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 - 제5회 웅진주니어 그림책 공모전 우수작 웅진 모두의 그림책 47
길상효 지음, 조은정 그림 / 웅진주니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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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힘은 대단하다. <동갑>을 보면서 또 한 번, 확실히 느꼈다. 이 작품은 웅진주니어 그림책 공모전 우수상을 받은 길상효님의 작품인데 내 예상과는 달리 글은 없었다. 그저 그림만 있었지만 누구라도 단번에 이해시키고 몰입하게 만드는 훌륭한 이야기였다. 우리 옆에 있는 따뜻한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책. 그리고 울컥해지고 마는 책.


​동갑인 아이와 강아지. 아이도 자라고 강아지도 자란다. 서로가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고 형제고, 자매다. 즐거울 때뿐 아니라 힘들 때도 아플 때도 곁에 있는 존재. 아이는 점점 자라 자기만의 세상에 몰두하여도 곁에 머문다. 혼자 저만치 자라나는 아이를 바라보는 강아지의 시선은 조금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지만 어떠한 상황에도 곁에 있어주는 존재이기에, 결국 혼자 남을 아이는 그 존재를 평생 추억하며 살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에 비하면 그 생명이 너무 짧다 하더라도 함께 했던 추억과 온기만큼은 절대 짧지 않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한 살씩 자랄 때마다 귀엽고 흐뭇했는데 금세 쓸쓸하고 마음 아팠다. 내 손으로 쓰다듬고 안았던, 지금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따뜻한 존재들을 떠올렸고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만으로 보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옆을 지켜주는 존재를 다시금 보게 하고, 또 기억 속에 남아있는 존재를 추억하게 하는 그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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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낮은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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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노랑의 표지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서문이었다. 가끔 나는 서문을 읽다가 목이 콱 막혀버리곤 하는데 이 책도 그랬다. 읽어보고 싶었다. 쓰지 못한 이야기 안을 헤매며 사는 사람, '덜' 중요한 것을 쓰고 싶다는 야심에 자주 실패하는 사람, 자신에게 책을 포개어 읽는 사람, 밑줄을 따라 인생을 걷고 있는 사람,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는 사람의 글을.

아버지는 자살했다...는 어둡고도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시사IN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슬픔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예기치 않게 인생의 곳곳에서 불쑥 나를 방문하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 개인적인 슬픔을 넘어 여성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덩달아 생각이 많아져 가만가만 멈추곤 했다. 저자의 글은 아주 단단하다. 슬픔을 이야기하지만 비관적이지만은 않아서 계속 읽고만 싶었다. 기자라는 직업 때문일까? 간결한 표현은 어쩐지 단단한 돌이 되어 가슴에 꽂히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야기 속에 인용된 문장들 때문에 읽고 싶은 책들도 생겼다.

개인적인 아픔, 육체의 병,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아픔의 장면들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은 아름답게 쓰인 하나의 기사 같기도 하다. 알아야만 하는 것들,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생각해야 할 것들의 힘을 절실히 느끼게 만드는 글들은 단단하고도 다정해서 가끔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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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깨달았다. 나 역시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그만큼 간절하게 궁금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쓰는 사람은 쓰지 못한 이야기 안을 헤매며 산다. 세상에는 모르고 싶은 일과 모르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덜‘ 중요한 것을 쓰고 싶다는 야심은 자주 실패했다.
- P7

책에서 취한 살과 뼈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마음대로 이어 붙였다. ‘읽기‘는 자주 ‘일기‘가 되었다. 밑줄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곤 했다. 삶도, 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조차도 책에 포개어 읽었다.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반드시 만들어 주었다. 슬픔의 얼굴은 구체적이었다.
- P9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애썼지만 매번 실패하고 타협했다. 쓸 때의 나는 여기 없다. 이 글들은 나였던 것,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사라지는 일이지만 나는 내 젊음을 부러워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나는 여기에 두고, 여전히 ‘처음‘인 많은 것들에 매번 새롭게 놀라면서 다음으로 가고 싶다. 행간을 서성이며 배운 것들 덕분에 반드시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앞으로를 기대한다.
- P10

나는 사랑을 ‘어떤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관계를 지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 P36

수치심은 비밀 안에 싸여 있을 때에나 존재한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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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한테 있는 책들이 아침서가님한테도 있네요~
무지 방가워서요~
요책도 너무나 좋더라고요~
오늘은 책 뭐~읽으시나 궁금하네요~~
 
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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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da de huracanes 

연초부터 새로운 작가를 만나 도전적인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찬 현대 멕시코의 일그러진 모습을 소설로 기록한 <태풍의 계절>에서 우리는 조금의 아름다움도 기대할 수 없다. 분노에 찬 욕설이 난무하고 가난과 폭력, 마약, 강간, 매춘, 혐오가 가득한 이 작은 책에서 나는 강렬한 충격을 느꼈다. 다시 한번 강력하게 말하지만 문학적인 은유나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이 책을 읽어서는 절.대. 안될 것이다.

베라크루스의 한 마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다소 환상적인 표현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다 어느 순간 마녀가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마녀와 관계했던 중심인물 루이스미의 주변 인물들 예세니아(루이스미의 사촌), 문라(루이스미의 양아버지), 노르마(루이스미가 데려온 소녀), 브란도(루이스미의 동네 패거리 중 하나)가 각 챕터를 할당받아 이야기가 진행된다. 챕터는 나누어져 있지만, 문단은 전혀 나누어지지 않아 한번 시작하면 챕터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 눈을 뗄 수 없다. 읽다 보면 과연 누가 마녀를 살해했고 그들에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추리 소설의 형식이긴 해도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각 챕터를 이루는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그 자체로 몰입도 높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데 그들이 처한 각자의 상황으로 우리는 베라크루스라는 희망이라고는 없는 곳, 더 나아가 멕시코가 안고 있는 어둠을 함께 경험해 보게 된다. 그러니까 인상을 마구 구기며 외면하고 싶고 빨리 이 이야기를 끝내 버리고 싶어지는 이 실재하는 절망을 느껴보는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전혀 다정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시작하게 된 이 이야기는 르포르타주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작가였기에 문학적으로 순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폭력적인 방식을 취해 독자가 훨씬 더 상황을 비관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 에너지가 너무 강렬해서 덮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이내 알게 된다. 이렇게도 외면하고 싶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 실제 그들의 절망이구나, 현실이구나. 책의 끝부분에서 작가가 하비에르 두아르테 데 오초아 정권 시절에 살해된 언론인을 언급하고 있어 이것은 이 책의 배경과 연관있겠다 싶어서 검색을 좀 해봤다. 일단 각종 부패로 악명 높았던 하비에르 두아르테 정권 시절 멕시코에서 많은 수의 저널리스트들이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되고 실종되었다고 한다. 당시 멕시코를 저널리즘을 실천하기에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선정했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경찰의 부패와 고문, 무더기로 살해된 유해의 매장지가 발견되었던 일들도 있었다고 한다. 책 후반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조금 있다. 

누군가는 너무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라 문학으로 볼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보다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모르는 이 세상 곳곳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 또한 좋아한다. 너무 솔직해서 또는 그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그것을 소설이라는 장치로 기록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를 응원하고 싶다. 실제로 문단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빈곤 포르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실제 베라크루스에 살았던 독자는 소설 속의 폭력은 전혀 과장돼 있지 않다고 했다. 글쎄, 적어도 나는 어딘가에서 실재하는 현실을 너무 불편하고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빈곤 포르노'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의 문학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것도 글쎄, 그건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의도보다는 독자가 스스로 찾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읽는 동안 나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읽었지만 멕시코에 대해 알아보며 결국은 좋은 경험이 되었음을 느낀다.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온다면 또 읽어볼 것이다. 을유의 암실문고 시리즈는 서로 다른 색깔의 어둠을 하나씩 담아 서가에 꽂아 두는 작업이라는데 이 주제, 너무 끌린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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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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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데 정작 난 아직 한 작품도 읽어보지 못했다. 이번에 출간된 신작 <원청>으로 첫 발을 디뎌보겠다 마음먹고 읽었는데 아, 진짜 페이지가 잘도 넘어가더라. <파친코>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소설 속에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 인물들의 삶 역시 속절없이 흘러가니 나 역시 속절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부모가 모두 죽고 홀로 남은 린샹푸 앞에 아청과 샤오메이 남매가 나타나면서 이들의 가혹한 운명은 시작된다. 고향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샤오메이를 남겨두고 떠난 아청은 돌아오지 않고, 린샹푸와 샤오메이는 함께 지내다 사랑하게 되고 혼인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샤오메이는 린샹푸의 재산 일부를 들고 사라지고 린샹푸는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몇 달 뒤 배가 부른 샤오메이가 돌아오고 제발 옆에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청한다. 사람 좋은 린샹푸는 다시 샤오메이를 받아주고 아이도 낳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딸아이를 낳고 한 달 후 샤오메이는 다시 사라진다. 대체 샤오메이는 무엇일까. 린샹푸는 아청과 샤오메이 남매를 찾아 나선다. 그들이 고향이라고 했던 '원청'을 향해 모든 짐을 어깨에 싣고 갓난 아이를 안은 채 긴 여정을 시작한다.

여기가 원청입니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는 원청이라는 곳을 찾아 떠돌다 '시진'이라는 곳에 닿은 린샹푸는 그곳 사람들의 말투가 아청-샤오메이 남매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청은 그들이 꾸며낸 이름이며 아청-샤오메이의 이름조차도 꾸며냈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시진에서 갓난아이의 젖동냥을 하며 단서를 찾아헤맨다. 백 명의 젖을 물고 자라난 아이라 해서 딸의 이름을 '린바이자'로 짓고 이 과정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연을 맺으며 본격적인 시진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청나라가 저물고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때다 보니 어지러운 난세와 함께 그들의 삶은 마치 촛불과 같았다. 격동하는 시대의 잔인한 비극 속에서 억척같이 살아남는 사람들의 모습은 <파친코>를 연상하게 한다. <파친코>도 굉장히 오랫동안 쓴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원청> 역시 집필 기간만 23년이라고 한다. 20세기 중국을 문학으로 복원하는 것이 위화의 꿈이었다고 하니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인연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세상 풍파로 내몰 수 있는지를 가만 생각해 보면 놀랍다. 또 원하지 않았던 시대에 내던져진 채로 격변기의 잔혹함에 맞서거나 순응하면서 악착같이 생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시간의 급류는 모든 사람이 자기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이건 아직 시작도 시작되지 않고. 끝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 위화

샤오메이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이야기다. 대체 샤오메이는 어디에 있으며, 어떤 사연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후반에 가서야 알게 되는데 사실 처음에는 좀 화가 났다. 이런 이야기에 린샹푸의 인생이 꼬여든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인간의 인생은 스스로가 한 작은 선택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린샹푸라는 사람은 아름다웠기에 과연 그가 그렇게 세상 풍파에 내쳐질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잔혹한 상황에서도 천융량과 리메이렌, 구이민과 같은 올곧은 사람들이 있어 살아갈 수 있었던 린샹푸처럼 나 역시도 그들이 있어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 않은 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위화의 작품이 처음이라 사실 장강명 작가가 추천사에 쓴 '위화적 순간'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위화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 궁금해진 건 확실하다. 아마 다음 작품으로 <허삼관 매혈기>를 읽어보게 될 것 같고 그다음은 <인생>이 될 것 같다. 

+++

  1. 린바이자와 구퉁녠의 이야기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구퉁녠은 남자인데 왜 또 갑자기 여동생이라는 건가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을 뻔 했는데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구퉁녠'과 '구퉁넨'으로 글자가 달랐다. 와... 읽는 동안 최대의 위기였어.

  3. 후반의 샤오메이의 이야기까지 다 읽고 나니 이거... 중국판 영화 '접속'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칠 듯 스치지 않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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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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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한수도, 심지어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선자는 그렇게 여자가 됐다. 한수와 이삭과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도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이 아줌마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 너머에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p.362-363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노아는 계속 공부하여 와세다 대학에 진학했다.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조선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선자나 경희 세대와는 달리 노아와 모자수는 그 어려운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절대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몸으로 느끼며 성장했다. 노아는 일본인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일본인이 혐오하는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에서 나고 자라 일본인과 다름없는 일본인. 모자수는 모자수대로 파친코에서 부를 그러모아 무시할 수 없는 조선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에 대 충격의 222페이지였다. 너무 놀라서 그날은 책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노아는 도저히 자신의 뿌리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홀연히 떠나고 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노아처럼 외골수적인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 같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또 다르다. 자신의 뿌리가 조선임을 알고,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적 시선도 분명 여전히 남아있다는 걸 알지만 모자수나 노아만큼 일본에 대한 반감은 크지 않다. 그의 세상은 애초에 그런 일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선한 일본인을 알고 있다. 고로상과 하루키, 그리고 에쓰코 같은 사람들. 2권은 이렇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정서로 자란 재일의 정서적 혼란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는 느낌도, 일본인이라는 느낌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정서. 많이 배우고 외국도 다녀오면 일본인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솔로몬의 세대에서도 차별은 여전했다. 차별적 시선을 받도록 일조했던 파친코를 결국 솔로몬이 함께 하게 되는 결말도 결국은 그런 거 아닌가. 그는 피비와도 함께 할 수 없었다. 그가 조선의 핏줄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일본에 대한 피비의 날 선 적대감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고 그런 자신의 혼돈을 완전히 이해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재일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함께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채 일본으로 건너간 선자부터 솔로몬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삶을 우리도 알아야 한다. 

* 창호, 하루키의 아내가 하루키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 후, 그리고 노아의 아이들, 그리고 한수의 말년을 조금 더 알고 싶다.

* 개인적으로 하나같은 캐릭터 참 안 좋아함...

* 이제 드라마 봐야지.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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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경희가 창호한테 기다려달라고 하기를 바랐지만, 그랬다면 경희답지 않았을 것이다. 창호는 남편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사랑했고 어쩌면 그것이 경희를 사랑한 이유일 터였다. 경희는 자신의 본질을 훼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 P53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모자수는 고정돼 보이지만 무작위성과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파친코를 왜 손님들이 계속 찾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 P80

유미에게 조선인이라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나 수치스러운 가족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끔찍한 멍에일 뿐이었다. 왜 거기 가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 P84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다를 바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일본 놈이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든, 얼마나 좋은 사람이든 더러운 조선인일 뿐이야.
- P209

삶에는 모욕당하고 상처받을 일들이 너무 많았고, 에쓰코는 자기 몫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치욕이 쌓여 있는 처지이면서도 솔로몬의 치욕을 가져다가 자신이 떠안고 싶었다.
- P238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솔로몬도 일본인이었다. 피비는 그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핏줄보다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없었다. 솔로몬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피비를 집에 보내주어야 했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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