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기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9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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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의 이미지는 꽤 이중적이고 혼란스럽다. 존재한다는 의식과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그에게, 이런 의지는 곧 자신의 정체성(= 존재의 의미, 실재,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의 견고한 실재를 상징하지만, 반대로, 그가 존재하는 방식인 텅빈 갑옷의 이미지는, 실체가 없고 공허하다. 또 그는 분해되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사라지기 쉬운 존재이면도, 부대에서, 누구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존재기도 하다. 이는 의식(의지)도 결국은 일종의 껍데기같은 허상임을 보여 주는 것인지, 아님, 의지(=정신)만 있고 육체(=행동)는 없는 현대인들의 공허한 삶을 보여 주는 것인지 모호했다.  

 

그와 대조되는 인물, 구르둘루는 육체뿐인 존재로,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역시, 개성없는 이름없는 현대인들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 어떤 타자(사물, 자연을 포함한)와도 합일될 수 있는, 즉 어떠한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는 자유롭고 포용력있는 인간이라는 이중적 이미지를 가진 것 같아 역시 모호했다.  

 

다만, 이 소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겠다. 좀 웃기긴 하지만, 아질울포의 정체성의 근원은 한 여자의 처녀성이며, 랭보와 토리스먼드는 전쟁과 사랑을 통해, 그리고 작가는 브라다만테의 펜을 통해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난 그들의 모험이 이탈로 칼비노 특유의 유머스럽고 환상적인 세상 속에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됨을 보며, 나도 새해 첫 날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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