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찰이 (자신의) 검을 걸어놓다.
季札掛劍(계찰괘검)
계찰은 춘추 시대 오나라 왕 수몽의 막내아들로 어질고 유능하기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기원전 550년 무렵 계찰은 노나라와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가는 길에 서(徐)라고 하는 작은 나라를 지나게 되었다. 서의 국군은 계찰이 차고 있는 검이 마음에 쏙 들었으나 차마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계찰은 그의 마음을 눈치 챘지만 큰 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신분이라 검을 풀어 그에게 줄 수 없었다. 임무를 마친 계찰이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서나라를 들렀는데 안타깝게 그사이 국군이 세상을 떠났다. 계찰은 그의 무덤을 찾아 무덤 옆 나무에 자신의 검을 걸어놓았다. 시종이 죽은 사람에게 검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자 계찰은 “그렇지 않다. 당초 내가 그에게 검을 줄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 그가 죽었다고 해서 마음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말로 내뱉지 않고 마음속으로 한 약속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계찰의 말이 조금은 고지식하게 들리지만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우리 현실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사기』 권31 「오태백세가」
* 도판은 '계찰괘검'季札掛劍을 그린 그림.
중국사의 오늘:
150년 1월 6일(동한 환제 건화 3년 11월 갑신)
전염병이 돌아 조정에서 구제를 명령했다. 이 전염병은 전국에 걸친 큰 전염병으로 역사책에 기록된 최초의 전국 규모의 전염병이다. 동한 말기에 오면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