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미끼 아래로 죽으러 오는 물고기가 있기 마련이다.

   香餌之下, 必有死魚(향이지하, 필유사어)

 

삼략은 황석공이란 정체불명의 인물이 지었다는 병략서(兵略書)이다. 이 대목은 군참(軍讖)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인데, 이 대목에 이어서 후한 상이 따르면 용감한 병사가 있기 마련이다가 이어진다. 그러면서 황석공은 그렇기 때문에 예는 선비가 돌아오는 곳이고, 상은 선비가 죽을 곳이다라고 덧붙인다. 이익으로 유혹하면 따라오기 마련인 세태를 비유하는 명구이다. 물론 이익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비유할 때도 있지만, 사람을 얻어서 일을 해내려면 거기에 맞는 조건과 격려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 본래의 의미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재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명구이다. ‘必有死魚’(필유사어)必有懸魚’(필유현어)로 쓰는 경우도 있다.

 

삼략(三略) 권상

 

 

 

 

중국사의 오늘:

193717

중국공산당이 섬서성 연안(延安)에 주둔했다. 이로써 연안은 중국 인민의 항일 투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는 항일 투쟁과 공산당 혁명의 성지(聖地)가 되어 있다.

 

 

* 도판의 위는 지금 연안의 모습, 아래는 중국공산당의 초기 인물들을 기념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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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찰이 (자신의) 검을 걸어놓다.

   季札掛劍(계찰괘검)

 

계찰은 춘추 시대 오나라 왕 수몽의 막내아들로 어질고 유능하기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기원전 550년 무렵 계찰은 노나라와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가는 길에 서()라고 하는 작은 나라를 지나게 되었다. 서의 국군은 계찰이 차고 있는 검이 마음에 쏙 들었으나 차마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계찰은 그의 마음을 눈치 챘지만 큰 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신분이라 검을 풀어 그에게 줄 수 없었다. 임무를 마친 계찰이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서나라를 들렀는데 안타깝게 그사이 국군이 세상을 떠났다. 계찰은 그의 무덤을 찾아 무덤 옆 나무에 자신의 검을 걸어놓았다. 시종이 죽은 사람에게 검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자 계찰은 그렇지 않다. 당초 내가 그에게 검을 줄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 그가 죽었다고 해서 마음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말로 내뱉지 않고 마음속으로 한 약속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계찰의 말이 조금은 고지식하게 들리지만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우리 현실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사기31 오태백세가

 

* 도판은 '계찰괘검'季札掛劍을 그린 그림.

 

 

 

 

 

중국사의 오늘:

15016(동한 환제 건화 311월 갑신)

전염병이 돌아 조정에서 구제를 명령했다. 이 전염병은 전국에 걸친 큰 전염병으로 역사책에 기록된 최초의 전국 규모의 전염병이다. 동한 말기에 오면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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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초래하는 이유로 자신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은 없다.

   敗莫大于不自知(패막대우부자지)

 

여씨춘추에는 이 말에 앞서 () 혜공과 조괄은 자신을 몰랐기에 남의 포로가 되었고, 찬도와 방연 그리고 태자 신()은 자신을 몰라 목숨을 잃었다라는 대목이 더 있다. 자신을 아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없다고들 한다. 리더가 자신을 모르면 더 큰일이다. 나라의 존망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항우는 끝내 유방에게 패하고 자결로 일생을 마감했다. 항우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왜 패했는지 모른 채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자신을 시기해서 망하게 한 것이라며 하늘을 원망했다. 노자(老子)자신을 아는 사람은 한 차원 높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라고 했다(노자도덕경33). 오월춘추에도 남을 아는 것은 쉽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렵다는 대목이 나온다. 남을 알고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알고 이기는 일이 더 힘들고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한 말이다.

 

여씨춘추』 「불구론자지(不苟論自知)

 

 

 

 

 

 

 

 

 

 

 

 

 

 

 

 

 

 

 

 

 

 

 

 

 

 * 도판은 『여씨춘추』.

 

 

 

 

 

중국사의 오늘:

194615

국민당과 공산당이 담판을 통해 국내 군사 충돌 중단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날 국민당 정부는 외몽고의 독립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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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마음에 있는 생각을 말한 것이요, 노래는 소리를 길게 늘인 것이다. 노랫소리의 장단고저는 가사의 길이에 따른 것이며, 음률은 어떤 곡이나 선율이든 본래의 시, 본래의 소리와 화음을 이루어야 한.

   詩言意, 歌長言, 聲依永, 律和聲(시언의, 가장언, 성의영, 율화성)

 

전설 속 순 임금이 여러 인재의 재능에 맞추어 업무를 나누어 맡겼는데, ()를 음악을 관장하는 전악(典樂)에 임명하면서 그에게 시와 노래, 소리와 화음의 상호 관계를 이야기한 대목이다. 상고 시대 역사 문서이자 특히 서주 초기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중요 사료 상서(尙書)에도 비슷한 구절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마천은 이 구절들을 참조하여 적절한 표현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순 임금은 이어서 여덟 종류의 악기가 내는 소리인 팔음’(八音)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잘 어울려야 신령과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교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기는 ! 제가 돌로 만든 악기들을 쳐서 모든 짐승조차 따라서 춤출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음악은 적절한 가사를 화음을 이루는 악기 소리에 맞추어 노래로 부르고 춤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순 임금의 말대로 이런 요소들은 잘 어울려야 하고, 그러면 기의 말대로 짐승들조차 덩실덩실 춤추게 만들 수 있다. 음악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이자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 도판은 순 임금.

상서, 사기1 오제본기

 

 

 

 

 

중국사의 오늘:

198114

장강 갈주 댐 공사가 완공되었다. 초당 유량은 4,720세제곱미터에 이르렀다. 이 공사로 장강 상류의 수위가 20미터 이상 높아졌고 120200킬로미터 정도 물길이 돌아가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수리 공사로 꼽히는 장강 삼협 댐 건설의 첫 단계가 완공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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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의 경계를 서로 양보하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 양보하다.

   讓畔*讓長(양반양장)

 

은나라 말기 주 부락의 서백(훗날 문왕)은 말없이 선행을 실천하고 있었다. 제후들은 일이 있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서백을 찾아와 공정한 판결을 요청했다. 어느 날 우와 예 사람들 사이에 송사가 발생했다. 해결이 나지 않자 주 부락의 서백에게 도움을 청해 왔다. 주 부락 경계에 들어서니 밭을 가는 사람은 밭의 경계를 서로 양보하고, 백성은 나이 든 사람에게 양보하는 풍속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우와 예 사람들은 서백을 만나기도 전에 창피만 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서로 부끄러워하며 돌아갔다. 위정자가 덕정을 베풀면 백성과 풍속이 선해진다.

 

* 양반(讓畔)은 순 임금이 역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밭의 경계를 양보했다는 데서 기원한다.

* 도판은 주 문왕 초상.

 

사기4 주본기

 

 

 

 

 

중국사의 오늘:

105813(북송 인종 가우 212월 무신)

인종이 일 년에 한 번 치르던 과거제도를 1년에 두 번 치르도록 고쳤다. 이는 적체된 관리들로 인한 재정 문제가 심각해지자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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