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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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행복했는지 아닌지. 우리를 원망하지 않는지……. 하지만 이젠 대답을 들을 수 없겠네.” (p22)

 

한 청년이 죽어가고 있다. 뇌신경이 차례차례 죽어버리는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유전병에 걸린 소년 도키오. 아이를 낳은 건 후회하지 않지만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부모의 애달픈 마음을 하늘이 알아준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아들 도키오는 죽음을 앞둔 19살 아들 도키오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23살의 아버지 미야모토를 만나 떠난 특별한 시간 여행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소개를 보고 막연히 신파를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굉장히 가슴 뭉클하고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지금은 듬직해 보이는 아버지 미야모토 다쿠미의 젊은 시절은 그 어떤 계획도 없이 방탕하게 세월만 낭비하는 한량 그 자체였다. 제대로 된 일자리도 알아보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여자친구 등이나 처먹는 인간말종. 그런 미야모토를 마주한 도키오는 충격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젊은 시절 아버지의 실망스러운 모습이지만 아버지의 삶이 더 큰 후회로 가득차기 전에 어떻게든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가난한 친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양부모에게 키워졌다는 콤플렉스로 세상을 비관만 하던 다쿠미는 친어머니가 위독해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는 부탁에도 냉랭하다. 그런 다쿠미의 등을 억지로 떠민 건 바로 도키오! 지금 그 사람을 만나면 먼 훗날 형은 이렇게 말하게 돼. 그때 친어머니를 만나기를 잘했다고. 그 사실을 형 아들에게도 말하게 될 거야. 눈을 빛내며 자랑하게 될 거라고(p170).” 도키오의 고집에 억지로 친어머니가 있는 나고야로 향하지만 모자상봉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별로 상관없잖아. 형 멋대로 하고 나는 내 멋대로 하고. 그럼 되는 거잖아. 형이 말한 거니까.” (p263)

 

나고야를 떠난 도키오 일행이 향한 곳은 오사카. 애당초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라진 다쿠미의 여자친구 지즈루를 찾는 거였다. 단순히 기생충 같은 다쿠미에 진저리가나서 이별을 고했다고 생각하기엔 그녀가 떠난 후 지즈루를 찾는 사람들의 포스가 심상치 않다. 무언가 위험한 일에 얽혀 있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 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다쿠미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도키오와 자주 의견이 충돌한다. 무엇보다 나고야에서 다쿠미의 친어머니가 남긴 만화책 공중 교실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천시하는 태도에 이들의 갈등은 절정에 이른다. 지즈루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여러 난관을 헤쳐 나가며 흐릿했던 그녀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장면은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다 좋은데 다쿠미만 입을 다물 면 참 좋을 텐데. 대책도 없이 말만 앞서는 그야말로 진정 스파이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인간은 어떤 때라도 미래를 느낄 수 있어. 아무리 짧은 인생이어도, 설령 한순간이라도 해도 살아 있다는 실감만 있으면 미래는 있어. 잘 들어. 내일만이 미래가 아냐. 그건 마음속에 있어. 그것만 있으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 그걸 알았기에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낳은 거야. 그런데 당신은 뭐야. 불평만 하고, 스스로 무엇 하나 쟁취하려 하지도 않아. 당신이 미래를 느끼지 못하는 건 누구의 탓도 아냐. 당신 탓이야. 당신이 바보라서.” (p396)

 

훈훈한 소설답게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지만 치기어린 시절 다쿠미가 정신 차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누가 뭐래도 도키오다.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가 과연 태어나서 행복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장이다. 젊은 날의 다쿠미와 동행해보니 어떻게 다쿠미한테 도키오같은 아들이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내일만이 미래가 아니라는 이 말, 짧은 생이었지만 도키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생했지만 결국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날 수 있게 다리를 이어주고 떠난 모습이 가슴 아프면서도 뭔가 감동적이다. 내 부모님의 과거는 어땠을까? 나도 한번쯤은 이런 특별한 시간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두께에 압도됐지만 읽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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