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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게임 마니또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36
선자은 지음, 고상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8월
평점 :
푸른숲어린이문학 36
위험한 마니또
선자은 지음
고상미 그림
푸른숲주니어 펴냄
김지율 죽어라
진짜 재수 없어!
시작부터 강렬하다!
초등 고학년 교실에서 시작된 마니또 게임. 선생님의 제안에 모두들 유치하다는 반응이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누군가 나를 뽑아주길 바랄 만큼 약간의 설레임도 있었겠지. 남학생은 여학생을, 여학생은 남학생을 뽑았다. 남녀비율이 안 맞아 어쩔 수 없이 여학생을 뽑은 지율이만 빼고. 스포일러 같지만 지율이는 단짝 아름이를 뽑았다. 그리고 지율이를 뽑은 아이는 모모. 일단 여기까지. 그런 지율이에게 이런 충격적인 내용이 쪽지가 온 것! 등장인물 소개에서 밝혀진대로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이며 존재감이 없던 아이가 지율이다. 그러다가 지율이가 부회장이 된다. 소심하지만, 자기 할 일은 잘 챙기는 것이 이런 아이들의 장점이다. 부회장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 왔던 지율이. 누구에게든 허투루 보일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기에 이런 쪽지는 더욱 충격적이다. 하지만 지율이는 당황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 결코 소심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 사실이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남들이 모른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부회장이 되어 그동안 쌓아왔던 나름대로의 모범생다운 이미지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
이 작품에서 언급되는 이 반의 주요 남학생들은 전은석, 황두진, 모모, 이렇게 세 명이다.
전은석은 학급회장으로 그야말로 나무랄데 없는, 남학생, 여학생 누구나 인정하고 좋아하는 엄친아 스타일이다. 황두진은 그 반대. 다혈질인데다가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늘 주먹이 앞서는 까닭에 따르는 몇몇 남자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모모는 존재감을 스스로 없앤 아이라고 해야할까. 한쪽 귀가 안들리는 것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모모는 그때부터 아예 없는 사람 처럼 처신을 한다.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지내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지낸다. 그런 모모가 뽑은 인물이 지율이다. 존재감 없이 지내기를 바라지만, 자신이 뽑은 아이는 눈여겨보게 되는 법. 지율이는 끔찍한 첫 쪽지를 아무도 모르게 숨기지만, 점점 그 보다 더 심한, 공격을 받게 되고 반 전체 아이들이 알게 된다. 그럴 수록 모모는 자신이 지율의 마니또이기에 범인으로 의심을 받게 될까봐 촉각을 세우고 범인을 알아내려 애쓴다. 모모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범인은 전.은.석!
그렇다면 왜 전은석인가? 왜 전은석이 모모의 눈에 범인으로 보일만 행동을 한걸까? 지율이가 모모의 귀띔(은석이가 범인이라는)을 듣기 전에 지율이도 평소에 기대했던 은석이, 아니 회장이 모습이 아니어서 당황한 적이 있다. 지율이가 당한 일을 자꾸 덮으려 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장난일테니 일을 크게 벌이지 말자고 하면서... 지율이는 그런 은석이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낀다. 그리고 은석이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서운함을 넘어선 복수심이 불타게 된다.
그 다음은 시현이.
연예인처럼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다. 시현이 역시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그 멋진 이미지 때문에, 그 이미지를 지켜야하기에 안타깝지만 무리수를 둔다. 마니또가 보낸 선물인양, 자기 서랍에 스스로 산 물건들을 넣어놓는다. 지율이에게 부회장 자리를 뺏긴 질투심은 이 마니또 사건의 발단이 된다...
고상미 그림작가의 일러스트가 눈에 확 들어온다.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잘 드러내주는 흑백의 연필 스케치, 그리고 노란색의 컬러. 긴장감이 감돌고 스릴감 있는 사건들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켜준다. 『스무고개 탐정』(비룡소)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그렸던 적이 있어서, 한번에 알아보았다.
갑자기 여자애들이 김지율을 동정하기 시작했다. 바로 지난 주까지는 김지율이 가식적이라고 흉을 보던 애들이 맞나 싶었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둘 김지율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순식간에 반 전체에 김지율을 불쌍히 여기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변덕스럽다. 단순히 흥미로운 일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거기에 맞춰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아이들, 그러고 보면 멍청하긴 해도 한결같은 두진이가 나은지도 모르겠다. 두진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지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김지율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단순한 식중독이 아닐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분명히 초콜릿과 연관이 있다. (p. 85, 86 모모의 이야기 中)
초등 고학년 아이들의 이야기 치고는, 작가의 말대로 강렬하고 독하다. 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른들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경쟁을 하는 가운데 느끼게 되는 질투심, 탐욕 때문에 이들은 가식적일 수 밖에 없다.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자신의 진짜 모습은 차이가 있고, 그 차이만큼 어쩌면 더 처절하게 감추려는 '노력'이 따른다. 이런 치열한 교실의 무대 뒤에는 어른들이 있는게 아닐까. '나다운 나'로 보아주지 않고 끊임 없이 자신의 의견대로 아이들을 이끌려 하는 어른들. 아이들을 치열한 경쟁 속으로 밀어넣는 어른들.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내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자아가 강해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어른들의 개입 없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희망적이고 대견하다고 생각되었다. 아무 존재감도 없다고 생각했던 모모에게 그런 아픔과 그걸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자신만의 전략?이 있었다는 것을 보며, 사람을, 아이들을 그냥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이해하려 하면 안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모두 그들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소통이 필요한거고...
학급회장 은석이의 마지막 엔딩씬?에 한없이 감동되었다. 긴박하고 충격적인 일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범인의 마니또로서 어떻게든 그의 수호천사가 되어주려 노력했던 그의 모습에 독자인 나는 안심했다. 수호천사이기에 누군가 당했어야하는 고통을 자신이 받으면서도 감내해주었다는 것에 희망이 보였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각각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이 스토리 전개에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입장이나 속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강렬하고 독한 이야기일지라도 치열한 교실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에 공감이 된다. 이 또래 아이들은 읽으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아이들 스스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그 과정에 참여해보려 애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어른인 나는 아이들 뒤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