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시대를 대표하던 큰 별이 졌다고 평소에 책과 담을 쌓던 사람들조
차도 아쉬워하며 안타까워 했던
분이 계셨다...
고인이 되었으니 바로 과거형으로 밖에 달리 표현이 안된다...
암으로 투병중이시라는 말도 간간이 들렸고 그 투병 생활을 이겨내며 
어렵게 어렵게 시를 쓰시고 계신
다는 말도 어깨너머 너머로 들려왔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때마다 직접 뵌적은 없었지만 빨리 완쾌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드렸건만 선생님은 아
이들이 일년중에 제일 좋아하는 어린
이날에 돌아가셨다...
그날을 잊을수가 없다...
친한 친구가 죽을때처럼 왜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던지...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걸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선생님이 아픔과 사투를 벌이며 쓰셨다는 시집을 만나서 얼마나 
행복함과 더불어 선생님이 세
삼 다시 그리워지는 순간들이었다...

선생님의 딸 김영주님은 이렇게 서문에 밝히고 있었다...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기운
을 사르면서 남기신 39편의
시를 모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랬다... 이 시는 선생님의 출생부터 죽기 전까지의 자전적이면서도 
이 안에서 선생님의 품성,고집
스러움 그리고 어머니의 대한 사랑 , 
할머니의 기억, 아버지의 기억들...

모든 선생님의 한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져 가슴을 울리는 한편의 노래 
같은 그런 시집이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귀한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남
기신듯한 그런 책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 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서
            이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선생니의 애잔함이 느껴지는 시...
어느 자식이 살아생전에 잘 할까마는 이 시에서는 선생님의 애끓는 
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았나보다...


                 넋

 
               장마 그친 뒤
               또랑의 물 흐르는 소리 가늘어지고
               달은 소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데
               어쩌자고 풀벌레는 저리 울어 쌓는가
               저승으로 간 넋들을 불러내노라 
               쉬지 않고 구슬피 울어 쌓는가


               그도 생명을 받았으니 우는 것일 게다
               짝을 부르노라 울고
               새끼들 안부 묻노라 울고
               병들어서 괴로워하며 울고               
               배가 고파서 울고
               죽음의 예감, 못다한 한 때문에 울고
               다 넋이 있어서 우는 것일 게다
               울고 있기에 넋이 있는 것일 게다


               사람아 사람아
               제일 큰 은총 받고도
               가장 죄가 많은 사람아
               오늘도 어느 골짜기에서
               떼죽음 당하는 생명들의 아우성
               들려오는 듯....


               먹을 만큼 먹으면 되는 것을
               비축을 좀 한들, 그것쯤이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지혜로 치자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탐욕
               하여
               가엾은 넋들은 지상에 넘쳐흐르고
               넋들의 통곡이 구천을 메우나니


한편 한편 선생님의 시를 읽다보면 가슴도 아프고 애잔하고 고달프
게 한 평생을 사셨구나!!
그 크나큰 명성에 선생님은 이렇게 힘들게 지내셨구나...
누구나 가슴에 묻고 사는 아픔들 쯤이야 있겠
지만 이 유고집에 실려
있는 시들은 유독 더 가슴이 시린다...


토지로 너무나 유명하신 선생님이었기에 학창시절부터 읽고 또 읽고 
했던 책이 토지였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이 풀어놓은 마지막 자전적 시들이 더 뜻깊은지는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선생님 손에 들린 담배가 그리 어색하지가 않다... 
그 고달팠던 삶에서 담배가 그나마
위안이자 친구였을 것 같은 느낌
이다...
이제는 맘 편히 쉬고 계시겠지... 아마도 그곳에서도 못다한 
글을 쓰고 계시진 않을까...


이제 우리가 해야 할일은 선생님이 남겨주신 작픔들을 우리 후세에게 
고이 고이 전해주고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일밖에 더 없는것 같다...

한 평생을 불꽃같은 정열로 분노로 사랑으로 사셨고 한땀 한땀 
바느질 하시듯 수놓으시듯 정성
으로 글을 쓰셨다고 밝힌 딸의 말
처럼 선생님의 마지막 유고 시집을 만나 볼수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
이었는지 모르겠다...

애잔했던 선생님의 살아 생전의 모습들이 다시금 가슴에 오래 남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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