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 인문학자와 함께 걷는 인상파 그림산책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인상파에 대한 내 이해의 조각 조각 들을 불완전하나마 하나의 형태로 그러모아 주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이미 밝힌 대로, 그림 해설을 해 주는 그림책이라기 보다는, 인상파 화가들, 화상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당대 파리의 역사, 정치, 문화에 대한 이야기 책에 가깝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중점을 두고자 한 것은 인상파를 탄생시킨 당대의 분위기와 개개인들의 인생역정이 어떻게 조우하면서 헤어지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었다...... 19세기 파리는 근대화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이 변화의 순간순간을 스냅사진처럼 찍어낸 것이 바로 인상파의 그림들이었던 셈이다....말하자면 이 책은 '그림책'이라기 보다 '이야기책'이라는 운명을 가진 것이다... 우리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은 이제 하나의 고급 상품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겉모습이라기 보다 이처럼 당대의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현재성의 예술성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던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 실천의 과정은 생각처럼 그렇게 화려하거나 멋있는 광경을 펼쳐놓지 않는다 .....이들은 결코 예술을 위해 몸 바친 순교자도 성자도 아니었다. 이들도 우리처럼 개인의 열정과 자본주의의 삶을 서로 조화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중요한 것은 인상파 화가들이 서로 돕는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서로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우정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손을 뻗어 도움을 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들이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 시장의 바깥에서 자신들의 관계망을 만들어서 끝까지 인상주의라는 예술을 생환시켰던 것이다....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사랑이 인상파 화가들을 버티게 만드는 힘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지금이야 인상파가 미술 사조 중 가장 큰 인기를 받고 있지만, 근대화가 한창인 180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요즘의 듣보잡 정도 되었을 것이다. 아카데미 화풍의 그림들이 주류 시장을 이루고 살롱전에 입선하지 못하면 화가로서의 경쟁력을 보장 받지 못하던 시절,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자괴감과 가난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고통스러워 했을런지. 어느 시대에나 강자와 약자, 갑과 을이 있고 주류와 비주류가 있기 마련..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으로부터의 강한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저항하는 자의 울분과 좌절, 그들만의 뜨거운 연대와 갈등, 그리고 시대와의 타협 모두를 그들의 삶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현실은 이상과 괴리되고 대립된다. 개인의 이상과 자본주의적 현실을 어떻게 절충시켜나가야 할 것이냐는 아마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듯, 19세기의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큰 고민거리였나 보다.

 

" 카유보트가 새로운 전시회를 위해 드가와 함께 공동 기획자의 역할을 맡았다.... 공동기획을 맡긴 했지만 카유보트와 드가는 사사건건 논쟁을 벌였다....뿐만 아니라 세잔이 제기한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세잔은 인상파 전시회와 살롱 모두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드가는 이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했다. 살롱에 작품을 내는 것 자체가 인상파의 정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드가는 상황을 나름대로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살롱과 인상파 전시회에 함께 작품을 전시할 경우 독립적인 전시라는 명분이 퇴색하고 자연스럽게 인상파는 특색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잔의 이야기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신 화가들의 꿈은 자신의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부르주아가 주도하는 시장은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여전의 그림의 구매력은 살롱이라는 국가기관에 몰려 있었다. 합동 전시회 이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인상파의 대오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런 위기가 세잔의 고민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림은 팔아야 겠는데 도저히 인상파 전시회로는 소위 장사가 안되니, 인상파 전시회도 참가하면서 살롱전에도 출품하여 어떻게든 주류 편입으로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세잔의 생각이 짠하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소위 돈 안 되는 이상한 작품들의 가치를 알아 본 뒤랑뒤엘 같은 화상이나, 동료 화가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그림을 사 준 카유보트 같은 화가, 혹은 인상파 화가들의 재능을 알아 보고 그림을 샀던 이름모를 부르주아들, 즉 부유한 후원자들을 생각해 본다. 지금도 재능이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는 연예인, 예술가, 스포츠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 아닌가. 본인이 능력이 안되면 능력되는 사람들을 끝까지 밀어주는 부유한 후원자가 되는 것도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류의 발전이 있는 거겠지.

 

정말로 소설책 한 권을 읽고 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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