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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동무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5
배유안 지음, 이철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1월
평점 :

창경궁 동무
배유안 지음
이철민 그림
푸른숲주니어 펴냄
책을 받아 들고, 제목이 참 정답다 싶었다. 창경궁 뜰에서 같이 뛰어놀던 동무겠지. 그런데 정조 뒤에
쳐진 발에 등돌린 정후겸이 보인다. 주먹을 쥔 채, 서있는 모습이 쓸쓸해보인다.
이 책은 정조의 어린 시절, 사도세자의 죽음, 정조의 즉위 등의 큰 맥락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조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정후겸이라는 인물을 조명하여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궁 안의 정치적인 상황과 사건들을 그리고
있고 있다.
특히 어린 정후겸의 시선, 즉 1인칭 시점으로 정조를 동경하고 좋아하는 우정과 어쩔 수 없는 열등감과 질투심이 대비를 이루며 갈등하는
과정을 매우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첫부분 몇 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작가 소개부분을 다시 보게 되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가
담담하고도 앞 뒤 이야기의 연결이 굉장히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문체였고, 그래서인지 술술 잘 읽혔다. 정후겸 자신의 목소리로 본인의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다. 작가인 배유안은 2006년에 <초정리 편지>라는 작품으로 창비좋은어린이책 대상을 받았고, 역사적인 소재를
많이 다룬 어린이, 청소년 소설을 많이 쓰고 있다.
정후겸은 원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서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해야하는 환경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어부로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았고, 어린 정후겸은 아버지를 따라 어부의 삶을 배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그는
자신이 몰락한 가문의 자식이라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글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상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들의 속마음은
읽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정후겸을 데리고 먼 친척뻘인 부마와
화완옹주의 집에 찾아간다. 어촌에서 썩게 내버려둘 아이는 아니라는 판단이 섰던 정후겸의 아버지는 아들을 맡기며 연신 잘 부탁한다고 말을 하면서 굽신거렸다.
특유의 영민함과 상황판단력을 갖춘 정후겸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 글공부를 계속하여 과거를 통해
양반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열망을 품었다. 아버지인 영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화완옹주는 삶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아이도, 남편도 그녀의 곁을 떠나고 허전함과 쓸쓸함에 한숨을 쉬는 나날이 이어질 즈음,
정후겸은 자신도 이제 이 집에서 나갈 때가 되었나..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더욱 악착 같이 글공부에 매진하며 집안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 화완옹주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을 한다. 화완옹주는 이렇게 늘 바른 모습과 글공부에 뛰어난 후겸이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되고 후겸이를 양자로 들인다.


세손을 향한 동경, 열등감, 그리고 질투심
어린 정후겸은 세손이 좋으면서도 늘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열등감과 질투심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정후겸은 어쩌면 자신이 세손을 넘어설 수도 있을
거라는 허망한
욕심을 키우게 된다. 화완옹주와 그런 면에서 기질과 뜻이 맞아
떨어져 정후겸은 더욱 화완공주를 발판을 삼아 출세를 해보려 애를
쓴다.

아버지를 보내는 이산
비참한 최후를 맞고 있는 사도세자를 찾아온 이산. 이산의 울부짖음이, 그리고 사도세자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사도세자 역할을 맡았던 이제훈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떠오른다. 백성을 사랑했던 순수한 모습과, 대리청정을 하며 노론과의 정치 게임도
당당하게 잘 풀어갔던 대비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또박또박 차분하게
대사를 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죽었어야만 했는가?? 하는 강한 아쉬움을
남기는 역사적인 장면 중에 하나다.
아들을 버렸지만 세손은 지키려던 것일까? 영특하고 바른 세손을 어릴 때부터 끔찍하게 아끼던 영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이산을 효장 세자의 아들로 입적시켜 동궁으로 삼을 명분을 갖추게 된다. 이미 화완공주와 함께 한 배?를 타게 된 정후겸은 세손을 꺾고 말겠다는 의지를 더욱 더 불태우게 된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세손마저 몰락의 길을 가리라 짐작했던 정후겸의 예상은 빗나갔다.
창경궁 뜰에서 목검을 맞부딪치며 깔깔거리던 정답던 어린 시절은 어디로 간 걸까?
작가의 말처럼, 서로 격려하며 지지하는 관계가 유지되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질투심과 열등감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할까.. 좋은 만남이 하나의 길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좋은 친구, 또는 멘토로 삼을 만한 좋은 스승이나 선배. 또는
책이 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어찌보면 소통의 문제와도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사람들을 통해 좋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는 가운데 이루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