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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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고 거기에 보조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울한 역할이었다. (p27)

고양이 애호가로 유명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는 고양이를 주제로 쓴 그녀의 세 권의 책을 하나로 엮어낸 산문집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녀와 고양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존재의 사라짐에 무감각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귀한 도시 고양이를 모시고 산 런던에서의 생활까지. 고양이와 함께할 여유가 없었던 시기를 제외하고 그녀의 삶은 고양이로 가득했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글을 맛깔나게 잘 쓰는 집사가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고양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본 관찰 일기랄까. 여기까지만 보면 한없이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때론 잔인해 져야 할 때도 있다. 도리스는 고양이를 키우며 느꼈던 괴로운 감정까지도 담백하지만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그녀의 희로애락이 더 진솔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세상에 그 누가 악역을 자처하고 싶을까. 아프리카에 살았던 유년 시절. 잘 관리받은 도시의 고양이와 달리 길들어지지 않은 야생의 고양이는 인간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손수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한다. 도리스의 집안에서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은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는 어머니였다. 사실 글 시작부터 상상하면 너무 잔인한 이야기라 페이지를 계속 넘겨야 하나 잠시 고민했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고양이의 목숨이 파리 목숨인 이 상황을, 고양이의 시체로 산을 쌓았을 폐우물을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렸다. 도리스도, 그녀의 아버지도 여전사 같은 어머니가 탐탁지 않았으리라. “자연은 다 좋아. 제 자리를 지키기만 한다면(p27).” 이런 속 좋은 소리나 하며 자연 예찬을 하는 아버지에 질려 중재자의 역할을 어머니가 포기하자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백 마리의 고양이에 둘러싸인 집에 살 게 된다. 심지어 근친교배로 인한 기형 고양이가 득세하고 이는 아버지가 더는 자연을 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의 집에서 일어난고양이 홀로코스트사건은 피할 수 없었으리라.

 

너무나 예쁘고, 너무나 완벽했다. 아주 오래전 내가 영원히 너 같은 고양이는 없을 것이라고 맹세했던 그 고양이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 우리의 공주 고양이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아름답지만, 솔직히 말해 이기적이다. (p66)

그녀의 삶에 고양이가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무려 2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런던의 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도리스에게 찾아온 예쁜 회색 고양이는 예쁘고 한 성깔 한다.  꽤 오랜 기간 고고한 여왕처럼 집주인 노릇을 한 회색 고양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탐내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절대 그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동물의 모성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회색 고양이는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속이 타는 건 인간일 뿐. 결국 동네 수고양이들의 구애를 한 몸에 받아 자꾸 새끼를 낳는 회색 고양이에게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중성화 수술에 죄책감을 느끼던 작가도 이것이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인다. 주인에게 배신당해 의기소침해진 회색 고양이의 히스테리가 온 집안을 감싼다. 이 책의 제목이회색 고양이를 위하여가 아닐까 싶을 만큼 책에서 회색 고양이는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회색 고양이의 하우스 메이트는 종종 바뀌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주인공처럼 도리스와 함께한다. 검은 고양이와의 신경전, 생존자의 지능을 체득한 루퍼스. 수많은 고양이들이 이 책에 등장하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나 회색 고양이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대단한 호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충격적이고 놀라운 즐거움을 맛보고, 고양이의 존재를 느끼는 삶. 손바닥에 느껴지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털, 추운 밤에 자다가 깼을 때 느껴지는 온기,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고양이조차 갖고 있는 우아함과 매력. 고양이가 혼자 방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우리는 그 고독한 걸음에서 표범을 본다. (p264)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모진 선택도 감내하는 도리스의 결단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했던 부치킨의 다리 하나를 잘라내고 그의 의기소침함을 내내 봐야 했을 때 얼마나 슬펐을까? 그럼에도 고양이는 분명 그녀의 삶에 수많은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이 책의 독자라면 누구나 도리스의 집을 고고하게 거니는 행복한 고양이들이 떠오를 테니 말이다. 나는 고양이가 없지만 고양이 집사라면 꼭 읽어 보길 추천한다. 많은 공감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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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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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행복했는지 아닌지. 우리를 원망하지 않는지……. 하지만 이젠 대답을 들을 수 없겠네.” (p22)

 

한 청년이 죽어가고 있다. 뇌신경이 차례차례 죽어버리는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유전병에 걸린 소년 도키오. 아이를 낳은 건 후회하지 않지만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부모의 애달픈 마음을 하늘이 알아준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아들 도키오는 죽음을 앞둔 19살 아들 도키오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23살의 아버지 미야모토를 만나 떠난 특별한 시간 여행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소개를 보고 막연히 신파를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굉장히 가슴 뭉클하고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지금은 듬직해 보이는 아버지 미야모토 다쿠미의 젊은 시절은 그 어떤 계획도 없이 방탕하게 세월만 낭비하는 한량 그 자체였다. 제대로 된 일자리도 알아보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여자친구 등이나 처먹는 인간말종. 그런 미야모토를 마주한 도키오는 충격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젊은 시절 아버지의 실망스러운 모습이지만 아버지의 삶이 더 큰 후회로 가득차기 전에 어떻게든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가난한 친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양부모에게 키워졌다는 콤플렉스로 세상을 비관만 하던 다쿠미는 친어머니가 위독해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는 부탁에도 냉랭하다. 그런 다쿠미의 등을 억지로 떠민 건 바로 도키오! 지금 그 사람을 만나면 먼 훗날 형은 이렇게 말하게 돼. 그때 친어머니를 만나기를 잘했다고. 그 사실을 형 아들에게도 말하게 될 거야. 눈을 빛내며 자랑하게 될 거라고(p170).” 도키오의 고집에 억지로 친어머니가 있는 나고야로 향하지만 모자상봉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별로 상관없잖아. 형 멋대로 하고 나는 내 멋대로 하고. 그럼 되는 거잖아. 형이 말한 거니까.” (p263)

 

나고야를 떠난 도키오 일행이 향한 곳은 오사카. 애당초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라진 다쿠미의 여자친구 지즈루를 찾는 거였다. 단순히 기생충 같은 다쿠미에 진저리가나서 이별을 고했다고 생각하기엔 그녀가 떠난 후 지즈루를 찾는 사람들의 포스가 심상치 않다. 무언가 위험한 일에 얽혀 있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 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다쿠미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도키오와 자주 의견이 충돌한다. 무엇보다 나고야에서 다쿠미의 친어머니가 남긴 만화책 공중 교실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천시하는 태도에 이들의 갈등은 절정에 이른다. 지즈루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여러 난관을 헤쳐 나가며 흐릿했던 그녀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장면은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다 좋은데 다쿠미만 입을 다물 면 참 좋을 텐데. 대책도 없이 말만 앞서는 그야말로 진정 스파이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인간은 어떤 때라도 미래를 느낄 수 있어. 아무리 짧은 인생이어도, 설령 한순간이라도 해도 살아 있다는 실감만 있으면 미래는 있어. 잘 들어. 내일만이 미래가 아냐. 그건 마음속에 있어. 그것만 있으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 그걸 알았기에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낳은 거야. 그런데 당신은 뭐야. 불평만 하고, 스스로 무엇 하나 쟁취하려 하지도 않아. 당신이 미래를 느끼지 못하는 건 누구의 탓도 아냐. 당신 탓이야. 당신이 바보라서.” (p396)

 

훈훈한 소설답게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지만 치기어린 시절 다쿠미가 정신 차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누가 뭐래도 도키오다.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가 과연 태어나서 행복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장이다. 젊은 날의 다쿠미와 동행해보니 어떻게 다쿠미한테 도키오같은 아들이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내일만이 미래가 아니라는 이 말, 짧은 생이었지만 도키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생했지만 결국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날 수 있게 다리를 이어주고 떠난 모습이 가슴 아프면서도 뭔가 감동적이다. 내 부모님의 과거는 어땠을까? 나도 한번쯤은 이런 특별한 시간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두께에 압도됐지만 읽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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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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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일은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죽은 사람이 만든 냄새가 가져다줍니다. 그 냄새를 극적으로 없앴을 때 내 비즈니스는 성공하지요. 대가로 살아 있는 사람이 나에게 돈을 지급합니다. (p6)

 

무심코 뉴스를 듣다보면 어디 사는 누가 외로이 고독사했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고 전해진다. 한 사람의 생명이 꺼지고 그 사람의 흔적을 수습할 이가 없을 때, 죽은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정리하는 청소부가 있다. 이런 직업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내게 특수 청소부란 직업은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양지에 드러나지 못하고 유령처럼 어둠 속에서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그. 김완 작가의 에세이죽은 자의 집 청소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생물학적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그 과정은 사뭇 다르다. 죽음의 그림자가 사람이 사는 집을 무자비하게 덮칠 때 남은 흔적은 더없이 쓸쓸해 보인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삶, 죽은 자가 늘어날수록 활기를 띠는 비즈니스. 그 직업적인 아이러니를 떼어놓고는 이 일을 설명할 수 없다(p138)는 작가의 고백은 그의 일이 지닌 양면성을 보여준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처치일 뿐 그 일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p134)며 자신이 하는 일에 지나치게 의미 부여하는 걸 경계하는 저자의 심정을 내가 어찌 감히 헤아리겠는가. 나는 그저 이 책을 읽으며 이 세상에서 벼랑 끝까지 몰렸던 이들의 마지막을 예우하며 정리하는 진솔함에 감동받았다.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p47)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린 채 눈 감았을 이들의 비통함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죽음의 흔적조차 불쾌함으로 남아 혹시라도 누가 알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보통 사람들. 속물처럼 보이는 그들에게 차마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건 나부터도 가난과 외로움의 그림자는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p44)라는 저자의 자조 섞인 문장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힌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냉혹한 시선을 견뎌야 하는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자신이 다녀갔음을 알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비 없는 세상을 원망하고 죽은 인간조차도 그 자리에 방치된 채 오랫동안 썩어갔다면 그 냄새는 자비가 없다(p23)며 그 마지막 흔적을 날려버리기 위해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하는 저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착잡한 마음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일 순위는 일할 때 괴롭지 않은가이다. 그리고 이 순위까지는 못 미치지만 일을 마치면 어떤 보람이 있냐는 질문도 흔히 잇따른다. (p142)

 

아무도 알 수 없는 죽음 이후 펼쳐질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까. 죽음을 언급하기 꺼려하는 문화다보니 죽음을 정리하는 사람의 일이 얼마나 고된지 궁금한가보다. 나 역시도 책을 읽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절망만이 남은 자취를 묵묵히 청소해야 할 때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었다. 힘들지 않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p145). 참으로 모호하지만 적절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할 죽음의 냄새를 곳곳에서 맡으며 살아가다보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옆집과의 에피소드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아직도 잊지 못할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죽음을 결심하고 청소비용을 문의한 남자다.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죽음 이후 남겨질 자신의 짐을 걱정하고 용기 내어 전화까지 걸었던 그 심정을 감히 상상할 수 없어 더 가슴이 미어진다. 사는 것도 힘든데 죽는 것도 쉽지 않다. 아직은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다보니 죽음이란 단어가 내게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지만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삶을 잘 정리하는 게 참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 인간이 죽은 곳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과 존재에 관한 면밀한 진술은 오히려 항바이러스가 되어 비록 잠시나마 발열하지만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고 굳세게 만드는 데 참고할 만한 기전이 되리라 믿는다(p249)는 저자의 바람에 부응하고 싶다. 나는 이제 무얼 하면 되는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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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 즐겁게 시작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허유정 지음 / 뜻밖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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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한 내 꿈은 하나다. ‘쟤도 하는데, 나도 해볼까?’의 만만한 가 되는 것. 책을 읽고 지금 당장 쓰레기를 줄여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면 바랄 게 없다. 대단한 결심도 필요하지 않다. ‘이제 나무 칫솔을 써볼까?’하는, 딱 이정도의 관심이면 충분하다. (p19)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환경보호는 남의 일처럼 생각했었다.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는 환경을 걱정하지 않아서라기 보단 나 하나의 힘이 너무 미미하게 느껴져 고작 내가 텀블러 들고 다니는 걸로 세상이 바뀔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게으름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허유정 작가의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를 읽고 나니 나는 애당초 말로만 환경을 걱정했을 뿐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나빠서 일수도 있지만 환경 보호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나처럼 평범하게 게으른 사람이 도전하기에는 너무나도 불편하고 대단한 일처럼 느껴졌다. 만만한 쟤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 작가님의 의도대로 책을 읽고 난 후 이름조차 생소했던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아주 조금이나마 실천하고자 마음먹고 당장 나무 칫솔을 주문하고 텀블러를 챙겼다.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p67)

 

건강 악화로 살기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였다던 저자의 글이 좋은 건 독자들에게 훈계하지 않는다는 거다. 지구를 위해 이 정도는 마땅히 해야지! 가 아닌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보자며, 자신도 까다롭게 모든 걸 다 지키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완벽할 필요가 없는 걸 알지만 왠지 지키기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시작부터 주춤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의 응원을 듣고 있으면 이정도 쯤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용기가 생긴다. 제로웨이스트란 생활 속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은 재활용하자는 운동(p45)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우리가 무심코 사용했던 생활용품들을 좀 더 지구 친화적인 제품으로 대체한다.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모로 다양한데 시장을 갈 때 물건을 담아올 용기를 챙기고, 향기가 좋아 듬뿍듬뿍 썼던 샴푸, 린스, 섬유유연제를 샴푸린스바로 바꿔본다. 제로웨이스트의 핵심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만든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것(p96). 숨만 쉬어도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내게는 참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단 생각도 든다. 이렇게 미약하게나마 용기를 낸다면 아주 조금은 지구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법을 바꾸는 목소리는 어쨌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텀블러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p215)

 

책에는 어떻게 쓰레기를 줄이고 대체할 수 있는지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문득 비닐은 쓰레기 같은 인간이란 걸 알지만 쉽게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 같았다(p87)는 저자의 고백처럼 내 최애탬 비닐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환경 보호를 실천하기 위해 저자가 겪은 시행착오덕분에 마음만 먹는다면 한결 수월한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영위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농부가 직접 시장에 나와 소비자를 만나는 마르쉐@’ 채소 시장에 꼭 가보고 싶다.

 

나 하나의 힘은 너무 미약해보이지만 제도가 개선되면 분명 지금보다는 환경에 더 이로울 것이다. 카페에 일회용 컵 사용이 금지됐을 때 정서적 반발은 거셌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이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목소리를 높일 만큼 환경 보호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지만 텀블러를 들고 나간다는 건 환경 보호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동의의 표현이 아닐까. 말은 이렇게 하면서 오늘도 나는 텀블러를 잊었지만 말이다. 이처럼 잔잔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책을 통해 사람들의 사고가 조금씩 바뀐다면 지구의 건강에 청신호가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평범한 사람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하는 제로 웨이스트라이프,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와 함께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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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 내세에서 현세로, 궁극의 구원을 향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19
박상진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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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을 쓰기 전에 그는 포근한 우리 속에 잠든 한 마리 양이었다. 하지만 그 우리에서 쫓겨나면서신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를 쫓아낸 자들이 싸움을 걸었고, 그것에 응전한 방식이 곧신곡집필이었다. (p45)

 

단테야 말고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제대로 실천하고 간 인물이 아닐까. 언제나 믿고 보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19번째 주인공은 너무도 유명한 명저신곡의 주인공 단테를 박상진 교수와 함께 추적한다. 평탄한 엘리트의 길을 걸었던 단테의 인생에 망명은 좌절로부터의 싸움이었지만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귀동냥으로 알고 있던 단테에 관한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니 단테라는 사람의 인생 희로애락을 함께 한 기분이 든다. 단순히 신곡의 저자로만 알고 있던 것과 달리 단테는 매우 박학다식한 지식인이자 정치인이었다. 고작 두 번 만난 첫사랑을 잊지 못해 천국의 안내자로 선택했다는 풍문과 달리, 단테에게 있어 숫자 2가 가진 특별한 의미를 해석해주자 그가 추구했던 이상향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문화권이 다르다보니 완성의 의미를 뜻하는 숫자가 그간 잘 와 닿지 않았었다.

 

그가 망명길에 올랐던 걸 알고는 있었지만, 왜 망명길에 올랐는지는 잘 몰랐다. 신곡을 일독했다보니 당연히 그가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이라 생각했었지 이단으로 몰렸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자신의 반평생을 보낸 도시 피렌체를 떠나면서 우월한 고립을 실천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남은 원망과 미움을 글로써 승화시켰다. 자신을 내쫓은 정적을 지옥에 처넣고, 심지어 제 할아버지의 원수마저 지옥 불에 떨어뜨리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 글이 읽히니 얼마나 통쾌하고 멋진 복수인가. 단테 개인에게는 불행한 시절이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복수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이 부럽다. 재기하기 위해 애쓰던 그의 노력은 끝끝내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의 일생은 참으로 찬란하게 빛났으리. 신곡의 작가로 단테가 아닌 인간 단테는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죽어서 그 명성은 배가 되었다. 그의 고뇌, 좌절, 고립조차도 멋져 보이니. 아무것도 모른 채 읽었던 신곡과 단테에 대한 지식을 쌓고나니 다시금 신곡이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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