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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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결혼과, 양차 대전의 참전, 사냥을 즐겨 아프리카로 사파리 여행도 다니고, 낚시, 야구가 취미였던, 죽음의 방식 마저도 싸나이답게(?) 권총 자살이었던, 사토 도미오가 부러워 했다던, 상남자중의 상남자 헤밍웨이. 삼대에 걸친 자살, 라이프 지에 실렸던 그의 사진, 여하튼, 누구나 아는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 하지만 정작 내게, 그의 작품은 <노인과 바다>가 처음이다. 생각 보다 작품 분량이 짧아서 놀랬고, 생각 보다 작품 해설이 너무 길어서 한 번 더 놀랬다.

 

줄거리를 말하자면, 단 한 줄로 요약 가능할 만큼 단순하다. 홀로 바다에 나간 노인이 사흘간의 사투끝에 청새치를 잡지만, 돌아오는 도중 상어떼의 습격을 수차례 받고, 집에 도착했을 땐, 그 크기를 짐작케 하는 앙상한 뼈대만 남았을 뿐. 이토록 단순한 이야기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 건지. 뭔가 이유가 있긴 있겠지.

 

내 생각에, 이 소설의 미덕은 간결함에 있지 않나 싶다. 간결한 문체, 간결한 스토리, 간결한 배경, 간결한 등장인물. 너무 간결해서 심심하게도 느껴지지만, 그 간결함에 대비되어 메시지는 오히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이며 누구나 늙는다. 그래서 노인은 실제로 어부의 삶의 터전이자, 인간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 바다로, 혼자 나간다.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혼자 청새치와 사투를 벌여야 할 때,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볼 때, 상처난 손과 팔로 오직 싸움을 위해, 다랑어와 날치의 살을 씹을 때, 그게 나라면, 얼마나 외롭고 처절한 심정일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포와 외로움이 엄습할 것 같다. 그러나 노인은 청새치와의 둘만의 고독한 레이스를 꿋꿋하게 펼친다. 

 

여기서 내 해석은, 청새치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사람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젊은날의 노인이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고 실제로 싸움 대결에서도 챔피었이었던 젊은 날의 노인처럼, 청새치는 크고 강하고 훌륭하고 위엄있다. 노인은 그런 청새치를 잡음으로써, 그의 젊음을 다시 한 번 포획하고, 잃어버린 자부심을 회복하여 새로운 희망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노인은 사자꿈을 자주 꾸는데, 권력과 힘의 상징인 사자처럼 되고 싶은 그의 무의식을 투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화라는 자연의 법칙 (상어떼)은 그런 그를 내버려 두지 않고, 결국 뼈대만 남은 고기 - 마치 지금의 노인처럼- 와 함께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지치고 상처입은 노인 -기성세대-과 그를 위로하고 돌봐주는 소년 -젊은 세대- 사이의 교감과 우정은, 비록 젊은 시절 - 나아가 풍요롭고 화려했던 시절- 로 돌아갈 수 없어도,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며, 인간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자면, 노인의 행동은 어리석다. 능력이 안 되면 잡지를 말든가, 아니면 좀 현명하게 일부는 포기하고 일부라도 건져서 돌아오던가. 하자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노인의 고군분투가, 흔히 해석되듯,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라서 와 닿았다기 보다, 승산 없는 싸움인 줄 알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인간 본성에 대한 동질감과 연민 때문에, 소년이 상처와 피곤에 곯아 떨어진 노인을 두고 커피를 구하러 내려 오면서 엉엉 울때 나도 같이 잠시 울컥했다. 나였더라도, 어부의 피가 흐르고, 자신의 강함에 대한 자존심이 아직은 살아 있는 노인이었다면, 청새치와의 싸움도, 상어떼와의 싸움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테니까. 설사 다치고, 지치고, 남은 것은 뼈 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왜? 그건 어부로서의 내 능력에 대한 자존심이니까.   

 

노인은 말한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어부로서의 자존심, 자신의 강함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노인에게는 패배나 마찬가지였을까? 

인간은 패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파멸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요즈음,

패배, 그 머시라꼬.. 그기 그리 힘들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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