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해서 그랬어! 푸른숲 어린이 문학 3
정연철 지음, 조미자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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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을 보니 웬 남자애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캔을 발로 툭 찬다.

제목이 이 아이의 마음을 대변해주듯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속상해서 그랬어!'

아이 옆 강아지는 영문도 모른채 눈이 똥그래져 도망갈 준비라도 하는 듯 눈치를 살피고 있다.

 

『속상해서 그랬어!』는 진희와 진수 남매, 두호와 세미 남매, 기열이, 그리고 그들의 엄마, 아빠 세대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연작 동화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엄마, 아빠 사이가 멀어지고 시골의 친할머니에게 맡겨진 진수와 진희는 오누이의 사이가 좋고 시골에 와서 묵묵히 잘 견디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지만 그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있다. 자기들을 버려두고 전화 한 번 하지 않는 엄마, 아빠가 너무나 밉지만 이제나 저제나 데리러 올 때만 기다리고 있다.

 

오봉산 자락의 느티말에는 가구 수가 스무 집이 못되는 작은 마을이다. 어르신들이 주로 살고 계신 이 동네에 언제부턴가 손자손녀들이 내려와 같이 사는 집이 늘어났다. 진희와 진수, 그리고 기열이가 그 아이들이다. 마을에는 마을 공동 소유인 빨간 지붕의 민박집이 있고, 한길 옆에 개울가가 있다. 그리고 진수의 비밀 공간인 분교. 이 공간들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엄마,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상처가 있는 진수는 시골에 오던 첫날 진희와 개울물에 몸을 담그고 씻으며 개울물이 자신의 슬픔을 씻어주고 위로해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수세미 속 같이 엉켜 있던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다음부터 개울가는 언제나 나한테 약국이다. 개울이 주는 진정제는 효과가 뛰어나다. 개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곤두박질 치던 내 기분도 어느새 돌돌 차분해진다.(14p)

​그 이후로 진수는 괴로움을 주는 상대와의 갈등을 개울가에서 풀고자 시도했고, 그 효과는 만점이었다. 맑고 시원한 개울물은 그들의 얽혀있던 갈등과 속상하고 상처난 마음들을 맑게 씻어주었다.

 

느티말 빨간 지붕의 민박집에 뜻밖의 외지인들이 오고 갔다. 일주일 정도의 기간을 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진수가 맞게 된 첫번째 손님은 뚱보가족. 꽤나 부자인 것처럼 진수와 진희를 거지 취급하지만 알고보니 뚱보가족은 쫄딱 망해서 숨어 있기 위해 외진 곳으로 찾아온 것.  진수를 거지라 놀리던 두호는 시간이 흐르면서 입장이 바뀐다. 먹을 게 동이 난 두호는 진수를 졸졸 쫓아다닌다. 진수는 두호를 개울가로 데려간다.

 

개울가에서의 화해로 관계가 새로워진 아이들은 서로 정이 들지만.. 민박집에서 꽤 오래 머물던 뚱보네는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떠난다. 진수는 누군가와 헤어지는 게 정말 마음 아프지만.. '또 와!' 라고 인사하며 보낸다.

 

 

또 진수의 다른 갈등의 대상은 바로 기열이.

기열는 마음 속에 미움과 원망, 스트레스, 두려움이 가득 찬 아이다. 그런 괴로움 때문인지 아주 심한 아토피를 앓고 있다. 보험업계에서 큰 성공을 한 기열이의 엄마는 바쁘다는 이유로 양육의 많은 부분을 돈으로만 해결해 왔다. 게다가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 이혼을 고려 중이다.

기열이의 신경질적이고도 가시돋친 말과 행동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기열이의 짝인 진수는 자신에게 심한 말과 짜증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기열이가 너무 싫다. 시골에 와서도 왠지 왕따가 된 기분이 드는 기열이는 성질을 부릴 수록 사실 마음이 더 허전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벌어진 개울가에서의 물싸움. 진수와 물을 튀기며 싸우는 동안 그에겐 웃음이 터져나오고 열기가 오르고 가렵던 피부가 시원하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온 몸이 홀딱 젖은 기열이는 할 수 없이 진수네 집에 가야했다. 진수의 읍내 시장표 싸구려 옷으로 갈아입고 진수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는다. 진수는 집에 가는 기열이에게 씩 웃으며 '또 와!'하고 인사를 한다. 안하무인 기열이가 이렇게 진수의 친구가 되는 장면이 정말 흐뭇하다.

이 작품에서 개울가의 존재는 무엇일까? 왜 개울가엘 가면 몸이며 마음이 '씻은 듯이' 느껴지는 걸까. 맑은 개울물이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마음과 감정들을 터뜨려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슬프면 슬픈대로 속상하면 속상한 대로 받아주고 다독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제나 우리 곁에 한결같이 있어주는 자연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느티말 한길 옆 개울가 처럼...

이 작품은 아이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인 어른의 이야기로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혼, 경제적인 어려움, 부부의 갈등으로 비롯된 어른들의 갈등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까지 전달이 된다. 어른들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버려져서 누군가의 손에 맡겨지는 현실을 꼬집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인물이 '미숙'이다. 미숙은 바로 옆 마을 친정엄마에게 맡겨둔 희주에게 달려 가지 못한다. 이유는 돈을 벌어보려다가 들어간 다단계 회사에서 진 큰 빚 때문이다. 느티말에서 잠깐 숨어 있으려던 미숙은 진수와 진희, 기열이를 만나면서 옛 친구였던 그들의 부모들을 기억해낸다.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작품을 읽는 내내 본의 아니게 보호자로 나서게 되신 느티말 할머니들의 경상도 사투리가 살갑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강해보이는 말투지만 강한 말투 속에 더 깊은 정감이 느껴진 것 같다. 자식 농사를 잘 못했다 여기는 자식에 대한 깊은 회한이 담겨 있기도 하고, 또 손주들을 향한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개울가라는 자연을 통해 마음이 치유가 되는 과정들과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한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의 연결이 연작 형식으로 표현되어 작품의 입체감이 잘 살아난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보낸 긴 방학에 대한 기억이랄까, 이 작품은 나에게 '느티말에서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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