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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ㅣ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평점 :
찰스 디킨스의 소설은 처음인데, 상당히 재주 있는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고난, 복수, 사랑, 희생을 적절한 반전과 미스테리가 버무려진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그려냈다. 한 마디로 재밌다.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버둥대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작품성에 대한 보장도 어느 정도 깔고 가면서 대중의 인기도 노릴 수 있는, 영원한 인기 아이템 아닌가.
내 느낌에,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이미지는 '부활'과 '업'이다.
먼저 부활.
크게 보면 이 소설의 배경인 프랑스 혁명은, 그리스 로마 인본주의의 부활이라 볼 수 있을 것이며, 작게는 인물들 각각의 삶도 모두 부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주인공 박사는 백지 체포권을 가진 귀족의 횡포로, 억울한 옥살이 18년 동안, 자아를 잃어버린다. 실제로 무덤 속에 묻힌 시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존재 마저 모르던 딸과 평생 그의 가족에게 헌신적인 도움을 주는 은행원 로리에 의해, 잃어버린 자아를 찾으며 부활한다. 박사의 사위는 악행으로 점철된 귀족 가문을 버리고 평범한 시민의 성실한 삶을 살려 하지만, 두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 처하고 결국 박사와 카턴의 희생으로 기요틴에서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리고 그 개연성은 좀 부족한 듯 하지만, 어쨌든 마네트를 사랑한 카턴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이 희생을 통해 아무것도 아닌 비루한 존재에서 한 인간의 목숨과, 한 가족의 평화를 지켜낸 영웅으로 부활한다.
다음 '업'.
영국과 프랑스가 배경인 서양 소설에서 난 왜 자꾸, 핏줄에 얽히고 섥힌 동양의 '업'이 보이는지. 박사는 결국 원수의 아들을 사위로 맞게 되고, 복수를 꿈꾸며 감옥에서 쓴 그의 편지는 후에 뜻하지 않게, 그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의 남편을 교수형에 처하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한 여인을 유린하고 민중을 착취한 귀족의 아들(조카)은 자신이 지은 죄도 아닌 가문의 죗값으로 사형 위기에 처하고, 유린 당한 여인의 여동생은 그녀에게 원수의 자식(조카)이자 은인의 사위기도 한 남자에게 복수하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인 업 때문인지 결국 죽음에 이른다. 마네트의 충실한 하녀도 앞잡이 동생의 죗값을 치르는 것인지, 박사 가족을 구하며 자신은 결국 귀가 먼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묘한 '업'의 서사인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 소설의 묘사는, 혁명이 무엇이라는 막연한 관념을 뛰어넘어, 그 현장을 영화로 보는 듯 생생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치를 내건 혁명하에 자행되는 군중의 광기어린 폭력과 살인은 정말 섬짓하게 무서웠다. 아쉬운 점이라면, 드파르주 부인에 대한 작가의 곱지 못한 시선이다. 착취와 억압속에서, 언니와 조카와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한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그럴만 하지 않을까? 그녀를 단지 개인사 때문에 광기에 찬 복수의 화신으로 밖에 그려낼 수 없었을까? 아마 작가는 민중 혁명의 어두운 이면을 그리고 싶었을거라 이해해 보려 하지만, 그녀의 아픔과 갈등들, 혁명을 향한 수많은 자크들의 들끓는 내면도 좀 더 다루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