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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영어책을 파는 파리의 작은 서점일 뿐일진데, 그렇게나 유명하다니.. 그 정체가 궁금했다. 갈 곳 없는 문학 지망생들을 무료로 숙식 시켜준다는 주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또 거기에 묵었던, 혹은 묵을 수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인지.... 한 마디로 서점의 사람들이 궁금했달까?
지금은 치유됬지만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투병기를 풀어낸 여성 잡지 속 명사(??)의 인터뷰 처럼, 실제로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서 얼마간 머물렀던 저자의 회상기는, 정말 여성 잡지 넘기듯 휘리릭 휘리릭 술술 읽혔고, 서점의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도 충족 시켜주었다.
"실비아 비치는 파리를 사랑하게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간호사가 되어 참전한 뒤 파리로 돌아와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영어 서적 서점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던 비치는 1919년 11월, 뒤푸이트렌 가에 원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문을 열었다."
"이번 미국인은 몽상가이자 방랑가이며 작가인 조지 휘트면이었다."
"곧 조지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읽을 줄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선언하면서 '타운턴 북 라운지'를 열었다. "
"책이 정신없이 쌓여 있고 다 함께 먹는 스튜 냄비가 있는 비좁은 호텔방, 이것이 조지 휘트먼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가느다란 뿌리였다."
"1951년 8월.... 그는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필요한 것을 취하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신조에 따라 살았으며, 그 정신으로 서점을 만들었다. "
"조지와 실비아 비치는 함께 차를 마시는 사이였으며, 비치가 가끔 르 미스트랄에 들르기도 했다. 1962년에 실비아 비치가 세상을 떠난 뒤 조지는 비치의 장서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윌리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는 1964년에 조지는 자기 서점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개명했다. "
"그런 다음 그 일을 투숙객들을 위한 창작 연습 과정으로 바꿔놓았다. 건조하게 개인 정보만 적는 대신, 자신의 인생과 서점에 오게 된 경위에 대해 짧은 글을 쓰도록 한 것이다. 이 관습은 경찰의 압력이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계속됬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적힌 수만 명의 자서전이자 지난 40년 사이의 뛰어난 떠돌이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조지의 손에 남겨졌다."
"이것이 파리의 가장 좋은 점이다 .꿈을 적자와 흑자 같은 간단한 개념으로 계산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지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
"그런 극기와 자제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살아 남은 비결이며, 조지가 반세기 동안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
"놀랍게도 주제는 계속 반복되었다.주류 문화에 환멸을 느낀 사람, 상처를 어루만져줄 장소를 찾는 사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열망하는 사람...."
서점 주인인 조지 휘트먼의 캐릭터가 정말 특이하다. 글에 묘사된 대로라면 때론 고집 세고, 변덕스럽고, 자기 중심적인 아이 같은 면이 있지만,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 스무살 처녀에게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서점을 매일 열고 닫고, 외국으로 혼자 훌쩍 여행도 떠나는 그 대단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가 놀라울 따름이다. 오십여년 넘도록 가난과 화재, 정부의 탄압 등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서점을 지켜내어 세계적인 서점으로까지 만들었으니, 한 인간의 삶으로 보자면 이 만큼 성취감 만빵의 뿌듯한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을 실천으로, 감사하게도 그 실천이 어엿한 결과물로 이루어지다니....정말 멋진 삶이 아닌가...결국 한 인간의 책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이 작은 서점의 시초가 되었으며, 그 시작이 수만 명의 나그네들과 손님들에게 어떤 식으로나마 기쁨과 위안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한 인간이 가진 신념의 어마무시한 파급력이 새삼 놀랍다.
다만 지금은 돌아가셨을 것으로 짐작되는 조지의 뒤를 이어 누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지? 조지의 바램대로 그의 딸 실비아가? 오갈데 없는 문학 지망생들을 무료로 재워주고 먹여 주고 하는 전통은 물론 아직도 계속되겠지? 서점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다 떨어진 트렁크를 끌고 유유히 사라졌던, 정말로 거의 거지 몰골이었던, 내가 본 그 남자도 서점을 거쳐 갔던 사만여 명의 나그네 중의 한 명 이었을까? 등등 책이 이야기 해 주지 않는 몇 가지가 아직도 궁금하긴 하다.
세상엔 이런 사람도, 이런 책방도 있는 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