 과일 궤짝들과 상인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마침내 온통 낮처럼 환하게 시야가 밝아졌다. 그 순간 하늘에서 그 장면을 내려다봤다면, 청과시장은 작은 빛의 섬처럼 보였을 것이다.

-「야경과 안정감」에서

작은 과일가게에서 저마다 밝힌 불빛이, 환대의 빛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바보 같아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어딘가에선 따뜻한 것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한겨울 밤중에 맞닥뜨린 불빛의 행렬은 내게 엄청난 위안이 됐다. 매일 바닥을 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밑바닥에도 아름답고 반가운 순간들이 있었다.

-「야경과 안정감」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푸른 밤〉 풍경이 떠오를 때가 있다. 보통 잠드는 시간이 열두시 전후, 〈푸른 밤〉 방송이 시작되던 무렵이라 그런 걸까. 기억이 시간에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
제일 자주 선곡했고 항상 따라 불렀던 노래는 스티비 원더의 〈리본 인 더 스카이〉. 짧지 않은 노래지만 순식간에 흘러간다.

#
바깥세상이 곤히 잠드는 시간, 적당히 피곤하면서도 평화로운 새벽 한시 사십분의 스튜디오 풍경.

#
밤 열두시,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잠이 오지 않을 땐 가끔 상상해본다. 스튜디오 문이 열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디제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와 의자에 털썩 앉는 모습을. 익숙한 음악에 맞춰 오프닝을 시작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지켜왔던 것처럼.

나의 첫번째 디제이는 그렇게, 어디선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작고 아늑한 스튜디오 안에서만큼은 영원히.

-「푸른 밤」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천천히, 시간이 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말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시간들이란. 비록 무의미하고 쓸모없을지라도 우리 머릿속을 맴도는 작은 물고기들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들이란, 얼마나 소중했는지.

-「잃어버린 대화」에서

#
지치지 않고, 아니 어쩌면 지쳐서 나가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것. 청춘의 감수성과 재능이 노동자적 근면성으로 대체되는 순간. 그 순간을 겪어낸 사람들을 존경하고 또 좋아하게 된다.

#
행위는 지속될 때 빛을 발한다. 이 명제는 ‘보통의 존재’들뿐 아니라, 보통을 넘어선 특별한 존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오로지 지속될 때만이, 행위는 그 자신도 모르게 모습을 바꾸어가며 진화한다. 그러니 그 어떤 작은 가능성이라도 기대한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한다. 계속 한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매일매일 한 음 한 음을 쌓을 것이고, 글을 쓰고 싶다면 아무도 보지 않는 보잘것없는 일기나마 계속 써나갈 것이다.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나가는 것처럼.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에서

가끔은 이 되풀이의 습관 덕분에 아프지 않고 살아간다고 느낄 때도 있다. 속절없이 힘들거나 속상할 때조차, 끊임없이 해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것. 매일 쳐내도 내일이 되면 새로 날아오는 내 몫의 하루가 있다는 사실.

-「나의 중력」에서

덜 기쁘게 살아도 좋으니 덜 슬플 수 있다면 좋겠다.

-「감정 계약서」에서

매일 울고 있으면 그게 이상한 줄도 모르게 된다.

-「눈물 냄새」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리는 자신의 삶을 증오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오하지는 못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 잘 자.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 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스펙트럼」에서

할머니는 나에게 루이가 쓴 기록의 내용을 읽어주셨다.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할머니는 여생을 색채 언어의 해석에만 몰두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여가며 알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평범한 관찰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중 잊히지 않는 한 문장만큼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스펙트럼」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런데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희곡은 문학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극작가를 ‘playwriter’라고 표기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playwright’로 부르죠. 작가(writer)와 장인(wright)의 차이. 이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 분명 서구에서도 극작가를 연극이라는 집을 짓는 일종의 숙련공으로 인식하지만, 한국에선 이 차이가 좀 더 극명하지 않을까 해요. 신춘문예에 희곡 부문이 있지만, 희곡집을 내는 출판사는 흔치 않잖아요. 근래에 조금 생기긴 했지만,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 아닌, 동시대에 쓰인 희곡 작품이 책으로 독자를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활자의 형태로 ‘독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공연의 형태로 ‘관객’을 만나는 작품이니까요. 문학성이 있는 희곡은 분명 존재하지만 희곡이 문학 그 자체로 살아남는 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고요."

-「고재귀, 극작가의 마음」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