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내 일은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죽은 사람이 만든 냄새가 가져다줍니다. 그 냄새를 극적으로 없앴을 때 내 비즈니스는 성공하지요. 대가로 살아 있는 사람이 나에게 돈을 지급합니다. (p6)

 

무심코 뉴스를 듣다보면 어디 사는 누가 외로이 고독사했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고 전해진다. 한 사람의 생명이 꺼지고 그 사람의 흔적을 수습할 이가 없을 때, 죽은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정리하는 청소부가 있다. 이런 직업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내게 특수 청소부란 직업은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양지에 드러나지 못하고 유령처럼 어둠 속에서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그. 김완 작가의 에세이죽은 자의 집 청소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생물학적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그 과정은 사뭇 다르다. 죽음의 그림자가 사람이 사는 집을 무자비하게 덮칠 때 남은 흔적은 더없이 쓸쓸해 보인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삶, 죽은 자가 늘어날수록 활기를 띠는 비즈니스. 그 직업적인 아이러니를 떼어놓고는 이 일을 설명할 수 없다(p138)는 작가의 고백은 그의 일이 지닌 양면성을 보여준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처치일 뿐 그 일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p134)며 자신이 하는 일에 지나치게 의미 부여하는 걸 경계하는 저자의 심정을 내가 어찌 감히 헤아리겠는가. 나는 그저 이 책을 읽으며 이 세상에서 벼랑 끝까지 몰렸던 이들의 마지막을 예우하며 정리하는 진솔함에 감동받았다.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p47)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린 채 눈 감았을 이들의 비통함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죽음의 흔적조차 불쾌함으로 남아 혹시라도 누가 알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보통 사람들. 속물처럼 보이는 그들에게 차마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건 나부터도 가난과 외로움의 그림자는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p44)라는 저자의 자조 섞인 문장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힌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냉혹한 시선을 견뎌야 하는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자신이 다녀갔음을 알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비 없는 세상을 원망하고 죽은 인간조차도 그 자리에 방치된 채 오랫동안 썩어갔다면 그 냄새는 자비가 없다(p23)며 그 마지막 흔적을 날려버리기 위해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하는 저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착잡한 마음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일 순위는 일할 때 괴롭지 않은가이다. 그리고 이 순위까지는 못 미치지만 일을 마치면 어떤 보람이 있냐는 질문도 흔히 잇따른다. (p142)

 

아무도 알 수 없는 죽음 이후 펼쳐질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까. 죽음을 언급하기 꺼려하는 문화다보니 죽음을 정리하는 사람의 일이 얼마나 고된지 궁금한가보다. 나 역시도 책을 읽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절망만이 남은 자취를 묵묵히 청소해야 할 때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었다. 힘들지 않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p145). 참으로 모호하지만 적절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할 죽음의 냄새를 곳곳에서 맡으며 살아가다보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옆집과의 에피소드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아직도 잊지 못할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죽음을 결심하고 청소비용을 문의한 남자다.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죽음 이후 남겨질 자신의 짐을 걱정하고 용기 내어 전화까지 걸었던 그 심정을 감히 상상할 수 없어 더 가슴이 미어진다. 사는 것도 힘든데 죽는 것도 쉽지 않다. 아직은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다보니 죽음이란 단어가 내게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지만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삶을 잘 정리하는 게 참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 인간이 죽은 곳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과 존재에 관한 면밀한 진술은 오히려 항바이러스가 되어 비록 잠시나마 발열하지만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고 굳세게 만드는 데 참고할 만한 기전이 되리라 믿는다(p249)는 저자의 바람에 부응하고 싶다. 나는 이제 무얼 하면 되는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