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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동화집 나 어릴 적에 - 박완서 선생님의 옛날이 그리워지는 행복한 이야기 ㅣ 처음어린이 8
박완서 지음, 김재홍 그림 / 처음주니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뒤 돌아보면 우리 어린 시절은 지금 아이들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었다고 말을 하게 된다...
그땐 비록 먹을게 없어 배는 고팠어도 마음은 드 넓은 바다였었고 지금의 아이들과는 틀리게 공부에 연연해 하지도 않았던 그저 하루종일 뛰어 놀아도 건강하기만 하면 됐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빙긋이 웃음을 지을수 있는 내 어린 시절..
요즘 같이 눈이 무릎까지 오는 날이면 방죽에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과 지금의 스케이트 대신 비료 푸대를 하나씩 둘러메고 나와 코가 벌게 지도록 배가 고픈지도 모르며 엄마가 밥 먹으라고 데리러 나올 때까지 이 겨울의 참 맛을 맘껏 누렸던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시절이었다..
그런 자연을 벗삼고 맘껏 뛰놀았던 우리와는 달리 시멘트 가득한 회색빛 도시와 자동차 가스 냄새를 대신 물려준것만 같아 아이들에게 어쩔땐 그저 미안하기만 하다..
지금 아이들에겐 흙 내음 가득한 자연 대신 희뿌연 도시의 매연을 선물한 것만 같아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런 내 유년 시절이 떠 올라 마냥 행복했었던 책이 바로 박완서 선생님의 <나 어릴적에>..
처음엔 그냥 선생님의 어릴적 나고 자란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을 위해 소개를 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 수록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와 글들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선생님의 도서들을 찾아보게 했다... 이놈의 기억력을 어찌 할꼬...
그래 몇년전에 아이들 도서로 만났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란 책을 찾았다...
그래 이 책에서 이미 선생님의 유년시절을 봤었지...
그때도 선생님의 유년시절을 보며 그저 반갑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또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가웠다... 그때는 만화였었는데 이렇게 동화로 다시 만나니 그 느낌이 사뭇 달라서 한층 좋은것 같다..
서울에서 오빠의 뒷 바라지를 하던 엄마는 여덟살이 되던 해 봄에 불현듯 고운 비단 두루마기를 걸치시고 나타나서 서울로 데려갈 준비를 하신다.
그 동안 고수해오던 종종머리 대신 서울식 이라고 자른 짧은 단발머리를 해서 올라온 서울은 말만 서울이지 잘 산다는 사람들은 다 사대문 안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때였지만 엄마가 집이라고 데려간 곳은 사대문 밖의 한없이 올라가야 하는 초가집의 문간방의 셋방살이 였다...
또 시골 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주인집과의 벽은 어린 아이를 한 없이 주눅들기에 만들었었고 그곳이 서대문 형무소인지 모르고 따라간 친구와 내복에 구멍이 나도록 미끄럼을 탓던 일도 엄마의 남다른 교육열에 사대문 안에 사는 친척집으로 주소지를 옮겨 놓고 주소를 외우게 했던 것도 또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가정방문에 대비해 친척집을 고스란히 몇 시간을 빌려 주인 행세를 하는 엄마를 보며 예나 지금이나 우리 엄마들의 교육열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쳐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온다...


박완서 선생님과 우리 엄마와 나이가 비슷한것 같다..
선생님의 유년기가 바로 우리 부모님 연배의 이야기 겟거니 생각을 하니 더욱더 정겨웠는지도 모르겠다...
6.25가 나기 전에 우리네 모습을 선생님의 유년시절로 대신해서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렸을 적에 했던 바가지 머리와 검정 고무신을 보며 어릴적 향수에 젖기도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내 어릴적 모습들이 하나 둘 생각이 나 가슴 한 켠이 따뜻해져 옴을 느낀다...
어릴적 같이 뛰놀던 동무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는건 선생님처럼 다시는 돌아갈수 없는 내 인생의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추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 날이면 꽁꽁 언 냇가에서 썰매를 타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우리 아이들도 지금의 어린 시절을 성인이 된 후에 나처럼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 했으면 좋겠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가족들만 생각하면 든든한 힘이 됐었던 그 시절처럼 우리 아이들도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유년시절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사진 출처:처음주니어 - 나 어릴적에>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